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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
▲ 가장 핫한 쉐프들 아내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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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쿡방' 전성시대다. TV만 틀면 전문 요리사들이 나와 화려한 요리를 선보이고, 연예인들도 숨겨놨던 자신의 요리 실력을 뽐내느라 바쁘다. 트렌드에 민감한 광고업계는 인기 요리사들을 전면에 내세운 지 오래이며, 드라마들의 내용이나 주인공들도 죄다 요리와 관계된 이들이다.

덕분에 요즘 아내는 바쁘다. 뮤지컬 작가로 작업의 일환으로써 드라마 외에는 특별히 TV를 보지 않았던 그녀였지만, 요새는 쿡방의 세계에 심취했는지 관련된 프로그램들을 하나하나 챙겨보는 탓이다. 월요일 밤에는 JTBC의 <냉장고를 부탁해>를 보며 정창욱 셰프가 너무 좋다며 환호하고, 금요일 밤에는 tvN의 <삼시세끼>를 보며 너무 재미있다고 깔깔 웃는 아내.

처음에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개인적으로 음식을 만드는 데는 소질도 관심도 없는 터라 요리 프로그램 자체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다만 아내의 호들갑이 궁금해 아무 생각 없이 그 옆에 앉아 함께 <냉장고를 부탁해>만은 보았는데 웬걸, 그 재미가 쏠쏠했다. 요리사들의 현란한 손놀림과 이제는 완전히 전매특허가 되어버린 최현석 셰프의 과장된 몸짓, 그리고 셰프들 간의 밉지 않은 티격태격 등은 충분히 대중의 이목을 사로잡을 만했다.

그리고 그중 백미는 역시 초대되어 나오는 게스트들이 요리사들의 음식을 먹는 순간이었다. 단 15분 만에 완성시킨 요리들을 먹는 게스트들의 표정. 아무리 짜고 치는 방송이라고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분명 그 맛에 탄복하고 있었고, 경의에 찬 눈빛으로 요리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맛있으면 저런 표정이 나올 수 있는 거지?

아내는 요리사들의 요리 과정을 나름대로 복기하며 '내일 남편에게, 아이들한테 해줘야지'라고 수도 없이 혼잣말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실제로 김풍 작가의 '연복풍덮밥' 등 프로그램에서 본 요리도 따라했지만 얼마 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어쨌든 전문가들의 요리이기 때문이었다.

쿡방을 보더라도 직접 요리를 하기보다는 그 만들어진 요리를 시각으로 소비하던 아내. 그런데 갑자기 이 공식이 깨졌다. 아내가 쿡방을 보고 나서 본격적으로 요리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백종원이 등장하는 <집밥 백선생>을 보고 난 이후였다.

'백선생'을 만난 후 달라진 아내의 요리


tvN <집밥 백선생> 포스터
 tvN <집밥 백선생> 포스터
ⓒ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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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결혼 전부터 요리를 못하는 편은 아니었다. 스무 살 상경한 이후부터 결혼할 때까지 자취 경력도 꽤 되고,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다 보니 그만큼 요리를 잘했다. 덕분에 연애를 할 때도 가끔 나를 초대해 요리를 해주곤 했는데, 당시 난 그 요리를 무척 잘 먹었었다. 다만 한 가지 흠이 있다면 모든 요리가 안줏거리 같다는 정도.

그러나 이런 아내의 요리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180도 바뀌었다. 그게 무엇이든 술 곁들여야 할 것 같던 요리들이 아이들에게 맞춰져 심심한, 거의 간이 안 된 '무간'의 음식이 되어버렸다. 짠 음식이 아이들 발육에 좋지 않다고 하니 아내가 소위 '니맛도 내맛도 없는' 그런 음식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딱히 불평불만을 가진 건 아니었다. 아내의 음식이 내 입맛에 싱거운 건 사실이었지만 워낙에 음식을 가리지 않는 터라, 그 역시 먹을 만했다. 간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어쨌든 아내의 밍밍한 음식이 유전적으로 혈압이 높은 내 건강에 좋고, 맵고 짠 바깥 음식에 길들여졌던 나의 미각을 순화시킨다고 하니 마냥 고맙다고 생각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이런 아내의 요리가 갑자기 바뀌었다. 백종원의 요리 프로그램을 보고 난 뒤 그 무간의 음식이 간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김치찌개서부터 된장찌개, 만능간장으로 만드는 두부조림, 야채조림 등등 아내는 백종원의 레시피를 자신의 요리에 응용하기 시작했으며, 요리할 때 한 번도 쓰지 않았던 설탕을 쓰기도 했다. 이렇게 설탕을 써도 괜찮다는 '슈가보이' 백종원의 한 마디가 설탕은 음식에 넣으면 안 된다는 아내의 금기를 깬 것이다.

"이렇게 설탕 넣어도 돼? 원래 설탕 안 넣잖아."
"많이만 안 넣으면 괜찮지 않을까? 백종원도 그랬잖아. 결국 매실청도 매실물에 설탕 넣은 거라고. 게다가 우리는 좋은 설탕 쓰니까."

