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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노사정이 노동개혁안에 합의하면서 언론에서 '노사정 대타협'이라는 말이 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민주노총도 빠지고, 한국노총 내에서도 분신시도도 할 만큼 반대가 심했으니, 대타협이라는 말 보다는 반의 반쪽짜리 타협이었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동안 임금피크제가 청년고용과는 연관성이 없다는 기사를 많이 접했습니다. 하지만 임금피크제와 관련하여 취업규칙변경 완화가 법리상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는 어디에서도 가르쳐주지 않더군요. 그래서 저는 이 점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합니다. 정부가 노동개혁을 위해 얼마나 '생떼'를 부리고 있는지 말씀드리죠.

어거지 부리는 정부의 '생떼'

공무원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총력투쟁 선포 대회'를 열어 임금피크제 반대와 성과급제 폐지, 퇴출제 저지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이들은 "박근혜 정부는 지난 13일 노사정위원회를 통해서 2천만 노동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국노총과 야합해 쉬운 해고,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 비정규직 확대 등 역대 최악의 반민중적 반노동자적 폭력 테러를 저지르고 있다"고 규탄했다.
▲ 공무원노조 "임금피크제 반대" 공무원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총력투쟁 선포 대회'를 열어 임금피크제 반대와 성과급제 폐지, 퇴출제 저지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이들은 "박근혜 정부는 지난 13일 노사정위원회를 통해서 2천만 노동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국노총과 야합해 쉬운 해고,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 비정규직 확대 등 역대 최악의 반민중적 반노동자적 폭력 테러를 저지르고 있다"고 규탄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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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피크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취업규칙을 변경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임금피크제를 입법으로 해결하기에 노동법은 최저기준으로서 작용하기 때문에, 기업사정이 전부 다른 기업에 일률적으로 적용하긴 힘듭니다. 그래서 취업규칙을 변경하는 방식으로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려 하는 것입니다. 취업규칙은 쉽게 말해서 회사마다 있는 규칙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3번 지각하면 1번 결석으로 친다', '휴가는 1년에 몇 번을 준다' 이런 규칙들이 쓰여 있게 되죠. 이런 취업규칙을 변경을 통해서, 예를 들어 취업규칙에 '임금피크제를 위해 50세부터 1년마다 임금을 10%씩 삭감하기로 한다'라고 넣어줌으로써 임금피크제를 시행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근데 문제는 이 취업규칙을 변경하는 절차가 정부 입장에서는 좀 까다로운가 봅니다. 취업규칙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우선 변경될 취업규칙이 노동자들에게 불이익이 될지 아닐지를 따져 봐야 합니다. 불이익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사용자는 근로자 과반수 노조가 있는 경우 노조의 의견을, 과반수 노조가 없는 경우 노동자들의 의견을 듣고 바꿀 수 있습니다.

만약 불이익이라고 판단될 경우, 근로자 과반수 노조가 있다면 노동조합의, 노조가 없다면 노동자 전체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만약 반수 이상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그 변경된 취업규칙은 회사 내의 노동자에게 효력이 없습니다. 무효이죠. 근데 임금피크제는 나이가 올라갈수록 임금을 깎는다는 것이니, 불이익 변경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노동자 반수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이미 노동자들의 반발이 심하고, 일사불란하게 개혁을 밀어붙여야 하는 정부 처지에서는 속이 타들어 가기 시작할 겁니다. 그래서 정부에서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판례를 하나 들고나옵니다. 그것이 바로 이른바 '사회 통념상 합리성 법리'에 관한 판례입니다.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에 해당하더라도 그 내용이 사회 통념상 합리적인 경우에는 근로자의 동의를 받지 않아도 효력이 발생한다." - 대법 2001. 1. 5, 99다70846

그런데 이게 참 비판이 많은 판례입니다. 문제가 많은 판례를 들고 와서 임금피크제는 '사회 통념상 합리성'이 있으니까 노동자들 동의 없어도 취업규칙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고, 이번 노사정에서 한국노총이 합의해준 부분입니다.

