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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썼던 소설을 생각한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K는 떠나고 없었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이었다. 구상하는 데 2주가 걸렸고 집필에 1주를 소요했다. 또한 한 달간의 퇴고를 거쳤다. 소설을 마무리 짓고 가장 먼저 보여준 사람은 가족도, 교수도 아닌 그녀였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 한 마디 없이 그것을 읽었다. 평가는 간단했다. 감정 절제가 전혀 안 됐어. 네 주관이 너무 개입된 것 같아.

이제 나는 그 소설의 첫마디를 인용해서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떠나고 없었다. 미안해, 잘 있어. 한 마디가 적힌 종이쪽지를 냉장고 옆에 비뚤어진 채로 붙여놓고서, 그녀는 어디로 향하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기차에 올랐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배였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비행기였을지도. 바다 속 아틀란티스로 들어갔을 수도, 우주 저편 이름 모를 행성으로 나아갔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좋다. 중요한 것은 단 하나, 그녀가 떠났다는 사실뿐이다.

니콘은 떠났다. 아마도 그녀가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녀가 항상 목에 걸고 다니던 니콘 필름카메라 때문에, 나는 그녀를 니콘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일상에서 겪는 모든 일을 소설 창작에 활용했던 그녀의 버릇은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영감을 얻는 모든 것에 대한 촬영으로까지 이어졌다. 가끔은 이미 옛날에 찍었던 물체를 다른 각도에서 다시 찍었다. 내가 이유를 물을 때면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같은 물체라고 해서 항상 같은 영감을 가져다주는 건 아니야.

니콘을 처음 만난 것은 개강 후, 그러니까 내가 대학에 들어온 후 맞이한 첫 강의에서였다. 갓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 신입생들로 가득한 강의실은 콘서트 시작을 코앞에 둔 스탠딩 석처럼 붐볐다. 처음 들어온 대학의 풍경은 상상하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이를테면 어느 동아리에 들어갈 지를 고민하거나 자신이 듣는 강의의 교수에 대해 토의하는 풍경 같은 상상 속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캠퍼스 속 대부분의 남자 혹은 여자들이 관심 갖는 것은 오직 하나, 어떻게 저 많은 인파 속 한 명의 이성-혹은 어떤 이들에게는 동성일지도 모르는 대상-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에 관한 것뿐이었다. 교수가 들어오기까지는 10분 남짓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반대쪽 구석 자리에 나처럼 홀로 앉아 카메라를 들고 강의실 이곳저곳을 촬영하던 그녀였다.

그녀의 첫인상은 나의 눈을 사로잡고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건물 내에서 같은 공간을 의미 없이 연속적으로 촬영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사용한 카메라가 DSLR도, 컴팩트 카메라도 아닌 수동 필름 식이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그녀는 행동 그 자체로써 자신이 어느 거리에서든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여자가 아님을 직접적으로 내비치고 있었다.

교수가 들어오고, 강의가 이어지는 내내 그녀는 묵묵히 교수가 강의하는 내용을 필기했고, 때로는 카메라를 확인하거나 자신의 가방을 뒤적거려 낡아 보이는 책 몇 권을 끄집어내 페이지를 넘기고 책갈피를 꽂은 뒤에 다시 집어넣고는 했다.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었지만 그녀가 내뿜던 특유의 아우라는 나를 자극했고, 그것에 홀린 사람처럼 주목하게 만들었다. 그날 내게 있어 강의는 뒷전이었다. 특종을 취재하는 기자처럼, 혹은 타깃을 눈앞에 두고 타이밍을 재고 있는 저격수처럼, 나의 눈은 한 치도 쉬지 않고 그녀를 좇고 있었다.

*

첫 소설을 읽고 니콘이 내게 읊어주었던, 듣자마자 한 귀로 흘리고는 근처 쓰레기통에 팽개쳐뒀던 평가는 야심만만한 표정으로 교수의 방으로 걸어 들어간 지 약 30분 쯤 뒤 그대로 내 손에 재활용되어 나왔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어려웠고 즐겁지도 않은 일이었다. 문학이란 더 이상 아무것도 몰랐던 고교시절 심취했던 멋의 상징이 아니었다.

한때는 천재적이라 생각했던 나의 상상력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된 시점이었다. 즐기기만 한다면 노력은 뒷받침되지 않아도 된다는 헛된 생각에 나는 빠져 있었고 그것에 속아 대학까지 선택한 거였다. 어느 날 강의실을 나서며, 그때까지 단 한 줄의 글조차 쓰지 못했던 내게 교수는 말했다. 네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 전부 다 쓰레기라고 생각하지 않는 한 네 안에서 문학은 시작되지 않는다. 독자에게 '너'의 이야기가 아닌 소설 속 '나'의 이야기를 들려줘야 한다.

