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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군 광시면 서초정리로 깊숙이 들어서면 골망을 끼고 앉은 산 속에 밤밭이 펼쳐진다. 급한 경사면까지 빼곡이 자란 밤나무에는 주먹만 한 밤송이들이 전설처럼 몸을 벌려 실한 알밤을 '툭툭' 땅바닥에 던진다. 촘촘히 박힌 가시로 중무장을 해 기세가 등등했지만 청명한 가을 하늘빛과 따사로운 햇살은 못 이기겠다는 모양새다.

급경사지 산에 16㏊(15만8700㎡)나 되는 밤밭을 일군 주인공은 충남임업연구회 최종민 회장이다. 예산군의 밤나무 재배면적은 공주나 청양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지만 그래도 최회장 덕분에 예산밤이 명맥이나마 유지하고 있다.

최종민 회장이 막 벌어지기 시작한 밤송이 가지를 꺽어 보이며 “너무 고되다”고 말하면서도 금새 흐뭇한 표정이 된다.
 최종민 회장이 막 벌어지기 시작한 밤송이 가지를 꺽어 보이며 “너무 고되다”고 말하면서도 금새 흐뭇한 표정이 된다.
ⓒ <무한정보신문>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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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에 온갖 고생을 다 해봤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밤송이 우엉송이 다 끼어 보았다'는 말이 있다. 이제 힘들어서 더 이상 밤농사를 짓지 못하겠다는 최 회장의 인생역정이 그렇다.

경북 포항 출신으로 대전에서 전국적으로 알아주는 산업폐기물처리업체를 운영하다 IMF때 부도를 맞았고, 그로 인해 온갖 모진 고생을 다 했다고 한다. 부도난 사업체를 마지막까지 책임을 다해 정리한 뒤 우연한 기회에 예산과 인연을 맺었다.

지난 2002년 봄, 예산과 청양 동쪽 임야를 휩쓸어 버린 대형산불 뒤, 한 지인이 밤나무 재배에 관심이 있던 최 회장에게 잿더미가 된 지금의 산을 소개한 것. 그리고 2005년부터 밤나무에 제2의 인생을 걸고 민둥산에 묘목을 심기 시작했다.

"산 속에 컨테이너 하나 들여놓고 혼자서 밥 끓여 먹으며 묘목 1만주를 심었어요. 나무마다 일일이 수성페인트 칠하고 모빌유(병충해 방제) 바르고, 어떤 날은 경사지에서 굴러 기름통을 뒤집어 쓰기도 하며 참으로 말 못할 고생을 했지요."

그렇게 정성껏 키운 밤나무 7000여주가 성목으로 자라 매년 실한 결실을 내어주고 있지만 최 회장은 신바람이 나지 않는다. 밤값이 싼 것도 기운을 빼지만 더 힘든 것은 일손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한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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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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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나무가 그냥 크는 게 아니에요. 거름도 줘야하고 가지치기도 해야 하고 제초작업은 예초기를 쓰는 전문인력이 10명은 있어야 해요. 품삯도 비싸고…. 더 큰 일은 수확인데, 땅바닥에 떨어진 알밤을 일일이 사람 손으로 주워야 하기 때문에 최소한 40명은 있어야 하는데 농촌에 사람이 있나요. 오늘도 할머니 몇 분 구했는데 능률이 안 올라요. 밤값이 잘 나올 때 1800원(㎏당)인데 한사람당 30㎏ 이상 주어야 겨우 제 인건비가 나옵니다. 이젠 정말 힘들어 못할 것 같아요."

최 회장의 말을 들으니 제 값을 못받는 농산물 문제와 급속히 공동화 되고 있는 농촌의 일손 부족이 더욱 심각하게 다가온다.

밤밭을 둘러보던 최 회장은 "올해 가물어서 밤이 크기도 작고 흉년이에요. 병고와 대보(밤 품종) 반반씩 심었는데 맛이 아주 달아요. 우리 밤이 최고지요"라고 말했다. 신바람은 나지 않아도 밤자랑을 하는 최 회장의 눈빛에 자부심과 자신감이 넘친다.

잿더미가 됐던 산에 밤나무를 심고 10년을 땀흘려 온 그의 꿈은 정말 헛된 것일까.

밤은 씨앗인 알밤이 땅에 묻혀 어린나무로 자랄 때까지 밤껍질이 뿌리에 계속 붙어 있어 근본(선조)을 잊지 않는 나무로 여겨왔다. 그래서 많은 과일 중 제상에 먼저 오르게 됐다고 한다.

"10년 전 밤나무를 심으며 이 나무들이 아름드리 자라면 대대손손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최 회장의 꿈이 어떻게든 이뤄질 수 있기를 기원하며 밤밭을 내려오는데 황금빛으로 익기 시작하는 다랑이논의 벼들이 눈에 들어온다.

덧붙이는 글 |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신문>과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밤, #밤농사, #밤나무,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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