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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우리 사회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가 만나고 이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프로젝트입니다.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싸우는 이들의 이야기를 기획하여 인터뷰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 기자말

경북 영덕군 영덕읍 시내, 큰사랑약국 앞 사거리에 사람들이 북적인다. 마이크로 울리는 누군가의 목소리도 들리고, 분주하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는 사람도 있다. 그들의 가슴에 쓰인 글자, "참여해요 주민투표". 그들은 다름 아닌 영덕핵발전소반대범군민연대 사람들이다.

지난 7월 22일 정부는 제7차 전력수급계획을 통해 신규 원전 건설지를 삼척과 영덕, 두 군데 중에서 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발표로 영덕 핵발전소 건설이 보다 확실시되면서 이에 반대하는 군민들의 목소리 또한 늘어가고 있다. 하지만 영덕에 핵발전소가 지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또한, 이와 유사한 일들은 이미 영덕에서 여러 차례 있었다.

영덕은 지금까지 3차례의 핵폐기장 건설 추진을 막았던 일이 있다. 1989년, 2003년, 그리고 2005년. 영덕 주민들은 핵폐기장 건설을 막기 위해 서명운동에, 단식농성, 삭발까지 안 해본 것 없이 온몸을 던져 싸웠다. 3번의 과정에서 군의 태도가 바뀐 적은 있어도 주민들의 뜻이 바뀐 일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스멀스멀 핵발전소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영덕 주민들은 왜 지난 35년간 핵폐기장 건설에 반대했고, 이번에는 핵발전소 건설까지 반대하는 걸까.

우리는 이를 듣기 위해, 지난 8월 중순 영덕핵발전소반대범군민연대 대외협력위원장 박혜령씨를 만나 보았다.

"정부의 비상식적 설립 추진, 주민투표로 대응해야"

인터뷰 중인 박혜령 위원장. 핵발전소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인터뷰 중인 박혜령 위원장. 핵발전소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김진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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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상황을 들을 수 있을까요?
"지난 2011년 핵발전소 지정고시 이후 현재 우리 영덕읍 석리에 정부가 핵발전소 건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아주 비상식적이었죠.

주민 상대로의 일체의 공청회나 설명회가 없었어요. 핵발전소 건립 관련해서 여러 차례 대화를 시도했습니다만 묵묵부답이거나 국가사무에 주민동의는 필요치 않다는 어이없는 답변뿐이었죠. 우리가 살고있는 우리 고장인데 말이죠.

그래서 지금 범군민연대를 결성해 크게는 우리 주민의 뜻을 보여주고자 주민투표를 추진 중에 있고요. 또 정부의 비상식적인 행정을 주민들께 알려드리기도 하고, 그렇게 대응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도 설립강행이라는 정부의 입장은 변함이 없습니다."

- 언제부터 이렇게 반대운동을 시작하신 건가요?
"일단 처음 영덕이 유치에 결정된 건 2010년이었습니다.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영덕은 지난 1989년부터 핵발전소나 방폐장 관련 반대운동이 계속 돼 오던 지역이라 크게 어려울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죠. 그간 정부의 비상식적인 대응으로 반대운동의 분위기가 많이 와해된 상태였어요. 일부 반대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정부 측의 회유로 주류사회로 편입하기도 했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었죠.

그리고 그런 그 와중에 후쿠시마 사고가 났습니다. 그때 확신했죠. 상황이 힘들지만, 꼭 막아내야겠다고, 그래서 2011년 6월 4일 백지화투쟁위원회 결성을 시작으로 현재 영덕핵발전소반대범군민연대까지 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대응 계획을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저희는 일단 주민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을 활동 기조로 대응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그 일환으로 아까 말씀드린 주민투표로써의 대응이 있는 거죠"

주민투표 동의 서명을 받으러 시내로 나가는 박혜령 위원장.
 주민투표 동의 서명을 받으러 시내로 나가는 박혜령 위원장.
ⓒ 김진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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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와 군청의 태도는 어떠한가요?
"일단 건립 결정이 된 것은 중앙정부의 독단적인 판단이었습니다. 한수원이 유치신청서를 받고 주민 의사를 물어 검증과정을 거치는 형식적인 절차는 있습니다만 실제 주민참여는 불가능했죠. 결국 일체의 주민동의 없이 추진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 이후 추진과정은 더 문제죠. 지역정치인을 앞세워 갈등을 조장하거나 부추기는 방식으로 지역갈등을 조장해 지역사회 여론을 와해시킵니다. 그런 비인간적인 대응 때문에 우리 지역에는 심지어 한집의 가족 간에도 찬반으로 갈려 싸우기도 해요. 마음이 아프죠. 그래서 더욱 이러한 상황을 극복해내야 하는 것을 느끼죠.

군청에서는 지난 우리 범군민연대의 지속적인 대화 시도로 원자력특위를 구성해 군민 일부의 여론 수렴을 해주기도 했습니다만, 그 이후의 대응은 실망스러웠습니다. 오히려 현수막 강제 철거 등 방해가 많았죠. 그 이후의 대화에서는 정부의 추진계획을 거부하기 어렵다는 입장표명뿐입니다."

