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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기사: 다시, 샤를리 에브도를 생각하며

(1편에서 계속)

샤를리 에브도, 정상 발간 시작 지난 2월 25일 이른 아침, 프랑스 파리의 파리북역(Gare du Nord train station)에서 한 손님이 프랑스 풍자 잡지 <샤를리 에브도>를 집어들고 있다. 현지 언론은 <샤를리 에브도>의 새 판이 250만 부 가량 인쇄된 것으로 보도했다.
▲ 샤를리 에브도, 정상 발간 시작 지난 2월 25일 이른 아침, 프랑스 파리의 파리북역(Gare du Nord train station)에서 한 손님이 프랑스 풍자 잡지 <샤를리 에브도>를 집어들고 있다. 현지 언론은 <샤를리 에브도>의 새 판이 250만 부 가량 인쇄된 것으로 보도했다.
ⓒ 연합뉴스/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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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생각을 이어나가다 문뜩 궁금해졌다. 이 사건의 직접적인 당사자는 아니지만 프랑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고등학생 페펙은 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참고로 페펙은 내가 함께 머물고 있는 하싼 가족의 넷째로 파리 17구의 리세 까르노(Lycée Carnot)에 재학 중이다. 나와는 1998년생 동갑내기로 곧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다시 한 번 불러서 기나긴 대화를 주고받았다.

나(필자?/기자?): "이렇게 대화에 응해줘서 고맙다. 보통 프랑스 사람들은 '샤를리 에브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페펙: "사실 샤를리 에브도는 전에는 그리 잘 알려진 편이 아니었지만, 몇몇 사건이 일어난 후에는 상당히 중요한 잡지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특히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한 것은 파리 20구에 있는 첫 번째 사무실에서 벌어진 화염병 폭발 이후부터였다. 그 당시부터 이 조그만 잡지의 이름이 많이 회자되기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다시 잊히고 말았다."

나: "샤를리 에브도가 유독 이슬람에 대해서만 강한 풍자를 했나?"

페펙: "아니다, 샤를리 에브도는 이슬람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종교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풍자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건 기독교에도 해당되는 것이다. 모든 풍자가 다 웃긴 것은 아니다. 일부는 재미있기도 하지만, 일부는 너무 거칠기도 해서 웃기기보다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물론 프랑스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이긴 하지만, 넘어야 할 선과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아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잡지를 특별히 비난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단지 이슬람 사람들만이 민감하게 반응할 뿐이다. 모든 프랑스인들은 샤를리 에브도가 특정 종교만이 아니라 모든 종교를 풍자의 대상으로 활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 "구체적으로 샤를리 에브도가 웃음거리로 삼은 것은 무엇이었나?"

페펙: "샤를리 에브도는 이맘(imam, 이슬람 성직자), 교황, 그리고 유대인 성직자들과 같이 온갖 종교적인 인물들을 웃음거리로 삼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요점은 무슬림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종교 그 자체보다는 그것의 방향성에 대해 풍자하고 웃음거리로 삼았던 것이다."

나: "그 풍자와 비판이 논리적이었다고 보나?"

페펙: "몇 가지 부분들은 논리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저 "이것을 만화로 그리면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겠지"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부분도 많이 볼 수 있었다."

나: "그래서 너는 그 풍자의 수위가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여질만 했다고 생각하나?"

페펙: "프랑스 사회에서는 물론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프랑스는 완전히 자유로운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가 쓰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쓸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어떤 언론매체더러 "이제 그만하시오, 당신은 이것에 대해 더 이상 풍자할 수 없소"라고 말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심지어 일부 조그만 잡지들은 극심한 인종차별성 기사들을 싣고 유대인들을 조롱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그에 대해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샤를리 에브도는 당연히 프랑스 사회에서 용인될 수 있었다. 특히 샤를리 에브도의 편집진들과 만화가들이 상당한 유명인사들이었다는 점, 대다수의 사람들이 잡지를 읽고 있지 않았지만 그들이 특정 인종이 아닌 온갖 종교를 조롱하고 풍자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는 점 등을 미루어볼 때 프랑스 사회에는 당연히 용인될 수 있는 잡지였다고 생각한다."

