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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벌써 반이 지났다. 특별히 한 일도 없는데 시간은 참 잘도 흐르는 것 같다. 흘러가는 시간을 세어 보는 일은 때론 옅은 한숨을 불러온다. 시간은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시간처럼 남들도 열심히 달리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어째 제자리 걸음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이다.

시간과 동고동락한 지 어언 삼십년이 훌쩍 넘었음에도,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기만 하다. 그래서 내 시간을 내가 사용하는데도 괜히 남들 눈치를 보게도 된다. 쉬엄쉬엄 살고 싶은 마음 굴뚝같은데, 남들은 그리 살지 않으니, 왠지 남들 모르게 쉬엄쉬엄 살아야 할 것 같기도 하고. 또, 남들이 이렇게 살면 이렇게 살아야 할 것 같고, 저렇게 살면 또 저렇게 살아야 할 것 같기도 하다.

내 삶의 방식에 대한 확신, 나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인 걸까. 그래서 자꾸만 다른 사람들의 삶을 흘긋 거리게 되는 걸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처음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이 삶을 사는 것도, 이 시간을 사는 것도 처음이라서 나는 매번 고민하고 눈치보고 또 따라도 하게 되는 것 아닐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궁금했다. 시간을 어떻게 보냈으면 그들은 마크 트웨인이 됐고, 토마스 만이 됐고,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됐으며, 찰스 디킨스, 이마누엘 칸트, 볼테르, 장폴 사르트르, 찰스 다윈이 될 수 있었을까.

리추얼 표지
 리추얼 표지
ⓒ 책읽는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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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리추얼>은 우리가 아는 위와 같은 유명인 161명이 하루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리추얼'이란 일상의 반복적인 패턴을 말하는데, 책에 나온 161명의 일상을 리추얼이라 말하긴 어렵다)

그들이 삶에서 이룬 성취를 보면 왠지 대부분은 이런 삶을 살았을 것 같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번같은 삶.

에드워드 기번은 군생활을 하는 중에도 절대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는데, "행군 중에도 호라티우스를 읽었고, 야영지에서도 이교도와 기독교 신학에 관한 책들을 읽"을 정도였다. 그는 1분도 허투루 보내지 않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18세기 신학자 조너선 에드워즈도 에드워드 기번과 마찬가지였는데 그는 아침 4시나 5시에 일어나 무려 열세 시간 동안이나 꿈쩍도 안 하고 서재에서 공부를 하고 글을 썼다. 카를 마르크스도 비슷했다. 마르스크는 아침 9시부터 7시까지 박물관에 머물며 <자본론>을 집필했고, 밤에도 담배를 입에 물고 계속 작업을 이어 갔다.

기계처럼 살다 간 사람도 있었다. 행동주의 심리학의 창시자 B.F. 스키너의 삶이 그랬다. 그의 일기엔 이런 내용이 쓰여 있었다.

"나는 침대에서 라디오 뉴스를 들은 후 6시에서 6시 30분 사이에 일어난다. 아침 식사는 콘플레이트 한 접시가 전부이고 부엌 식탁에서 끝낸다. 커피는 타이머가 달린 레인지에서 자동으로 끓는다. 아침 식사는 혼자 하는데, 그때 버건과 코넬리아 에번스가 쓴 <현대 미국 어법>을 조금씩 읽는다. 매일 두 페이지를 빠짐없이 읽는다. (...)

7시 남짓해서 서재에 들어간다. (...) 나는 책상에 앉으면 특수한 탁상용 스탠드를 켠다. 그와 동시에 내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총 시간을 측정하는 시계가 작동한다. 시계는 열두 시간 단위로 기록되고, 누적 곡선의 기울기는 나의 전반적인 작업 생산성을 나타낸다." - 본문 중에서

스키너는 이어 10시에 집을 나서 사무실로 향했고, 점심을 먹기 위해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정원을 가꾸고 수영을 하다가 5시부터 7시나 8시까지 술을 마신 후, 저녁 식사를 하고 독서를 했다. 언제나 9시 30분이나 10시에 잠자리에 들었고 내일도 오늘과 똑같은 하루를 보냈다. 스키너는 1990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처럼 기계같은 루틴을 충실히 따랐다고 한다.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정제되고 규칙적인 삶을 산 사람들은 더 있다. 소설가 토마스 만 역시 아침 일찍 하루를 시작했는데, 8시에 눈을 떠 목욕 후 아침을 먹은 뒤 정각 9시에는 서재에 들어갔다. 그리곤 점심 때까지 쥐 죽은 듯이 조용한 서재에서 글을 썼다.

