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해인사 장경판전에 보관 중인 <팔만대장경>
 해인사 장경판전에 보관 중인 <팔만대장경>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경남 합천 가야산에 있는 해인사는 우리나라 삼보종찰 중 법보종찰입니다. 해인사를 법보종찰이라고 하는 건 장경판전이 있고, 장경판전에 <팔만대장경>이 보관돼 있기 때문입니다. 직접 손으로 만져볼 수는 없지만 장경판전으로 들어가다 보면 판전에 진열돼 있는 <팔만대장경>들이 창살 사이로 실감나게 보입니다.

필자는 <팔만대장경>을 대할 때마다 세 번 정도는 감탄합니다. 우선 엄청난 목판 수와 방대한 규모에 감탄합니다. 가지런하게 정리 돼 판전을 가득 메우고 있는 팔만대장경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감탄스럽습니다.

이어, 하나하나의 목판에 글자 하나하나를 새기느라 쏟았을 노고를 생각하다 보면 지극하기 그지없었을 그 정성에 저절로 감탄합니다. <팔만대장경>은 그냥 붓으로 쉽게 쓴 게 아닙니다. 고르고, 자르고, 나르고, 말리고, 켜고, 다듬은 나무에 수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글자를 한자 한자 새겨서 만든 경전 목판입니다.

그리고 <팔만대장경>에 담겼을 뜻을 어림하다 보면 헤아릴 수 없이 넓은 뜻,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지혜에 숙연한 탄식이 어느새 다시금 절로 납니다. 세상에는 <팔만대장경>처럼 존재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연거푸 감탄을 자나내게 하는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번에 <민족사>에서 펴낸 <종용록>을 받아드는 순간, 읽어 새기는 내내 <팔만대장경>을 대할 때와 비슷한 감탄이 가슴에 이는 걸 경험하였습니다. 우선 그 방대함에 놀랐습니다. 이어 <종용록>을 펴내기까지의 과정에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수수께끼 같은 공안(화두)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설명한 내용(번역과 해석)에 감탄했습니다.

<벽안록>과 쌍벽을 이루는 공안집, <종용록>

<종용록>(역주·해설 석지현, 펴낸곳 민족사)은 공안해설집입니다. '공안'은 고칙(古則)이라고도 하고, '화두'라고도합니다. 공안은 불교(조사선)에서 수행자에게 깨달음을 열어주기 위해 사용하는 주제나 과제로 1700개가 있다고 합니다.

<종용록>(전5권) (역주·해설 석지현 / 펴낸곳 민족사 / 2015년 10월 10일 / 값 전 5권 세트 185,000원>
 <종용록>(전5권) (역주·해설 석지현 / 펴낸곳 민족사 / 2015년 10월 10일 / 값 전 5권 세트 185,000원>
ⓒ 만족사

관련사진보기


공안(화두)은 지식으로는 풀 수 없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라고도 합니다. '이뭣고', '건시궐(마른 똥 막대)', '무'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공안은 동문서답이고 아닌 밤중에 홍두깨입니다. 

'공안해설집'하면 <벽암록>을 떠올리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이 <벽암록>과 쌍벽을 이루는 공안집이 <종용록>입니다. <벽암록>을 '지혜의 칼'에 비유한다면 <종용록>은 '훈훈한 봄바람'이라는 비유로 견줄 수 있습니다.

<종용록>은 송대 때 천동정각(1091∼1157)이라는 선승의 백칙송고(100가지 공안)를, 후대 수행자인 만송행수 스님이, 재가 제자였던 야율초재 담연 거사의 부탁을 받아 '종용암'이라는 절에서 집필을 해 <종용록>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종용록>이 탄생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한 사람은 만송행수 스님에게 천동정각의 백칙송고를 해설해 달라고 부탁을 한 야율초재 담연 거사입니다. 야율초재 담연 거사는, 세계 역사상 가장 넓은 대륙을 점유하였던 몽골 제국의 창업자이자 초대 왕이었던 칭기츠칸의 행정비서관으로 핵심 참모였던 사람입니다.