- 핵발전소를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핵발전소가 건립됨으로써 지역주민들의 건강에 악영향이 오리라는 것은 다수의 역학조사 결과로도 알 수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핵발전소와 인근 거주민의 암 발병 인과관계를 인정한 판례도 있죠. 핵발전소가 우리 지역 건강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거라는 것은 아주 뻔한 일인 겁니다.

그리고 우리 영덕은 농어업중심의 경제지이고 관광객으로 인한 관광수입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핵발전소가 들어오게 된다면 지금까지의 청정 영덕 이미지는 사라지게 될 거예요. 지역경제에 큰 타격이 있을 겁니다."

- 현재 주민들의 여론은 어떠한가요?
"일단 오늘 같이 다녀보셔서 아실 거예요. 주민 대부분이 유치에 반대하시는 입장입니다. 지난 원자력특위의 여론조사에서도 과반이상이 반대하는 것으로 나왔어요.

이러한 상황에서 건립강행은 지역주민들을 무시하는 처사인 거죠. 주민투표를 두고 법적 효력을 운운하는 것도 저희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지역 거주민의 의견이 행정집행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앞으로의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일단 우리 범군민연대는 주민투표로서 여론 수렴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난 삼척에서 주민투표로 발전소 건립을 저지한 것을 주민이 참여한 민주적인 행정절차로써 아주 의미 있는 일이었다 생각하고요. 주민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 우리의 활동의 목표이자 계획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구체적인 일정으로는 올해가 가기 전에 주민투표를 성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단 성사가 된 후에는 기구설치 등 구체적인 진행을 해나갈 계획입니다."

"농사일 하다 배운 것, '하다 보면 시원해진다'"

인터뷰가 끝나고 어느덧 새벽 1시가 넘은 모습. 
시계 아래엔 영덕핵발전소범군민연대에서 발행하는 선전물들이 있다.
 인터뷰가 끝나고 어느덧 새벽 1시가 넘은 모습. 시계 아래엔 영덕핵발전소범군민연대에서 발행하는 선전물들이 있다.
ⓒ 김진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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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칠 즈음, 사무실 한쪽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니 시곗바늘이 오전 1시를 가리키고 있다. 매일 이 시간쯤 집에 간다고 하시길래 안 힘드냐고 묻자, 웃으며 괜찮다 한다.

"솔직히 안 힘들어요. 힘들다는 생각보다 해내야 한다는 사명감이 더 큰 것 같아요. 목표도 뚜렷하고, 일단 우리 지역과 우리 이웃들을 위해 무조건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가 여기 영덕으로 귀농한 지 10년쯤 되었는데 농사일을 하면서 배운 게 있습니다. 
결국엔 하다 보면 시원해진다는 건데요 보통 2시, 한창 더울 때 밭일을 시작하면 일을 마칠 때쯤이면 시원해지거든요. 마찬가지로 옳은 목표를 품고 일하면 결국엔 잘 해결될 거라 믿습니다"

하다 보면 시원해진다 말하며 웃음 짓는 박혜령 위원장. 박혜령 위원장의 이런 미소가 아마도 희망일 것이고 그 미소는 주민들의 지지와 응원의 힘 덕분일 것이다.

핵발전소 건설 대부분은 지역주민들의 반대에 직면한다. 하지만 이런 반대를 줄이기 위해 주민들과 소통을 늘리고 새로운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아니라, 소통을 아예 없애버리는 것이 지금까지 정부의 태도였다. 영덕에 핵발전소가 지어진다면 환경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문제가 클 것이다.

지난해 10월, 한 원전 인근 주민이 한국수력원자력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재판부는 주민의 갑상선암 발병은 원전에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그리고 2011년 핵발전소 사고가 있던 후쿠시마에서는 대피지역인 30km 밖에서도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어 안전지대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더불어 아직 후쿠시마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밖에다 빨래를 널지 못하는 심리적 불안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방사능에 안전수치는 없다고 말한다. 정부에서 안전 기준치를 두고 있지만, 근거도 안전에 대한 보장도 없는 수치이며, 방사능에 안전수치가 있다면 "0"일 뿐이라고 말이다.

우리나라 핵발전소 밀집도는 전 세계 1위다. 보유 개수로 해도 5위인데, 우리나라보다 핵발전소를 더 많이 보유하고 있는 국가 3곳에서는 이미 대형사고가 있었다. 소련의 체르노빌, 미국의 스리마일, 그리고 일본의 후쿠시마가 바로 그곳이다. 다음에 사고가 일어날 곳으로 전문가들 대다수가 우리나라를 지목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핵발전소가 터진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에 대한 상상이 아니라, 그것이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영덕 핵발전소 건설은 누구의 문제일까. 한반도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영덕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사람들>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 연재됩니다



태그:#사람들, #영덕, #핵발전소, #박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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