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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의 경영 지침은 점괘

지난 8월 13일, 광복 70주년 특별사면에 의해 양손에 성경책을 든 모습으로 사회에 나온 SK 최태원 회장이 애초에 감옥에 간 이유는 회사돈 450억 원의 횡령이었다. 외견 상으로는 선물(先物) 투자가 손실을 거듭하자 이 손실을 메우는데 회사 돈을 빼돌린 것인데, 이 사건이 하고많은 재벌총수들의 비리사건 중에서도 뭇 사람들의 실소를 유발했던 것은, 이 과정에 김원홍이라는 '무속인'이 끼어있었기 때문이다.

김원홍은 주가를 정확히 맞추는 점쟁이로 증권가에서 유명했고, 최태원은 그 김원홍을 '경영 멘토'로 극진히 대접했으며, 무려 6천억원의 돈을 맡겼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터졌다. 말하자면, '재계 3위의 재벌총수 형제가 신통방통하다는 점쟁이에게 6천억 원이라는 돈을 갖다 맡겼는데, 점쟁이는 그 돈을 불려주기는커녕 모두 잃고 2천억 원을 빼돌려 자기 회사를 세우기까지 했으며, 재벌총수는 그 손실을 메우려고 회사 돈에 손을 댄 것'이다.

150조가 넘는 자산을 움직이는, 재계 3위 기업집단의 총수가 청취하는 '경영 멘토링'의 본질은 결국 '점'이었다. 그야말로 막장이라는 단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21세기 한국 자본주의와 재벌의 단면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일종의 '역사성'까지 띠고 있다.

실질적으로 소유조차 하지 않고 경영한다

앞서 예로 든 최태원 회장의 횡령 사건이건, 현대차 계열사 자금 1390여억 원을 횡령한 정몽구 회장의 사건이건, 다른 어떤 재벌총수의 범죄이건 재벌을 변호하는 이들은 그런 사건들이 돌출적인 사건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돌출적인 사건이야말로, 존재해왔지만 드러나지 않아왔던 문제의 본질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즉, 국가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대규모 기업집단을 그야말로 자의적·제왕적으로 경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것이 바로 소유권 개념이 아니냐고, 억울하면 재벌 자식으로 태어나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백번 양보해서 이 주장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이들은 애초에 기업을 '소유'하고 있지도 않다. 공정거래 위원회에 의하면 2015년 기업집단별 지분보유 현황은 다음과 같다.

<기업집단별 지분보유현황> 
기업
총수소유 지분
총수 및 일가소유 지분(A)
계열사소유 지분(B)
*기타 총수관련자소유 지분(C)
내부 지분(A+B+C)
삼성
0.71
1.28
47.29
4.16
52.73
현대자동차
1.8
3.19
47.02
1.32
51.54
SK
0.03
0.42
50.82
1.02
52.26
LG
1.28
3.81
35.07
0.47
39.34
롯데
0.05
2.41
59.56
0.46
62.43
GS
1.55
12.86
46.68
0.32
59.86
현대중공업
0.99
1.11
67.12
2.40
70.63
한진
1.11
2.79
43.84
13.11
59.73
한화
1.12
1.90
51.70
4.22
57.81
두산
0.06
2.37
40.35
3.49
46.22

(2015.4.1. 공정거래위원회 자료를 바탕으로 재가공, 보통주+우선주, 단위:%)
*기타 총수관련자 지분은 "임원, 비영리법인, 자기주식(자사주)"의 합

