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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검사가 밀려 예약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해 한참을 더 기다려야 초음파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 초음파실 앞 검사가 밀려 예약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해 한참을 더 기다려야 초음파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 강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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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 기침과 발바닥 통증으로 수년간 고생하시던 어머니를 대학병원으로 모시고 갔다. 증상이 심해질때마다 동네 병원 여러 곳을 돌아다니셨지만, 뾰족한 치료법이 없다면서 '노인들은 원래 그렇다'고 녹음기처럼 말하는 의사들이 싫었기 때문이다.

복잡하고 어려운 대학병원 진료 시스템에 어머니는 힘들어 하셨지만, 다행히 잘 따라와 주셨다. 첫 진료를 받던 날, 반나절 넘게 이리갔다 저리갔다 정신 없이 검사를 받았다. 그런데도 아직 못 받은 검사가 남아 있었다.  다음 진료를 받으러 병원에 방문하면 일찍 검사를 받고 바로 결과를 볼 수 있도록 스케줄 조정을 하고 돌아왔다.

어머니의 기침 원인, 알고나니 속이 후련

2주 후 다시 병원을 찾았다. 이번에는 지난 번에 하지 못한 호흡기 내과 검사와 발바닥 초음파 검사를 받아야 한다. 검사를 받고 나면 지난번에 미리 받아놓은 검사들과 더불어 검사 결과를 보고 적절한 치료 방법에 관한 설명을 듣게 될 것이다.

첫 스케줄은 오후 1시 30분에 호흡기 내과 검사실에서 진행하는 '기관지 유발 검사'와 '폐기능 검사'다. 어머니와 나는 일찌감치 서둘러 1시간 전에 병원으로 출발했다. 최근 가을 비가 자주 오는데 지난번에 이어 이번에도 병원 가는 날 비가 내렸다.

병원까지 가는 길은 차가 밀리지 않아 금방 도착했다. 역시나 외래 진료를 받으러 온 환자들이 많아 주차장 입구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시간 맞춰 출발한다고 일찍 나왔는데도 주차장입구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는 바람에 제 시간에 검사실로 들어가지 못했다.

20여 분 정도 늦게 검사실에 도착해 접수를 하고 기다렸다. 제 시간에 도착하지 않아 다른 사람이 이미 검사를 받고 있었고 어머니는 다음 순서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처음 스케줄부터 늦은 바람에 뒤에 있는 정형외과 검사와 더불어 진료 예약 시간에 맞추지 못할 것 같아 마음이 불안했다.

그 불안한 마음은 현실이 되었다. 처음 검사에 늦은 20분은 다음으로 간 초음파실에서 1시간가량 대기 시간을 벌려놨다. 초음파 검사실에 들어가 접수를 했는데 제 시간에 오지 않았다며 마냥 기다리라고만 했다. 접수대에 접수를 하고 의자에 앉아 30분 이상을 기다려서야 겨우 어머니 이름이 불렸다.

초음파 검사를 마치고 나와 1시간이나 지나버린 호흡기 내과 진료실로 갔다. 지난번에 왔을 때 CT검사도 했는데 이날 한 검사와 더불어 만성 기침에 대한 결과를 들을 수 있는 날이었다. 2주만에 만난 호흡기 내과 교수님은 각 검사 결과를 유심히 살펴본 뒤 '기관지 확장증'이라고 하셨다.

기관기 확장증이란 기관지가 본래 상태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영구적으로 늘어나 있는 상태를 말한다. 기관지 확장증으로 인한 다른 합병증은 아직 없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고 1년에 한 번정 도 흉부 사진을 찍어 진행 정도를 확인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렇게 많은 병원을 다녀도 알 수 없었던 어머니의 기침 원인을 알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어머니의 오빠인 우리 큰외삼촌께서 몇해전 폐암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가족력이 있을까 걱정을 했는데 그게 아니라 다행이었다.

생각보다 크게 심각한 상태가 아니라 당장 약을 먹을 것까지도 없다고 하니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어머니의 고질병 2개 중 하나는 이제 해결됐다. 이제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나머지 하나를 확인하기 위해 정형외과로 갔다.

