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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MERS)의 정치 1: 병원(病院)의 병원(病原)

한 사회에서 전염병은 비가시적 사회관계를 극적으로 가시화 한다. 메르스 지도와 연결망은 한국사회의 관계망이 어느 정도의 밀집도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속도로 정보(병원균을 포함하여)가 사회적으로 확산, 전파, 심화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더욱이 메르스관계망의 물리적 측면(사망자, 감염자 및 자가격리자의 양적 숫자)의 규모보다 상징적 측면, 즉 사회적 공포의 확대재생산은 한국사회의 집합적 의식의 차원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메르스의 확대, 아니 그 공포의 사회적 확대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핵심 즉, "우선 해를 가하지 마라"(primum non nocere)는 원칙을 한국사회가 근본적으로  배신했기 때문이다. 즉, 개인적, 사회적 신체에 해를 가하지 말아야 주체가 메르스라는 전염병을 만들어 내는 의원성 질환 (iatrogenicdisease), 즉 치료하는(iatro) 자에 의해 병과 전염이 생성(genic)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전통의학에 비해 예방과 진단, 응급에 있어서 강점을 드러냈던 현대의학, 특히 물질적 영역에서의 재벌, 정신적 영역에서의 교회, 지식적 영역에서의 대학에 못지 않게 규모를 키워왔던 신체적 영역에서의 병원(病院)은 이번 메르스 사태의 실질적인 병원(病原)이 되어 버렸다.

사적 영역에 포획된 국가, 특히 중앙권력은 이제 기존의 개발과정에서 자신이 간섭하고, 규제하고, 관할했던 사회적 보건과 안전을 시장, 아니 보다 구체적으로는 규모의 자본이 지배하는 시장에 넘김으로써 사회적 관계망으로서 전염병의 등장에 완전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만약 중앙권력이 자신들이 이번 문제에서도 사령탑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논리적으로는 오류이지만, 실제상으로는 틀리지 않은 말이다.

메르스의 정치 2: 병원균의 전염에서 공포의 전염으로-메르스와 세월호

모든 질병은 개인은 물론 사회에도 일괄적, 무차별적, 보편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감기와 독감이 각 개인의 나이와 건강에 대해 다르게 나타나듯, 전염이라는 이 가시적 사회망 역시 시대와 사회,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비가시적이고 주변화되었던 전염병은 따라서 언제든지 가시화되고, 중심화될 수 있다. 한국에서 메르스는 전염의 최소화와 무관하게 공포가 되었다. 그 공포의 진원지는 시민들의 머리나, 무능한 야당의 선동이 아니다.

모든 사회적 공포는 정치적이다. 즉, 작금의 메르스 사태는 의학적 차원이 아닌, 정치적 차원에 의해 확대 재생산되었다. 메르스가 병원균의 전염이라는 물질적 차원을 넘어 공포의 전염 이라는 사회적 차원으로 변형되고, 확대 재생산 된 원인은 정치에 있다.

우선 첫째로 개인적 질병이 아닌 사회적 전염병이란 차원에서 보면, 보건의 공중과 그 공공성을 엮는 정보의 공유는 전염의 차단에서 관건적인 장치와 기반이다. 그러나 중앙권력은 보건을 시장과 외주에 맡기고 정보의 공유는 정권의 안전을 위해 공공으로부터 차단하였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정치성격과 보수적 정권성격은 전염병을 개인적, 사회적 신체에 대한 부분적  오염을 넘어 사회적 공포로 확대재생산 하는 기반이 되었다.

메르스는 본질적으로(논리적으로나 비유적으로가 아니라) 세월호의 연장이다. 세월호의 인명구조와 인양이라는 안전의 문제를 외주라는 사적 기업의 시장논리에 일임하고, 정보의 공유를 최대한 억제하려했던 박근혜-새누리 정권의 기본 정치성격과 정권성격은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와 관련하여 두 번째로 유언비어의 단속을 전염 예방의 최우선적 과제로 놓고 보는 박근혜-새누리 정권 하에서 전염병의 공포는 사회적으로 변형, 확대재생산되었다. 국가권력의 사유화가 본격화된 이명박 정부 이후, 공공의 안전에 대한 시민들의 정부에 대한 신뢰를 바닥까치 추락했다. 만약 보건이 공중의 책임과 영역에서 분리된 사회에 사는 시민들에게 전염병이라는 공공과 사적영역의 분리를 무시하는 연계자가 나타난다면, 그리고 모든 보건과 위생이 단지 사적 영역으로 돌려진다면, 아무리 사소한 전염병과 감염도 그 사회에서는 공포의 대상이 되기 쉽다.

공공안전, 공중보건, 시민건강의 책임을 정부가 방기한다면 공포의 공적 확산의 책임은 정부가 더 엄중하게 질 수밖에 없다. 포괄적인 사회적 안전과 심층적 안전을 협소한 중앙권력의 안전과 표면적인 사회적 평온으로 동일시하는 박근혜-새누리 정권의 안전인식이 결국 전염병의 사회적 가시성과 전국적 전염성을 촉진하였다.

