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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호주국립대 정치사회변동학과에서 한국정치와 비교정치·비교정책 등을 연구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일하면서, 최근 몇 년간 한국의 민주주의와 언론 및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후퇴하는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4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1심에서 공직선거법 250조 2항(허위사실공표죄) 위반 혐의로 당선 무효형인 500만 원 벌금의 유죄 판결을 받고, 항소심이 진행 중인 것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저 또한 지난 2012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아내의 선거운동을 돕다가, 같은 법률 조항에 저촉돼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고,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 때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어떤 현실에 처해 있는지 몸으로 체험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한국의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에 관한 연구를 하게 돼 국제학술지에 두 편의 논문을 싣기도 했습니다. 특히 한국의 법체계에서 명예훼손과 선거운동 규제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영국·호주·일본·대만 등 외국 사례들과 비교연구를 했습니다. 이런 연구를 바탕으로 저는 조희연 교육감 사건에서 느낀 몇 가지 문제를 얘기하려고 합니다.

의혹 제기와 의혹 해명요구의 구분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심 결심공판을 마치고 재판장에서 나와 자리를 떠나고 있다.
▲ 지지자들에게 인사하는 조희연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심 결심공판을 마치고 재판장에서 나와 자리를 떠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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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조희연 교육감 사건의 1심 판결문을 보니 별로 낯설지 않았습니다. 제 사건에 대한 1심 판결의 핵심 논리와 매우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아내인 유승희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후보의 선거운동 일환으로, 지역유권자와 후원자 등 약 5000명에게 선거운동 이메일을 작성해 발송하도록 했습니다.

2013년 8월 1심 판결은 제 이메일 내용 가운데 상대 후보에 대해 "부인 회사가 정부 행사를 싹쓸이 수주해 한 해에 187억 원을 버는 등 권력남용을 통한 축재의 의혹이 있습니다(<신동아> 2010년 4월호 참조)"라고 기술한 대목 중에서 '권력남용을 통한 축재의 의혹이 있습니다'라는 부분이 허위사실이라고 판단했습니다. 1심 판결의 요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근거 없는 의혹을 함부로 제기하면 안 된다. 싹쓸이 수주과정에 정아무개씨가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증거가 없으므로 권력남용을 통한 축재를 했다는 것은 허위다. 비록 '…의혹이 있다'는 표현을 썼지만, 핵심적으로 말하고자 한 것은 의혹의 내용이므로, 결국 의혹 제기 형식을 통해 허위사실을 공표한 것이다."

제가 한 말을 곡해해서 단죄한 1심 판결에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다행히 항소심 판결은 달랐습니다. 그해 11월 항소심 재판부는 "(유종성씨가) 정씨에 대해 권력남용을 통한 축재를 했다고 단정적인 주장을 편 것이 아니고, <신동아> 기사 등을 보면 권력남용의 직접적인 증거는 없지만 의혹을 가질만한 정황 증거는 있으므로, 그러한 의혹 제기를 허위사실 공표로 해석할 수는 없다"라면서 제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검찰은 이에 불복해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기각했습니다.

조희연 교육감은 의혹을 적극적으로 제기한 저보다 훨씬 더 낮은 수준에서 단지 의혹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을 뿐입니다. 없는 의혹을 지어내어 해명을 요구한 것도 아니고, 실제로 상당히 공신력 있는 인물에 의해 제기돼 인터넷상에서 유포되고 있었던 의혹에 대해 해명을 요구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1심 재판부는 당시 고승덕 후보가 미국 영주권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나중에 판명됐으므로, 결과적으로 허위사실을 공표한 것과 다름없다는 논리적 비약을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논리비약을 하면 살아남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의혹 내용이 사실인지에 대해 충분한 확인을 하지 않고 의혹 제기를 했으니 허위사실 공표라고 했는데, 제3자가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본인에게 해명요구를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영주권 보유 여부를 제3자가, 그것도 단시일 내에 확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1심 재판부는 고승덕 후보에게 단시간 내에 객관적 소명자료를 제시해 해명할 것을 요구한 것은 부당하다고 하면서, 조희연 교육감에게는 의혹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일이 시간적·물리적으로 가능했다고 인정됨에도 확인 노력을 하지 않았으므로 미필적 고의를 인정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일관성 없는 논리를 근거로 조 교육감이 허위사실을 공표했다고 유죄판결을 내린 것은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근거 없는 의혹을 악의적으로 제기하는 것, 즉 의혹제기라는 형식을 이용해 근거 없는 의혹을 조작해서 제기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비약해, 일정한 근거가 있고 이미 제기돼 있는 의혹에 대한 확인과 해명을 요구하는 의견 표명조차도 불법으로 규정하고 이를 처벌하는 것은 심히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명예훼손 형사 처벌과 정치적 악용, 한국 언론자유 지위의 하락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출입문 위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 오른손에 천칭저울을 글고 왼손에는 법전을 안고 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출입문 위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 오른손에 천칭저울을 글고 왼손에는 법전을 안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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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가 후퇴하는 것에 대해 걱정하고 연구논문을 발표해온 해외 정치학자의 시각에서 몇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매년 세계 각국의 언론자유 지수와 순위를 평가해 발표하는 프리덤하우스(Freedom House)는 2011년 한국을 '자유 국가'에서 '부분 자유 국가'로 강등했고, 2015년 한국은 전체 199개국 가운데 67위, OECD 34개국 가운데 30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북한은 199위로 최하위).

