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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12년까지 봉사활동과 여행으로 보냈던 아프리카에서의 3년은 황홀했습니다. 그것은 자본주의화와 개인화되어 가는 우리에 대한 성찰이었고, 아직도 더불어 살아가는 아프리카 사람들에 대한 환희였습니다. 아프리카 하면 떠오르는 어둡고 부정적인 이미지들. 그 속으로 돌을 던집니다. 그곳은 보통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었습니다. [편집자말]
여명이다.
어둠이 물러난 자리로 시퍼런 창공이 터질 듯 팽배하고,
저 아래 꿈틀거리는 붉음이 차올라 순식간에 빛으로 퍼져 아침으로 간다.

변화의 속도가 느린 음타에 아이들이 노는 모습은 우리와 다르다. 동무와 얘기하고 동무를 따라다니며 논다. 속도의 광풍에 휩싸여 쿼라도 해야하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우리들로서는 아이들의 놀이에서도 왁자지껄하고 활동적인 모습을 요구한다.
▲ 음타에 아이들 변화의 속도가 느린 음타에 아이들이 노는 모습은 우리와 다르다. 동무와 얘기하고 동무를 따라다니며 논다. 속도의 광풍에 휩싸여 쿼라도 해야하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우리들로서는 아이들의 놀이에서도 왁자지껄하고 활동적인 모습을 요구한다.
ⓒ 이근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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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에 일어났으니, 돌아와서 다시 잠 때리고.
일어나 배고파서, 찻집으로 가 만다지와 홍차를 마시고,
친절한 주인 아저씨한테 우삼바라에 사는 삼바족의 인사말을 귀담아듣고.
그런 다음, 문을 연다.

'아이들아, 하옹감씨'
'하옹감씨, 므중구'
'뭐 하니?'
'놀아요'
'뭐 하고?'
'그냥 놀아요'

놀면 그냥 노는 거지. 무슨 이유가 있나.
시간은 흐르는 거지. 몇 분이라고 가둬 둘 필요 있나.

마을 사람들이 교회를 간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일요일이구나.

오랜 옛날 광야에서 사냥을 하던 사람들은 물을 찾아서, 혹은 보다 장대한 기골을 가진 마사이를 피해 산으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저 아래 푸른 인도양으로 아라비아 사람들이 드나들고, 할아버지 소싯적에 하얀 얼굴을 한 유럽인들이 십자가를 가져왔다.
사람들은 이렇게 무슬림이 되었고, 새것을 흠모하던 젊은이들은 교회에서 춤추고 노래 부르기를 즐겼다. 이렇게 시절이 변하여 시대가 되고, 시대가 모아져 역사라 이름하였다.

어차피 굴러가는 세상, 이런들 저런들 어떠하냐고 짐짓 달관한 체해 보지만.
그러나 그 속에 사람들이 살아감을.
행복해하고, 아파하는 것을.

므중구를 보고 먼저 인사하는 벽촌의 용감한 아이.
▲ '할로, 므중구' 므중구를 보고 먼저 인사하는 벽촌의 용감한 아이.
ⓒ 이근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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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쒸, 우쒸' ' 너 쿵후 할 줄 알아?'
맞장뜨자란 말에 쫓아갔더니, 바로 줄행랑을 쳤다.
▲ '덤벼봐' '우쒸, 우쒸' ' 너 쿵후 할 줄 알아?' 맞장뜨자란 말에 쫓아갔더니, 바로 줄행랑을 쳤다.
ⓒ 이근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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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닥닥. 갑작스런 므중구에 겁이 잔뜩 난 아이가 정신없이 도망친다.
한 번 놀아볼까 쫓아가다 파랗게 겁에 질려 사색이 된 아이 얼굴에 되돌아선다.

'이 봐. 므중구'
'?'
'우 쒸, 우 쒸'
'?.....'
'쿵후 할 줄 알어? 덤벼 봐'

읍내 나가서 텔레비전이라도 본 까진 놈이로구나.

산은 어제처럼 그 자리에 있고, 길가의 풀 숲 나무도 그대로이건만,
사진 속 풍경처럼 모든 것이 멈춰버린 듯한 산골 마을이지만,
가만히 귀 기울이면 므중구를 발견하고 요동치는 아이의 마음처럼,
땅 아래에 끊임없이 살아 출렁거리는 얘기가 들린다.

무슬림과 기독교가 들어오고,
철길을 놓던 인도인 다음으로 도로를 닦는 중국인들을 따라 쿵후 영화가 들어오고,
나 같은 외국놈이 놀러오고,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듯이 모든 것은 변해간다.

아름다운 음타에 마을의 가까운 미래를 예측하기란 어렵지 않다. 머지 않아 개발의 광풍이 이 애잔한 삶의 풍경들을 덮어버릴 것이다.
▲ 할머니와 노점 아름다운 음타에 마을의 가까운 미래를 예측하기란 어렵지 않다. 머지 않아 개발의 광풍이 이 애잔한 삶의 풍경들을 덮어버릴 것이다.
ⓒ 이근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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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이 집 앞으로 반듯한 신작로가 생기고, 더 좋은 집들이 대신하겠지.
그러면  가뭄날 논바닥 갈라지듯이 가슴 아리던 흙담과
빨간 토마토 몇 개가 얹힌 소박한 노점과 맨발의 노파는 그대로 늙어 사라져버리고,
오직 기억 속으로만,
간혹 사람 냄새를 그리워하는 회색빛 세상에서 빛바랜 사진으로만 남아있을 테지.
그래도 변하는 게 세상 이치라 체념하여도,
가끔씩 잠 못 이루는 밤에 일어나 머리맡을 서성이겠지.

케냐와 탄자니아 사이에 광활한 챠보평원이 펼쳐져 있다. 얼마전까지 코끼리와 야생동물이 누비던 평원이 지금은 옥수수밭으로 변해 있다.
▲ 챠보 평원 케냐와 탄자니아 사이에 광활한 챠보평원이 펼쳐져 있다. 얼마전까지 코끼리와 야생동물이 누비던 평원이 지금은 옥수수밭으로 변해 있다.
ⓒ 이근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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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이 다가온다.
케냐와 국경을 맞댄 북쪽으로 광활한 평원이 펼쳐진다.
근래까지 야생동물들이 뛰놀았던 황량한 사바나를 옷수수 밭으로 만든 억척스러운 사람들.

 챠보평원 건너편의 파레산맥에 소나기가 춤을 춘다.
▲ 소나기 챠보평원 건너편의 파레산맥에 소나기가 춤을 춘다.
ⓒ 이근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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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건너편으로 봉우리들이 연이어진 파레 산맥들이 보이고,
한줄기 구름비가 좌우로 춤을 춘다.
음타에의 하루가 저물어 간다.


태그:#음타에, #챠보평원, #우삼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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