10대 재벌의 총수 소유 지분은 평균 0.87%, 총수 및 총수일가 소유지분을 다 합친다고 해도 평균 3.2%에 지나지 않는다. 도표에서 이들이 실제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분을 뜻하는 '내부지분'의 태반은 기업 계열사의 상호출자를 통해 형성된 지분에 지나지 않는다. 곧, 재벌계열사들은 이윤이 생기는 족족 계열사의 지분을 상호 매입했다는 것이며(재무제표 중 이른바 투자자산 항목이 이에 해당한다), 바로 이 과정을 통해 형성된 것이 재벌총수 일가의 권력이라는 것이다. 즉, 이들은 일가의 경영권 구축을 위해 사내유보금이라는 공금을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의 권력이 '소유'에 의해서조차 정당화되지 않는다면, 이들의 권력을 정당화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혹자는 이들이 가진 경영능력을 든다. 그러나 토지 매입에만 이미 10조5천5백억 원(감정가의 3배)을 쏟아붓고, 개발비용까지 도합 예상금액 20조 원을 철근과 콘크리트에 쏟아붓게 될 정몽구 회장의 삼성동 한전부지 개발사업이 극명하게 드러내듯, 이들이 경영성과에 근거해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주지하듯 해당 뉴스가 전해진 이후 현대차의 주가는 반토막 났다. 이들이 그토록 중시하는 '시장'이 정몽구 회장의 경영성과를 그렇게 평가한다는 뜻이다. 연구개발도 아니고 생산설비도 아닌, 부동산에 20조 원을 쏟아붓다니!

그럼에도,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친 정 회장은 2014년 연봉으로 215억7000만 원을 받아갔고, 이는 국내기업 등기임원 중 최고의 액수였다. 어디 이뿐인가? 2013년 기업 등기임원 중 가장 많은 301억 원의 연봉을 받은 사람이 바로, 횡령으로 수감되어 1월 한 달을 제외하고 감옥에 있었던 최태원 회장이었다.

입원해 있는 이건희 회장의 보수는 공개조차 되지 않는다. 등기임원이 될 경우 상법상 경영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고, 개정된 자본시장법에 따라 보수를 공개해야 하는 바,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 정용진 부회장을 비롯한 많은 재벌 대주주가 미등기임원이기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은 실제로 소유하고 있지 않은 기업을 경영하고 있고, 실제로 경영하고 있지 않은 기업에서 경영을 대가로 보수를 챙겨가고 있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형성된 부에 대한 합법적인 약탈행위다.

중소기업 육성도, 사회적 경제의 활성화도 대안이 아니다

재벌의 소유와 경영상 문제가 심각함을 지적하는 것은 이쯤으로 하자. 그렇다면 재벌체제의 대안은 무엇인가. 재벌의 독점화된 힘 탓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므로, 재벌을 특화된 중소기업들로 해체해야 하는가? 그러나 중소기업 주도의 경제라는 것이 더 공정할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중요한 것은 중소자본 역시 시장 속의 존재라는 것이다. 모든 자본은 시장 속에서만 자본이 될 수 있고, 경쟁자를 패퇴시키지 않는 한 자본으로서 확대재생산될 수 없다는 것은 철의 법칙이다. 그렇기에 한편으로는 대자본의 피해자인 중소·영세 자본은, 때로는 최저임금조차 지불하지 않는 악질적인 자본가로 역할하기 마련이다.

항상적으로 본사의 부당한 수탈에 시달리는 작은 편의점 사장은, 때로는 또한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에게 쥐꼬리만한 최저임금지급조차 거부하는 악질적인 자본가로 행동하고는 하는 것이다. 영세자영업주들의 '알바몬' 탈퇴운동이 상징적으로 드러내듯이 말이다. 모든 기업의 목적은 축적을 통해 스스로 확대재생산하는 것에 있다. 말하자면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중소기업의 목적은 스스로 '재벌'이 되는 것일 뿐이다.

한편, 재벌해체론은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에 대한 선호와 일정하게 맞물리는 것을 보인다. 제반의 진보정당 역시 재벌해체와 중소기업 육성을 강령으로 내걸고 있으며,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을 재벌이 해체된 자리를 차지할 대안적 경제체제의 구심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주지하듯, 진보정당들이 이를 대안으로 내걸지 않더라도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 그리고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 제정과 함께 이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이다. '사회적기업 육성법'에 따르면, 사회적기업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사회적 기업이란 취약계층에게 사회서비스 또는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지역사회에 공헌함으로써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등의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재화 및 서비스의 생산·판매 등 영업활동을 하는 기업으로 인증받은 자를 말한다."

즉, 사회적 기업은 법적 정의상 복지정책의 일환이다.