나: "이번 샤를리 에브도 사건이 프랑스 사회의 곪아 왔던 문제의 일부가 터진 것이라고 보나, 아니면 극히 예외적인 극단주의자들이 그저 샤를리 에브도라는 특정한 잡지가 마음에 들지 않아 벌인 일이라고 생각하나?"

페펙: "나는 이번 일이 전혀 예외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프랑스 사회 전체적으로 극단주의가 점점 힘을 얻어가고 있다. 실제로 몇몇 극단주의자들이 이슬람 국가(IS)에 가담했다 지하디스트가 되는 일들도 벌어지고 있다. 그런 극단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가치, 혹은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서 누구라도 공격할 준비가 되어 있다. 실제로 샤를리 에브도 이후에 벌어진 총격사건은 유대인 식료품점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샤를리 에브도나 유대인 말고도 이슬람에 대한 강한 비판을 일삼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그 타깃이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은 예외적이라기보다는 일반적인 현상인 것이다."

나: "이전에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과의 분쟁이 있어왔나?"

페펙: "그 사실은 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항상 우리와 싸우기를 원하고, 우리를 약하게 만들기 위해 공격을 감행한다."

나: "왜 이런 일들이 생기고 그 테러리스트들의 역사적인 배경은 어디서 시작된다고 보나?"

페펙: "사람들은 보통 그것을 일반화해서 '북아프리카에서 오는 이민자들 때문이다'라고 말하곤 하는데, 그런 관점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포르투갈 출신의 어떤 소년이 IS에 가담했다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다. 가톨릭 집안 출신의 그 소년은 IS의 동영상을 보기 시작하면서 학교를 떠나고 이슬람으로 개종한 후 테러리스트가 되기로 결심했고 한다. 이런 경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슬람과 관련된 모든 문제가 이민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설령 그렇다고 해도 프랑스 정부가 그 모든 이민 문제에 있어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민자들을 오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프랑스는 자국 사람들이 기피하는 일들을 도맡아 할 노동자들이 필요했고, 그렇기에 이민자들을 두 팔 벌려 환영했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정부당국은 '좋은' 노동자와 '나쁜' 노동자를 추려서 뽑길 원했고, '나쁜' 노동자로 판명된 사람들을 본국으로 추방하려 했다. 그렇지만 나는 이제와서 우리가 이 사람들을 쫓아낼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일부 사람들은 "이민자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아가고, 정부 예산을 갉아먹는다"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정작 그 사람들, 크게 보면 프랑스 사회 전체가 이민자들에 대해 책임이 있는 것이다."

나: "이민자들의 대부분은 프랑스가 식민지로 삼았던 국가들에서 온 것이지 않나?"

테러당한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추모 현장 방문한 시민 파리 시민과 관광객들이 3일(현지시간)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건물 앞 추모 현장을 찾아 메시지와 사진 등을 살펴보고 있다. 샤를리 에브도에서는 지난달 7일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 형제가 테러를 저질러 12명이 숨졌다.
▲ 테러당한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추모 현장 방문한 시민 파리 시민과 관광객들이 지난 3월 3일(현지시간)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건물 앞 추모 현장을 찾아 메시지와 사진 등을 살펴보고 있다. 샤를리 에브도에서는 지난달 7일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 형제가 테러를 저질러 12명이 숨졌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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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펙: "맞다. 우리가 식민지로 삼았던 북아프리카 쪽 나라들, 모로코 알제리, 세네갈 등등에서 이민자들이 많이 건너오고 있다."

나: "그래서 프랑스가 현재의 이런 상황을 만든 식민주의적 과거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나?"

페펙: "글쎄, 어떤 사람들은 그런 과거로 인해 지금의 프랑스가 존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식민주의적 과거가 오늘날 우리가 그래도 강대국 중 하나로 여겨질 수 있는 기틀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대했던 방식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수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백인들을 위해 철도를 비롯한 여러 가지 기반시설을 만들다 목숨을 잃었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는 수많은 식민지 청년들을 강제징집해 전쟁터로 내몰기도 했다.

