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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업무상 질병에 걸린 경우, 법정에서 재해와 업무 사이의 인과관계는 누가 져야할까?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르면 재해와 업무 사이의 인과관계를 노동자가 증명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가 이를 증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업무상 질병은 업무상 사고와 달리 장기간에 걸쳐 천천히 진행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 측은 전문적 지식이나 관련 정보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또한 산업화에 따른 여러 유해환경으로 인하여 현재까지의 과학이나 의학으로는 밝혀낼 수 없는 새로운 질병이 나타나는 현실이다. 그런데도 업무상 질병에서까지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에 대한 입증책임을 노동자에게 전적으로 부담시키는 것은 노동자에게 가혹하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5일 업무상 질병으로 인한 업무상 재해에서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에 대한 입증책임을 이를 주장하는 근로자 또는 그 유족에게 부담시키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제1항 제2호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결정(2014헌바269)을 선고하였다.

사례를 살펴보면,

청구인들은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하다가 '상세불명의 심장질환으로 인한 급성 심장사(추정)'로 사망한 사람의 형제자매들로,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의 유족급여 및 장의비 청구를 하였으나, 근로복지공단은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결정을 하였다.

청구인들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위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고, 그 항소심 계속 중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제1항에 대하여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하였으나 기각되자,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헌법재판소는 합헌 결정에 대해 아래와 같은 이유를 밝혔다.

"심판대상조항이 업무상 재해의 인정요건의 하나로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요구하고 근로자나 그 유족에게 그에 대한 입증을 요구하는 것은  보험재정의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서 그 합리성이 있다."

다만 재판관 안창호는 합헌의견을 밝히면서도, 다음과 같은 보충의견을 덧붙였다. "많은 시간과 비용이 요구되는 전문기관 자문이나 역학조사 등에 있어서는 근로자 측의 입증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입법개선을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2012년 6월 19일 국가인권위원회는 고용노동부장관에게 질병과 업무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피해 근로자가 아닌 사업주와 국가가 증명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개선하도록 권고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결정을 거부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과 달리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기속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도 헌법재판소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이 사안에 대해서 기각 결정한 점은 아쉽다. 이번 결정은 헌법재판소가 사회보험제도에서 노동자의 사회보장수급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결정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경수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hunlaw.tistory.com/)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사회보장수급권, #산업재해보상보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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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힘이 되는 생활 헌법(좋은땅 출판사) 저자, 헌법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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