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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독후감 대회에서 일반인 부문 '꿈틀꿈틀꿈틀상(최우수)'을 받은 글입니다. [편집자말]
지금 나는 동료들과 함께 공정무역커피 노동자협동조합을 꾸리고 있다. 커피를 내 업으로 삼기 이전에 나는 다른 업종에 종사하고 있었고 수차례 직장을 옮겼다.

행복하지 않았다. 누군가 행복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걸리는 것이 없는 상태라고 하던데, 늘 뭔가 소화되지 않은 더부룩함을 품고 살았다. 남들도 그러려니(실제로 많은 주변인들이 그렇게 살았으며),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억지 위안으로 꾸역꾸역 버텼다. 그 당시 직장을 옮길 때마다 나의 중요한 판단 기준은 이것이었다. 출근길 발걸음이 가벼운가? 회사 가는 길이 가뿐한가?

그러다 어느 날, 10여 년을 배운 '도둑질'도 못해 먹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살아도 좋은 것인가? 나름 성실한 직장인이자 계속 그 일을 하면서 한 직장에 오래 머문다면 '남들 보기에 그럴 듯한' 자리나 위치에 오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더 이상 '내가 없는' 조직형 인간으로만 살기는 싫었다. 근본적인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

다른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정확하게는 하기 싫은 일을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 좀 더 내 몸을 놀려서 무엇이든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다. 주변에서는 걱정의 소리를 쏟아냈다. 미쳤냐는 말도 들었고 다른 짓 하다가 돌아올 거라는 예측을 내놓은 사람도 있었다. 내가 사는 곳은 '남들 보기에 버젓한' 직업(직장)을 그만두는 건 무모해 보이는 한국 사회였으니까.

나로서 살아가기, 내가 협동조합을 시작한 이유

협동조합은 지역의 필요에 귀를 기울이고 지역과 함께 성장하며 관계의 힘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협동조합은 지역의 필요에 귀를 기울이고 지역과 함께 성장하며 관계의 힘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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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를 바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나로서 살아가기로 했다. 먹고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하기 싫은 일을 계속 하는 것은 나를 죽이는 일이었다. 커피(업)를 선택했고 커피 사회적기업 등에도 몸을 담았었지만 좀 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폭도 넓히고 평등한 관계가 있는 직장을 위해 동료들과 노동자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온전히 주인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선택한 일이었다. 그것은 내가 살아가는 태도이자 자세였다. 이전의 직업과 직장이 남들 시선도 적당히 의식하면서 사회적인 인정(혹은 대접)까지 감안하고 돈(연봉)을 얼마나 받을 것인지에 초점을 뒀다면 이제는 온전히 내게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타인의 삶이 아닌 내 삶을 살아가기.

나는 그렇게 협동조합을 시작했다. 어떤 정교한 목적이나 이유를 갖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이전보다는 행복해졌다. 걸리는 것도 적고 내가 선택하고 자유를 누리며 책임을 질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이때까지 오기까지 나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15년가량의 세월을 건너야했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를 통해 접한 덴마크 사회에서 살 수 있었다면 나는 그 시간을 아낄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15년이 마냥 아까운 것은 아니지만, 행복의 시간을 좀 더 누릴 수 있었겠다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더구나 지금의 일도 하기 싫은 일이 될 수도 있을 텐데, 그때 나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 장담할 수가 없다.

한국 사회가 적어도 밥벌이를 해줄 정도의 직장을 찾아 주리라는 믿음이 없다. 각자도생을 요구하는 이 사회에서 다시 직업을 바꿨을 때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걱정해야 할 것이다. 이제 한국에서 갓 태동한 협동조합이 덴마크의 협동조합처럼 성숙하려면 얼마나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신의 직장' 찾는 한국, 덴마크는 달랐다