니콘의 경우는 달랐다. 그녀는 소설을 쓰기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철학자인 아버지와 소설가이자 유명한 페미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머니와 세계 각국을 돌며 청소년기를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한 도시에 머무르는 동안 무슨 일이 있어도 한 번은 꼭 그곳의 도서관에 들렀고 눈에 보이는 책들을 탐독했다. 나는 여기저기 책을 퍼뜨려놓고 고뇌에 잠긴 표정으로 한권한권 그것들을 독파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며 이따금 헤픈 웃음을 짓고는 했다.

하지만 그녀가 소위 말하는 '엄친딸'로서 평생을 부모의 사랑과 함께 부족한 것 하나 없이 자란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각지에서 만난 수많은 남자들과 밀담을 나누는 데 사용했다. 그녀를 아는 사람들에게 그녀가 만난 새로운 남자는 언제나 인기 있는 대화 화제가 되곤 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그녀의 행동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그는 강박증에라도 걸린 것처럼 학문에 매진했고 그 결과는 윤리의식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이어졌다.

어느 날 그는 지금껏 자신이 살아온 삶 중에서 연구해 온 철학에 부합하는 것이 거의 없다고 판단했고,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기 위해 매일같이 다른 남자를 집으로 들이는 아내에게 하나뿐인 딸을 맡기고 민주화의 거친 바람이 불던 중동으로 떠났다. 이집트, 리비아 등 수많은 국가의 반정부 게릴라를 지원하기 위함이었다. 니콘과 그녀의 어머니가 아버지의 타계 소식을 접한 것은 오랜 방랑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4년 전이었다. 시리아 내전을 지원하고 있었던 그는 정부군의 배를 갈라 심장을 꺼내 물어뜯는 등 야만적인 행태를 보인 반군 지도자를 강력히 규탄하며 정부군과의 평화적인 해결책을 모색했다. 숭고한 뜻을 위해 자원해온 용병이 아사드에게 투항한 개량주의자로 변모하는 데는 그다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결국 관념으로 가득 차있던 그의 뇌를 관통한 것은 적이 아닌 아군, 반군의 총탄이었다. 죽기 전날까지도 그는 피비린내 나는 폐허 속에서 자유, 평등, 사랑과 같은 보편적 가치에 대해 역설했다고 한다. 그 소식은 3일간 공중파 뉴스에 메인으로 보도되었다.

한 박애주의자의 비극 따위의 제목을 들면서 말이다. 나 또한 그 소식을 언론을 통해 접했었고 그 당시에는 그에 대한 존경심마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니콘에게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지금, 내 견해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철저한 박애주의자였다. 하지만 나는 그가 주장하던 박애정신에는 '가족애'가 부재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니콘은 장례식을 치른 유일한 상주였다. 당시 16세 소녀였던 그녀는 3일 내내 단 한 차례도 쉬지 않고 빈소를 지켰다. 그녀의 어머니는 파리에서 온 전화 한 통을 받고 입고 있던 검은 상복을 그대로 내던져 버린 채 다른 남자를 만나러 갔다. 홀로 남은 니콘이 내뱉는 곡소리에는 아버지의 별세에 대한 한이 표출되지 않았다. 아니, 적어도 나는 그랬을 것이라 생각한다. 단지 어머니에게 느낀 환멸이 극도로 내재되어 있었을 따름이라고.

흔히 사람들은 니콘이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 그녀의 어머니처럼 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반대였다. 니콘에게 있어 독서와 창작은 어머니라는 현실로부터의 도피였고, 하나의 절박한 생존방식이었다. 우리가 만난 지 한참이 지난 후에야 들은 바에 의하면, 소설을 읽거나 혹은 쓸 때면 그녀는 신이 된 기분이었다고 한다. 소설 속에서 그녀는 떠나기 직전의 아버지를 알츠하이머 환자로 만들어 붙들어 놓을 수도, 어머니와 그녀가 만난 수많은 남자들을 캐딜락으로 밀어버릴 수도 있었다.

그 말을 하며 니콘은 한 마디 덧붙였다. 김영하 소설에 이런 문장이 있어. 이 시대에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에게는 단 두 가지의 길이 있을 뿐이다. 창작을 하거나 아니면 살인을 하는 길. 난 여기 전적으로 공감해.

*2편에서 계속



태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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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글을 씁니다. 주로 예술이 사회에 미치는 선한 영향력과 이 시대에 필요한 대중문화에 대해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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