담연 거사는 만송행수 스님에게 천동정각의 백칙송고를 누구든 쉽게 읽어 새길 수 있도록 해설해 달라는 편지를 7년 동안 9번이나 보내 결국 원고를 받아 펴낸 게 <종용록> 원본입니다.

팔만대장경은 쉽게 쓴 글씨가 아니라 글자 한 자 한 자를 새겨서 만든 경전 목판입니다.
 팔만대장경은 쉽게 쓴 글씨가 아니라 글자 한 자 한 자를 새겨서 만든 경전 목판입니다.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종용록>은 해당공안을 소개하는 '시중', 공안 원문이라 할 수 있는 '본칙', 본칙에 대한 촌평이라 할 수 있는 '본칙착어', 본칙 공안에 대한 보조설명과 배경을 기술하고 있는 '본칙평창', 공안을 시로 읊은 '송', 만송이 '송' 한 구절 한 구절에 대한 촌평인 '송의 착어', 천둥의 송에 대한 만송의 평창인 '송의 평창'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시중]四山相遍時 如何透脫.
[시중번역]네 개의 산(四山)이 (사방에서) 압박해 올 때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시중해설] '네 개의 산(四山)'이란 생(生)·노(老)·병(病)·사(死)를 말한다. "네 개의 산이 (사방에서) 압박해 온다."는 것은 죽음이 임박하고 있다는 말이다.

죽음이, 초대하지도 않은 이 손님이 어느 날 그대의 심장을 두드릴 때 벗이여, 어떻게 하면 이 손님을 기꺼이 맞이할 수 있겠는가. '자, 갑시다.'하고 선뜻 그를 따라 나설 수 있겠는가. 본칙 공안을 간파하게 되면 바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종용록> 1권, 119쪽-

'사산', 네 개의 산이 느닷없이 '생로병사'로 설명됩니다. 참 뜬금없는 설명입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공안이라는 건 한자를 안다고 해서 풀어내거나 해석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공안을 풀어 낼 수 있을 만큼 두루 아우르고 있어야만 가능한 선가의 지혜입니다.

[시중]示衆云 門欲闔一拶便開요 舡欲沈一篙便轉이라
[시중번역] 문이 닫히려 하자 한 번 밀면 즉시 열리고, 배가 가라앉으려 하자 한 번의 삿대질로 즉시 방향을 바꾼다.
[시중해설] '문이 닫히려 함'과 '배가 가라앉으려 함'은 향상(향상, 깨달음)에 안주하는 것을 말한다. -<종용록> 4권, 208쪽-

앞에 든 인용문은 제6칙 마조흑백(馬祖黑白) 공안에 대한 설명 중 일부이고, 뒤에 든 인용문은 제87칙 소산유무(疎山有無)라는 공안에 대한 내용 중 일부입니다.

수수께끼 같은 공안, 공식의 원리 설명하듯 풀어 설명

파스칼의 원리를 간단한 공식으로 달랑 써놓으면 대개의 사람들은 이게 무슨 뜻인지 하며 의아해 할 것입니다. 하지만 비유를 들어 그 원리를  설명하고, 파스칼의 원리가 우리 실생활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 지를 사례로 들어 설명하면 파스칼의 원리를 그렇게 어려워하지 만은 않을 것입니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가 가지고 있는 힘(에너지)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엄청납니다. 그렇게 엄청난 힘으로 달리는 자동차가 브레이크를 살짝 밟아주면 섭니다. 엄청난 힘으로 달리던 자동차가 브레이크를 살짝 밟아주면 세워지는 게 파스칼의 원리를 이용한 유압의 힘입니다.

유압의 힘, 자동차를 세우는 브레이크 원리가 파스칼 원리라는 걸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면 호기심이 생기고 재미있기까지 할 것입니다.

공안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인 것은 공안을 내는 사람이 어떤 생각(의도)으로 내는지를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종용록>을 읽으면 누구나 공안을 알게 될 거라고 하는 건 공안을 내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갖거나 하고 있는지 까지를 정말 깨알처럼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안'만을 정리했다면 <종용록>은 수십 쪽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까지 담아내다보니 그 방대한 분량이 되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설명이 세세해지다 보면 내용이 길어지고, 내용이 길어지다 보면 자칫 지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종용록>은 그렇지 않습니다. 반복되는 설명이 새롭고, 이어지는 내용이 진지합니다.