협동조합 역시 마찬가지다. '협동조합 기본법'에 의하면, 협동조합기본법의 제정취지는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서비스 또는 일자리 제공, 지역사회 공헌활동 등을 주로 수행하는 사회적협동조합을 별도로 도입하며, 협동조합 등의 설립·운영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정함으로써 자주·자립·자치적인 협동조합의 활동을 촉진하고, 사회통합과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기여하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사회적 경제'의 유행은 복지와 호혜성 또한 '상품'이 될 수 있으며 응당 상품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이제 약탈적 자본주의에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경제활동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취지의 이야기는 흔하다.

내부에서는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대기업 총수가 공개강연에서는 호혜성의 가치를 설파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은 것 역시 우연이 아니다. 신자유주의가 낳은 '사회의 해체'를 국가와 자본 역시 보완해야할 필요를 느끼고 있으며, 사회적 경제는 바로 그 산물이다.

이른바 '사회적 경제'는 약탈적 경제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동거하며 한축에서 보완할 뿐이다. 즉, 복지와 고용에 대한 국가적 대안부재의 상황을 지속하는데 일조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는 결코 장기지속될 수 없다. 압도적 다수의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이 국가의 재정지원없이 유지될 수 없는 상태에 있다. 만약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이미 '기업'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를 드러내듯, 최태원 회장이 옥중 출판한 책의 제목은 <새로운 모색, 사회적 기업>이었다.

대안은 재벌의 사회화

범죄를 저지른 재벌이 휠체어를 타고 국가권력의 사면을 받는 모습은 우리에게는 마치 '자연'과도 같은 것이다. 오죽하면 휠체어를 일컬어 '성공한 사람들이 타는 차'라고 했겠는가. 한국 사회에서 그들은 신성불가침의 존재다.

그렇기에 그들의 모든 행위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형제의 난으로 얼마 전까지 떠들썩했던 롯데그룹의 얽히고설킨 416개의 순환출자 고리도, 자산 총액 300조 원을 초과하는 삼성그룹의 승계를 증여세 16억 원으로 마무리한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사건도 이 나라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풍경이다. 경제적 범죄행위들에 대한 단죄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상황을 문제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편에 부가 쌓여갈수록 다른 한편에 빈곤이 쌓여가는, 이 기형적 경제구조의 가장 큰 수혜자인 재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현 상황의 키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결집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금 가진 힘으로 어찌해볼 수 없다고 생각하는 대상에 대해서, 우리는 애초에 문제제기조차 하지 않는다. 재벌의 기형적 소유와 경영에 대해 문제제기가, 재벌사내유보금 환수운동을 통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 문제를 해결할 힘 역시 집결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결국 관건은 그런 힘을 더욱 크게 형성해갈 대중적 정치운동에 있다. 그리고 그 운동의 방향은 재벌의 사회화가 되어야 한다. 즉, 재벌을 사회적 소유로 환수해야 한다.

한국 사회의 현재는 850만 명의 비정규직, 100만 명의 청년실업과 6030원에 지나지 않는 최저임금, OECD 2위에 달하는 노동시간과 최하위의 복지비 지출비중, 하루 6명의 산재사망과 40명의 자살로 축약된다. 앞서 지적한 그들 소유의 법적 정당성 결여에 더해, 재벌이 축적하고 있는 부와 그들이 휘두르고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이런 사회적 토대 위에서 형성된 것이라면, 우리가 재벌이라는 체제 그 자체를 용인해야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재벌의 축적과정 자체가 부당한 것이었다면, 재벌은 사회적으로 환수되어야 한다. 그리고 국가와 사회를 통해 통제되어야 한다.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가? 물론 재벌의 사회화가 쉬운 과정은 아니겠지만, 그들이 이 땅을 지배하게된 과정보다는 훨씬 합리적인 과정이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애초 일본인 자본가가 남기고 도망한 재산(積産)을 헐값에 불하받는 과정, 즉 존재하지 않았던 자본가를 국가권력 주도로 창조하는 과정에서 이 땅에 나온 이래, 갖가지 기상천외한 방법을 통해 몸뚱이를 불림으로써 한국사회를 지배하게된 그들이 아니던가?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백종성님은 노동자계급정당 추진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노동자계급정당 추진위는 2012년 대선에서 무소속 김소연 선거운동본부와 함께했던 이들이 2016년 1월 정당 건설을 목표로 활동하는 단체입니다.



태그:#재벌, #재벌 사회화, #사내유보금, #지배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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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재벌이다. 사내유보금 환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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