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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가 내립니다. 오랜만에 추적추적 내립니다. 추수를 앞둔 가을비는 반갑지 않다지만, 김장 채소밭에는 단비가 될 것 같습니다. 비를 흠뻑 맞은 배추는 속이 차오르고, 무는 밑동이 통통해질 것입니다.

독이 있어도 착하게 자라는 토란

아내가 근무지에서 전화를 합니다. 퇴근을 하려는 모양입니다.

"여보, 토란 좀 까놓을 수 있어요? 따끈한 토란국 끓이게요."
"그럴까? 내 몇 알 손질할 테니, 서둘지 말고 오라구!"

손질한 토란입니다.
 손질한 토란입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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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토란국을 참 좋아합니다. 쇠고기를 넣어 국을 잘 끓입니다. 어쩔 때는 들깨를 갈아 넣어 토란탕을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는 해년마다 토란을 가꿉니다. 직접 거둔 종구(種球)를 보관해뒀다가 한 이랑을 심습니다. 4월 하순쯤 심어놓으면 큰 관리를 하지 않아도 잘 자랍니다. 무엇보다도 병해충에 강해 심어놓기만 하면 잘 자랍니다.

토란은 싹이 참 더디게 납니다. 심어놓고 한참을 잊어버리고 있으면 동그랗고 예쁜 잎이 빠끔히 고개를 내밀어 반가움을 줍니다.

토란은 잎이 널찍하고 연잎과 비슷하여 토련(土蓮)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가 토란을 알뿌리라고 여기지만 실은 알줄기가 맞습니다. 그러니까 알줄기로 번식하는 셈이지요. 약간 습한 곳에서 잘 자라 재배환경이 맞으면 어른 가슴까지 키가 큽니다. 가뭄을 타지 말라고 요즘은 비닐피복을 하여 재배를 합니다.

우리가 가꾼 토란밭입니다. 가뭄에도 잘 자라주었습니다.
 우리가 가꾼 토란밭입니다. 가뭄에도 잘 자라주었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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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은 뿌리에서 나옵니다. 긴 잎자루는 우리가 흔히 먹는 토란줄기입니다. 토란잎을 보면 예전에 비올 때 우산이 되어주던 추억이 아련합니다. 널따란 토란 한 잎을 머리에 받쳐 들고 쏜살같이 달리다 처마 밑으로 숨어들어 비 그치기를 기다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가난했던 우리들 삶의 한 토막 이야기지요. 토란잎에 빗방울이 부딪치면 또르르 맺혀 굴러떨어지는 이치를 그때도 알았을까요?

토란은 천남성(天南星)과로 독성이 있습니다. 토란잎자루나 덩이줄기는 날것으로 먹지 못합니다. 날것으로 먹으면 속이 아려 먹을 수가 없지요. 반드시 끓는 물에 데쳐서 일차로 아린 맛을 제거하고 먹어야 합니다.

예전 우리 고향마을에서는 집집마다 텃밭 가장자리에 토란을 심었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토란을 추석 임박해서 수확했습니다. 추석 차례상에 탕국으로 올리기 위해서였지요. 그때 먹었던 입맛의 기억에 나는 텃밭에 토란을 가꿉니다.

손이 많이 가는 토란

추석을 앞두고 아내가 텃밭을 둘러보다 말합니다.

"여보, 우리 토란 거둬들여야지요? 예년보다 키가 작아 더 기다려야 하나?"
"가뭄에 크게 못 자란 것 같아. 그렇지 않아도 오늘 캐려고 했어."
"비 한 번 맞으면 더 크지 않을까요?"
"이제 더 크면 얼마나 크겠어! 캐보자구!"
"난 오늘 출근인데, 당신 혼자 힘들어서 어떻게 해?"
"이틀에 걸쳐 쉬엄쉬엄 거두지! 오늘은 날도 좋구먼!"

나는 토란을 수확합니다. 우리 텃밭 가을걷이로 첫 작품인 셈입니다. 토란을 거두는 일은 만만찮습니다. 덩이줄기 캐는 일이야 쉽지만, 잎자루 손질은 많은 시간 공을 들여야 오래두고 먹을 수 있습니다.

낫을 찾아 잎자루 밑동을 베어냅니다. 잎자루를 베면서 토란꽃을 찾아봅니다. '올핸 토란꽃이 피지 않았나?'

토란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달렸습니다.
 토란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달렸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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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란꽃은 잎자루 사이에서 서너 개의 꽃줄기가 나옵니다. 흔히 볼 수 없는 꽃으로 100년 만에 피는 귀한 꽃이라는데, 나는 토란을 가꾸면서 여러 번 토란꽃 구경을 했습니다.

토란꽃의 자태
 토란꽃의 자태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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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구실도 못하는 열매를 맺느라
널찍한 잎, 큰 줄기에 가려 꽃 피우느라
노란 꽃잎 속살에 감춰진 독(毒).

100년에 한 번 핀다고
마음속 한이 꿈틀대더라도
독을 품어서는 안 될 일. 