작가 리처드 라이트 역시 <미국의 아들>을 집필할 당시 아침 6시에 일어나 집밖으로 나왔다. 근처 그린 공원의 언덕 꼭대기에 올라 거기 있는 벤치에 앉아 네 시간 동안 글을 쓰기 위해서였다. 소설가 헨리 밀러는 "진정한 통찰의 순간들을 꾸준히 유지하기 위해서는 철저히 절제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는데, 그도 주로 아침에 글을 썼다.

규칙적인 삶을 살다간 사람으로 가장 유명한 이는 아마 이마누엘 칸트일 것이다. 칸트는 평생을 거의 고향인 쾨니히스베르크 안에서만 살았는데, 여행을 즐기지도 않아 몇 시간 밖에 있는 바닷가조차 나가본 적이 없다고 한다.

칸트에 관한 일화 중 가장 유명한 것은 그의 산책 시간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칸트는 매일 오후 3시 30분이 되면 지팡이를 쥐고 산책을 나갔는데 언제나 그 시간이 정확했다. 독일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는 이와 같던 칸트의 삶을 이렇게 표현했다. "쾨니히스베르크 대성당의 커다란 벽시계도 이마누엘 칸트보다는 더 재밌고 조금은 규칙에 어긋나게 제 역할을 했을 듯싶다."

161명의 삶에 숨어있는 반복되는 일상의 힘

이런 이야기들을 접할 때면 나는 습관적으로 이들의 삶과 내 삶을 비교하곤 했다. 그리고 섣불리 결론을 내렸다. 내 삶에서도 어떤 성취란 것을 이루고 싶다면, 나도 이들처럼 규칙적인, 절제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침형 인간' 열풍이 불었을 때 나는 얼마나 일찍 일어나기 위해 발버둥쳤던가. 그런데 결국 내가 아침형 인간이 아니란 사실을 깨닫고 얼마나 허탈했던가.

하지만 이 책 <리추얼>을 다 읽고 나면 아침형 인간 따위는 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책에 나오는 사람 중 많은 수는 그다지 규칙적인 삶을 살지도 않았고, 때론 놀랄 만큼 충동적인 삶을 살면서도 어떻게든 일을 해냈다. 아서 밀러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나도 규칙적으로 글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움베르토 에코도 자신에겐 정해진 시간표 같은 건 없다고 말했고, 스콧 피츠제럴드 역시 즉흥적으로 글 쓰는 걸 좋아했으며, 습관에 관한 놀라운 통찰을 남겼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 본인은 평생 무질서한 삶을 살았다.

소설가 앤 비티는 시간표에 따라 살다가 오히려 깊은 슬럼프를 맛보기도 했고, 소설가 데이비드 포스터 윌리스도 "어떤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대로 따르려고 하면 글쓰기 자체가 헛된 짓 같고 나를 채찍질하는 것 같아서, 나는 일정한 시간표에 따라 움직이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책에 나오는 이들은 저마다 다른 삶의 방식을 따랐다. 규칙적인 삶, 이라는 틀 안에서도 각기 다른 규칙을 몸에 익혔다. 충동을 따를 때도 다른 충동을 따랐으며, 결벽증의 대상도 저마다 달랐다. 베토벤은 목욕을 중요시했고, 프랜시스 베이컨은 난장판 상태에서만 그림을 그렸으며, 프루스트는 거의 먹지 않고 살았고, 키르케고르는 설탕이 가득한 커피를 마셔야 했고, 사르트르는 술과 흥분제에 중독됐고, 호안 미로는 격렬한 운동을 즐겼으며, 데카르트는 10시간씩 잠을 잤고, 빅토르 위고는 매일 이발소를 찾아 수염을 다듬었다.

이렇듯 서로 다른 삶을 산 이들은 모두 어떻게든 자기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고수하며 일을 해냈다. 그것도 아주 잘!

160명이 넘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나니 내가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 그리 잘못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무얼까. 그저 나는 내 식으로 살 뿐이고, 지난 6개월도 그렇게 살았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우리 모두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자기 방식대로의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니까. 그리고 우리의 이런 삶은 결코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런데도 때만 되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삶을 흘긋 거리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곤 다른 삶의 방식을 향한 새로운 계획을 세워 본다. 지금도 그럴 때인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계획 대부분은 언제나처럼 슬며시 우리네 삶에서 자취를 감출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그저 오늘처럼 내일을 살아갈 테니까. 일상의 힘, 리추얼의 힘이란 바로 이런 것일 테니까.

덧붙이는 글 | <리추얼>(메이슨 커리/책읽는수요일/2014년 01월 26일/1만5천원)



리추얼

메이슨 커리 지음, 강주헌 옮김, 책읽는수요일(2014)


태그:#리추얼,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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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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