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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후광을 입는다는 게 뭔지 알고 있소? 긍정적인 의미든 부정적인 의미든 후광을 입는 이들 중에는 경제인이 가장 많지 않을까 생각하오.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재벌인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경영인으로 길러지고 재벌의 총수가 되는 풍토가 우리나라의 모습이니 말이오.

경제인을 제외한다면 단연 정치인이 많지 않을까 생각하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의 후광을 입었다고 할 수 있지요. 18년간이나 장기 집권했던 고 박정희 대통령을 한국 근대사의 족적에서 지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소. 고 육영수 여사가 사망하고 '영애'라는 호칭으로 아버지와 동행하며 정치를 배웠지 않소.

아버지 후광 박근혜, 남편의 후광 정희왕후

책 <정희왕후> 표지
 책 <정희왕후> 표지
ⓒ 말글빛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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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공과는 차치하고라도 그의 영향력 없이 박근혜 대통령이 이 나라의 통치자가 되었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오. 박 대통령 본인도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고요. 독재자니 수많은 사람들의 인권을 탄압했느니 원성이 자자해도 역시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 편이었소.

여보,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5·16쿠데타에 대해 묻는 질문에 이리 대답하지 않았소. "5·16이 국가의 초석을 마련했다"며, "아버지로서는 불가피하게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라고 말이오. '최선의 선택'이란 말이 무슨 의미겠소. 잘했다는 말이오.

1994년 박영선 의원(당시 MBC 기자)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은 유명하오. "내 삶의 목표는 아버님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라며, "아무런 사심이 없이 소신과 비전을 가지고 나라 일에 임했다"며 아버지를 추켜세우고, "세월이 아무리 바뀌고 시대가 달라진다 해도 제가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원칙"이라고 했소.(<누가 지도자인가> 92쪽 참고)

여보! 이런 박 대통령의 발언은 그가 지향하는 게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하고 있소. '아버지의 명예회복'이 그의 삶의 목표라는 뜻이오. 당연히 아버지는 사심 없는 소신을 위해 산 애국심 투철한 분이고요. 그 아버지에 그 딸 맞지요. 그래서 <타임>은 1912년 박근혜 사진을 표지에 싣고 '독재자의 딸, The Strongman's Daughter'이라고 적었소.

고 박정희 시대의 개발논리에 중독된 이들에게 박근혜는 제2의 박정희일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이와 같은 현상은 조선시대에도 있었다오. 수양대군(세조)의 왕비 정희왕후(貞熹王后, 1418~1483)가 그요. 세조가 죽고 아들 예종이 왕이 되었으나 단명하지요. 어린 자산군(성종)을 왕으로 세우고 자신이 수렴청정을 하며 조선 최초 여성 통치자가 되었소.

정희왕후가 조선의 최초 여성 통치자가 된 것은 남편인 세조의 후광이오. 세조의 뒤를 이은 예종도 일찍 죽고, 맞아들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인 자산군을 왕으로 세움으로 자연스럽게 수렴첨정이라는 형식을 빌려 조선의 통치자가 되었소. 세조의 왕비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지요.

세조도, 박정희도 쿠데타로 집권

여보! 참 희한하게도 정희왕후는 박근혜 대통령과 닮은 데가 많소. 그의 통치기반이 된 남편 세조가 조카인 단종을 몰아내는 역성혁명으로 왕위에 올랐소. 박근혜 대통령이 명예 회복을 말하는 그의 아버지 박정희 역시 쿠데타로 권력을 거머쥐었소. 그러니까 조선 최초의 여성 통치자와 한국 최초의 여성 통치자가 모두 쿠데타로 이룬 권력을 후광으로 두고 있다는 말이오.

정희왕후는 그런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너무나도 잘 아는 터라 한명회의 사위인 자산군(성종)을 왕으로 내세운 것이오. 물론 곁에서 신숙주가 충성을 다했고요. 신숙주는 왕이 어리니 수렴청정을 해달라고 정희왕후에게 요청했고, 이를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정희왕후는 조선 최초의 실질적인 통치자가 된 것이오.

계유정난으로 왕권을 잡은 세조는 상왕(단종) 복위운동이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잔혹한 살육전쟁을 이어갔소. 박정희 정권 때 무수한 간첩 누명사건, 장준하 선생 의문사 등과 장기집권을 위한 유신체제 등은 대표적인 독재통치의 모습들이었소. 이는 무력으로 탈취한 정권들의 공통된 통치 모습이오.

여보! 이런 정권일수록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에는 사력을 다했다는 건 그마나 다행이오. 박정희를 긍정적으로 보는 가장 대표적인 이유가 무엇이오? 굶주렸던 한국을 먹고살만하게 만들었다는 것 아니오. 박정희가 근대화의 기수라는 것이지요. 세조 역시 그랬다오.

