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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올린 트윗 한 개가 공공의 이익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인구 천만의 대도시 서울에서는 이 의문을 풀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진행중입니다.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취재해봤습니다. [편집자말]
박원순 시장 트위터. 한 시민이 서울시 산하기관 관련 민원을 문의하고 있다.
 박원순 시장 트위터. 한 시민이 서울시 산하기관 관련 민원을 문의하고 있다.
ⓒ 인터넷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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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밤에 뜬금없는 민원 하나 드립니다. 강남순환고속도로 4공구 8미터 방음벽이 아니라 요즘 기본인 터널형 방음벽 시공 부탁 드립니다. 안양천에서도 한강의 맑은 무지개를 보고 싶습니다. 소음과 매연에 아이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hplt***)"

제가 이미 방음벽 전체에 대한 전수조사를 지시했습니다. 재정 문제 때문에 한꺼번에 다 할 수는 없지만 차츰 해 나가겠습니다.(@wonsoonpark)"

지난 11일 자정, 박원순 시장은 한 서울시민의 트위터 멘션(메시지)를 자신의 트위터에 리트윗(공유)했다. 방음벽 관련 민원이 담긴 내용이었다.

시민의 멘션부터 박 시장의 리트윗까지 걸린 시간은 약 4분. 4분만에 시장이 직접 민원 하나를 해결한 셈이다. 이날 박 시장은 약 6시간 동안 80여 개의 트윗을 올렸다. 대부분이 질문 멘션에 대한 응답이나 감사·공감을 표하는 내용이었다. 단순히 시정을 홍보하는 등의 내용은 거의 없었다.

서울 시민들에게 박 시장의 이런 모습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이미 지난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 나서면서부터 트위터 등 SNS(Social Network Service)를 중점적으로 활용해왔기 때문이다. 그의 SNS는 일방적인 '말하기'보다는 '대화'에 쓰였다.

재임 4년째를 맞으면서 서울시에서 SNS는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유용한 창구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특정 세대에 치우친 여론이 조장될 수 있다는 비판도 있지만, '빅데이터'와 결합시킬 경우 유용한 정책결정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호평도 나온다.

"변화 위해선 많은 이의 참여 제도화돼야"

정부나 지자체들이 SNS 활용에 열을 올리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그들이 모여있는 SNS는 무시할 수 없는 유권자 집단이 됐기 때문이다. 국내의 경우 '카카오스토리' 사용자가 4700만 명, '페이스북' 사용자가 1100만 명, 트위터 사용자는 640만 명으로 추정된다.

접근 방법은 다양하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재선을 앞둔 지난 2012년 소셜뉴스사이트인 'Reddit'에서 유권자들과 30분간 공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는 좋아하는 농구 선수를 묻는 질문부터 구체적인 대선 공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문에 대해 답했는데, 대화 내용을 궁금해하는 접속자가 폭주하면서 한때 사이트가 멈추기도 했다. 

시민이 언제 어디서든 익숙하고 빠르게 접속할 수 있다는 장점을 활용한 지자체도 있다. 인구가 약 3000명 정도에 불과한 스페인의 작은 도시 '훈'시는 이런 장점을 이용해 시 민원 전체를 트위터로 해결한다. 기본적으로 한 개의 SNS 계정 뒤에 시민 한 명이 있다는 인식인 셈이다. 훈 시는 공무원 전원이 트위터 계정을 가지고 있으며 실시간 민원이 가능하도록 경찰차량이나 유니폼, 청소 차량에도 트위터 계정이 적혀 있다.  

SNS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의견을 내고 행정에 참여하는 최근의 풍경들은 민주주의 관점에서 봤을 때 기본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의 변화다. 정책이 목표로 하는 '당사자'의 필요가 공공 정책에 반영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특히 그동안 여러 물리적인 요인 때문에 공론장에 등장하지 못했던 소외 계층들의 목소리도 생생하게 담아낼 수 있게 됐다.

