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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UN사무총장이 지난 5월 20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UN 창설 70주년 기념특별행사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반기문 UN사무총장이 지난 5월 20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UN 창설 70주년 기념특별행사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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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과서는 정부가 공식적인 역사 서술(historical narrative)을 전달하는 주요 도구다. 특히 단 하나의 역사 서술을 가르치도록 장려하는 나라들에서 역사 교과서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정부 메시지를 최대한 많은 청중에게 전달하는 결정적 도구이기도 하다."(보고서 65항)

"하나의 역사 교과서만을 승인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 국가가 후원하는 교과서는 정치적으로 이용될 위험이 크다."(보고서 66항)

2013년 10월, 제69회 국제연합(UN) 총회 공식 석상에서 보고된 <문화적 권리 분야 특별조사관의 보고서> 내용이다.

역사 서술과 역사 교육(교과서)에 집중해 2012년부터 작성된 이 보고서는, 총 27쪽 93개 항목을 통해 ▲역사 교육의 근본적 목적 ▲국가(정부)의 올바른 역사 서술 접근 ▲역사 교육에 대한 정부 규제의 결과 등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같은 해 8월 제출된 보고서 첫 페이지에는 "본 사무총장(반기문)은 인권위 결의에 따라 이 보고서를 유엔 총회에 제출한다"고 써 있다.

보고서를 작성한 특별 조사관 파리다 샤히드(Farida Shaheed)는 여기서 정부가 역사 교과서 선정에 개입하는 것을 우려했다. "이는 정치 소재화 될 위험이 있으며 (…) 국가가 추진하는 역사 서술을 학교 안에서 가르칠 경우 인권적 관점에서 문제가 많다"는 설명이다(86항). 2015년 현재 정부·여당이 강행한 중·고교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가 겹쳐진다.

보고서에는 "국가가 단 하나의 해석을 권장하는 방식은 다른 시각의 서술을 아예 금지하거나 구조적으로 소외시키는 식"이라며 "이는 역사적 사실과 해석의 다양성이, 특정 철학이나 이념에 맞는 단 하나의 해석으로 바뀌는 경우도 허다하다(22항)"라고 지적한다. 국정 교과서 사용의 경우 다양한 관점이 아니라 특정한 해석만을 배울 수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특별 조사관은 이어 교과서 국정화가 학생들의 학문적 자유를 침해한다고 봤다. "역사 서술을 단일화하는 것은 다양한 시각과 논쟁의 공간을 좁혀, 학생들이 자신의 나라와 지역, 혹은 세계가 당면한 복잡한 사건의 미묘한 뉘앙스를 볼 수 없게 한다(29항)", "기득권층의 단일한 시각은 공동체 안의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게 한다(86항)"는 설명이다.

"정부, 정치·종교적 목적으로 역사 교육 이용하면 안 돼"

보고서 중간 특별 조사관이 지적한 '정부의 역사 서술 통제 시점'에 대한 내용도 의미심장하다. 샤히드 조사관은 "권력자들이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학문 연구를 허용하지 않을 때 역사는 정부 통제 아래 있게 된다(34항)"며 "국가는 역사 연구·기술의 전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규제(의견 표현의 자유 제한, 발언의 제한 등)를 통해 정치적 색채가 단일한 역사적 서술을 강요하기도 한다(36항)"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역사학자 90%를 좌파 학자가 점령(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10월 7일 세계한인회장단 초청 재외동포정책 포럼)", "역사학자 90%가 좌편향(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10월 2일 국정감사)"이라는 등 논리적 근거가 미약한 발언으로, 역사 교사교수 등 학계 측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정치권 모습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조사관은 이어 "역사 교육에 있어 정부는 높은 학문적 자유를 보장하고, 커리큘럼에 영향을 끼치지 말아야 한다(51항)"며 "단 하나의 교과서를 사용하는 것을 넘어 보충교재 사용을 허용하고 역사 자료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54항)"고 꼬집었다. 그는 보고서 말미 '결론과 권고' 부분에서 특히 "정부는 정치적·종교적 목적으로 역사 교육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역사 교육은 비판적 사고, 분석적 학습과 토론 능력 배양을 목표로 해야 한다. 역사의 복잡함을 강조해, 상대적이고 다양한 관점의 접근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 역사 교육이 애국심 강화나 국가 정체성 강화, 또는 청년들을 공식 이념이나 지배적인 종교 아래 길들이려는 목적으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88항)

지난 6일 역사교육연대회의 개최 토론회에서 이 보고서를 소개한 정용욱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보고서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주어가 '국가'와 '정부'"라며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권력이 역사 교육에 개입해, 민주주의·인권적 관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어 "보고서를 관통하는 핵심어는 '다양성'"이라며, "보고서가 함축하는 바람직한 역사 교육은 학생이 다양한 사료와 방법론, 비판적 사고, 역사 해석의 다양성에 따라 역사 서사의 다양성과 그 배경에 놓인 문화적 다양성을 스스로 깨우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관련 기사: [토론회] "교과서 국정화? 일본 비판하기 글렀다").


태그:#국정 교과서 강행, #국정 교과서 전환, #역사 교과서 국정화, #교과서 국정화, #역사 교과서 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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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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