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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와 4박 5일(7월 22일~26일)간 배낭여행을 다녀왔습니다. 15년 전 조카 녀석이 태어날 때, 지금 이 순간이 오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다행히 조카는 무럭무럭 잘 자라 어느새 삼촌만큼 키가 커버렸습니다. 때가 되었으니 꿈을 이루기 위해 떠났습니다. 서울 촌놈과 시골 촌놈이 함께한 배낭여행기입니다. -기자 말-

대마도 히타카츠의 민박집은 바로 앞에 바다가 위치해 있었다.
▲ 민박집 앞 바다 대마도 히타카츠의 민박집은 바로 앞에 바다가 위치해 있었다.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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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의 첫날밤은 짧았습니다. 조카 녀석은 일찍 잠이 들었습니다. 끼고 살던 스마트폰도 팽개치고 밤 9시가 조금 넘어 '대자'로 뻗었습니다. 아무래도 이틀간 초긴장 상태였던 게 피곤함으로 이어진 듯합니다. 홀로 맥주 한 캔을 비우고 조카 녀석처럼 저도 뻗었습니다.

섬의 아침은 육지보다 빨랐습니다. 모든 게 정지된 것 같던 동네에 활기가 돋았습니다. 민박집은 바다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습니다. 붉게 물든 바다 위로 이름 모를 배가 태양을 향해 달리듯 먼바다로 출항을 합니다.

깔깔대며, 뛰고 장난치는 아이들도 보입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그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민박집 옆에 있던 조그마한 상점도 문을 열고 단장을 합니다. 낚시에 푹 빠진 아저씨도 보입니다. 소형차도 여러 대 민박집 앞을 지나쳐 어디론가 갑니다. 느긋하게 돌아가는 바퀴가 꼭 이 동네를 닮았습니다. 마주치는 낯선 이들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넸습니다.

"오하이오 고자이마스(아침 인사)"

오묘한 조합, 뜻밖의 여행

하타카츠에서 머문 숙박집 집주인의 제안으로 잠시지만 뜻밖의 여행을 떠나게 됐습니다.
▲ 뜻밖의 여행 하타카츠에서 머문 숙박집 집주인의 제안으로 잠시지만 뜻밖의 여행을 떠나게 됐습니다.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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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녀석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오늘 아침밥은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어제 숙박료를 내면서 아침밥 값까지 계산했습니다. 동네를 둘러보니 식당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본 가정식도 맛보고 편하게 끼니도 때울 겸 온몸(보디랭귀지)을 이용해 민박집 주인에게 아침 식사를 부탁했습니다.

식단은 단출했습니다. 생선구이와 서너 가지 반찬, 그리고 일본식 된장국이 나왔습니다. 허기가 졌으나 밥보다는 주인집 실내 풍경에 시선이 사로잡혔습니다. 거실 한가운데 마룻바닥에 네모난 화로가 눈에 띕니다. 벽면에는 여느 가정집과 마찬가지로 가족들을 담은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한국의 가정집과 닮은 듯 다른 모습이 이색적입니다.

밥을 먹는데, 난데없이 민박집 주인이 말을 걸었습니다. 일본어를 못하니 겸연쩍은 미소만 지었습니다. 상상을 하며, 집주인의 몸동작에 주목했습니다. 그러다 핸들을 돌리는 모습에서 '서비스'란 단어가 귀에 들려왔습니다. '보디랭귀지'에 익숙한 기자는 그제야 하고 싶은 말을 대략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조카야! 아무래도 서비스로 어딘가를 데려다준다는 거 같다. 옆방에 있던 앳된 커플도 같이 가자는 것 같은데."

예상이 적중했습니다. 집주인은 조카 녀석과 기자, 앳된 커플을 뒷산 전망대로 직접 운전해 '서비스 관광'을 시켜줬습니다. 오묘한 조합의 갑작스러운 나들이입니다. 어안이 벙벙하나 차 안은 가족 나들이라도 가는 것처럼 화기애애했습니다. 앳된 커플의 여자가 일본어를 '쪼금'해서 통역사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동안 집주인에게 하지 못한 말들을 겨우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가파른 산길을 달리던 자동차가 드디어 멈추어 섰습니다. 정상에 오르자 탁 트인 바다가 내려다보입니다. 하타카츠항 주변도 한눈에 들어옵니다. 집주인이 첫 번째로 가리킨 방향은 부산이었습니다. 구름이 껴서 보이지는 않습니다. 반대방향은 일본의 후쿠오카입니다. 역시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집주인은 앳된 커플의 여자를 통해 "대마도는 부산서 더 가깝고 날이 좋으면 야경도 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제야 집주인의 거실 벽면에 걸려있던 야경사진이 부산의 모습을 담았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바람 부는 전망대에 서서 여행이 선사한 뜻밖의 만남과 '여행 속 여행'을 생각해봅니다. 떠나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여행은 용기이듯 조카 녀석이 좀 더 용기 있는 선택과 삶을 살아갔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번 여행이 그 출발이길 바랍니다.