프리덤하우스는 한국에 대한 부정적 평가의 중요한 이유로 PD수첩, 정봉주 전 의원 사건 등 명예훼손의 형사 처벌과 정치적 악용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국경없는 기자회(Reporters without Borders)'도 2015년 한국의 언론자유 순위를 조사대상국 180국 중 60위로 낮게 평가했습니다.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프랭크 라 뤼(Frank La Rue)는 2011년 한국의 표현의 자유 실태에 대한 장문의 보고서에서, PD수첩 사건과 국정원의 박원순씨(현 서울시장)에 대한 명예훼손 민사소송 사례 등을 들어, 명예훼손죄의 남용을 비판하고 비(非)형사범죄화를 권고하는 한편 민주사회에서 공직자나 공공기관은 명예훼손 민·형사소송의 주체가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오늘날 선진국들은 명예훼손(낙선목적 허위사실 공표 포함)에 대해 형사처벌보다는 반론권의 적극적인 활용과 민사소송을 통한 피해 구제에 의존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유엔을 비롯해 유럽안보협력기구, 미주기구, 아프리카 인권 및 민권위원회, 세계은행 등 여러 국제기구들이 각국에 명예훼손 비형사범죄화를 촉구하고 있으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등지를 방문해서 명예훼손 비형사범죄화를 촉구한 바 있습니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형사법상 명예훼손죄는 폐지 또는 거의 사문화됐습니다. 지난 10여 년간 영국 등 유럽안보협력기구의 15개 회원국을 포함해, 20여 개국이 명예훼손 비형사범죄화를 했습니다. 프랑스 등 여러 나라는 비형사범죄화까지는 이르지 않았지만 자유형을 폐지했습니다.

이제 유엔 인권위원회는 명예훼손법제의 문제를 각국의 자유권 규약 이행상황 평가항목에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이러한 세계적 흐름에 역행해 명예훼손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광범위한 정의(진실적시 및 허위사실 명예훼손죄, 모욕죄, 후보자비방죄, 낙선목적 허위사실공표죄 등)와 가장 가혹한 형벌 조항(최대 7년 징역형)을 가지고 있으며, 가장 많은 형사처벌을 하고 있는 나라가 됐습니다. 이는 한국이 국제적인 언론과 표현의 자유 평가에서 낮은 평가를 받는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 보장은 부패척결 필수조건

많은 연구자들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독재국가나 형식적인 선거민주주의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패가 적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조희연 교육감이 영주권 의혹 해명을 요구한 것은 결국 고승덕 후보의 해명을 통해 고 후보의 명예를 지켜주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런 의혹 해명 요구가 선거 결과에도 특별한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가 없습니다. 이 점은 1심 판결문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1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면 우리 국민이 앞으로는 실재하는 의혹에 대해 의혹 제기는커녕 해명 요구도 할 수 없는 숨 막히는 사회, 법원에서 입증할 자신이 없으면 옳다고 믿는 사실에 대해서도 무조건 입을 꼭 닫고 살아야만 하는 침묵의 사회로 후퇴할 우려가 크다고 봅니다.

조희연 교육감의 행위 정도를 유죄로 단죄한다면, 한편으로는 선거운동 과정에서 필요한 후보 검증을 막고 유권자의 알 권리를 박탈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며, 다른 한 편으로는 오히려 음성적인 흑색선전 방식의 네거티브를 조장하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9월 4일 예정인 조희연 교육감의 선고 공판에서 항소심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합니다.

○ 편집ㅣ김지현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유종성 기자는 호주국립대 정치사회변동학과 교수입니다. 이 글은 유종성 교수가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한 탄원서를 바탕으로 재작성했습니다.



태그:#조희연 서울시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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