덴마크에서는 평생을 식당 종업원으로 일한 아버지가 열쇠 수리공이 된 아들을 자랑스러워 했다.
 덴마크에서는 평생을 식당 종업원으로 일한 아버지가 열쇠 수리공이 된 아들을 자랑스러워 했다.
ⓒ 김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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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급여가 많고 안정된 직장을 '신의 직장'이라고 부른다. 나는 신의 직장 따위는 없다고 본다. 그 말에는 주체성이 결여돼 있다. 적당히 맞춰주고 많이 받겠다는 태도 같은 것. 그러므로 진짜 필요한 것은 '인간의 직장'이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가 보여준 덴마크의 직장이 그러했다.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악을 써야하는 직장이 아닌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는 직장이기만 해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너도나도 안정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공무원 시험에 몰리고, 취업 잘 되는 것을 자랑처럼 내건 학과는 늘 문전성시다. 대학은 '취업사관학교'라는 타이틀을 거리낌 없이 내걸고 취업률을 뽐낸다.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닌 돈과 직업적 안정성에만 매달려야 하는 상황은 그만큼 우리의 극심한 사회적 불안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덴마크의 예는 달랐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교과서의 말이 사회에서도 그대로 통용되고 있었다. 학교와 사회가 분리된 한국과 달리 덴마크는 일관적이고 통합적이었다. 평생을 식당 종업원으로 일한 아버지는 열쇠 수리공이 된 아들을 자랑스러워했다. 한 번도 아들이 판검사나 의사, 교수가 되길 바라지 않았다고 했다. "열쇠 수리공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필요하고 의미 있는 직업입니까?"라고 반문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브라보"를 외치고 싶었다. 자식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출세나 돈, 권력(을 가진 직업)을 폭력적으로 강요하는, 한국에서 익숙한 부모의 모습과는 딴판이다.

나는 한국 사회가 지옥을 자발적으로 임대했다고 생각한다. 그 지옥이 다이내믹하다며 지루한 천국보다 낫다는 사람도 있지만, 이 책에 나온 덴마크는 지옥이 인민들을 얼마나 고달프게 하는지를 새삼 깨닫게 만든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고 부러우면 지는 한국 사회. 불평등을 경쟁의 불가피한 결과물이라고 내세우며 사회적 비용을 아낌없이 무는 형태는 한국을 점점 더 살기 힘든 곳으로 만든다. 요즘 한국 사회에 수시로 일어나는 '묻지 마 OO'는 잘못된 표현이다. 그럴만한 이유가 쌓여서 마침내 터진 것이다.

덴마크를 표현한 '평등사회'는 한국 사회가 가야 할 지향점을 보여주고 있었다. 서로 신뢰하고 평등하면 사회적 비용이 적게 든다는 사실을 덴마크는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점점 더 한국 사회가 무서워진다. 최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물었더니 돈이 가장 높은 순위에 올랐다. 꿈을 묻는 질문에는 건물을 소유하고 임대업을 하는 건물주가 되고 싶다는 답변이 많았다. 아이들이 건물주를 꿈으로 말하는 사회. 지금 이 사회의 어른들이 만든 세상이다.

오연호가 만난 덴마크 고등학생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꼭 좋은 집에서 살아야 하나요? 정말 중요한 건 좋은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일이죠. 함께 어울려 일하고 즐길 수 있는 사람들 말입니다. 내가 아는 30, 40대 아저씨들은 작은 아파트에서 혼자 살지만 아무도 그들을 루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덴마크에서는 좋은 집, 좋은 차, 멋진 이성친구가 꼭 있어야 체면이 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요."

불평등과 걱정없는 사회의 비결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음을 아이 때부터 체득하고 있는 사회라니. 내 가슴에 이런 울림이 번졌다. 아, 이런 사회에 살고 싶다. 삶의 태도와 자세가 한국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돈이 삶을 행복하게 해줄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내가 갈 길은 내가 정하는 자유와 자율성으로 행복을 느끼는 사회는 어떤 곳일까.