일례로, 부호아버지가 거지로 떠도느라 이미 기백마저도 풀죽어 있는 아들을 맞아들이는 과정, 3권 제56칙 '밀사백과 흰토끼(密師白兔)' '본칙평창해설'에서 읽을 수 있는 이야기는 진정한 사랑과 지혜가 무엇인가를 진하게 더듬어 볼 수 있는 뼈대 있는 스토리텔링입니다.

낯선 책을 읽다 보면 모르거나 생소한 단어가 나와 책 읽기를 중단시키거나 지연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종용록>에서는 5권, <종용록 어휘 사전>에서 종용록에서 읽을 수 있는 어휘들을 평이하게 풀이해 정리하고 있어 모르거나 생소한 단어가 나오면 언제든지 쉽게 찾아 익힐 수 있도록 해주고 있습니다. 

<종용록>에 실려 있는 100가지 본칙(공안)은 공식만 달랑 적혀 있는 어떤 법칙이나 공식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시중', '본칙착어', '본칙평창', '송', '송의 착어', '송의 평창'등은 법칙이나 공식에 대한 설명, 비유와 사례를 들어 쉽게 풀이해 주는 쉬운 설명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거듭되는 이야기지만 '본칙(공안)'만 놓고 읽는 '공안'은 분명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입니다. '동문서답'에 '아닌 밤중의 홍두깨' 같은 내용입니다. 그래서 선승들조차 어려워하고, 어렵다고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공안(화두)은 지식으로는 풀 수 없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라고도 합니다.
 공안(화두)은 지식으로는 풀 수 없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라고도 합니다.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석지현 스님은 <종용록>과 쌍벽을 이루는 공안집, <벽암록>을 번역하는 데 10년이 넘는 세월을 쏟았고, 이번에 <종용록>을 풀어 번역하는 데도 꼬박 6년이라는 시간을 더 쏟았습니다. 그렇게 번역한 내용을 책으로 편집하는 데 1년이라는 시간이 더 걸렸으니, <종용록>이 책으로 나오기까지는 도합 7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석지현 스님이 <종용록>을 번역해 내는 여정은 <팔만대장경>을 만들기 위해 목판에 글자 하나하나를 새겨 나갔을 정성과 노고와 닮았습니다. 스님이 원고를 작성해 나가는 나날은 쉽고, 편하고, 빠른 워드의 작업이 아닙니다. 글자 하나하나를 또박또박 손으로 써내려 간 육필, 1만 8천여 매나 되는 원고를 고행이라도 하듯 육필로 새긴 수행의 결과입니다. 

<종용록>(역주·해설 석지현, 펴낸곳 민족사)을 보는 순간, <팔만대장경>이 떠오르고, 읽어 가는 내내 연거푸 감탄하게 되는 건, 수수께끼처럼 도대체 새겨지지 않던 '공안'에 감춰진 뜻이 '훈훈한 봄바람'에 술술 녹아내리는 고드름처럼 시나브로 지혜로 스며들며 깨달음을 간질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동문서답만 같았던 100가지 공안 정도는 이제 어렵지도 않고 모르지도 않습니다. 석지현 스님이 6년에 걸쳐 1만 8천여 매의 육필원고로 풀어 번역한 <종용록>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만 같았던 여러 공안을 단박에 깨쳐 줄 돈오(頓悟)의 독서가 될 뿐 아니라, 엉뚱 발랄한 지혜를 무궁무진하게 챙 길 수 있어 두고두고 읽어도 좋은 책이 될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종용록>(전5권) (역주·해설 석지현 / 펴낸곳 민족사 / 2015년 10월 10일 / 값 전 5권 세트 185,000원>



한 권으로 읽는 종용록

만송 행수 지음, 혜원 옮김, 김영사(2018)


태그:#종용록, #석지현, #민족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