덕분에 아내의 음식은 눈에 띄게 맛있어졌다. 매 끼니 백종원의 레시피가 밥상에 올라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레시피대로 요리를 하는 경우 아이들은 그릇까지 싹싹 긁어 먹었고, 나는 '당신이 지금까지 만든 김치찌개 중 가장 맛있다'라는 등 평소에 하지 않던 아내 음식에 대한 감탄도 했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식단은 쌈밥이다
▲ 아이들의 식사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식단은 쌈밥이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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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능간장과 김치찌개의 위엄
▲ '백선생'이 바꿔놓은 밥상 만능간장과 김치찌개의 위엄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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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내가 백종원의 레시피에 환호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남편과 아이들의 호응도 아내를 기쁘게 했지만 무엇보다 백종원의 레시피는 아내가 늘 고민하던 숙제를 해결해줬다. 바로 스피드. 아내는 백종원 요리의 가장 큰 장점으로 속도를 꼽았다. 보통 요리를 하기 위해서는 육수를 우려내고 갖은 양념들을 해야 되는데 백종원의 레시피는 이 시간을 혁신적으로 단축시킨다는 것이었다. 

물론 음식은 정성이라고, 시간과 여유만 있으면 기존의 방식으로도 맛을 내겠지만 어디 아이 셋 키우는 주부의 시간이 그리 많던가. 막내는 옆에서 배고프다고 징징대지, 집안일은 해도해도 끝이 없지. 이런 상황에서 백종원의 레시피는 아내에게 분명 하나의 대안이었다. 그리고 어쨌든 백종원의 요리는 가볍긴 해도 맛있다지 않은가. 그러니 아내가 매번 백종원의 레시피대로 요리를 할 수는 없지만 시간이 부족할 때, 또한 가끔 먹고 싶은 별미로 그의 레시피를 선택할 수밖에.


백종원의 레시피가 인기 있는 이유


꼬박꼬박 때를 챙기는 막내
▲ 아빠 배고파~~~ 꼬박꼬박 때를 챙기는 막내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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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끓인 김치찌개 중 가장 맛있었다는
▲ 백종원표 김치찌개 아내가 끓인 김치찌개 중 가장 맛있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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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도 따라하게 만드는 백종원 레시피. 그런데 요즘 그런 백종원이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워낙 언론의 집중을 한몸에 받아서일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그의 음식이 논쟁거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맛 칼럼리스트 황교익의 발언을 살펴보자.

"백종원씨는 전형적 외식 사업가다. 그가 보여주는 음식은 모두 외식업소 레시피를 따른 것이다. 먹을 만한 음식 만드는 건 쉽다. 백종원 식당 음식은 다 그 정도다. 맛있는 음식은 아니다. 적당한 단맛과 적당한 짠맛, 이 두 개의 밸런스만 맞으면 인간은 맛있다 착각한다. 싸구려 식재료로 맛낼 수 있는 방법을 외식업체들은 다 안다." 

듣기에 따라서는 치명적일 수도 있는 이 비판해 대해 백종원은 담담하다. 스스로 밝혔듯이 그 비판이 아주 틀린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스스로를 셰프나 요리사라고 칭하지 않으며, 자신의 음식이 최고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만 고급스러운 요리는 아니나 집에서 흔히 가지고 있는 재료만으로도 얼마든지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음을 이야기할 뿐이다. 그러니 그 맛이 맛칼럼리스트가 지향하는 맛이 될 수 없음은 당연할 수밖에.

"전문 요리사가 사이클 선수라면 내 요리는 세발자전거 수준."
"누구나 쉽게 음식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요리를 안 하던 사람이 요리를 즐기면 외식 인구도 자연스럽게 늘 것."

이와 관련하여 오히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백종원의 음식이 맛 때문만이 아니라 최소한의 맛을 유지하면서도 간편하기 때문에 각광받는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간단하게 요리를 소비해야 하는 이들이 많아졌음을 의미하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일 수도 있다. 결국 그것은 급증하는 1인 가구와 극대화된 경쟁 속에서 밥 한 끼도 여유롭게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각박한 삶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요컨대 백종원의 인기는 무한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네 삶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한 끼를 먹어도 간단하고 빨리 해결해야 하는 우리네 삶 속에서 그의 음식은 저렴한 재료들로 최대한의 맛을 아주 간단하게 뽑아낼 수 있기 때문에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황교익의 말대로 우리가 좀 더 금전적으로, 시간적으로 여유있는 삶을 누릴 수 있다면 백종원의 레시피는 궁극적으로 지양해야 될 요리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아내는 오늘도 만능간장으로 후딱 요리를 해서 도시락 반찬을 싸준다. 역시나 맛있고 간단하다. 고맙다. 백선생!

tvN <집밥 백선생> 스틸컷
 tvN <집밥 백선생> 스틸컷
ⓒ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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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박혜경 기자



태그:#백종원,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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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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