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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2일, 야구경기가 열리던 미국 콜로라도주의 쿠어스필드가 들썩였다. 이날 추신수 선수는 아시아 출신으로는 최초로, 메이저리그에서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했다. 그날 기록을 포함해도 그가 속한 텍사스 레인저스 역사상 '사이클링 히트'는 단 8번에 불과했다.

'사이클링 히트'는 한 경기에서 타자가 '1루타·2루타·3루타·홈런'을 모두 때려내는 것을 뜻한다. 방망이로 상대 투수의 공을 쳐서 만들어낼 수 있는 안타를 모두 보여주는 것.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공격적인 면에서는 그리 영양가 있는 성적은 아니다. 물론 한 경기에서 4안타를 기록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사이클링 히트'는 주자가 있거나 후속 타자의 안타가 없다면 타자가 스스로 올릴 수 있는 점수는 홈런을 통한 1점에 그친다. 반면 한 경기에 자력으로 2점을 올리는 '홈런 두 개'는 스포츠뉴스에 소개될 수는 있어도 따로 '기록'으로 쳐주진 않는다.

그렇기에 '사이클링 히트'를 장타력, 정확성, 스피드 모두를 갖춰야만 가능한 일종의 '훈장'으로 봐야한다. 보기 어려운 일이기에 관심을 받는 기록이다. 이렇듯 스포츠는 때론 실리보다 '기념'이나 '상징'을 통해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양키스' 유니폼에 반영된 구단의 철학

한국프로야구 레이스가 중반을 훌쩍 넘어섰다. '메르스 사태'를 감안한다면, 올해도 흥행에 성공한 모양새다. 만년 '꼴찌'에서 중독성 있는 경기를 펼쳐 '마리한화'로 거듭난 한화이글스, 토종선수와 외국용병 사이의 홈런레이스, 5할 승률을 유지하기 위한 치열한 순위 다툼. 초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볼거리도 늘고 관중의 폭도 넓어졌다.

우리 프로야구는 1980년부터 시작됐다.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다. 미국은 1869년, 최초로 '신시내티 레드스타킹스'란 프로구단이 창단됐다. 메이저리그의 내셔널리그가 1876년, 아메리칸리그가 1901년 탄생했다. 이 양대 리그의 역사는 100년이 넘는다. 그 유구한 역사 속에 구단들은 저마다의 철학과 상징을 만들고 관객에게 다가가기 위한 여러 노력들을 했다.

메이저리그의 경영철학과 비즈니스 노하우 <뉴욕 양키스 유니폼에는 왜 선수의 이름이 없을까?>
▲ 책표지 메이저리그의 경영철학과 비즈니스 노하우 <뉴욕 양키스 유니폼에는 왜 선수의 이름이 없을까?>
ⓒ 레디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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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스포츠 컨설턴트인 스즈키 도모야의 <뉴욕 양키스 유니폼에는 왜 선수의 이름이 없을까?>는 사람들이 야구에 열광하고 흔쾌히 지갑을 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MLB 구단들의 노력을 소개하며 설명한다.

그 속에는 구단들의 '팬에 대한 경의'와 '야구에 대한 사랑'이 가득했다. 이 노력은 '전통'이 되고 '스토리'가 됐다. 특히 흥미있는 두 사례를 소개한다.

'뉴욕 양키스'의 경기를 본 사람이라면 유니폼에서 뭔가 위화감을 느꼈을지 모른다. 유니폼 뒷면에 선수의 이름이 없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의 다른 팀이나 한국 프로야구팀은 유니폼 뒷면에 선수의 이름이 적혀있다. 그래야 뒷모습만 보고도 어느 선수인지 알 수 있다. 어지간한 팬이 아니고서야 번호만 보고 선수를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왜 '뉴욕 양키스'는 시청자와 관객에게 친절하지 않을까. 그건 '아무리 초일류 선수라도, 구단보다 먼저일 수 없다'는 구단 철학이 반영된 결과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등번호를 유니폼에 처음으로 넣은 구단도 다름 아닌 '뉴욕 양키스'란 점이다. 1929년, 양키스는 타순 번호를 그대로 선수의 번호로 삼아 등에 써넣었다. 이게 유니폼 등번호의 시초다. 다른 구단도 이를 모방해 등번호를 넣기 시작했다.

그래서 당시 전설적인 홈런타자 '베이브 루스'는 3번, 철인 '루 게릭'은 4번을 차지했다. 뿐만 아니라 스타들을 여럿 배출한 구단답게 이미 한 자리의 등번호는 거의 '영구결번'이 됐다. 지난 시즌 은퇴한 '데릭 지터'의 2번도 영구결번이 확실시되기 때문에, 이제 아예 하나도 남지 않는다. 

4월 15일, 모든 선수는 '42번'이 된다

영화 <42>의 한 장면.
 영화 <42>의 한 장면.
ⓒ 브라이언 헬겔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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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에서는 일 년에 단 하루, 분신술을 펼친 듯 모든 선수의 등번호가 같아지는 날이 있다. 여기에도 사연이 숨어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구단인 'LA 다저스'의 금기를 깬 도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원래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메이저리그 선수가 될 수 없었다. 니그로리그라는 별도의 리그가 있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그곳에서만 뛰어야 했다.

그러던 중 다저스는 다른 구단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재키 로빈슨'이란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선수로 기용해 인종의 벽을 허물었다. 그때가 1947년이었으니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제정된 1964년보다 무려 17년이나 앞선 일이었다.

42번은 재키 로빈슨 선수의 등번호였다. 그리고 4월 15일은 재키 로빈슨이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날이다. 이를 기리기 위해 매년 4월 15일에는 모든 선수가 등번호 42번 유니폼을 착용하는 게 관례가 됐다.

당시 다저스의 오말리 구단주는 이밖에도 여러 금기에 도전해 메이저리그 문화를 선도했다. 자동차가 늘어나자 주차장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뉴욕시에 새로운 부지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하자 과감히 로스앤젤레스로 연고지를 이전했다. 이는 구단 경영의 수익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연고지를 옮긴 최초의 사례다. 만약 이때 다저스가 연고지를 이전하지 않았다면, '코리안특급' 박찬호는 탄생하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지난 2014년 3월 발표한 '메이저리그 구단 가치'에서 뉴욕 양키스가 25억 달러로 1위를, LA 다저스가 20억 달러로 2위, 보스턴 레드삭스가 15억 달러로 3위에 올랐다. 이 세 구단은 어떻게 이토록 기업 가치가 높을까. 텔레비전 중계만 봐서는 알 수 없는 메이저리그 구단의 '전통'과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 가치란 숫자가 모든 걸 표현하지 않는다. 다만, 그 가치를 켜켜이 쌓아올리기 위해 기울인 노력만큼은 인정해야하지 않을까. 특히 그게 스포츠팀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덧붙이는 글 | <뉴욕 양키스 유니폼에는 왜 선수의 이름이 없을까?> (스즈키 도모야 지음 / 이용택 옮김 / 레디셋고 펴냄 / 2015.04 / 1만5000원)



뉴욕 양키스 유니폼에는 왜 선수의 이름이 없을까?

스즈키 도모야 지음, 이용택 옮김, 레디셋고(2015)


태그:#뉴욕양키스, #메이저리그, #ML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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