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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 우울증은 출산한 산모 10~15%가 경험한다.
 산후 우울증은 출산한 산모 10~15%가 경험한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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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면 아무도 아픈 줄 몰라요. 계절적으로 우울증이 많다는 가을. 산후 우울증으로 자살한 산모나 아이를 죽인 산모에 대한 기사를 볼 때마다 저 역시 힘들었던 출산 직후를 떠올리게 됩니다. 산후 우울증은 주변에서 신경을 써주어야 합니다. - 기자 말

며칠 전 신문을 통해 4개월 된 딸을 둔 외국 거주 여성이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자살이다, 사고사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저는 '4개월 된 딸을 둔 여성'이라는 부분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외국에서 홀로 아이를 키우는 것은 너무 힘들었을 거야, 아마 산후 우울증이었나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약 10~15%의 산모가 아이를 낳은 뒤 산후 우울증에 빠진다는 통계가 있습니다(2007). 언론 보도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산후 우울증은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세계일보>는 지난해 10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산후우울증으로 진료 받은 여성은 지난 2009년 125명 이후 연평균 14.4%가 증가해 지난해 214명에 이른다"면서 "우울증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정신행동장애 등 다른 정신과 질병의 같은 기간 연평균 증가율이 2∼4%대에 그치는 점을 감안하면 심각한 수준이다"라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산모들이라면 으레 산후 우울증을 겪으리라 생각하고 적극적인 치료에 나서지 않거나 주변에서도 눈치 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실제 병을 앓고 있는 비율은 훨씬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간절히 기다렸던 쌍둥이, 그러나 현실은...

이렇게 신문 기사로만 만나던 산후 우울증, 저도 피할 수 없었습니다. 2009년 2월, 쌍둥이 남매가 태어났습니다. 시험관 시술로 태어난 쌍둥이 남매는 6년 동안이나 간절히 기다렸던 소중한 생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산과 더불어 따라오는 난생 처음 해보는 육아는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산이었습니다.

즐거워야할 육아는 힘들기만 했고, 늘 기분은 바닥으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하필이면 남편은 회사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매일 야근도 모자라 토요일에도 출근을 해야 해, 일요일에는 파김치가 돼 있기 일쑤였습니다.

도저히 저 혼자의 힘으로는 쌍둥이 육아가 어렵겠다는 판단 때문에 아이들과 짐을 싸들고 친정에서 머무르기로 결정했죠. 친정집은 넓지도 않았고, 남편의 회사와도 멀었기에, 남편은 집에서 혼자 출퇴근을 하고 주말에만 친정을 찾았습니다. 친정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결정할 때까지 4~5개월쯤 그런 생활을 했던 것 같습니다.

마침 그 해 여름, 남편의 회사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룹사의 방침으로 IT팀은 IT계열사로 소속을 이동하기로 한 것에 팀원 전체가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죠. 급여와 복지수준의 차이가 가장 큰 이슈였습니다. 물론 IT 회사로 옮겼을 때 부서 이동이라도 생기면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어려운 혹은 야근이 더 잦을 수 있다는 이유들도 있었을 겁니다. 남느냐 가느냐에 대한 투쟁을 하고, 개인의 진로에 대한 중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기였습니다.

마침 제가 2002년에 겪은 일과 완전히 같은 상황이었어요. 제가 2001년에 입사한 회사에서 2003년 1월 기준으로 같은 이유의 이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우리 팀도 아수라장이 됐고, 이후 퇴사한 인력도 무수히 많았습니다. 당시의 저와 회사가 겪은 변화를 고스란히 지켜본 남편의 입장에서는 IT 계열사로의 이동 이후 상황에 대해 많은 불안을 느꼈을 것입니다.

남편의 진로이자 우리 가족의 미래를 상의하기 위해 아이들이 잠든 밤, 저는 친정집에서 우리 집으로 운전을 해서 달려갔습니다. 새벽에도 유축을 하던 시기라 남편과 한두 시간 이야기를 한 다음 다시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야 했어요. 그 밤에 올림픽대로를 달리고 한강을 건너면서 무수히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지금은 서로 다른 업종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첫 회사의 입사 동기로 시작해 비슷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남편은 난관이 있을지언정 사회생활을 통해 계속 앞으로 나가는 것 같은데,   저는 육아를 해야 했던 터라, 사회에서 낙오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평소 기대치와 너무 달랐던 쌍둥이 육아로 심신이 지쳐 주위 사람들이 원망스러웠고, 아이들을 예뻐만 하지 못하는 나에 대한 실망감 등이 며칠 동안 저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상태였거든요.

