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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잔치>는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 전말기'라는 부제가 말하는 그대로 실제 있었던 사건의 논픽션 기록물이다. 작가의 사견이 반영될 수 있는 여지를 차단하기 위해 경찰 조서, 재판 기록, 진실화해위원회 조서 등 공식 자료를 근거로 꾸렸음에도 픽션보다 더 픽션 같은 사건의 부조리함이 읽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도 불린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은 1991년 5월 분신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아래 전민련) 사회부장이던 고 김기설씨의 유서를 전민련 총무부장이던 강기훈씨가 대신 써줬다는 혐의로 구속돼 복역한 사건을 말한다. 필적 감정부터 검찰 수사와 재판과정 모두가 석연치 않았던 이 사건은 사건 발생 21년 만인 2012년 10월에야 재심이 개시돼 올해 5월 14일 대법원으로부터 무죄를 선고받은 바 있다.

거짓말 잔치 책 표지
▲ 거짓말 잔치 책 표지
ⓒ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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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강기훈이라는 당시 스물일곱 청년이 다른 이의 자살을 돕고 유서까지 대필했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수감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여러 기록물을 바탕으로 총체적으로 복원해 나간다. 조작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악의적이고 무리한 수사 및 기소를 감행한 검찰과 최소한의 정의감도 없는 판결을 내린 재판부, 비겁하기 짝이 없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문서감정실장 김형영 등 직접적인 연루자는 물론 당시 서강대학교 총장 박홍, 총무처장 윤여덕, 강기훈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고 김기설의 가족과 여자친구 등 강기훈이 누명을 쓰는 데 책임 있는 모든 인물의 행적을 낱낱이 기록으로 남겼다.

<거짓말 잔치>는 진실 승리의 기록이다. 한 명의 무고한 청년이 거짓말로 점철된 무대에 끌려나온지 24년 만에 소중한 승리를 거두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은 동시에 슬픔의 기록이기도 하다. 이 사건으로 잃어버려야 했던 것이 너무도 무겁기 때문이다.

강기훈과 그를 아끼는 사람들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렸고 민주와 법치의 정신으로 세워진 대한민국의 정의 역시 무참히 훼손됐다. 무려 24년 만에 대법원이 검찰의 항고를 기각함으로써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이 조작이었음을 만천하에 드러냈지만 여전히 조작극의 핵심 인물들은 현 정부와 사회의 주역으로 떳떳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은 완전히 끝나버린 과거의 일일 수 없다.

책은 김기설의 죽음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버이날이던 5월 8일 서강대학교 본관 옥상에서 몸에 불을 붙이고 떨어져 죽은 청년의 죽음이 바로 그 시작이다. 당시 서강대 총장이던 박홍과 총무처장이던 윤여덕은 서강대 본관에서 분신해 죽은 이가 서강대 학생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자 확실한 증거도 없이 기자회견을 열어 자살을 선동하는 무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는 정부 수사 기관이 만들어낸 거짓 정보와 맞물려 자살을 조장하는 무리가 운동권 내부에 있다는 확증으로 굳어지고 마침내 명백한 자살이 다른 이의 꾀임과 부추김에 의한 죽음으로 둔갑하기에 이른다.

이후 검찰을 비롯한 공권력과 언론 등에 의해 죽음의 배후로 몰린 강기훈은 무려 24년 동안이나 동료의 자살을 부추겼다는 누명을 뒤집어쓴 채 살아가야 했다. 그동안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24년 만에 나온 무죄판결을 받아들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을 한 권의 책으로 옮긴 이는 소설가 안재성이다.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당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배 중이었던 그는 김기설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읽었고 유서에도 일부를 인용한 소설 <사랑의 조건>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 '강기훈 쾌유와 명예회복을 위한 시민모임'이 책을 낼 것을 제안하자 '업보'라고 여기고 받아들였다고 전한다.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사건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실명으로 언급된다는 점이다. 그로써 비난받아 마땅한 자들의 이름을 잊혀지지 않게 했다는 게 이 책의 가장 큰 공로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서울지검 검사였던 강신욱·신상규·송명석·안종택·남기춘·임철·곽상도·윤석만·박경순, 노원욱·임대화·부구욱·박만호 판사 등이 그들이다. 그뿐인가. 제대로 된 필적 감정을 하지 않았음은 물론 자신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고의로 거짓된 감정 결과를 만들어내고 거짓증언까지 일삼은 김형영 등도 비난 받아 마땅하다.

특히 검찰의 활약은 <거짓말 잔치>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처음부터 강기훈을 범인으로 만들겠다는 목적으로 무리한 수사를 진행한 검찰은 유서가 김기설 본인의 것이라는 증거를 입수하고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몰상식하고 비양심적인 행위를 서슴치 않는다.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 검사 남기춘 등이 김기설이 군복무시절 근무한 부대에 찾아가 유서와 똑같은 수첩 메모를 확보하지만 증거로 채택하지 않고 감춘 게 대표적이다. 잠을 재우지 않는 건 당연하고 폭력과 협박 등 온갖 위법적인 수사 방식을 동원해 강기훈이 유서를 대필했다는 결과를 이끌어낸 자들이 한 나라의 검찰이었은 물론 지금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떳떳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든다.