내가 살아보지 못한 덴마크가 정말 궁금해졌다. '불평등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가 주는 안정감도 느껴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실업자들은 외롭지 않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이것은 다른 인민들의 도움이다. 세금을 내기 때문에 '걱정 없는 사회'가 됐다는데, 덴마크 인민들은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공동체 의식이 숨 쉬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정과 공동체를 강조하지만 이미 없는 것을 강조하다보니 개인에게 주어진 짐만 무거운 한국 사회의 모습과 대비되고 있었다. 우리는 늘 '더 나은' 삶을 원한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실은 '더 많이 가진' 삶을 원하고 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원한 것은 풍요로운 재산이었지, 풍요로운 정신은 아니었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를 통해 나는 힘을 얻었다. 협동조합을 통해 좀 더 나은 삶과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변호사이자 에너지 관련 협동조합의 대표인 에리크 크리스티안센의 예가 그랬다. 사회적 지위가 높고 수입이 많은 변호사가 왜 협동조합에 오랫동안 열정을 쏟아왔냐는 물음에 그의 답은 간단했다.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으니까요."

아하, 우리는 우리 스스로 고용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가기로 결정했을 뿐인데, 그것이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할 수도 있겠구나. 우리가 매일 같이 하는 행위가 나는 물론 우리와 사회에도 도움이 될 수 있겠구나. 2년 가까이 협동조합을 꾸리면서 나는 협동조합을 운영하는 것보다 진짜 협동을 하는 문화, DNA를 이식하는 것이 더 힘든 작업임을 느끼고 있다. 나나 동료들이나 제도권 교육을 통해 협동이나 협력보다 경쟁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성적을 중요시하는 교육(보다는 사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지금 '인생학교'를 다니고 있는 셈이다. 이전의 직업보다 훨씬 적은 돈을 벌고 직업적 차별도 받지만 나는 좀 더 행복해졌다. 덴마크의 속담에 가까운 '일을 시작할 때 미국 농부는 기계를 먼저 생각하고 덴마크 농부는 협동조합을 먼저 생각한다'는 말이 한국에도 언젠가 익숙한 말이 되는 날을 기대한다. 그것이 내 살아있는 동안에는 오지 않을지라도 나는 협동조합이라는 '삶의 태도'를 가능하면 계속 견지하고 싶다. 덴마크는 이미 그것을 역사적으로 증명하지 않았던가.

행복을 찾아 다른 삶을 택한 '인어공주'처럼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표지사진.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표지사진.
ⓒ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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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는 덴마크의 행복을 단순히 복지 제도에서만 찾을 수는 없음을 확인한 책이다. 독일도 복지 제도가 잘돼 있는데도 왜 덴마크인들이 더 행복한지에 대해 '태도의 문제'라고 덴마크 인민들은 말하고 있다. 덴마크에는 다른 사람이 큰 집을 갖고 있어도 친구가 좋은 대학을 다니고 연봉을 많이 주는 직장을 다녀도 부러워하는 문화가 없다고 했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남과 비교해야 사는 삶이 주는 피곤함과 내가 아닌 남의 삶을 살아야 하는 사회가 지옥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더디게 가도 자신의 힘으로 페달을 밟아 전진하는 자전거처럼, 나는 지금 내 선택이 나를 내 삶의 주인으로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있다. 책의 표현대로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라는 주체성의 쾌감을 만끽하고 있다.

이전에 덴마크, 하면 떠오르던 안데르센(동화)이나 우유에 국한된 세계를 넓혀준 책이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이다. 그리고 '인어공주'가 덴마크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았다. 용궁에서 용왕의 딸로 호위호식하며 살 수 있었지만 인어 공주는 자신이 원하는 자유와 삶을 위해 물 바깥을 선택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휘게'하면서 살고 싶은 욕망을 감추지도 숨기지도 않았다. 그 모든 남들의 부러움과 선망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기에 자신의 삶을 살기로 한 것이다. 덴마크였기에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19세기 노르웨이를 잃고 독일에게 남부 땅을 크게 잃고 쪼그라든 나라에서 덴마크 인민이 선택한 주인의 길. 그러니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은 이 책에 있지 않다. 이 책 밖으로 걸어 나와 뚜벅뚜벅 자신의 발걸음을 걸을 때 길은 만들어진다. 자, 우리도 함께하면서 새로운 길을 열자. 휘게!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 행복지수 1위 덴마크에서 새로운 길을 찾다

오연호 지음, 오마이북(2014)


태그:#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협동조합, #덴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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