박원순 시장은 지난해 방한했던 사회학자 울리히 벡 교수와의 대화에서 세월호 참사를 거론하며 이 점을 지목했다. 그는 "미국에서 카트리나 피해를 가장 크게 입은 이들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이었고, 이번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라면서 "스스로를 대변할 수 없는 사람들이 안전과 관련한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한다면 그만큼의 위험 요소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위험에 노출된 많은 이들의 참여가 제도화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어떻게든 기존까지 제외되어 있던 소외 계층의 의견을 반영하는 게 전체 공공 정책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빅데이터 분석으로 찾아낸 노인 교통사고 다발 지역

심야버스 N30 버스
 심야버스 N30 버스
ⓒ 오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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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가 공공 정책 완성도를 높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책 중심으로 자리 잡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시장 트위터에 단발적으로 쏟아지는 SNS속 여론이 서울 시민의 여론을 대변한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상 스마트폰 등 최신 기기에 익숙한 20~30대의 성향이 많이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언론 등에 드러나는 박원순 시장은 어느정도 소통에 특화된 정치인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이 역시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 서울시가 지난 1월 서울 시민 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서울시가 서울 관련 소식 전달에 소셜미디어를 잘 활용하고 있다'고 응답한 시민은 전체의 39.1%에 불과했다. 53.3%는 '별로'라고 답했다. 세대 간 SNS 장벽의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보완재 역할을 하고 있는 게 최근 기업과 일부 지자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빅데이터' 활용이다. 기본적으로 '사람의 자취를 쫓는다'는 원리는 비슷하다. SNS가 구체적인 언어로 정리된 '주관식 답안'이라면, 사람이 사용하는 각종 기계 장치에서 나오는 '빅데이터'들은 길 위에 찍힌 발자국과 비슷하다. 잘 분석하면 개인의 행태나 여론을 파악할 수 있는 단서로 사용이 가능하다.

서울시에서 지난 2013년 도입해 호평을 받았던 심야 '올빼미 버스'는 SNS와 빅데이터 활용이 결합된 정책이다. 시는 SNS 등을 통해 24시간 운영하는 버스 노선에 대한 건의 사항이 제기되자 일단 2개 노선으로 시범 운행을 한 후, 심야 유동 인구 패턴을 추가로 분석해 총 9개 노선으로 확대했다.

'시민 의견'과 '사용 흔적'이라는 복합적인 민의 확인 과정을 거친 셈이다. 올빼미 버스의 하루 평균 이용객은 6000여 명. 심야 시간대에 오가는 서민들이 주로 이 버스를 이용한다. 주간 시간 버스보다도 대당 평균 탑승 인원이 20% 이상 많을 정도로 높은 효율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는 올해에도 장애인 콜택시 개선 작업, 교통사고 패턴 분석 등에 빅데이터를 접목해 진행 중이다. 서울시 빅데이터전략팀의 마경근 주무관은 "노인 교통사고는 노인이 많이 다니는 경로당이나 노인 복지 시설 주변에서 많이 일어날 것 같지만 가장 많이 일어나는 곳은 전통 시장 부근"이라고 설명했다. 전통 시장 근처가 차도와 인도 구별이 희미해서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노인들 대상으로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는 "시에서는 전통 시장 인근에 차·보도를 뚜렷하게 구별하는 시설을 설치하는 식으로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본격적인 SNS 분석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가능한 발전 방향 중 하나로 제시된다. 전문가들은 서울 정도 크기의 대도시에서는 충분한 연구 능력이 갖춰질 경우 SNS에서 파생되는 빅데이터를 공공정책과정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시장 한 명의 '화려한' 의견 수렴에 그치지 않고 시 차원에서 본격적인 제도를 만들어 정책 결정에 SNS 분석을 접목한다면 정책 효율을 더욱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의 송영조 연구원은 "공공 정책은 '문제 인식'-'정책 입안'-'집행'-'평가' 등의 순환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각각의 과정에서 SNS 상 집단 움직임들이 정책 결정에 신속하게 반영되면 국민 편의가 그만큼 향상될 수 있다"고 말했다.


태그:#서울시, #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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