운전대를 잡고 있던 손이 부들부들

정말 그때... 운전을 하던 중 오만가지 생각 끝에 '죽고 싶다'는 단어가 떠오르자 운전대를 잡고 있던 손이 부들부들 떨렸어요. 어느 순간 제 손이 꼭 운전대를 꺾어 저 강으로 뛰어들어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제 손을 꺾지 않은 것은 눈에 아른거리는 친정엄마와 아이들의 얼굴이었어요.

한 달여 동안 일주일에 두세 번씩, 친정과 집을 밤마다 오가면서 손가락 마디가 하얘지도록 운전대를 꼭 부여잡고 눈물을 줄줄 흘리며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눈물이 나면 앞이 안 보이니까 울지 말자고 되뇌었던 걸 보면 다행히 삶에 대한 의지가 없지는 않았나 봐요.

당시 친정과 집을 오가면서 운전할 때마다 든 무서운 생각 탓에, 운전을 해서 집에 다녀오지 않는 날에도 저는 밤마다 울었습니다. 글을 쓰는 중에도 그때의 느낌이 생생한 걸 보니... 저는 뒤끝이 무척이나 긴 사람인 것 같네요.

남편 회사 내의 투쟁은 한 달을 넘기지 않았고, 그로부터 한 달쯤 뒤 친정엄마에게 '나쁜 년'이라고 욕을 먹으면서도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을 내내 붙들고 있다가는 제가 어떻게 되어버릴 것만 같았어요. 그 시기에 적극적으로 밖으로 나가 기분을 전환을 했어야 하는데, 저는 이유식 준비와 집안일에 함몰돼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서도 다른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친정엄마는 친정에서 아이들 봐주는 걸 도와주는 거라고 알고 계실 시댁에서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는 사실을 알게 될까봐 전전긍긍하셨고, 오전 10시에 보내 오후 2시에 데려오곤 했으니까요.

결국 두 달쯤 뒤에 친정과 같은 아파트 단지로 이사를 하면서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고, 저의 마음도 어느 정도 풀어졌습니다. 아니 풀어졌다기보다 몇 개월을 더 버티다가 저는 조기 복직 쪽에 손을 들었습니다. 육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회사라는 도피처로 도망을 친 것이죠.

당시에는 저의 상황이 산후 우울증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지나고 나서야 되돌아보니 생각보다 제 상태가 심각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우울한 터널을 사고 없이 잘 빠져나올 수 있었음에 감사해야 할 노릇이네요.

육아 때문에 힘들다면, 도움 요청해야

지금도 출산 후 우울해 하던 산모가 자살을 하거나, 아이를 살해했다는 기사를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꼭 극단적인 신문의 기사가 아니더라도 임신이나 육아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하거나, 아이에 대한 비정상적인 집착 등의 감정을 보이는 엄마들은 주위에서도 여럿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남들도 다 키우는 아이, 옛날에는 애를 낳자마자 밭으로 일하러 나갔다며 아무렇지 않게 치부하는 어른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대가족 단위로 생활하고, 온 마을이 아이를 키우는 데 도움을 주던 시기와 아이와 엄마만 덩그러니 남겨진 지금을 단편적으로만 비교해서는 안 되거든요.

가사나 육아로 힘들면 주위에 알리고 도움을 요청해야 해요. 요즈음은 가사도우미나 산후도우미 등에 대해 구청에서 많은 지원을 해줍니다. 구청서비스 외 사설 유료서비스도 많고요. 또 회사를 다니든, 안 다니든 남에게 이기적으로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보육기관에 아이를 보내는 육아를 통해 엄마의 삶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직장맘이든 전업맘이든 아이를 키우는 건 힘든 일이니까요.

덧붙이는 글 | 네이버 블로그에 2014년 11월 11일자로 등록한 글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태그:#70점엄마마음, #쌍둥이육아, #산후우울증, #워킹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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