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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교수, 영화 속으로 들어가다 5> 표지
 <문학교수, 영화 속으로 들어가다 5> 표지
ⓒ 글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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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최초로 만들어진 것이 1895년이다. 당시 뤼미에르 형제가 만든 영화 <열차의 도착>이 파리의 카페에서 상영되자, 4D 영화도 아니건만 관객들은 달려오는 스크린 속 기차를 보고 마치 실제 기차를 본 것처럼 기겁하여 건물 밖으로 뛰쳐나갔다고 한다. 영화가 현실의 반영이란 사실을 실감나게 전해주는 대목이 아닐까.

영화가 현실의 반영이라는 누구나 공감하는 이 명제를 두고 영화를 통해 겸허하고 진지하게 시대와 역사 그리고 세상을 성찰하려는 이가 있다. 바로 <문학교수, 영화 속으로 들어가다>(이하 문학교수)의 저자 김규종 교수이다. 경북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이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이기도 한 저자는 올해로 다섯 번째 영화책을 펴냈다.

연작의 형태로 2005년 시작된 <문학교수>는 인문학자의 관점에서 영화라는 프리즘을 통해 인간과 세상, 사회를 바라보고 있다. 담백하고 명쾌하게 쓰인 글에는 많은 생각거리들을 담고 있으며, 저자의 영화철학과 역사의식, 그리고 우리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오롯이 엿볼 수 있다. <문학교수 5>에는 주로 2013년과 2014년에 저자가 본 총 28편의 영화에 대한 글들이 담겨 있다.

강풀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26년>을 시작으로 하여, 현대판 공무도하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까지 장르 구분 없이 매우 다채로운 영화 이야기가 펼쳐진다. 28편의 영화 중 내가 본 영화는 19편이었다. 적지 않은 영화를 저자와 내가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어떤 영화는 느낌이나 생각이 비슷하기도 하고 또 어떤 영화는 해석이 아주 다르다.

저자의 글을 읽으며 내가 놓쳤던 부분은 무엇인지, 어떤 점을 저자는 나와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지 비교해보는 것은 꽤 재미나고 유쾌한 독서지점이었다. 전작인 <문학교수 4>는 대한출판문화협회가 뽑은 2013년 '올해의 청소년도서'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아마도 짧지만 강렬한 글 속에서 깊은 통찰력과 넓은 사유의 폭을 느낄 수 있기 때문 아니었을까.

영화 선택, 주인의식을 가져라

저자는 먼저 영화를 선택할 때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말한다. 주말마다 텔레비전마다 그만그만한 내용으로 덧칠되는 영화소개 프로그램에 현혹되지 말고 영화를 선택하고 이해하며 해석하는 작업에서 주인의식을 가졌으면 한다는 것이다. 비록 시간 때우기가 목적일지라도 영화의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

오스트리아 출신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영화 <아무르>는 '칸 영화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할 만큼 뛰어난 작품이다. 하지만, 2012년 12월 개봉 이후 누적 관객 수가 8만 명이 조금 넘을 뿐이다. 흥행이 좀 된다 하면 천만 관객을 예상하는 시대에 이런 영화가 8만 명이라니, 좀 너무하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르>는 노년을 맞이한 부부의 아주 쓸쓸한 사랑을 다룬 영화다. 평생을 인텔리로 살아온 고상한 여인 안느는 어느날 찾아온 뇌졸중으로 언어중추에 이상이 생기고 마침내 반신불수 상태에 이르게 된다. 영화는 한 마디로 치매로 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노부부의 내면 풍경, 특히 남편 조르주의 심리적 동선과 변화과정을 추적한다.

우리는 치매나 중풍환자의 이야기와 허다한 사례에 대해 익숙하게 말하고 듣지만 실제로 그런 상황이 가족 중에 발생한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깊이 사유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비극적인 상황은 언제나 남의 이야기라고 치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상황이 남의 이야기이기만 할까. 저자의 사유 지점은 바로 여기다.

이런 상황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저자는 <아무르>가 이러한 사실을 보여주면서 인생 끄트머리에서 맞이할 수 있을 궁극적인 사랑의 리트머스를 가늠하도록 인도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가능한 최후까지 서로 사랑하되, 우리가 인간의 존엄성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에 대한 사유도 넉넉하게 품고 있는 영화가 <아무르>라고 덧붙인다.

반성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제주말로 감자를 뜻하는 <지슬>은 한국 현대사에서 도저히 잊히지 않는 4.3항쟁을 다룬 영화다.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서 잠시 다루어졌지만,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가 된 적은 거의 없는 4.3항쟁. 1948년 3월 1일 이승만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제주 사람들을 겨냥하여 경찰이 발포하고 미군정은 이 사건을 정당방위로 해석, 제주도민을 폭도로 몰아 발발하는 것이 4.3항쟁이다.

