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제 오후 건물 밖 주차부스에서 근무하던 중이었다. 회사 건물 후문 쪽이 시끌벅적하면서 단골(?) 진상고객 하나가 직장상사와 함께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한동안 안 보이는가 싶더니 그예 또 모습을 보인 진상고객이었다.

참고로 '진상고객'은 상품을 구입한 고객이 특별한 이유 없이 환불을 요구 또는 반복하거나 말도 안 되는 서비스를 강요하는 부류이다. 또한 일반적인 사회 통념 상 상식 수준을 벗어나는 행위를 하는 고객으로서 영업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어제의 그 진상고객은 사실상 '고객'이 아니었다. 툭하면 찾아와 여직원들을 희롱하는가 하면 무엇 하나라도 반드시(!) 꼬투리를 잡아 호통을 치고, 이에 사과하는 모습에서 희열을 느끼는 일종의 정신병자와도 같은 자였다.

이 같은 주장은 그의 후안무치한 행위를 그동안 여러 차례나 보아온 때문이다. 하여간 이에 넌더리를 느낀 직원들은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나'라는 말처럼 가급적이면 빨리 보낼 요량으로 그 진상고객을 설득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기 일쑤였다.

그런데 어제는 예전의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고성을 주고받는 것으로 보아 이미 건물 안에서부터 어떤 사달이 벌어졌지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주차부스 곁까지 온 두 사람의 언쟁은 더욱 격한 파도로 이어졌다.

"당신, 툭하면 찾아와서 우리 여직원들에게 호통이나 치고 불친절하다며 상부에 신고한다는 따위의 몰상식으로 일관하는데 대체 왜 그러는 거요? 당신의 그런 몰염치 때문에 우리 여직원들이 놀라서 지금 한 사람은 급기야 당신을 피해 지하로 숨기까지 했습니다. 잊을 만 하면 찾아와서 이 같이 진상을 부리는 까닭이 도대체 뭐요?"

직장상사의 이유 있는 주장에 압도당했던지 아님 그래서 말이 막혔던지 하여간 그 진상(고객)은 이번엔 급기야 욕설로까지 대하는 게 아닌가! "XXX아, 너도 짤리고 싶어?" 순간 기본과 예의, 그리고 상식과 경우(境遇)마저 상실한 그 진상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꾹 참고 있던 이유 있는 분노와 격앙의 도화선에 마침내 불이 붙고 말았다. 주차부스의 차량진입 차단기를 세워놓고 주차부스를 뛰쳐나갔다. "너 지금 누구더러 욕하는 거야? 당장 담뱃불부터 꺼 임마. 그리고 얼른 사과해!" 하지만 그 진상은 여전히 막무가내였다.

"아무리 우리가 안내데스크와 주차부스에서 하루 종일 웃으며 고객을 맞아야 하는 안내 여직원과 경비원이란 직업의 을(乙)의 입장인 감정노동자라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네 아버지뻘 되는 분에게 감히 욕지거리를 해? 이런 건방진 넘 같으니라고! 너 같은 넘은 성희롱 죄로 경찰에 신고해도 부족치 않아, 알간?"

나의 과격한, 그러나 타당한 저항에 그 진상은 그제야 주춤하며 머리를 숙였다. "다시는 여기 오지 마라! 너 때문에 우리 직원들이 극도의 스트레스에 함몰돼 있다고. 불친절 사원 운운 이전에 우선인 건 바로 개개인의 인권이야! 알아?"

진상이 특유의 비만한 몸을 좌우로 출렁거리며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걱정이 돼 안내데스크로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두 여직원은 여전히 그 진상의 말도 안 되는 호통과 불친절 사원으로 본사에 신고하겠다는 따위의 협박 공포감에 휩싸여 전신을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그 진상을 쫓아 보냈으니 이젠 안심하고 일해요." "수고하셨습니다!" 두 여직원은 내 딸과 같은 또래다. 특히나 역대(?) 여직원들치고 지금처럼 환상의 콤비가 따로 없을 정도로 그렇게 일을 참 잘 한다. 하여 평소 또 다른 내 딸들이다 싶을 정도로 아끼는 터다.

"많이 놀랐으면 우황청심환이라고 사다줄까?" 물었으나 손사래를 치기에 참았지만 아무튼 그런 진상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힘이 들까 싶어 마음이 아팠다. 한 달 전 오래 사용한 스마트 폰이 툭하면 꺼지고 문자 송신도 안 되는 등 말썽을 부렸다.

그래서 그 휴대폰 제작회사의 서비스센터를 찾아 수리를 받았다. 서비스를 마친 엔지니어(기사)는 추후 회사에서 서비스 만족도를 묻는 전화가 올 건데 좋은 점수를 주십사는 부탁을 했다. "당연하죠~ 120점 드릴 테니까 걱정 마세요."

실제 그런 전화가 왔기에 나는 다시금 "기사님이 너무 친절하셔서 아주 만족했습니다!"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이 시렸던 건, 기실 서비스업종에 몸담고 있는 거개의 직원(종업원 or 노동자 포함)들은 자본과 고객의 힘에 짓눌린 친절이라는 미덕에 희생되고 있는 감정노동자라는 느낌 때문이었다.

어제 한바탕 '난리부루스'를 벌인 진상은 전형적인 게정꾼, 즉 불평불만으로 떠드는 사람이었다. 또한 말이나 행동이 모질고 거칠고 사나운 사람을 이르는 말인 '구나방'이기도 했다.

헌데 이런 사람들의 특성은 상대방이 자신의 말과 행동에 굴복하는 듯한 자세를 보이면 거기서 희열까지를 느낀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재발의 방지 차원에서라도 반드시 '응징'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었다.

어제의 경우처럼 안내데스크에서 일하는 직원 내지 서비스센터의 종사원들, 텔레마케터와 식당 등지의 종업원들 역시 무시로 고객과의 응대와 직무 상 갑을 관계의 종속(從屬) 따위에서 비롯된 굴절된 무한친절의 힘에 짓눌린 계층이란 주장이다.

마음에도 없는 친절, 하지만 가족과 먹고살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웃음과 서비스까지를 억지로 팔고 있다. 이를 굳이 알아달라고 하진 않겠다. 다만 그들도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한 가정의 아버지와 어머니며 또한 귀한 아들과 딸이라는 사실이다.

감정노동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고객으로부터의 극도의 모멸감까지를 감내해야 하는 사회는 분명 병든 사회다. 그로 말미암아 지금 이 시간에도 숱한 감정노동자들은 갖은 폭언과 욕설 등에 시달리면서 우울증 치료까지를 받고 있다.

퇴근길에 직장상사와 두부두루치기 전문 식당에 들러 소주를 나눴다. "내일은 부디 진상고객이 오지 않길 위하여~"라며 건배했다. 술잔에 사회적 약자인 감정노동자의 비애(悲哀)가 가득 담겨 출렁거렸다.


태그:#감정노동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 저서: [초경서반]&[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 대전자원봉사센터 기자단 단장 ▣ 月刊 [청풍] 편집위원 ▣ 대전시청 명예기자 ▣ [중도일보] 칼럼니스트 ▣ 한국해외문화협회 감사 / ▣ 한남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CEO) 수강 중

이 기자의 최신기사[사진] 단오엔 역시 씨름이죠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