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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평 200평 규모의 우리나라 최대의 목조건물이다.
▲ 대웅보전 건평 200평 규모의 우리나라 최대의 목조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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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고통이다."

불자들과 대화를 나눌 때 가끔 하는 말이다. 모든 사람은 '고통 없는 삶'을 영위하며 사는 것일까. 이런 의문은 비단 나 혼자만 느끼는 것은 아닐 것임에도, 나의 고통은 왜 이다지 크게 느껴지는 걸까. 떡은 남의 것이 더 커 보인다는데, 고통은 왜 내 것이 커 보이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모순은 아니겠지. 이런 현상이야말로, 이기심의 발로에서 비롯된 것임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고통을 끊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기심을 없애면 고통을 끊을 수 있겠지만, 이 역시 인간의 욕심이라 실천하기도 어렵다.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 이기심을 버리려 325km를 넘게 달려 천안 각원사로 향했다.

각원사 대웅보전 용마루 양 끝을 장식한 치미와 아름다운 지붕 곡선이 조화를 이룬다.
▲ 한국의 미 각원사 대웅보전 용마루 양 끝을 장식한 치미와 아름다운 지붕 곡선이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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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원사는 1번 고속국도 천안 IC에서 1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있다. 각원사는 천안 12경 중 제6경으로, 시 외곽 한적한 자리에 터를 잡고 있어 천안 시민들도 많이 찾는다고 한다. 이 사찰은 역사가 아주 짧다. 그럼에도 스님의 원력과 불자들의 관심으로 여느 사찰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주문은 없고 절 주차장에서 범종을 모신 성종각으로 진입하면 대웅보전 앞마당이다. 눈에 띄는 특징을 바로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보통의 다른 사찰과는 달리 전각 모두 규모가 웅장하다는 것.

무게 20톤에 달하는 웅장한 규모의 범종인 '태양의 성종'을 모셔 놓은 성종각.
▲ 성종각 무게 20톤에 달하는 웅장한 규모의 범종인 '태양의 성종'을 모셔 놓은 성종각.
ⓒ 정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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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태조산에 자리한 각원사. 대한불교조계종에 등록된 사찰로, 1975년 개산조 경해법인 조실스님의 원력으로 창건했다. 경내에는 대웅보전을 비롯하여 태조산루(성종각), 설법전, 천불전, 산신전, 칠성전, 관음전, 경해원, 반야원, 영산전과 개산기념관이 있다. 범종을 모신 성종각 1층에는 대웅보전 지붕에 얹힌 치미가 실물 크기로 전시돼 있다. 안내문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경주 황룡사(신라 시대) 금당지붕 용마루 양쪽 끝에 세워졌음. 치미로는 청동으로 재현되었음."

1500여 년 전 세워졌던 청동 치미를 보는 기쁨

경주 황룡사(신라시대) 금당지붕 용마루 양쪽 끝에 세워졌다는 것을 재현했다는 각원사 대웅보전에 세워 진 치미.
▲ 치미 경주 황룡사(신라시대) 금당지붕 용마루 양쪽 끝에 세워졌다는 것을 재현했다는 각원사 대웅보전에 세워 진 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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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축을 이해하는 데 이런 조형물을 직접 본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사찰에서 여행자를 위한 세심한 배려가 깊음에 감사한 마음이다. 329평의 이 건물 2층에는 20톤에 달하는 '태양의 성종'이 성종각에 걸려있다. 아침저녁으로 울려 퍼지는 범종 소리는 어떤 의미로 중생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할지 궁금할 따름이다. 언제 적이 될지 몰라도, 은은한 범종 소리를 듣고 세파에 시달린 번뇌와 고통을 조금이나마 씻었으면 좋겠다.

불자들이 기왓장에 소원을 적어 놓았다.
▲ 소원 불자들이 기왓장에 소원을 적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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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마당에서 높은 계단 위에 자리한 대웅보전을 올려본다. 웅장하고 기개가 넘친 모습에 나 자신이 초라해지는 느낌이다. 목조건축물로는 이렇게 큰 전각을 보기는 처음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생각했던 대로다.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기념비적 건물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정면 7칸, 측면 4칸 팔작지붕으로, 외 9포, 내 20포 다포식 건물이다. 이 건물은 건평이 200평으로 34개의 주춧돌이 놓였고, 100여만 재의 목재가 투입됐다. 실로 대단한 불사가 아닐 수 없다.

지붕 용마루 양쪽 끝에는 치미 장식으로 마무리했다. 멋을 맘껏 뽐내는 조형물이다. 법당 안도 넓어 많은 불자들이 함께할 수 있어 좋다. 불단에는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협시불로 있다. 이른 아침이지만 많은 불자들이 자리를 잡고 기도에 열중이다. 불상 앞에 오체투지로 108배를 마치고 고두배를 올렸다. 몸과 입과 마음의 삼업을 깨끗이 하려 나 자신에게 약속해야만 했다.