전망대를 내려와 집주인, 앳된 커플과 이별했습니다. 24일, 조카 녀석과 대마도의 또 다른 동네 이즈하라항으로 이동합니다. 어제 빌린 자전거를 타고 버스터미널로 이동해 이즈하라행 버스표를 구입했습니다. 출발 시각도 확인했습니다. 이제 이즈하라로 가기 위한 준비를 마쳤습니다.

"조카가 변했어요" 대마도서 조카바보, 조카 팔불출이 됐다

계속되는 조카의 실수에 여러 차례 도전 끝에 성공한 벽을 달리는 사나이 사진. 옷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었습니다.
▲ 벽을 달리는 사나이 계속되는 조카의 실수에 여러 차례 도전 끝에 성공한 벽을 달리는 사나이 사진. 옷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었습니다.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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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린 자전거를 반납하기 위해 하타카츠의 유일한 카페로 향했습니다. 와이파이가 '빵빵하게 터지는' 곳입니다. 버스에 오르기 전까지 이곳에서 머물기로 했습니다. 조카 녀석은 하루 동안 접속 못 한 인터넷에서 갖가지 축구 소식을 찾아 헤맸습니다. 기자도 짧은 여행기를 적어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카페는 한국인들이 수시로 오갔습니다. 그중 일본어를 꽤 하는 중년의 한국인과 대화를 하게 됐습니다. 기자는 비록 3일간이나 그사이 달라진 조카 녀석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소심하던 녀석이 삼촌이 되지도 않는 영어와 일본어를 하며 보디랭귀지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더니 자신감이 생겼는지 적극적으로 변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던 조카 녀석이 한마디 거듭니다.

"삼촌을 보고서 진짜 자신감이 생겼지."

조카 녀석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조카 바보, 조카 팔불출이 되어 칭찬을 이어갑니다.

"아! 그리고 지금껏 투정 한 번 부리지 않고 잘 따라오고 항상 해맑게 웃으며..."

수다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는데, 글쎄 조카 녀석이 오글거리는 칭찬에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곁에서 다 듣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놈 참 낯짝도 두꺼워졌습니다.

짧은 만남이었으나 세 명의 자녀를 둔 중년이 한국인과 통하는 게 많았습니다. 아쉬운 만남은 언젠가 다시 만나 풀기로 하고 서로 명함을 주고받았습니다. 또, 새로운 인연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조카 녀석과 서둘러 버스터미널로 향했습니다. 이젠 정말 몇 시간 후면, 대마도의 남단에 위치한 이즈하라에 도착합니다.

대마도의 또 다른 도시, 이즈하라에 가다

대마도 북단에 위차한 하타카츠의 버스 터미널
▲ 하타카츠의 버스 터미널 대마도 북단에 위차한 하타카츠의 버스 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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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넘고 물 건너 이즈하라에 도착했습니다. 여행책자에 적인 '차로 40분 거리'는 자가용 기준이었습니다. 우리가 탄 버스는 대마도 곳곳을 다 들러 무려 3시간 만에 이즈하라에 도달했습니다. 몸도 마음도 지친 버스여행이었습니다.

이즈하라항 주변은 하타카츠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번화가였습니다. 소도시 도심의 모습을 빼닮았습니다. 버스 종점에는 관광안내소도 있었습니다. 이즈하라항 주변 관광지도를 얻고 여행책자에서 선택한 숙소로 가는 길도 물었습니다.

조카 녀석이 선택한 이즈하라의 숙소는 템플스테이였습니다. 관광안내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쉽게 숙소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버스에서부터 이상하더니 일이 꼬입니다. 주인은 "묵을 방이 없다"는 표시로 양손으로 엑스 모양(X)을 그립니다. 낭패입니다. 조카 녀석에게 말했습니다.

"긴장할 것 없어. 다른 데 가면 되지. 그리고 정 안되면 밖에서 자면 되지. 안 그래?"

초조해 할 줄 알고 한 말인데, 조카 녀석도 어느새 여유가 생긴 듯합니다. 담담합니다. 다시 관광지도를 들고 거리로 나서 우연히 발견한 게스트하우스에 묵게 됐습니다. 짐을 풀고 다시 거리로 나와 이즈하라항 주변을 걸으며, 동네를 살펴봤습니다.

이즈하라항 주변은 하타카츠에 비해 도심에 속했으나 고요한 거리는 닮았습니다. 다만, 히타카츠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곳곳에 한국인 관광객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상점이 한국인을 환영하지는 않았습니다. 식당 앞에 'NO KOREAN'이라고 적힌 팻말도 있었습니다. 조카 녀석과 저녁을 먹기 위해 들어간 식당에서도 자리가 없다며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한국말을 하기 전까지는 분명, 빈자리가 있었는데 말이죠.

