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기차여행 동행이 된 리타 할머니
 기차여행 동행이 된 리타 할머니
ⓒ 홍은

관련사진보기


"뚜뚜"

출발시각이 30분이 지났을 때, 이제는 영화나 텔레비전에서나 들을 듯한 정겨운 경적 소리를 울리며 오래된 증기 기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행인 듯한 가족들이 자리를 함께 구하지 못해 떨어져 앉아야 하니 자리를 바꾸어 줄 수 있느냐고 물어왔다. 옮겨간 뒷자리에는 흰머리를 단정하게 빗고, 새초롬하게 창밖을 바라보며 한 할머니께서 앉아 계셨다.

"혼자 여행하세요?"
"응. 너도 혼자니? 어디서 왔어?"

쭈뼛거리며 시작된 대화는 움직이는 기차와 함께 이어지고 이렇게 칠레의 기차에 대한 추억이 있을 리 없는 한국의 한 여행자와 오랜 추억을 안고 기차를 탄 칠레의 70살 리타 할머니와의 '추억의 기차여행'이 시작되었다. 플랫폼 끝에서 창문 너머로 리타 할머니의 아들이 열심히 손을 흔들고 있었다.

칠레에는 왜 기차가 없을까?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면 왜 기차여행이 일반화되어 있지 않을까? 칠레를 들른 여행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해 보았을 질문이 아닐까 싶다. 남미 여행은 워낙 버스여행이 일반적인데 이것은 기차로 연결된 구간이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각 나라 간 기차 서비스와 저가항공 서비스가 발달한 유럽에 있다가 남미를 오니 더더욱 남미 여행 이동 수단이 많이 불편하다는 것이 실감이 되었다. 항공은 가격이 워낙 비싸고, 버스는 땅이 넓다 보니 한번 타면 최소 10시간은 훌쩍 넘어가는 거리다. 칠레의 경우 북쪽에서 남쪽으로 여행하려면 거의 다른 나라 여행하는 비용을 뛰어넘는 이동 경비를 감수해야 한다.

10년 전 칠레의 남쪽 뿐따 아레나스에서 푸에르토 몬트까지 48시간 버스를 타고 이동했던 생각을 하면 아직도 멀미가 난다.

점점 사라져 간 기차 서비스

"예전에는 기차를 많이 타고 여행했지. 집이 중앙역 근처에 있었거든. 매일 기차역에 나가 놀았어. 주말이면 밤 기차를 타고 남쪽으로 부모님과 여행을 자주 다녔어. 참 좋았는데..."

리타 할머니의 기억처럼 칠레에도 한때 기차여행이 보편화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1851년 주로 북쪽의 천연 소금과 은의 이동수단으로 발달하여 칠레의 엄청난 부의 상징으로 시작된 칠레의 '철마' 기차는 점점 북쪽과 남쪽, 아르헨티나 멘도사까지 연결되는 구간으로 늘어나 칠레인들의 여행의 중요한 이동수단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왜 이런 기차 서비스가 더 발달을 하지 않고 오히려 쇠퇴했을까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명확한 답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큰 이유가 있었다기보다는 어느 순간부터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라고 해야 맞겠다.

"피노체트 독재 시절에 조금씩 서비스가 사라지기 시작했지. 아마 당시 고속도로를 확장하고 거대 버스 회사의 이익을 위한 사업에 집중하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기차 서비스가 점점 축소되고 뒤로 밀리게 되었어."

일부 구간은 2010년 지진 이후 철로가 파손되면서 복구가 미뤄져 아직까지 서비스되지 않는 구간도 있다고 할머니는 설명해 주었다. 남미 최초의 기차라는 명성과 함께 한때 기차여행이 칠레인의 낭만이던 시절이 있었으니 그 추억을 가진 사람들에게 기차여행은 얼마나 그리운 것일까?

