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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공부를 불필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낯선 단어나 동음이의어와 맞닥뜨릴 때 글의 맥락으로 그 뜻을 어림잡거나 국어사전을 펴 보면 된다고 말한다. 맥락 속에서 알기 어려운 말은 별로 없고, 겉잡기 어려우면 사전을 통해 좀 더 정확한 뜻을 구별하면 된다는 의미이다. 이러하매 한자를 몰라도 한자어를 읽고 쓰는 데에 문제가 없다며, 초등 한자 교육을 깎아 내린다. 일견 옳다. 하오나, 우리말을 어느 정도만 이해하려는 선에서 옳다.

먼저, 아무 의심 없이 사용하는 말 가운데 품은 한자를 뜯어보면 알고 있던 뜻이 사실은 그르다거나 다소간의 차이를 띤 경우도 더러 있다. '간발의 차'가 좋은 예이다. 너도나도 한자를 알고 있는 탓에 '간발'을 한자말이 아닌 순우리말로 당연시하면서 '한두 발 정도의 차이로, 아주 아까운 상황'을 표현할 때 널리 쓴다. 사전을 들여다 봐도 이러한 사정은 더 나아지지 않는다.

DAUM 우리말사전 뜻풀이는 다음과 같다.

* 간발의 차 : 아주 잠시 또는 아주 적음의 뜻을 나타내는 말.

그러나, 한자를 들여다보면 사뭇 달라진다.

* 間 : 사이 간, 髮 : 터럭, 털 발

한자에 비친 어원을 엿보면, '간발의 차'는 '터럭 만큼의 차이'이고 이를 다시 생동감 있게 가공하면 "더할 나위 없이 아슬아슬한 만큼의 적은 차이"이리라. 처음에 뻔하게 생각했던 '간발의 차'와 엇비슷할지 모르나, 한자가 다름을 또렷이 인식할 수 있다. 분명 국어사전에는 드러나지 않은 한자어 본연에서 우러난 맛을 자아내고 있다.

일상 생활에서도 한자를 빌려 그 뜻을 짐작해볼 거리가 많다. 경향신문의 '경향'이 그러하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겨레 등 주요 일간지 신문사의 이름은 쉬운 한자로 지어졌거나 순우리말을 사용하매 그 뜻이 온전히 드러난다. 그러나 유독 '경향신문'만이 아리송하다. 이럴 때 한자 들추기는 더없이 쓸모가 있다.

* 京 : 서울 경, 鄕 : 시골 향

'京鄕'이란 이름에는 서울과 지방 곧 골골샅샅 전국을 아우르는 뜻이 있어 '지역신문'이 아닌 '전국지'라는 이미지를 그려준다. 한자 지식에 배경 지식을 잇대면 한 겹 더 벗겨낼 수 있다. '경향'은 라틴어로 '로마와 세계'라는 문구의 한자어이다. 로마는 서울 경(京)자로 갈음되었고, (로마 밖의)세계는 시골 향(鄕)자로 받아 본뜻을 메웠다. 참고로, 경향신문은 초창기에 천주교 재단에서 발간한 신문이다.

사람들이 흐리멍덩하게 되는 대로 쓰는 한자어는 이 밖에도 숱할 것이다. 본뜻을 깨닫지 못한 채 쓰이는 말들은 우리의 말글살이에 폭넓게 깔려 있다. 한자 학습을 낮보거나 불필요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다. 우리말은 우리가 임자이다. 우리말을 애면글면 부려 쓰진 못하더라도 데면데면 쓰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우리말은 올바른 국어 활동에 부쳐야 엇나가지 않을 수 있고, 국어 활동은 한자 교육이 떠받쳐줘야 곧게 설 수 있다.


태그:#한자, #우리말, #교육, #경향, #간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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