1948년 11월, 해안선 5킬로미터 바깥에 머무는 사람들은 모두 폭도로 간주하고 사살하라는 초토화 작전이 시작된다. 그러나 제주도 중산간지역에 살고 있던 주민들은 들려오는 흉흉한 소식에 오히려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제주도의 풍광과 함께 벌어지는 살육의 광경.

영화는 사건의 전말을 다루지 않는다. 작은 마을 주민들의 평온한 일상을 긴박한 사태전개와 맞물리게 함으로써 4.3항쟁의 처절한 양상에서 한 발짝 비켜나도록 관객을 인도한다. 사태의 한가운데서 길을 잃으면 태풍의 눈 속에 들어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일 터이므로! 그러하되 <지슬>은 곳곳에 극복하기 어려운 아픔과 상실과 절망을 부설한다. (본문 72쪽)

<지슬>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신위, 신묘, 음복, 소지로 이루어져 일종의 제사형식을 취하고 있다. 영화 자체가 바로 4.3항쟁으로 희생된 이들의 원혼을 달래는 제사인 것이다. 마을 주민들이 피신했던 '큰넓궤동굴' 장면에서 마을 사람들 하나하나의 얼굴의 조명하면서 그들이 당면하고 있는 갖가지 사연과 상황을 넋두리하듯 풀어놓는 장면은 가히 압권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 하나가 되어 4.3항쟁의 시공간 하나를 재연한 기막힌 장면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지슬>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내고 있다. 영화의 에필로그에서 4 ․ 3항쟁의 근본원인을 한반도 내부가 아닌, 미군정과 아메리카 제국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민족모순과 분단모순의 절반 이상의 책임은 우리 몫이라고 생각한다.

즉  4.3사태는 미군정이 주도하고, 남한정부가 추종하며, 그 선봉에 서북청년단과 우익세력이 자리하고 있음에도, 당대 시공간에서 한국인과 한국정부의 역할과 반성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공동체의 최종적인 책임은 외세가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몫이며, 반성하지 않는 불행한 역사는 반드시 되풀이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소재를 꼽으라면 바로 출생의 비밀 아닐까. 그 중에서도 아이가 바뀌는 설정. 한류의 원조가 된 <가을동화>가 그랬고 <백년의 유산>이 그랬고, 또 <반짝반짝 빛나는>이 그랬다. 이럴 경우 대개는 '낳은 정, 기른 정'을 들먹이며 막장이나 신파로 흐르기 일쑤다.

오로지 '내 핏줄, 내 새끼'만을 외치며 돈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는 인물들이나 돈 때문에 악행을 저지르는 인물들로 인해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그런데 고레이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다르다. 아이를 낳고 6년이 지난 후 병원에서 아이가 바뀐 것을 알게 된 두 가족의 이야기이라는 설정은 비슷하나 극의 양상은 전혀 다르다.

2013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고 세계 언론과 비평가들에게 호평을 받았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담백하고 가슴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울림이 있는 드라마이다. 눈물은 흐르지만 억지 눈물이 아니라 감동이 있는 눈물이다. 저자는 그 이유를 인물들에게서 찾는다. 영화의 인물들은 선하고 순수하다. 복잡하거나 꾸미거나 속이지 않는다.

병원에서 부모가 바뀐 케이타와 류세이는 아주 다른 환경에서 전혀 다른 성격으로 자라게 된다. 엄격한 아버지 아래 기계적으로 자란 케이타와 대가족 속에서 자유분방하게 자란 류세이. 영화는 이 두 아이와 두 가정을 통해 일본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가족문제 그리고 교육의 문제들을 은근히 건드린다고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핵가족 체계에서 무한경쟁에 내몰리는 아이들이 과연 행복하고 바람직하냐고 영화가 묻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비단 일본만의 문제일까. 우리 사회 역시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지 않은가. 가족을 학대하고 심지어는 살해하는 패륜적 사건들이 늘어가면서 우리나라의 가족해체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래서일까. 많은 영화들 중 가장 가슴 짠한 영화가 바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였다. 저자는 뒤늦게 케이타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성정을 이해하게 된 아버지 료타가 나란히 길을 걸으며 사과와 용서를 구하는 장면을 인상 깊은 장면으로 꼽고 있다. 정말이지 케이타의 강아지처럼 검고 순수한 눈망울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아버지는 처음부터 아버지가 아니다. 영화의 제목처럼 그렇게 아버지가 되어가는 것이리라. 아들과 더불어 아버지가 되어가는 존재를 영화는 감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저자 역시 아버지로서 이런 마음으로 영화 속으로 들어가게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덧붙이는 글 | <문학교수, 영화 속으로 들어가다 5>, 김규종 지음, 글누림 펴냄, 2015년 7월, 1만5천원



문학교수, 영화속으로 들어가다 5

김규종 지음, 글누림(2015)


태그:#<문학교수, 영화 속으로 들어가다 5>, #김규종, #지슬, #아무르,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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