첫 번째로 그들은 1차대전의 최전선에 투입되었고, 2차대전때도 마찬가지였다. 오죽하면 식민군을 통칭하는 'Tirailleurs Sénégalais(세네갈 병사들)'이라는 표현까지 있을 정도인데, 왜냐하면 당시 많은 병사들이 세네갈로부터 징집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프랑스는 병사들을 데려가는 조건으로 독립을 비롯한 많은 것들을 제시했지만, 오랬동안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나는 당시의 모든 아프리카 국가들이 충분히 독립해서 자유를 가질 권리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프랑스 이민법에 따라 프랑스에 있을 자격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것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이민자들이 프랑스 사회에 통합되는 것이 쉽지 않을 수도 있고, 일부 이민자들은 국민전선(FN)이 25%이상 득표를 차지할 때 극심한 불안과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모든 문제들에 대한 해결방안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사람들의 이민을 막는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불법적으로 이민을 시도할 것이고,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어쩌면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있는 것은 교육인지도 모른다. 학교는 국적에 상관없이 모든 학생들에게 열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보통 좋은 학교들은 부자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 있고,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학교들은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교외에 있다는 것이다."

나: '그렇다면 프랑스 정부 차원에서 이민자들에 대한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인가?"

페펙: "실제로 그것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고, 프랑스 정부도 항상 그를 위해 노력해왔다. 학교에서는 누구나 사회적 권리가 있다는 것을 배운다. 누구든지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고, 원하는 대로 행동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그저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무실에 자신의 전통의상을 입고 온다던지, 색다른 헤어스타일을 한다거나 이런 것들을 말이다... 이런 문제들은 시간과 함께 해결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세월이 지날수록 악화될 수도 있다."

나: "만약 이 같은 사태가 계속해서 발생한다면, 샤를리 에브도와 같은 언론매체에 조금 자중할 것을 권고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페펙: "우선 강조하고 싶은 것은 샤를리 에브도도 자신들의 위험 부담이 크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격렬한 비판이나 풍자를 할 때도 그것이 초래할 결과에 대해서 많이 생각을 한 상태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래서 어떤 잡지들은 보디가드들을 고용하기도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건 그들이 책임져야 할 일이고, 만일 우리가 그들의 성향을 바꾸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테러리즘의 승리가 될 것이다. 사람 몇 명을 죽이는 것으로 사회의 기조가 달라진다는 것이 증명된다면, 그것이 다른 테러리스트들에게 커다란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우리의 신념을 지켜나간다면, 테러리스트들은 결코 승리하지 못할 것이다."

나: "혹시 지하디스트뿐만 아니라 이슬람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 예를 들어 이슬람에서는 여성의 권리도 많이 없고..."

페펙: "아니다, 나는 그것은 단지 코란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코란에는 어떤 관점을 가지고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때로는 완전히 상반되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코란의 일부는 "살인하지 말라"고 말하지만, 또 다른 부분에는 "종교를 배신한 자는 마땅히 죽여야 한다"고 적혀 있다. 이러한 부분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코란의 일부만, 혹은 자신이 읽고 싶은 구절만 읽고 굉장히 치우친 관점을 갖는 일들이 생긴다는 것이다."

나: "어떻게 테러리즘과 관련된 이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페펙: "이슬람국가에서 오는 사람들, 특히 지하디스트와의 접촉이 의심되는 사람들을 강하게 통제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는 있겠지만, 나는 이것이 우리나라(프랑스)를 덜 자유롭고 닫혀 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테러집단이 목표하는 바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미국을 그렇게 만들었듯 말이다. 테러는 미국의 자유에 너무도 큰 영향을 미쳤고, 나는 프랑스가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수상쩍은 사람들을 매일같이 심문하고, 테러를 막기 위해 엄청난 돈을 지출하고, 이런 모든 것들은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정말 멍청한 짓이다.

프랑스는 샤를리 에브도 이후 국가경보 '비지피라트(Vigipirate)'를 최고단계로 격상했는데, 그것이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이것은 정말 엄청난 예산 낭비다. 테러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유명인들의 집 앞에 경찰이 배치되었고, 이제 어린이들이 학교 밖으로 나가는 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학급 친구들이랑 같이 수영장에 가지도 못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점점 과대망상적으로 되어가고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이것이 우리나라의 자유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과대망상적 사고는 상황을 해결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이로 인해 우리는 너무 비싼 값을 치르고 있다."