추억의 기차는 달리고

1929년대 모델인 증기기관차. 지금은 플랫홈이 없는 철로에 도착한다.
 1929년대 모델인 증기기관차. 지금은 플랫홈이 없는 철로에 도착한다.
ⓒ 홍은

관련사진보기


미리 표를 예매할 때 내가 1번 예매자라서, 과연 사람들이 많이 탈까 했는데 당일 기차는 만석이었다. 게다가 기차 안에는 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칠레 사람들처럼 보였다. 운행되는 기차는 1920년대의 증기기관차를 보수한 것이었다. 2년 전부터 몇 대의 증기기관차를 보수하여 한 달에 한두 번씩, 지금은 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로를 따라 '추억의 기차'라는 이름의 여행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오랫동안 기차가 다니지 않던 철로에 등장한 오래된 증기기관차의 경적 소리에 기차가 지나는 마을마다 사람들이 나와 손을 흔들었다. 오래전 처음 기차가 다닐 때 사람들이 기차를 대하는 반응이 이렇지 않았을까 싶다. 여전히 기차는 이곳에서 신기하고 반가운 이동수단이며 추억이었다.

기차가 굽이친 철로를 지날 때는 기차의 앞쪽을 보기 위해 창가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터널을 지날 때마다 사람들은 마치 기차를 처음 타보는 사람들처럼 함성을 지르기도 했다.

"예전에는 터널을 지날 때 불을 켜주지 않아서 정말 깜깜했어. 터널에서 나오면 항상 아이들이 장난으로 자리를 바꿔서 다른 자리에 앉아있곤 했지. 그런 것도 그때는 재미있었어"

기차가 목적지에 도착할 때쯤 밴드 아저씨들이 한껏 흥을 돋운다. 승객이 대부분 칠레인들이다 보니 칠레의 대중음악에 모두 한목소리로 노래한다. 한국으로 치자면 추억의 가요 메들리 분위기다.

기차가 도착한 마을 산 안토니오에서 만난 바다표범

느닷없이 만난 바다 표범.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
 느닷없이 만난 바다 표범.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
ⓒ 홍은

관련사진보기


기차의 도착역, 작은 항구마을인 산 안토니오는 작지만 중요한 무역항이라 거대한 배들이 정박해 있었다. 나와 리타 할머니는 기차 안에서 받은 샌드위치를 벤치에 앉아 먹고, 항구 주변을 산책하다가 할머니의 권유로 계획에 없던 보트 투어를 하기로 했다. 작은 보트로 주변 앞바다를 돌며 이 항구에 들어오는 선박에 대한 정보를 안내해주는 투어였다. 배가 출발해 방파제를 지나는데 내 눈을 의심했다.

"어... 저게 뭐지?"

방파제 위에 늘어져 있는 검은 덩어리들이 움직인다. 바다표범 아닌가.

"응 이곳에 바다표범이 많이 살아. 저기 펠리컨도..." 그러고 보니 항구를 날아다니는 새들은 모두 펠리컨이었다.

뭔가 바다표범이 극히 친자연적인 공간에 살 것이라고 상상했던 나는, 이처럼 사람 가까이, 그것도 배들이 들락거리는 오염된 항구에서 만난 바다표범이 어쩐지 낯설었다. 게다가 해변에는 이래저래 펠리컨 사체들이 방치되어 있어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했다. 뭔가 제자리에 있지 않은 느낌에 반가움과 함께 씁쓸한 마음도 들었다.

언젠가는 추억이 아닌 현재로...

정겨운 펀치 검표와 추억의 노래로 흥이 돋는 추억의 기차
 정겨운 펀치 검표와 추억의 노래로 흥이 돋는 추억의 기차
ⓒ 홍은

관련사진보기


돌아가는 기차 안, 어두워졌는데도 여전히 지나는 마을마다 경적을 울리며 기차가 지난다.
만약 칠레에 기차가 발달을 해서 고속 기차들이 다녔다면, 과연 기차가 추억의 이야기를 담는 공간이 될 수 있었을까. 물론 또 그 누군가에게는 기차가 새로운 추억을 현재진행형으로 쌓아가는 하나의 공간이 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책에서 본 칠레 시인 네루다의 문장 하나가 떠오른다.

"빗속에 달리지 않는 기차만큼 서글픈 것이 있을까..."

10년 후 다시 칠레에 왔을 때는 기차를 타고 긴 칠레땅을 여행해보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다. 이는 다시 돌아오기 위한 로망 중 하나다.


태그:#칠레, #추억의 기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흙, 예술치료, 스페인 문화&언어, 글쓰기로 삶의 형태를 만들어갑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