반대로 한국인을 꺼릴 만한 상황을 엿보기도 했습니다. 이리저리 헤매다 찾아간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한 무리의 젊은 한국인 관광객 십여 명이 식당으로 들어왔습니다. 죄다 취기가 어느 정도 오른 듯했습니다. 아니다 다를까. 그들은 식당 안이 떠나갈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1분이 멀다 하고 "스미마셍"을 외치며, 식당 주인을 곤혹스럽게도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조카 녀석이 한마디 했습니다.

"삼촌, 저렇게 소리 지르니까 아까 우리 식당에서 안 받았나 보다."

괜스레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조카와 지지고 볶고... 친구가 됐다

대마도의 남단에 위치한 이즈하라는 축제를 앞둔 모습이었습니다. 조카녀석이 기모노를 입은 여자아이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한 모습
▲ 쑥스러운 조카녀석 대마도의 남단에 위치한 이즈하라는 축제를 앞둔 모습이었습니다. 조카녀석이 기모노를 입은 여자아이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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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3일째 조카 녀석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녀석이 친구처럼 느껴졌습니다. 만약 그동안 삼촌과 조카 사이에 벽이 있었다면, 모두 허물어진 것 같았습니다. 녀석이 더 편하고 친근하게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종일 붙어 다니며, 지지고 볶았더니 조카 녀석의 장단점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밤 나들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녀석에게 조심스레 말했습니다. 

"조카야! 너는 주의가 산만한 게 가장 큰 단점이야. 누군가 이야기를 하면 건성으로 듣고 생각이 딴 데 가 있으니 매번 이해가 안 되는 거야. 그러니 엉뚱한 소리를 하기 일쑤고. 엄마가 속이 터지는 이유를 알겠다."

싫은 소리에도 조카 녀석이 순순히 인정합니다. 이번엔 녀석의 장점을 읊었습니다.

"그런데 삼촌이 보니 넌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곧잘 해내더라. 오늘도 봐봐, 식당서 니가 다 알아서 주문하고 계산하고 했잖아. 일본어도 몇 마디 외웠고. 또, 부산에서만 해도 낯을 많이 가렸는데, 지금은 더 적극적으로 변했잖아. 이젠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해내는 센스까지 보이고."

칭찬을 하자 녀석이 대화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섭니다. 어제저녁 식당에서 미주알고주알 캐물을 때와는 다릅니다. 그리고 녀석은 처음으로 스마트폰을 손에서 내려놓고 진지하게 대화에 나섰습니다. 조카와 떠난 여행 3일째, 밤늦도록 녀석과 마음 터놓고 대화를 했습니다.

대마도 남단에 위치한 이즈하라의 거리를 거닐다가 "재밌게 좀 찍자"는 삼촌의 제안에 조카 녀석이 취한 행동. 아프냐?
▲ 아프냐? 대마도 남단에 위치한 이즈하라의 거리를 거닐다가 "재밌게 좀 찍자"는 삼촌의 제안에 조카 녀석이 취한 행동. 아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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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의 일기
오늘은 불금. 그러나 차에만 갇혀 있었다. 아침까진 아주 좋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민박집 주인집에 내려가서 밥도 먹고. 밥은 정말 맛있었다. 그리고 사장님이 보너스로 우리와 한 커플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서 경치를 보았다. 날씨가 안 좋아서 부산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바람도 많이 불고 경치도 아주 좋았다. 문제는 벌레가...

산에서 내려온 다음에 우리는 이즈하라 쪽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버스가 여행 책에는 분명히 40분 걸린다고 적혀 있었는데 무려 3시간이나 걸렸다. 보니까 버스로 갈 수 있는 곳은 다 들리면서 가는 것 같았다. 그래도 풍경이 멋있어서 사진도 많이 찍었다.

이즈하라에 도착한 후 우리는 숙소를 찾아 나섰다. 원래 가려고 했던 곳들이 죄다 자리가 없어서 우리가 원하는 일본풍 숙박 집은 가지 못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잡은 숙박이 은근 괜찮아서 나도 삼촌도 맘에 들어 했다.

거리를 나가보니 몇몇 여자아이들이 기모노를 입고 다녔다. 보니 8월 1일 날 축제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것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5명의 기모노를 입은 여자아이들과 사진을 찍었다. 어색했다. 그래도 좋은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을 것 같다.

저녁으로는 짬뽕, 우동, 꼬치를 먹었는데 정말 맛있게 먹었다. 짬뽕은 국물이 정말 특이했다.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국물이 빨갛지 않고 누리끼리했다. 왜 그런지는 일본어가 딸려서 못 물어봤다.

오늘의 느낌 : 대마도의 첫날이자 마지막 밤, 그런데 약간 불안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뭐지?



태그:#대마도 뎌행, #대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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