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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재원의 <그 많은 똑똑한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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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사(PISA, 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는 국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00년부터 주관해오고 있는 '국제 학생평가 프로그램'이다. 일반적으로는 '국제 학업성취도평가'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읽기·수학·과학 소양 세 영역에 걸쳐 3년 주기로 실시되는 피사는 일종의 '공부 올림픽'처럼 자리잡혀 있다. 피사 결과가 발표되면 각국 언론은 순위와 성적을 놓고 자국의 교육 시스템을 분석하는 데 큰 관심을 기울인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 학생들은 피사가 처음 실시된 2000년 이후 매회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영역에 따라 약간의 부침이 있으나 꾸준히 상승세를 타고 있다. 학생·교사·학교에 상찬은 못하더라도 격려 정도는 할 수 있는 결과다. 그런데 교육 현장은 시끄럽다. 현직 사회교사인 저자 권재원은 이 책에서 피사 결과를 놓고 벌어지는 우리 사회의 난맥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보수 쪽에서는 우리나라가 PISA에서 높은 성적을 보이는 것이 부지런하고 명민한 사교육 덕분이라며 공교육을 공격했다. 그러면서 공교육에도 경쟁 체제를 도입하지 않으면 조만간 순위가 떨어질 것이라며 불안감을 부추겼다. 반면 진보 쪽에서는 높은 성적이 그저 다른 나라에 비해 과중한 학습 노동 때문이며 학생들의 행복을 희생시킨 대가에 불과해 거론할 가치조차 없다고 그 결과를 평가절하했다. (9~10쪽)

우리는 피사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피사 12년의 결과 보고서를 '최초로' 종합 분석한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피사를 얼마나 피상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는지, 각자 처한 입장과 관점에 따라 얼마나 자의적으로 결과를 해석했는지 드러난다.

피사 결과를 사교육 효과로 보는 시각을 보자. 피사 문항들은 단순한 교과 지식을 묻지 않는다. 오히려 "지식 수준은 높지 않은데 그 지식을 활용하는 방식이 높은 등급일수록 복잡"(71쪽)해진다. 단기 성과를 위해 효율적인 문제풀이 수업과 일방적인 주입식·암기식 교육을 펼치는 사교육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사교육은 PISA 문제를 푸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PISA 방식의 평가에 별로 큰 관심이 없다. 수능과 내신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교육이 PISA 점수에 큰 도움을 주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만약 동아시아 학생들이 단순 암기식, 문제풀이 연습만 반복하는 학습이 아닌 다양하고 창의적인 학습을 경험함으로써 PISA가 강조하는 역량을 함양할 기회가 있었다면 이는 학교에서일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나라는 학원과 학교 외에는 배움의 장소가 없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157쪽)

이와 관련된 또 다른 논거는 2012 피사에 새로 신설된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이다. 우리에게는 "유럽이나 미국 학생들은 공부는 못해도 더 창의적이고 문제해결 능력이 뛰어날 것이라는 막연한 선입관" 같은 게 있다. 그럴까.

우리나라의 높은 순위가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 이유

2012 피사 결과는 "그야말로 창의성과 거리가 먼 주입식 교육, 지식 습득 훈련을 강도 높게 받는다고 알려진 동아시아 국가들"이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 부문에서 독주한 것으로 나타났다. 1~7위를 모두 동아시아 국가들인 싱가포르(562), 한국(561), 일본(552), 마카오·홍콩(540), 상하이(536), 대만(534)이 차지했다. 우리나라가 중국의 '강남구'라 할 수 있는 상하이를 제쳤다는 점이 놀랍다.

하지만 피사 결과의 이면에 숨은 '진실'을 보면 우리나라의 높은 순위가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저자에 따르면 피사가 중요하게 여기는 자료는 평균이나 순위보다 학생들의 등급 분포다. 피사는 특히 '5등급'에 관심을 기울이는데, "앞으로 그 나라의 인재 풀을 이룰 것이며, 잠재적인 생산력의 원천이 될 것"(118쪽)이라는 이유에서다.