판사들 역시 마찬가지다. 진실과 거짓을 가리는 것보다 재판을 빨리 끝내는 데만 관심이 있던 재판부는 검찰에 불리한 증거와 증언은 받아들이지 않고 강기훈을 유죄로 몰아갔다. 그렇게 내려진 판결은 수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강기훈이 "판결에 승복할 수 없다"고 소리치지 못한 걸 후회하게 할 만큼 어처구니없는 것이었다. 단 몇 개월 만에 강기훈을 유서대필범으로 만든 재판부가 오심의 증거가 수두룩한 이 사건을 뒤집는 데 수 년이 걸렸다는 사실 역시 그 못지 않게 당혹스럽다.

놀라운 건 유서대필 조작 사건에 책임있는 자들이 모두 출세를 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실세 중 실세로 꼽힌 김기춘부터가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고 사건의 총지휘자였던 강신욱은 대법관에까지 올랐다. 일선에서 홍성은의 거짓 증언을 이끌어낸 신상규는 광주고등검찰청장을 거쳐 대검찰청 사건평정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남기춘, 곽상도 등도 박근혜 정권에서 한 자리씩 꿰찼다. 24년 만에 거둔 승리와 책의 출간은 이토록 부조리한 현실과 맞물려 묘한 감흥을 일으킨다. 과연 이 땅에 정의란 존재하는가?

다음은 대법원 무죄판결 이후 강기훈의 쾌유와 명예회복을 위한 시민모임이 발표한 기자회견 성명서다.

대한민국 정부는 거짓말 잔치를 끝내야 한다!

– 유서대필 날조사건 대법원 판결에 대한 우리의 입장 –

1991년 이후 24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현대사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의 한 순간과 마주하고 있다. 당연한 결과이지만 감격보다는 비통할 뿐이다.

무죄! 너무나도 당연한 판결을 얻어내기까지 우리는 길고 긴 치욕과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부당한 국가권력이 모의하여 폭력으로 날조하고 조작했을 뿐인데, 우리는 이를 밝혀내기 위해 이렇게 오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당시 민주화운동을 대표했던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약칭 전민련)'은 죽음을 부추기는 검은 세력으로 매도되면서 민주화운동 전체가 시련을 겪었다. 고 김기설 열사는 분신을 배후조종 당하고, 유서도 대필 받는 꼭두각시라는 오명으로 두 번 죽임을 당했다. 유서대필자로 지목된 강기훈의 인생은 난도질당했으며, 그 주변의 가족과 친지 그리고 선후배들은 분노와 안타까움에 가슴만 졸이는 나날을 보내야 했다. 급기야 강기훈은 간암이라는 중병에 걸려 사투를 벌이는 신세가 되었다.

19세기 말 드레퓌스 사건과 비견되는 이런 조작과 날조가 대한민국 국가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다. 정치검찰이 주역이 되고, 권력지향 법관들이 마름이 되어 법이라는 미명하에 독재정권을 위한 거짓말잔치를 벌였다. 여기에 언론이 들러리 섰고, 몰지각한 지식인과 시인이 말석을 차지하며 국민을 눈멀게 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무엇인가? 무죄일 뿐이다. 희생의 고통은 너무나 크고 길었지만, 거짓말잔치의 주역들은 권력의 핵심에서 지금까지도 그 단맛을 즐기고 있다.

이것은 정녕 우리가 바라는 대한민국의 모습이 아니다. 오늘 사필귀정의 판단은 강기훈 개인만의 것이 아니라 정의와 민주주의를 바라는 우리 모두가 함께 얻어낸 것이다. 이 판결이 현재도 진행 중인 세월호를 비롯한 여러 진실규명 노력과 국가권력의 부당한 처사에 맞선 투쟁에 조그마한 힘이라도 보탤 수 있기를 기대한다.

오늘 우리는 대법원의 역사적 판단을 마주하며,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 날조와 조작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는 정중히 사과하고, 이에 가담했던 사법부와 검찰을 비롯한 권력기관은 반역사적인 거짓말 잔치가 다시는 벌어지지 않도록 그 대안을 국민 앞에 제시해라!
– 당시 날조와 조작을 주도했던 이들은 일체의 공적활동에서 물러나고, 국민을 속이고 기만한 죄값을 치뤄야 한다!
– 해당 언론사나 사이비 지식인들은 부당한 국가권력의 만행에 들러리 섰던 것에 대해 통절한 자기 반성문을 공식매체에 게재하라!

2015년 5월 14일

덧붙이는 글 | <거짓말 잔치>(안재성 지음 / 주목 / 2015.06. / 1만 5천원)



거짓말 잔치 -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전말기

안재성 기록, 주목(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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