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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마치고 발걸음을 옮기던 나는 뒤에서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대며 걷던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쳤다. 뒤돌아보니 강의 첫날, 옆쪽 구석에 앉아있던 바로 그녀였다. 때 하나 묻지 않은, 레이스가 달린 하얀 색 블라우스에 베이지색 숄더백을 매고 있던 그녀의 얼굴은 가까이서 보니 훨씬 더 창백했고 꿈속의 심연만큼 검은 머리카락과 대비되어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국적인 매력도 아닌 이계적인 매력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법한 모습이었다.

목에는 빨간 체크무늬의 스트랩이 달려있고 호피문양이 새겨진 니콘 카메라를 걸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사용하는 카메라가 다른 기종이었다면 지금쯤 나는 그녀를 캐논, 소니, 혹은 미놀타라고 부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싸가지 하고는. 사과 한 마디 없이 나를 지나치던 그녀를 보며 중얼거리던 찰나, 나는 픽 소리를 내며 힘없이 쓰러지는 그녀를 보았다. 스파크가 이는 낡은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은 마냥 갑작스런 상황에 나는 감전된 사람처럼 순간 얼어붙었다.

저기요, 괜찮아요? 나는 손을 내밀며 물었다. 처음부터 괜찮지 않다는 것 정도는 금방 알 수 있었음에도 내뱉은 물음이었다. 일으키려고 손을 잡았지만 완전히 다리가 풀려버렸는지 그녀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서둘러 구급차를 부르고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반쯤 걷어진 블라우스 소매 사이로 보이는 왼쪽 팔목에 위치한 네 개의 붉은 반점이었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헌혈을 했다고 한다. 기관에서 한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말이다. 한 달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네 번이나 피를 뽑았으니 쓰러지는 것은 당연했다. 혈액형을 비롯한 기타 정황을 통해 판단한 결과, 뽑은 피는 그대로 발송자 이름을 기입하지 않은 채 병원으로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나는 그녀의 행동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랬기에 나는 그녀가 너무나도 궁금해졌다. 왜 그런 일을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비롯해 모든 것을 알고 싶어졌다.

그녀가 강의실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2주가 지난 후였다. 나는 언제나처럼 오른쪽 구석자리에 홀로 앉아있는 그녀에게로 다가가 옆 자리에 걸터앉았다. 그녀는 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미동조차 않고 있었다.

몸은 좀 어때. 내가 물었고 그제야 그녀는 눈동자를 살짝 왼쪽으로 돌려 반응했다.
우리는 그렇게 처음 만났다.

*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나는 한때 나의 옆집에 살았던 여자를 떠올렸다. 내가 뷰렛이라고 혼자 명명했던 여자였다. 아마 중학교 2학년 때 즈음이었을 것이다. 뷰렛은 네온이 빛나는 번화가의 등잔 밑이라 할 수 있는 뒷골목에서 타투 샵을 운영하면서 자신의 머리카락을 붓으로 삼아 그림을 그리고 잉크로 샤워를 하는 등의 기괴한 행보를 보이던 행위예술가였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가졌던 그녀는 눈알 모양 휴대전화 액세서리와 해골무늬 귀걸이를 하고 다녔다. 가진 직업처럼 온 몸에 문신이 가득하리란 것은 누구든 알 수 있을 만한 것이었다.

나의 가족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이웃들은 그녀를 창녀, 양아치, 또라이 따위의 말을 들어 욕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그녀를 동경하고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올 때면 그녀가 집을 나서는 시간과 얼추 비슷했다. 나는 매일 오후 귀갓길에서마다 그녀를 만나기를 고대했다. 비록 그녀는 나를 보고 아는 척도 하지 않았지만, 뷰렛은 나의 첫사랑이었다.

당시 들리던 소문에 따르면 뷰렛은 사람들 사이에서 대구 지하철 참사라는 이름으로 회자되곤 하는 큰 화재에서의 생존자였다고 한다. 불길 속에서, 그녀는 부모님을 잃었고 자신은 왼쪽 어깨에 깊은 화상을 입었다. 후에 내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화재가 그렇게까지 번지게 된 데는 책임감 없었던 기관사의 공이 컸다. 그는 매캐한 연기 속에서 공포에 떨고 있는 승객들에게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을 남긴 채 홀로 도피했다.

성인이 될 때까지 뷰렛을 맡아 키운 것은 그녀의 작은어머니였는데 그녀는 남편의 잇따른 외도와 폭력을 참지 못하고 파경을 맞은 이혼녀였다. 그녀는 자신이 남편에게 받은 폭력을 그대로 뷰렛에게 되갚아주었다. 한순간의 사고로 인해 야기된 불운한 가정생활에 진저리가 난 뷰렛은 18세에 집을 나와 거리를 배회했고, 그러는 과정에서 타투를 알게 되었다. 그것을 통해 그녀는 자신의 왼쪽 어깨에 드러난 고통의 자국을 감출 수 있었고 몸에 새기는 그림이 늘어날수록 자신의 존재에 대한 확신을 품게 되었다는 것이다.