족저근막염 치료를 위한 깁스를 만들고 있다.
▲ 깁스 족저근막염 치료를 위한 깁스를 만들고 있다.
ⓒ 강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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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외과 예약 시간이 오후 3시 20분이었다. 보통 그 시간이 외래 진료의 마지막 시간인데 어머니와 나는 앞선 검사들이 밀리는 바람에 4시가 다 돼서야 정형외과로 갔다. 시간이 늦어 오늘 진료를 받지 못하고 다시 와야 하는게 아닌가 싶어 초조했는데 다행히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초음파 검사 결과가 당일 판독돼 정형외과로 넘어왔고 교수님은 초음파 사진을 보고는 '족저근막염'이라고 말씀 하셨다. 이미 족저근막염인것은 알고 병원에 왔기 때문에 놀랍진 않았다. 내가 기대한 건 족저근막염에 대한 치료였다.

교수님은 어머니께 족저근막염에 가장 좋은 운동방법을 알려주셨다. 족저근막염이라는 병은 원래 완전히 나을 수 없는 병이라며 대신 꾸준한 교정과 운동을 통해 근육을 부드럽게 만들어 증상을 완화해야 한다고 하셨다.

6주간 어머니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설명을 듣고 진료실을 나왔다. 그리고 주무실 때 발이 지속적으로 교정될 수 있도록 고정하는 깁스를 제작했다. 또한 6주동안 복용할 약도 함께 처방 받았다. 족저근막염도 심하면 수술도 해야 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그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족저근막염으로 여기저기 아주 많은 병원을 다녔지만 처음 받아본 조치였다. 하물며 계속해서 발에 무리되게 운동하면 안 된다는 말 조차도 다른 병원에서는 들을 수 없었다. 그냥 아프다고 하면 진통제 같은 주사나 놔주는 게 전부였다.

동네 병원,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해줬으면...

교수님께서 써주신 권장사항과 금기사항이 적힌 종이를 어머니방 벽면에 붙여 드렸다.
▲ 족저근막염에 좋은 운동법 교수님께서 써주신 권장사항과 금기사항이 적힌 종이를 어머니방 벽면에 붙여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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깁스와 약봉지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자마자 어머니께 깁스 착용하는 방법을 알려드리고 연습하시게 했다. 그리고 어머니 방 한쪽 벽면에 교수님께서 적어주신 종이를 붙여 드렸다.

6개월간 운동 금지, 맥주병 같은 걸로 발바닥 마사지 하기, 하루에 두 번 핫팩과 얼음으로 찜질하기, 교수님이 알려주신 운동법으로 하루 세 번 스트레칭 하기, 잠잘 때는 제작한 깁스 착용하고 자기, 6주간 처방약 복용하기. 이번에 안내 받은 족저근막염의 치료법이다.

이렇게 수년간 어머니를 힘들게 했던 고질병과의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됐다. 여태껏 힘들어 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짜증섞인 말투로 '아프면 병원 좀 잘 다니시라'고 했던 내 모습을 떠올리니 너무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정작 제일 힘든 사람은 어머니 자신이었을 텐데 '얼마나 빨리 낫게 하고 싶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TV를 틀면 동네 병원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라는 광고들이 나온다. 물론 맞는 말이긴 하다. 우리 주변에는 가까이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동네 병원들이 있다. 그 중에 훌륭한 의사 선생님이 계시는 병원도 분명히 많다.

큰 대학병원에 비해 열악한 동네 병원이 환자를 진료함에 있어 분명히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런 점을 모르고 동네 병원을 이용하진 않는다. 다만 몇몇 동네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들이 동네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고자 하는 마음로 일하는 지에 대해선 '글쎄'다(관련 기사 : 동네 병원 전전하는 어머니, 눈물이 핑 돌았다).

동네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란, 동네 병원의 역량에서 진료할 수 없는 환자가 있다면 환자에게 정확히 그 병에 대해 설명하고 상급 병원으로 보내는 등의 적극적인 치료 행위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나와 어머니가 경험했던 병원들처럼 아무런 대안 없이 '다음부터 오지마'라고 하거나 진통제만 계속 처방해주면서 '원래 그렇다'라고 말하는 병원은 아니다.

복잡한 대학병원 시스템은 노인들 스스로가 찾아가 진료 받기 힘들다. 그러니 노인들도 가까이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동네 병원들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의사들과 병원들의 의식 개선을 통해 '돌팔이 병원'이라는 말이 사라지고, 어느 병원을 가도 내 몸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태그:#기관지확장증, #족저근막염, #대학병원, #동네병원, #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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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콘텐츠 대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언제나 너일께> <보태준거 있어?> '힙합' 싱글앨범 발매 <오늘 창업했습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갑상선암 투병일기> 저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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