토란꽃님,
기왕 어렵게 얼굴 내밀었으니
이젠 착한 사람 곁에선 참고 참아
순한 마음으로 오세요.

원래 당신 꽃은 착하잖아요!
전갑남의 졸시 <토란꽃>

토란꽃을 찾아보는데 꽃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유심히 살피자 토란꽃은 이미 지고 없습니다.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맺힌 자국만 보입니다. 토란꽃은 긴 고깔모자의 노란꽃이 참 예쁩니다. 귀한 토란꽃을 못보고 지나친 게 아쉽습니다.

토란잎자루를 베어낸 양이 꽤 됩니다. 이제부터는 일이 많습니다. 잎자루 껍질을 벗겨 해에 말리면 질감이 좋고 부드럽습니다. 말린 토란잎자루는 묵은 나물로 요긴하게 쓰입니다. 들깨를 갈아 토란나물을 버무려 먹으면 그 맛이 일품입니다. 육개장에 토란잎자루는 약방에 감초 격입니다.

거둬들인 토란잎자루. 상당한 양입니다.
 거둬들인 토란잎자루. 상당한 양입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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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란잎줄기는 끓는 물에 데쳐 껍질을 벗겨야 잘 벗겨집니다.
 토란잎줄기는 끓는 물에 데쳐 껍질을 벗겨야 잘 벗겨집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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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란잎자루는 바로 베어 껍질을 벗기면 잘 벗겨지지 않습니다. 잎을 떼어 내고 토막토막 잘라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벗기면 홀랑 벗겨집니다. 일일이 손이 가야하니 시간이 꽤나 걸립니다.

손질하여 해에 사흘정도 말리면 묵은 나물로 오래두고 먹을 수 있습니다.
 손질하여 해에 사흘정도 말리면 묵은 나물로 오래두고 먹을 수 있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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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아주머니를 불러 일을 도와달라고 하니 "이렇게 손질하는 정성이면 사먹는 게 싸다"고 합니다. 혼자 할 때 보다 함께 하니 일을 쉽게 마칩니다. 아주머니는 해에 잘 말려 자기한테도 나누자고 합니다.

아는 사람만 아는 토란의 맛

다음 날, 나는 삽과 호미를 준비하여 토란을 캤습니다. 이웃집 아주머니가 구경 왔습니다. 아주머니는 토란 맛을 잘 아는 분입니다.

"토란 밑이 어때요?"
"괜찮아요! 생각보단 밑이 실하네요!"
"넉넉하면 우리도 추석 때 쓰게 한 바구니만 주구려."
"많아요. 그럴게요."

토란을 말려 얼지 않게 보관하면 귀한 식재료가 됩니다.
 토란을 말려 얼지 않게 보관하면 귀한 식재료가 됩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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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물어서 밑이 잘 들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는데 알이 통통합니다. 의외의 수확에 기쁨이 더합니다. 밑도 실하고, 수확량이 꽤 되어 토란 맛을 아는 여러 이웃들과 나누게 될 것 같습니다.

토란을 손질하는 것도 꽤 힘듭니다. 토란에 붙은 잔뿌리가 무척 많습니다. 이걸 떼어 내는 일이 만만찮습니다.

토란을 까는 것도 가려움증을 유발하기에 쉽지 않습니다. 장갑을 끼고 과도로 밤 깎듯, 하나 하나 까거나 칼로 긁어내어 손질해야합니다.

추석날 아침, 아내는 쇠고기를 넣은 토란국을 끓여냈습니다. 가족끼리 둘러 앉아 추석음식을 먹습니다. 아내는 특히 토란국 맛이 어떠냐고 맛을 보랍니다.

음식 타박이 많은 아들 녀석의 표정은 별로입니다.

"토란은 아무 맛이 없네요. 미끄덩거리고…. 국물만큼은 시원하구먼!"
"녀석아! 토란은 흙토(土) 알란(卵)이야! 알토란이란 말도 못 들었어!"

토란은 영양덩어리라는 말에 그제야 좀 먹는 듯합니다. 내 입맛에는 담백하고 부드러운 토란 맛이 일품입니다.

날로 먹으면 아려서 먹을 수 없는 토란. 그렇지만 뜨거운 물에 데쳐내고 손질하면 그야말로 '알토란' 같은 편안함을 주는 고마운 음식이 됩니다.

사람 사는 이치도 그렇습니다. '알토란'으로 자랄 것이란 믿음으로 따뜻한 격려의 눈길을 주면 나중에 착하고 건강하게 성장하여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아이들처럼 말입니다.

쇠고기와 두부를 넣어 끓인 토란국입니다. 담백한 맛이 참 좋습니다.
 쇠고기와 두부를 넣어 끓인 토란국입니다. 담백한 맛이 참 좋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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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토란국 한 그릇이 보약이라 생각하고 먹습니다. 뜨끈한 국물로 속이 편안해집니다. 착한 토란국입니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태그:#알토란, #토란, #토란꽃, #토란국, #토란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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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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