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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검찰 측 주장에 계속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자신이 주도한 건 아무것도 없고 선이든 악이든 의도가 없었으며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라고요. 이 전형적인 나치의 항변으로 거대한 악의 실체가 드러났어요. 평범한 사람이 저지른 악. 동기도 없이 행해진 악. 신념도 악의도 악마의 의지도 없는 사람이기를 거부한 인간의 행위. 저는 이 현상을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영화 <한나 아렌트>에서 아렌트는 이스라엘 재판에서 본 아이히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칼 아돌프 아이히만은 우리가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는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위에서 내려온 명령을 충실히 이행한 공무원이었다. 한나 아렌트는 그런 '평범한' 사람이 양심의 가책도 없이 유대인 수백만 명을 가스실로 운반한 건 그가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생각이라는 바람을 표명하는 건 지식의 돛이 아니라 옳고 그름, 아름다움과 추악함을 말할 능력을 말한다." 아렌트는 스스로 사유하지 않으면 도덕적인 판단을 할 수 없게 되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유례없는 크나큰 악행을 저지를 여지가 생긴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에게만 반응하는 생각의 무능이 극악무도한 행위도 서슴지 않게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아이히만들'이 있다. 한 명의 아이히만이 아니라, 다수의 아이희만'들'이 우리 영혼 속에 숨어 있다. 2014년 4월, 수백 명의 학생을 바닷물에 수장시킨 채 홀로 도망쳤던 선장과 선원들, 가라앉는 배를 타인의 일처럼 방관하던 정부 관료들, 그리고 이에 분개하지 않았던 우리가 모두 아이히만이었다. 2015년 6월, 생명보다 돈에 더 집중했던 의료 기관과 공익보단 자신의 안위를 먼저 챙기기에 급급했던 사람들이 아이히만이었다. 같은 달 말, 표절 논란의 중심에 선 작가를 감싸고 몇 년간 무섭도록 침묵했던 한국 문단과 언론이 아이히만이었다.     

가장 극악무도한 악은 가장 평범한 곳에 있는지 모른다.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다른 사람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을 때 우리 안의 아이히만은 슬며시 고개를 든다. 우리는 가장 옳다고 생각되는 것을 의심하고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메르스 여파가 한층 가라앉았다. 거리엔 마스크 쓰는 사람이 현저히 줄었고 백화점과 대형마트는 다시 사람들로 북적인다. 언론은 일상으로의 복귀를 조금씩 재촉한다. 또 다른 비극과 참사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영화에서 아렌트는 강의를 마무리하며 말한다. "내가 바라는 건, 사람들이 생각의 힘으로 예기치 않은 일이 닥칠 때 파국을 막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장 인간적인 특성을 저버리지 않을 때 스스로 위기를 막을 힘을 기를 수 있다.


태그:#아이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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