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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꿈을 꿨다. 직장 내 동료들이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는데 나 혼자만 비정규직 1년 연장 계약서를 받는 꿈이었다. 잠에서 깨고 나서도 한동안 우울한 기분에 자리를 털고 일어서지 못했다. 꿈은 현실을 반영한다고 한다. 현실에서 느끼는 불안과 걱정, 억눌린 감정들이 꿈에서 드러나고 해소된다는 심리학자의 글을 본 적이 있다. 비정규직 10년 차, 내 현실을 반영하여 꿈도 쓸데없이 리얼리티에 충실한 듯해 씁쓸했다.

부모님이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시작된 사회생활, 대학을 중퇴하여 고졸 학력으로는 좋은 직장을 가지기가 너무나 힘들었던 시기였다. 요즘은 그래도 고졸 우선 채용 같은 제도도 있던데, 그때 '고졸'은 경쟁에서 낙오된 이들과 같은 이미지였다. 아르바이트와 일용직 노동자 생활을 이어가다 우연히 얻게 된 기회를 통해 대기업 건설회사에 계약직 직원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비정규직 생활 10년, 여전히 불안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비정규직 생활이 벌써 10년째, 그 사이 직장을 옮겨 중소기업인 엔지니어링 회사에 입사했지만, 이곳에서도 '非(비)'자를 떼어내 버리지 못한 채 3년이 흘렀다. 회사가 어렵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사업이 축소될 때마다 자리에 위협을 느끼며 직장생활을 해 왔다.

본부 상무님이 올해 현장근무가 종료되면 내년부터 본사에서 근무하는 것을 약속하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년이 불안한 것은 내 앞에 달려 있는 '非' 자 때문이다. 사실 일 년, 일 년 계약 기간 연장을 앞두고 불안해한 것이 한두 해가 아님에도 여전히 불안한 것을 보면 내가 적응력이 떨어지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주위를 돌아보면 내 친구들 중 2/3가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들과 가끔 모여 가지는 술자리에서 하는 이야기들이 정규직에 대한 동경과 바람으로 채워지는 것을 보면 나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쉽게 느낄 수 있다.

비정규직은 여러 가지 면에서 정규직과 차별을 받아 왔다. 연차휴가 사용, 기업에서 제공하는 각종 복지카드와 할인혜택 등의 직원복지 면에서 그러했고 통상 임금뿐 아니라 인센티브 등에서도 경우에 따라서 정규직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때가 있었다.

자기계발을 위한 각종 교육제도와 회식자리 등에서의 차별, 매년 회사가 어려울 때면 계약종료와 함께 해고를 통보받는 직원들을 옆에서 바라보면서 느끼는 불안감과 좌절감은 수치로 계산할 수 없는 정신적 차별이었다. 정규직 전환을 위해 바쁜 직장생활 가운데 시간을 쪼개어 영어공부도 하고 학교 공부도 하고 자격증도 취득했지만 매년 회사에서 내민 계약서에는 1년 계약 기간이 명시되어 있었다. 대다수 청년들이 기승전 비정규직의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현실에서 점점 희망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부에서 최근 발표한 노동개혁의 방향성은 국민 다수인 노동자의 삶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임금피크제는 차치하더라도 해고요건 완화나 비정규직 기간 연장과 같은 제도들을 보면 정부가 누구를 위한 정책을 펼치는지 판단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국가 발전이란 명목으로 일부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불합리성과 도덕성을 문제 삼으며 전체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모양새다.

정규직인 이들도 나와 같은 비정규직으로 근무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스스로를 위로하기에는, 난 양심적인 사람이고 대다수의 비정규직도 그러할 것이라 생각한다.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책이 필요해

비정규직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크게 두 가지 아닐까 싶다. 첫째는 노동의 양과 질이 같지만, 대우는 다르다는 데 있다. 정부의 정책은 이 첫 번째 문제에 맞춰져 있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두 번째 문제는 '예측 가능한 삶'의 상실이다.

'올해처럼 내년에도 내가 일할 수 있다, 10년 뒤 20년 뒤에도 내가 일할 수 있고 그에 합당한 대가를 얻을 수 있다'라는 예측 가능한 삶이 없으므로, 다수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쉽게 소비하지 못한다. 대출을 받아 집을 장만하는 것 같은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도 실행할 수도 없다. 쉬운 해고는 기업이 짊어져야 할 불안을 노동자에게로 전가하는 것일 뿐이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기업의 행태에 비추어 봤을 때 비정규직 양산 만큼이나 '쉬운 해고'를 통해 자기 이윤을 헛간에 쌓으러 들 것이 뻔하다. 지금 쌓아둔 500조가 넘는 사내유보금 중 일부는 당연히 누렸어야 할 노동자들의 권리와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희생으로 인한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비정규직 10년, 내년에도 어김없이 1년짜리 계약서에 사인을 해야할 지 모르지만, 정규직 전환에 대한 희망만은 품을 수 있기를 바란다. 정규직이 될 필요가 없는 사회나 아무리 노력해도 정규직은 꿈꿀 수 없는 사회가 아니라 노력한 만큼의 대가가 주어지는 사회, 그것이 민주주의, 자본주의 사회의 시작 아니었던가? 우리 청년들에게 희망을 돌려주는 국가 정책을 기대한다.


태그:#비정규직, #청년실업, #쉬운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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