"역성형명을 일으키거나 난을 일으켜 정권을 잡은 세력들이 역모라는 이름의 소용돌이를 잠재우려면 백성들이 먹고사는 걱정을 덜어줘야 했다. 백성의 입장에서는 정권을 누가 잡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떤 정권인가가 더 관심사였다. 세조 역시 스스로 절약하는 모습을 보이는 한편 백성들이 먹고사는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민심을 얻기 위한 행보였다."(<정희왕후> 30쪽)

여보! 이 얼마나 닮아 있소. 박정희의 검소함과 국민을 먹여 살리느라 노력한 이유가 이런 거였소. 세조가 한발 앞서 이미 한 것이오. 그러니 그리 칭송할 만한 것이 못되는 것 같소.

정희왕후와 박근혜가 다른 것

남편과 아버지라는 후광으로 권세를 잡은 정희왕후와 박근혜 대통령은 다르지 않소. 조선과 한국의 최초의 여성 통치자란 점도 같소. 정희왕후는 수렴청정을 최초로 행한 사람으로 이후 문정왕후나 정순왕후 등 6명의 수렴청정을 한 왕후들의 롤 모델이 되었소. 글조차 모르는 사람이지만 그의 통치기간 동안 보여준 인사나 정책들은 수준급이었소.

여보! 몇 가지만 들어보겠소. 먼저 사관들의 역사기술이 자유로웠다는 것이오. '사관의 직필'과 '사평(사관이 어떤 권력에도 구애되지 않고 쓰는 평론)'이 보장되었소. 심지어는 정희왕후가 글을 아는 궁녀 두대가 자신을 도와 정사를 돌봐 준 게 고마워 성종 13년에 양민이 되게 했는데, 사관은 이를 두고 두대가 "조정을 유린했다"(57쪽)고 썼소.

그러나 한국은 달랐소. 세월호 사건 때 행방이 묘연했던 박근혜 대통령 사건을 보도하며 "정윤회와 함께 있었고, 최태민과 긴밀한 관계"라고 보도한 <산케이> 전 지국장 가토 다쓰야씨를 검찰이 명예훼손으로 고발했소. 최근에는 박래군씨를 대통령 모독죄로 기소했소. 유신독재 시절이나 있었던 국가모독죄를 지금 와서 들먹이는 걸 보니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지 않소.

여보! 정치경력이 없는 정희왕후가 통치를 잘할 수 있었던 것은 세조와 동반자 관계를 통해 얻은 내공 때문이라고 할 수 있소. 세조의 잘못은 버리고 잘한 것은 더욱 잘하는 방향으로 한 것이오. 아버지의 쿠데타를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하며 그때로 돌아가려는 듯한 박 대통령과는 사뭇 다르지 않소.

또한 정희왕후가 돋보이는 점은 경연을 통하여 인재를 등용함으로 성종의 안위를 튼튼하게 했다는 것이오. 다양한 인재들을 전국각지에서 경연을 통해 뽑아 썼소. 물론 공신들과 원성들, 주변 인물들도 가려 썼고요. 인사 폭이 매우 넓었다오.

특히 적이라 할 수 있는 단종의 조카 정미수를 쓴 것은 파격적이었소. 파직상소를 막아내며 "정종의 아들을 서용하라"는 게 세조의 지시라며 중용했소. 이는 "(단종에 대한) 속죄하는 자세로 내린 정희왕후의 결단"이라는 저자의 말이 맞는 것 같소. 장준하 의문사를 비롯하여 아버지 때 이뤄진 풀리지 않는 사건들에 대한 박 대통령의 태도가 정희왕후 같았으면 좋겠소.

'수첩공주'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아버지의 사람, 자기의 사람만을 골라 쓰려는 박 대통령이 정희왕후를 배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오. 더 이상 피를 부르지 않는 정치, 호패법을 폐지하고 양잠을 장려하며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펼쳤던 여성 정치가 정희왕후, 그는 후대에 어떤 평을 받았을까요?

"정희왕후의 졸기를 기록한 실록은 '선인(宣人)'이라는 최고의 찬사를 주었다. 선인은 송나라 영종의 비, 선인태후를 말하는 것으로 '여자 요순'이라고 칭송할 정도로 정치를 잘했던 인물이다."(본문 80쪽)

여보, 정희왕후와 박근혜 대통령은 모두 남편과 아버지의 후광을 입은 이들이오. 세조도 박정희도 쿠데타로 집권했소. 둘 다 그 시대의 최초 여성 통치자요. 정희왕후가 '선인'이라면 박근혜 대통령은 후대에 어떻게 남을지 궁금하오. 대한민국의 '선인'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오. 정희왕후 반만 닮아도 가능하지 않겠소.

○ 편집ㅣ장지혜 기자

덧붙이는 글 | <정희왕후>(함영이 지음 / 말글빛냄 펴냄 / 2015. 8 / 243쪽 / 1만2500 원)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이 글에서 말하는 ‘여보’는 내 아내만이 아닙니다. ‘너’요 ‘나’요 ‘우리’입니다.



정희왕후

함영이 지음, 말글빛냄(2015)


태그:#정희왕후, #박근혜, #쿠데타,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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