이 판례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취업규칙의 법적 성질을 좀 알아봐야 합니다.

취업규칙의 법적 성질 따져봐야 한다

우리나라는 취업규칙을 보는 성질을 '법 규범'이라고 봅니다. 즉 '국가가 사용자의 지배력을 억지하고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근로기준법을 통해서 법 규범적 효력을 가지는 취업규칙 제정권한을 사용자에게 수권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취업규칙을 국회의원이 만든 것은 아니지만, 법처럼 인식해 준다는 겁니다.

근데 옆 나라 일본은 취업규칙을 '계약'으로 인식합니다. 그게 우리나라와 일본의 가장 큰 차이죠. 근데 이 같은 차이에서 오는 일본과 우리나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변경 방식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헌법을 바꿀 때 국민투표를 거치게 되어 있습니다.

즉, 국민의 집단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만약 국민이 반대하면 헌법을 못 바꾸게 되죠.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취업규칙도 법규범으로 보기 때문에, 그것을 불이익하게 변경하려면 위에서 말했듯이 그 회사 내의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가 필요하죠. 근데 취업규칙을 일본과 같이 '계약'으로 보면 우리나라처럼 집단 동의를 거칠 필요 없이 근로자를 일대일로 불러서 동의를 받아 바꿀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취업규칙을 만들어놓은 이유는 그 회사 내에 노동자들을 일률적으로 규율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것인데, 일본은 개별적으로 동의를 받아서 바꿔야 하므로 어떤 노동자는 동의하고, 또 어떤 노동자는 동의를 안 해주면 이게 취업규칙의 취지가 무색해지게 되는 거죠.

동의한 노동자는 임금피크제 때문에 임금이 깎이고, 동의 안 한 노동자는 임금이 안 깎이면, 동의한 노동자는 얼마나 억울하고, 또 회사 내에서 이러한 노동자들이 섞여 있으면 회사가 잘 돌아가지 않겠죠. 그래서 일본에서 이 취업규칙을 일률적으로 다 적용하기 위해서 일본에서 만들어낸 판례입니다.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에 해당하더라도 그 내용이 사회 통념상 합리적인 경우에는 근로자의 동의가 없더라도 종전 근로자에게 적용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읽어보시면 이해가 될 겁니다. 일본에서는 이런 판례가 충분히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법리를 취업규칙의 법적 성질이 완전히 다른 우리나라에 판사들이 가져온 겁니다. 우리나라는 집단으로 동의하고, 반수 이상이 싫다 하면 적용이 안 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일본과 같이 일률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위와 같은 판례는 맞지 않는 해석입니다.

취업규칙을 법규범으로 보는 우리나라에 이런 판례를 들이밀어 버리면 노동자는 회사의 횡포를 그저 바라만 보고 당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하지만 물론 판사님께서 몰랐을 리는 없습니다. 판사님께서도 판결 당시, 아래와 같이 언급했습니다.

"사회 통념상 합리성의 법리는 근로기준법의 규정을 사실상 배제한 것임을 인정하면서 제한적으로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한다."

이 판례는 우리나라에 전혀 맞지 않는 판례입니다. 따라서 매우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고, 사법부는 지금까지 단 2~3건 정도만 '사회 통념상 합리성 법리'를 적용하면서 제한적으로 해석했습니다. 하지만 정부에서 이 판례를 가지고 노동부 가이드라인으로 만들어 기업들에 취업규칙을 쉽게 변경할 수 있도록 조장하겠다고 하니 사법부의 표정이 궁금해지는 것은 저뿐만이 아닐 거라 생각됩니다.

노동부도, 정부도 다들 똑똑한 사람들이 있는 곳입니다. 이 판례가 우리나라 법리와는 전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떼'이라고 표현한 겁니다. 다 큰 아이의 이러한 생떼, 국민은 어찌해야 하나요.

○ 편집ㅣ곽우신 기자



태그:#임금피크제, #취업규칙,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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