우리나라는 (읽기 영역의 국가별 순위에서-기자) 평균으로는 6위에 그쳤지만 3등급 이상 학생의 비율은 76%여서 핀란드 다음으로 2위를 차지했지만 동시에 5등급의 비율은 6%에 불과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최상위권인 5등급 이상 학생들의 비율로 다시 순위를 매길 경우 순식간에 20위로 떨어지면서 대부분의 선진국보다 뒤로 처지게 된다. (중략)

우리는 PISA 결과를 보고 한국 학생들이 미국 학생들보다 훨씬 공부를 잘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미국보다 학습 부진아가 훨씬 적어서 전체 평균이 높은 것일 뿐, 최상위권 학생의 비율은 미국이 우리보다 5%나 많다. 인구를 감안하면 결국 지식정보사회의 인재가 미국에 가장 많이 있다는 뜻이 된다. (119~121쪽)

더 큰 문제는 학생이 아니라 어른들이다. 2013년 OECD는 '성인 문해력 평가(PIAAC, Programme for the International Assessment of Adult Competencies)를 실시했다. 우리나라는 오이시디 평균인 273점을 얻어 정확히 중간 순위에 그쳤다. PISA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이 5위권 밖으로 한 번도 나간 적이 없는 점과 대비된다.

그 평균(273점)은 최하등급을 겨우 면한 2등급이다. 웹 탐색을 통해 인터넷 문서를 읽을 수 있고, 둘 이상의 정보를 비교․대조하는 정도가 우리나라 성인의 평균인 것이다. (중략) 우리나라에 토론이 가능한 수준인 3등급 이상 성인의 비율은 어느 정도 될까? (중략) OECD 평균에 미달하여 3등급 이상이 50%에 조금 못 미친다. 전체 평균뿐 아니라, 3등급 이상의 비율도 중간보다 조금 떨어지는 것이다. 한국을 교육에서 성공한 나라, 교육의 성공을 경제 성장으로 연결시킨 나라의 대표적 사례로 간주해 온 전문가들을 몹시 당황하게 만드는 결과다. (중략)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학습 노동에 시달리는 학생들과 세계에서 가장 공부 안 하는 성인들이 공존하는 기형적인 곳이 우리나라다. (212~213쪽)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는 피사의 데이터... 그러나

피사의 데이터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저자의 지적처럼 OECD가 강조하는 '소양'이 피사를 통해 제대로 측정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경제적 측면에 치중하여 '기능' 중심으로 평가가 이루어지는 점은 피사의 뚜렷한 한계다. "가치 없는 기능은 기계적"(270쪽)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피사를 통해 인권 존중이나 생태적 감수성 등과 같은 '가치'를 평가하기는 분명 힘들다.

그렇다고 피사를 마냥 거부하거나 무용한 것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저자는 "PISA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가장 큰 교훈은 공교육을 바라보는 지나치게 자학적인 관점을 바꿔야 한다는 것"(236쪽)이라고 주장한다. "PISA 결과만으로 볼 때 우리나라의 학교 교육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게 작동되고 있는"(236쪽)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가 학교와 공교육을 비난하는 것을 유행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21세기 아이들을 20세기 교사가 19세기 학교에서 가르친다는 '자학적 농담'도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보이는 여러 가지 피사 결과는 그런 말들이 진짜 '농담'에 불과한 것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꼭 피사를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우리만의 교육을 고민하고 방향을 모색해 보려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하는 이유다.

<그 많은 똑똑한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권재원 씀 / 지식프레임 / 2015. 6. 15. / 271쪽 / 1,5000원)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그 많은 똑똑한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 똑똑하지만 불안한 대한민국 교육의 두 얼굴

권재원 지음, 지식프레임(2015)


태그:#<그 많은 똑똑한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권재원, #피사(PISA), #피악(PIA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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