메르스의 정치 3: 민주주의를 등진 중앙권력

세월호의 정치 이상으로 메르스는 극적인 정치를 우리 눈앞에 펼쳐 보였다. 1) 전쟁과 국가적 재난은 상징을 넘어 위임된 주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중앙정부의 고유의 사건영역이었으나 메르스라는전염(epidemic)병에 대하여 중앙정부는 포괄적인 신속대응을 포기함으로써 극적으로 주권의 행사를 유보하였다.

2) 전염병, Epidemic이란 시민, 즉 demos가운데서 (epi) 발생하는 바, 이에 대한 중앙권력의 초기의 무책임과 현재의 책임독점의 주장을 통한 무책임은 민주주의(demo-cracy)의방기엔 다름 아니다. 보건복지부 수장의 마스크 착용과 청와대의 열감지기 설치는 단순한 상징 이상의 의미를담고 있다. 

3) 질병관리 주체를 둘러싼 중앙정부와 서울시 사이의 공방은 해방 이후 한국사회의 중심권력이었던 중앙정부의 권력과 정보, 그리고신뢰도의 한계를 그대로 노출 시켰다. 중앙권력은 사회적 반대자에 대한 진압의 능력은 가지고 있지만, 안전과 안보의 유지, 사회적 재생산의 능력은 결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마치 신용시장이 소위 '신뢰'의 신화에 자신의 안정의 명운을 걸듯, 중앙권력은 불온한 소문의 확산 저지에 자신의 안전의 모든 것을 걸은 것 처럼 행동하였다.

즉, (공공)중앙권력의 행위 패턴이 사적 시장의 논리와 유사한 패턴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는 집권세력 자체가 권력을 공공의 것이 아닌 사적인 것으로 보고 있음을 드러낸 것엔 다름 아니었다. 4) 넷, 삼성과 강남으로 상징되는 '한국형' 시장권력은 신뢰성(accountability)와 책임성(responsibility)과는 무관하며, 민주적 체제 속에서 기능하지않았기에 병원(病原)의 온상지가 되었다. 시장이 능사가 아니며, 규모가 장점이 아니며, 최고가 최선이 아니라는 것을 메르스는 보여주었다.

5) 메르스는 진영을 둘로 나누고 중앙의 사령부를 전제로 하는 전쟁 정치의 한계를 드러냈다. 지방권력이 협조하지 않고, 지방 교육청이 외면하고, 일선 학교와 사회 기관이 협조하지 않고, 개별 가족과 개인이 자원하지 않았다면 메르스는 사회적 공포가 아닌 공황의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었다.

메르스의 정치 4: 한국 민주주의 한계, 성과, 그리고 과제

사실 1987년 이후 정착된 민주주의의 여러 제도들은 이미 지난 기간을 통해 많은 한계를 드러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비효율성과 부패, 정당정치의 불안정성과 무능, 선거의 내용적 민주주의 반영 및 재현 실패, 헌법기관들의 극단적 당파화는 1987년 민주주의의 성과와 한계를 그대로 노출하였다.

그리고 가장 낙후되고 퇴행적인 민주주의는 중앙권력과 시장권력에서 극적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 한계는 권력이 공공성을 상실하고, 사회적 감시와 참여를 차단하기 시작한 지난 몇 년간 더욱 심각해졌다. 민주적 체제의 규칙을 좌우했던 시장권력은 이러한 문제점을 더 가속화시켰다. 87년 6월 항쟁과 7, 8, 9월 노동자 대투쟁의 만나지 못한 평행선은 결국 시민의 자유 이상으로 자본의 자유를 확장하였으며, 개인 및 사회적 신체의 건강과 보건 역시 이 권력에 구속 아래 놓이게 되었다.

메르스의 정치학은 이 민주주의의 한계를 문제점으로 분명히 전환시켰다. 동시에 메르스는 87년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가능성 또한 드러내었다. 메르스는 한국 민주주의의 지난 성과가 중앙권력과 정당정치와 같은 거시정치가 아닌, 지방자치와 같은 중범위 차원 정치에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메르스는 다양한 사회 조직과 기구, 개인들의 자발적 협력과 정보공유를 통해 드러나듯이 미시 차원의 민주주의에서 진전이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정보의 공유와 확대, 그리고 탈중앙화된 협력적 대책네트워크의 운용은 중앙권력 아래서 비가시적이고, 고립되었던 다양한 권력의 연대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더불어 메르스는 우리 앞에 가장 핵심적인 두 가지 민주주의의 과제를 던졌다. 하나는 중앙권력과 관료체제의 근본적인 개혁이다. 이 과제는 또 다른 과제인 권력의 공공성 복원 아니 공공성 재정립과 시장권력의 민주적 통제라는 과제와 긴밀히 결합되어 있다. 지금은 민주적 정치가 당파적 정치이며,이 당파적 정치가 공공의 정치이다.


태그:#메르스, #MERS,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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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간 반부패운동에 몸담아 왔다. 또한 10년간 가족들과 함께 홈스쿨과 대안교육활동을 했다. 편역/편저로는 반부패지도 I, II, III이 있으며, 저서로는 "다리미를 든 대통령-부패 없는 사회를 위하여"(민들레)가 있다. 현재 캐나다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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