나: "극단주의자들에게도 똘레랑스(Tolérance)를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페펙: "만일 네가 '우리의 유일한 살길은 이런 못돼 먹은 유럽 국가들이랑 있는 힘을 다해 싸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거면, 절대 아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더욱 강경책을 써야 한다. 사실 이같은 경우는 전에도 많았다. 테러와 연관되어 있을 것이라고 짐작되는 사람들을 경찰은 오랫동안 추적해왔다. 샤를리 에브도를 공격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경찰은 이미 그들이 지하디스트와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저 그들을 뒤쫓기만 하는 것은 시간 낭비, 돈 낭비일 뿐 전혀 실용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테러리스트로 강하게 의심되는 사람들을 실제로 불러 조사를 해본다던가, 무기 구입 움직임을 사전에 적발한다던가 하는 조치가 필요할 것 같다."

나: "샤를리 에브도 이후 FN(국민전선)과 같은 극우세력들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페펙: "사실 샤를리 에브도 직후에 FN은 굉장한 창피를 당했다. 총격사건이 일어난 지 이틀만에 "만약 FN이 정권을 잡고 있었다면 이 테러리스트들은 프랑스에 존재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라는 식으로 입장을 내놓았던 것이다. 사람들은 샤를리 에브도가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총격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것을 이용하려 하는 FN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샤를리 에브도는 금기시되는 주제(Tabou)였기 때문에, 그에 관해 논하는 것은 자제했어야 했다. 그러나 좀 더 멀리 본다면, 샤를리 에브도 사건은 분명히 일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사람들은 불안감에 휩싸이기 시작했고, FN의 지지율도 조금 더 상승했다."

나: "그렇다면 총격사건 이후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예를 들어 사람들이 '나는 샤를리다(Je suis Charlie)'를 외치며 거리로 뛰어나온 것이라든가..."

페펙: "나는 그것이 정말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무도 이 조그만 잡지에 대해서 여태 관심도 두지 않았으면서 단지 몇 사람이 죽었다는 이유만으로, "아, 나는 샤를리다(Je suis Charlie), 그리고 나는 그들을 지지하고 그들이 싸워왔던 가치를 수호한다"라고 외치는 것. 나는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그저 별 생각 없이 내뱉는 말처럼 들릴 뿐이다. 총격사건으로 죽은 사람들을 추모하려면 다른 구호를 선택했어야 했다. 물론 내가 학교나 어디 다른 데 가서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라고 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 구호 자체에 대해 나는 그리 동의하지도, 공감이 가지도 않는다.

프랑스 사람들은 사실 굉장히 이상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어떤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면 자기가 그 자리에 있어야 하고 무언가 참여해야 한다는, 그래서 나중에 자식들에게 "내가 그 역사적인 자리에 있었다고! 증거사진까지 있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그런 생각 말이다. 그건 매우 프랑스적인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Manifestation(표현, 시위로 번역됨)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그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으려 애썼다. 중요한 것은 감정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나갈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이다."

※페펙의 생각에 동의하는 부분도 있지만 필자의 생각과는 많이 다를수도 있음을 밝혀둡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6월 1일, 파리에서 시작된 저의 여행은 이후 프랑크푸르트(Frankfurt am Main), 하이델베르크(Heidelberg), 슈투트가르트(Stuttgart), 튀빙겐(Tübingen), 알프슈타트(Albstadt), 콘스탄츠(Konstanz), 프라이부르크(Freiburg im Breisgau), 뮐루즈(Mulhouse), 켈(Kehl), 스트라스부르(Strasbourg), 낭시(Nancy), 다시 파리(Paris), 발랑스(Valence), 리옹(Lyon), 제네바(Geneva), 취리히(Zürich), 인스부르크(Innsbruck), 바두츠(Vaduz), 뮌헨(Munich), 뉘른베르크(Nuremberg), 바이마르(Weimar)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지금 베를린(Berlin)에 머물고 있고, 며칠 뒤면 라이프치히(Leipzig)로 넘어가 그곳에서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게 됩니다. 이제 여행 막바지에 다다른 만큼,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나가기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럼 한국에 돌아가서 더욱 알차고 재미있는 유럽 여행기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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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서울에서 태어나 2003년부터 홈스쿨링으로 자라왔습니다. 학년으로 따지면 올해 고등학교 2학년 나이이지만 제 자신을 공교육 시스템에 의해 규정된 어느 특정한 범주에 가두어놓진 않으려 합니다. 정치, 경제, 사회, 역사, 문화, 철학에 두루 관심이 많고 언젠가는 에밀 졸라와 같은 행동하는 지식인이 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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