천안 각원사 대웅보전 뒤쪽에 자리한 청동아미타좌불상. 높이 15m, 무게 60톤의 큰 규모의 야외에 자리한 불상이다.
▲ 청동아미타좌불상 천안 각원사 대웅보전 뒤쪽에 자리한 청동아미타좌불상. 높이 15m, 무게 60톤의 큰 규모의 야외에 자리한 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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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원사에는 또 하나의 큰 불상이 야외에 자리하고 있다. 경내 전체를 둘러보지 않으면 이 불상을 접견하기란 쉽지 않다. 대웅전 옆쪽으로 난 길을 따라 숲 속 길을 조금 오르면 나타나는 거대한 불상. 높이 15m, 무게 60톤 규모의 청동 아미타좌불상이다. 귀의 길이도 1.75m, 손톱 길이는 30cm나 된다. 이 불상은 남북통일을 기원하기 위해 1975년 4월 불사를 시작으로, 1977년 5월 봉안됐다. 태조산을 배경으로 우뚝 선 아미타부처님은 중생들을 구제하겠다는 의지로 엷은 미소를 띠고 있다.

아미타부처는 대승불교에서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법을 설한다는 부처다. 부처가 되기 전, 법장보살 때 48가지 원을 세웠는데, 한결같이 남을 위하는 이타행을 실천했다. 이 중 12번째 '광명무량원'과 13번째 '수명무량원'은 아미타불의 본질을 잘 나타내는 상징이다. 또한, 18번째 '염불왕생원'은 "불국토에 태어나려면 지극한 마음으로 내 이름을 염원하면 왕생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나무아미타불' 육자명호를 부르는 것이야말로, 염불왕생하겠다는 원을 세우는 것.

짧은 역사지만 특별함이 많은 각원사

천안 각원사에 자리한 청동아미타좌불상.
▲ 청동아미타좌불상 천안 각원사에 자리한 청동아미타좌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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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보살상은 다양한 손 모양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이를 수인이라고 한다. 수인은 '손 갖춤'이란 말로, 여래나 보살의 깨달음의 내용, 서원 등을 손의 모양을 통하여 표현한 것을 말한다. 석가여래 근본 5인은 선정인, 항마촉지인, 전법륜인, 시무외인, 여원인 등 다섯 가지가 일반적이다. 그런데 아미타불은 아미타정인 등 구품왕생과 관련하여 아홉 가지의 손 모양을 만들었다. 이를 '아미타여래 9품인'이라고 한다.

즉,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무리를 상, 중, 하 3품으로 나누고, 이를 다시 또 3생으로 나누어 9단계의 수인으로 나타냈다. 양손의 위치에 따라 상생, 중생, 하생으로 나누고, '품'은 엄지와 맞대고 있는 검지, 중지, 약지 손가락에 따라 상, 중, 하로 구분된다. 각원사 청동불상은 9품 중 '중품하생인'의 손 모양을 취하고 있다. 오른손은 손바닥이 밖으로 향하게 하여 가슴까지 올리고, 왼손은 무릎 위에 얹어 아래로 내린 형상으로 손가락은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다.

아이와 아빠가 손을 잡고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극락세상으로 가는 듯하다.
▲ 극락세상 아이와 아빠가 손을 잡고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극락세상으로 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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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원사는 2002년 '각원사 불교대학'을 설립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니 부지런히 정진하여 고통의 속박에서 벗어나자'는 학훈을 가지고 있다. 1년제 불자 교육기관으로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교육을 수료했다. 학훈에서처럼 고통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지혜를 얻었으면 좋겠다. 각원사는 특별난 점이 많다. 우선 큼직큼직한 전각의 규모는 여느 사찰과는 그 크기가 차이 날 정도로 크다.

그중에서도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목조건물인 대웅보전, 무게 20톤에 달하는 '태양의 성종', 15m의 높이 청동 아미타좌불상 등이 있다. 후손들이 잘만 보존한다면, 천 년 후 국가 지정문화재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도시는 시멘트 숲으로 변한 지 오래다. 시멘트 건물의 생명은 길어야 백 년이지만, 목조 건물은 천 년을 훨씬 넘어서도 장수한다. 한번 상상해 보면 알리라. 천년의 세월을 넘긴 건물에서, 천 년 전의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을.

<108산사순례> 28번째 기도여행을 마쳤다.
▲ 108기도 <108산사순례> 28번째 기도여행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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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힘들여 노력하지 않고 많은 것을 얻으려 한다. 밤낮을 새워 열심히 공부한 학생과 온 종일 놀면서 공부에는 관심 없는 학생들의 차이는 그 결과를 굳이 보지 않아도 알 법하다. 한 시간 일해 놓고, 두 시간 일한 돈을 바라는 것도, 로또를 사 놓고 당첨되기를 기도하는 것도 욕심이다. 열심히 기도한다고 성공하고, 출세하고, 돈을 많이 벌게 되는 걸까. 기도해서 그런 결과가 나타난다면, 아마도 죽으라 열심히 기도하지 않을 사람은 없으리라. 욕심을 버려야 마음이 평온하고 행복을 느낀다.

공양물을 들고 가는 스님의 뒷 모습에서 무주상보시를 생각한다.
▲ 공양 공양물을 들고 가는 스님의 뒷 모습에서 무주상보시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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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를 버리면 다른 하나가 생기는 법. 기도는 나의 욕심을 채우는 도구나 수단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기복신앙을 위한 기도가 아닌, 참 '나'를 찾는 기도가 필요하다. 수행하고 또 정진수행하면 어리석음으로부터 벗어나는 지혜를 터득하지 않겠는가. '108산사순례' 기도여행은 끊임없는 '나'를 찾아가는 긴 여정이다. 그 스물여덟 번째 기도는 천안 각원사에서 '나는 누구인가'를 발견하는 자리였다. 28번째 염주 알을 꿰면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로그 <안개 속에 산은 있었네>에도 싣습니다.



태그:#천안, #각원사, #천안 12경, #청동아미타좌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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