15세, 중학교 2학년이라는 시기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나이인지는 의문이지만 나는 뷰렛의 그런 모습에 이끌렸다. 그녀는 내가 학교에서 보던 또래의 여자애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의 안 좋은 시선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혼자의 몸으로 거친 세상을 헤쳐 나가는 모습은 가진 것이라곤 자존심밖에 없던 10대 소년을 동경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날, 나는 그녀와 마주치기를 바라며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그녀에 대한 생각은 깊어지곤 했다. 집 앞에 거의 도착할 때에는 절정에 달하였고 그녀와의 마주침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오르가즘을 느끼기도 했고 땀에 전 체육복을 입은 듯이 찝찝해지기도 했다.

묘한 불안감이 엄습해오기 시작한 것은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그것은 미리 답이 주어진 문제를 보며 답이 옳은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과 같았다.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적중하기 마련이지만 그것이 틀릴 가능성, 그 헛된 희망조차도 배제할 수는 없는 것처럼. 내가 사는 동, 정확히 말하자면 나와 뷰렛이 사는 동 앞에는 대략 40명 정도의 사람이 몰려 있었고, 소방차와 앰뷸런스 한 대 씩이 나란히 서 있었다. 그 시각, 세상의 모든 불결한 것을 모조리 태운 것 같은 검은 연기가 나고 있던 집은 바로 나의 옆집, 뷰렛의 집이었다.

집은 모조리 불타 검게 그을렸고 가구와 전자제품을 비롯한 모든 물건이 녹아버렸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화재로 인한 사망자는 없었다는 기사가 지역 신문 한쪽 편에 짤막하게 나왔고 그 소식을 접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그 후로 그녀를 본 사람은 없었다. 그녀가 운영하던 타투 샵이 있던 자리에는, 테이블에 보랏빛 수정구슬을 얹어 놓은 은빛 파마머리의 노인이 점집을 차린 채 앉아있을 뿐이었다. 며칠 뒤 나는 아파트 경비원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에게 그녀의 행방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그녀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뷰렛이라는 사람의 존재 자체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일순간 그녀는 내 환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허상이 되어버린 거였다.

나는 그녀가 기관사에 대한, 작은어머니에 대한 경멸을 세상 전체로 돌린 끝에 종국에는 스스로 자신을 승화-은유적 의미가 아닌 화학적 정의 그대로의 단어로서-시켜 버리기로 결심한 것이라 믿는다.

*

니콘은 자신이 찍은 사진을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사진은 물론 카메라를 만지는 일조차도 허용하지 않았다.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니기는 했지만, 사실 그녀는 사진 찍는 일에는 흥미가 없었다. 사진을 찍는 것은 물론이고, 그녀에게 소설을 쓰는 것 이외의 모든 다른 일들은 소설의 영감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서 행해졌다.

니콘이 과도한 헌혈로 인해 쓰러졌던 그날을 다시 되짚어보니 잊고 있던 기억의 파편이 장롱 속 낡은 코트 주머니의 먼지 더미처럼 떨어져 나온다. 그날 내가 그녀를 일으켜 업고 구급차로 싣고 갈 때도, 니콘은 자신의 손에 카메라를 꽉 쥐고 놓지 않았다. 어쩌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힘을 카메라를 잡는데 사용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구급차에 올라탄 뒤 그것을 내려놓으라는 구급대원의 말에도,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사진을 찍는 거야. 그날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렌즈에 담고 있던 그녀를 보며 나는 물었다. 대충 이야기만 해주면 안 되나.

딱히 답을 기대하고 물은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이 답하고 싶은 질문에만 대답했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아예 질문 자체를 듣지 않았다. 묻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신이 한 말이 제대로 전달되기는 한 것인가에 대해서까지 의문을 품게 만드는 태연함이었고 내가 니콘과의 대화에 있어서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부분이기도 했다.

그리고, 역시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니콘을 보고 뷰렛을 떠올린 것은 아마도 이런 면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삶에 있어 마주하는 모든 것들을 자신이 필요로 할 때만 찾고, 필요성이 사라지면 가차 없이 버리는 도구 정도로 여겼다. 어떻게 보자면 삶 그 자체까지도 그렇게 대한 것일지도 모른다. 때때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물에 빠진 니콘을 본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물에 뛰어들 테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그녀는 내가 죽어가는 과정을 관찰한 뒤에 소설로 남겨 영정 위에 올릴 것이라고. 잘은 모르겠지만 뷰렛의 경우도 비슷한 상황이 닥친다면 니콘처럼 행동할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 심취한 분야가 달랐을 뿐 거의 모든 면에서 같았다. 차이점이라곤 니콘은 그 결실을 원고지에 새겼고, 뷰렛은 몸 위에 새겼다는 것 뿐.

동거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낸 것은 니콘이었다. 아니, 어떻게 보자면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혼자 살기에 너무 비싸고 넓은 방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룸메이트를 구하려 했고 그녀는 마침 잘 됐다는 듯이 괜찮은 사람이 있다고 답했다. 다음날 아침 트렁크 가방 두 개와 검은색 핸드백 하나를 양 손 가득 쥐고서 현관문을 두드리던 그녀를 보며 나는 당황한 기색을 역력히 내비쳤다. 그런 나의 반응을 즐기기라도 하듯 당연한 표정으로 그녀는 말했다. 뭐 해, 안 비키고.

나는 얼떨결에 몸을 돌려 그녀를 맞이했고 니콘과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

3편에서 계속


태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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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글을 씁니다. 주로 예술이 사회에 미치는 선한 영향력과 이 시대에 필요한 대중문화에 대해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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