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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담태교나 동화태교, 음악태교는 들어봤어도 수학태교는 처음 들어봤다. 홍성대 선생의 '수학의 정석'을 풀어보기도 하고 수학 관련 자료나 학습지를 두고 임신부들끼리 스터디 모임을 가지며 태교를 한다는 것이다. 평소 신뢰감 있던 지인이 던진 말이라 사실 관계에 대해 더 이상 의혹을 품지 않았으나 기행에 가까운 그런 행위를 일삼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는 소식이 차츰 다른 사람 입을 통해서도 전해졌다. 임신부가 수학 문제를 풀면 뱃속 아이가 논리적으로 기민한 사고를 펼치리라 맹신하는 무지의 소산도 놀랄만한 일이지만 '수학'이라는 특정 교과 하나가 대학 입시에 있어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순이, 무지한 민중의 비행으로 이어진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철저한 자기 반성, 수많은 질타와 비판 속에 교육과정이 재편되기는 하지만 우리 교육은 늘 균형을 가지지 못하고 국영수의 무게에 짓눌려 있는데 그 중 수학이 입시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수학에 대한 사교육 의존도는 상대적으로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수학이 대입에서 당락을 좌우하는 척도가 되기에 제한된 시간 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얻으려 하는 학부모가 사교육의 유혹에 빠져드는 것이 어색하지는 않지만 왜 수학이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생각 또한 버릴 수는 없다.

수학(數學)능력은 곧 수학(修學)능력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논리적 사고의 깊이를 판단하기에 수학 점수만한 것이 없고 그러하기에 수학 과목이 입시에서 중요하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보편적 사고나 정황에 입각한 사고로는 이 논리가 정답일 수도 있겠으나 수학과 교육과정의 면면을 살펴보고 학교현장에서 수학 수업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관찰해 보면 수학과 교육과정의 내용이나 범위가 잘못 설정되었기에 대학 입시에서 수학 과목이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다소 엉뚱한 결론을 얻게 된다.

지난 5월 열린 '6개국 수학 교육과정 국제비교 컨퍼런스'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우리나라 초중고 수학 교육은 지나치게 양이 많고 잔인할 정도로 어려운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 교육 시기나 그 기간에 어울리지 않게 방대한 양을 다루려면 속진이 불가피하고 그 속진은 이른바 '똘똘이'를 가려내기에 좋은 기제로 작동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경쟁력이 어디에서 형성되는지 또한 대학 입학 담당자들의 관심이 어디를 향할지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고등학교 수학과 교육과정'에서 3개년 간 어떤 내용을 배우는지 소개하고 있고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수학 시험 범위를 운운할 때도 '고교 교육과정 3년'을 떠나지 않지만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3학년이 채 되기도 전에 3개년 교육과정을 소화해 내어야만 입시에 대응할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 또한 우리나라 수학 교육의 정체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수학교육의 본질이 왜곡되어 있으니 '수포자'(수학을 포기하는 학생)가 많이 발생한다는 내용을 바탕으로 7월 31일 '2015 교육과정 개정 2차 공청회'가 열렸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새정치민주연합 박홍근 의원이 전국 총 9022명(초등 6학년 2229명, 중학 3학년 2755명, 고등 3학년 2735명과 현직 초중등 수학교사 1302명)을 대상으로 수학교육과 관련한 인식 조사를 실시했는데 초등학생 36.5%, 중학생 46.2%, 고등학생 59.7%가 수포자로 집계된 것이 공청회에서 발표된 개정안의 씨앗인 셈이다.

수학과 교육과정 연구진은 쉽게 가르치고 쉽게 출제하자는 차원에서 개정되는 교육과정 지침에 '교수학습유의사항'과 '평가유의사항'이라는 가이드라인을 내세워 2018년부터는 어려운 수학 문제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자 했다.

또한 고등학교 공통 수학에서는 미지수가 3개인 연립방정식과 부등식의 영역이 삭제되고 선택과목 중 '수학Ⅱ'에서는 미적분의 핵심 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내용을 줄였다. '확률과 통계'에서는 '모비율'을 삭제하기로 했고, '기하와 벡터'에서는 공간벡터를 삭제하기로 했다. 중학교 수학에서는 원주각의 활용 부분을 삭제하기로 했고 연립일차부등식을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형태로 바꾸고자 했다. 초등학교 수학에서는 분수와 소수의 혼합 계산을 삭제하기로 했고 실생활에서 활용도가 떨어지는 넓이 단위인 아르(a)와 헥타르(ha)를 없애기로 했다.

이와 같이 수학교육에 긍정적 신호가 울리는데도 수학 과목이 지나치게 쉬워지고 학습량이 줄어들면 하향평준화가 될 수도 있으며 글로벌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모든 학문이 그러하겠지만 특히 '수학'이라는 학문이나 교과 자체가 범위를 줄이거나 내용을 축소한다고 해서 마냥 쉬워질 수 있을 만한 것은 아니다. 존재 자체가 논리적 연결 고리로 형성된 것이기에 끈 하나를 놓치면 계속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 수학의 특징이기도 하다.

다만 많은 것을 투입하면 그만큼 산출할 수 있으리라는 구시대적 발상에서 벗어나 효과적으로 투입하자는 것이 이번 개정안의 요체이고 거기에 따라 발생하는 또 하나의 수포자는 납득할만한 수준에서 개인의 역량 부족이나 의지 부족으로 묶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2×5=10'이라는 사실에서 학생들로 하여금 '20×50=100'이라는 원리와 '10÷5=2'라는 연산 관계를 이해할 수 있게 하면 되는 것이지 굳이 '28×58'의 정답을 요구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복잡하고 많은 내용을 전달하여 대다수의 학생들이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자존감이 붕괴되는 것이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길인지 속진에 쫓기지 않은 채 필수적인 내용과 개념만을 심어주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를 주는 것이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길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또한 개정의 초점이, 잘 하는 아이들이 아닌 못 하는 아이들에게만 맞추어져 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못 하는 아이'를 양산하는 시스템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싶다.

이번 개정안이 바람직한 수학교육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초등학교에서의 비례식 문제, 중학교에서의 산포도, 고등학교에서의 심화 미적분 부분에 관한 논의도 다각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고 학부모나 사회로부터 인식 변화를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태그:#수포자, #수학 교육과정, #수학 태교, #2015 교육과정 개정, #미적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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