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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우리 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28사단 집단폭행·사망사건은 폭력으로 얼룩진 군대 폭력의 민낯을 드러냈다. 이 이야기는 또 다른 윤 일병들의 고통에 관한 보고서다. [편집자말]
지난해 7월 10일 전역 당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이아무개씨. 대체 왜 22살의 청년은 비극적인 자살로 자신의 생을 마감해야만 했을까? 그는 군대에서 어떤 일을 당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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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죽음은 같은 해 8월 4일, 한 언론의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는 시민단체의 기자회견을 통해 28사단 집단구타·사망사건이 드러나면서 우리 사회가 막 들끓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그때까지 한 달여 동안 이씨 유가족들의 진상규명 요구에 '나 몰라라' 하고 있던 군이 비로소 수사에 착수했던 것은 언론 보도 직후였다. 육군 제2작전사령부 헌병대는 8명의 수사관을 투입해서 이씨와 같이 복무했던 부대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수리와 면담을 진행한 결과 가해병사 10명과 지휘책임이 있는 간부 13명을 적발했다.

전역한 날 자살한 윤 일병, 군대에서 무슨 일이?

지난해 8월 8일 오전 육군 30사단 기갑수색대대 장병들이 부대 내 대강당에서 특별인권교육을 받고 있다.
▲ 특별인권교육 '열외 무' 지난해 8월 8일 오전 육군 30사단 기갑수색대대 장병들이 부대 내 대강당에서 특별인권교육을 받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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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군 복무 중 이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유족 측이 확보한 녹취록과 헌병대 수사기록 등 간접적인 자료로 유추해 볼 수밖에 없다.

2012년 8월 28일, 이씨는 충청북도 증평의 37사단으로 입소했다. 신병교육대에서 복무 적합도, 군 생활 적응, 적성 적응도 등을 분석하는 '신(新)인성검사'에서 이씨는 자살 및 정신장애예측 평가를 받았다. 이후 이씨는 귀가 조치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국군대전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진료를 받았지만, 특이사항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어 그대로 신병훈련을 받게 된다.

2012년 10월 5일, 이씨는 경상북도 영천 소재의 제2탄약창 경비대로 배치됐다. 전입하면서부터 자살우려 병사로 분류되었지만, 부대 자체로 실시한 복무적합도 검사와 국군대구병원 정신과 진료 결과는 특이사항이 없는 것으로 나왔다.

하지만 전입 후 실시한 간부들과의 면담 과정에서 이씨는 다른 사람과 눈을 맞추지 못하는 이상증세를 보였다.

선임병들의 가혹행위는 전입 직후부터 시작됐다. 헌병 수사기록에 따르면 전입 바로 다음 날인 2012년 10월 6일 점심시간 전, 이씨가 소속된 경비중대 선임병 4명이 이씨를 비롯한 신병 4명을 생활관에 집합시켰다.

선임병들은 이씨 등에게 연가서열(중대원 70명의 계급, 이름, 입대연월), 초병의 일반수칙, 특별수칙, MOPP(임무형 보호태세), 부대 내 책임지역(울타리 길이 등), 전조등, CCTV, 철주(철조망 지탱하는 기둥) 개수가 적힌 수첩을 나누어 주면서 "2주 안에 다 외워라"고 지시했다.

암기에 서툴렀던 이씨는 주어진 기간 중 암기사항을 다 외우지 못했다. 초병 근무 중 방탄모와 총기를 떨어뜨리는 실수를 한 것도 폭행의 빌미가 되었다.

2012년 10월 중순 암기사항을 잘 답변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한 선임병이 욕을 하며 이씨의 머리를 2, 3회 때린 것을 시작으로 이틀에 한 번꼴로 폭행이 이어졌다. 선임병들은 후임들을 집합시킨 후, 군기를 잡는다며 몰아세웠다. 군대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던 이씨가 이들의 주된 타깃이 되었다.

가해병사들은 '암기를 못했다', '근무지에서 실수를 했다'는 이유로 이씨에게 갖은 욕설과 폭행을 했다. 이씨가 소속된 부대에서는 선임병들의 폭행 등 병영부조리를 근절하겠다며 계급별로 생활관을 편성하는 동기생활관 제도를 시행했지만, 선임병들의 가혹행위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폭행이 이어질수록 이씨는 더 주눅이 들었고, 실수를 하는 일도 잦아졌다.

헌병 보고서를 보면 지휘관들은 이씨에게 가한 일부 폭행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12년 11월경, 근무 중 혼자 흥얼거리고, 총을 떨어뜨렸다는 이유로 손바닥으로 이씨의 뺨을 때렸던 한 선임병이 중대장에게 얼차려와 구두 경고를 받았던 것. 같은 달 이씨에게 욕설을 하고 멱살을 잡은 다른 병사도 역시 얼차려와 경고 조치를 받았다.

하지만 지휘관들은 이씨를 괴롭힌 가해자들에게 엄정한 처벌을 하지 않았다. 2012년 11월 부대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수리에서 이씨가 근무 중 졸았다는 이유로 주먹으로 폭행을 당한 사실이 확인되었지만, 이씨를 괴롭힌 선임병들에 대한 처벌은 없었다.

전투화 발로 이씨의 다리를 여러 차례 걷어 찬 가해자는 부사관 지원을 희망하고 있다는 이유로 선처를 받기도 했다. 만약 이때 가해자들을 색출해서 제대로 처벌했더라면 이씨에 대한 폭력은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병사들 간의 폭행을 미연에 방지해야 할 책임이 있는 중대장은 병사들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이씨가 이등병 당시의 중대장 A 대위에 대해 이 부대의 한 간부는 헌병 조사에서 "중대장으로 근무하면서 약 11개월 동안 단 한번도 경계근무 순찰을 나간 적이 없고, 매일 같이 출근하면 잠자고 점심 때 라면을 끓여먹고 잠자다가 일어나서 퇴근했다"고 진술했다.

한 병사는 "(중대장이) 병사들과 면담을 한 번도 한 적이 없고 1주일에 한 번 정도씩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을 볼 정도로 만나기 힘들었으며, 일과 중에도 체육복을 입고 다녔고 마주치게 되어 경례를 하면 '너 우리 중대야? 날 어떻게 알아? 내가 숨어 다녔는데 날 알아?'라고 할 정도로 중대에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계속되는 가혹행위와 폭언... 심각해진 정신 상태

지난해 9월 16일 오전 '윤일병 사망사건' 재판이 열릴 예정인 경기도 용인시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에서 헌병들이 재판정 입구를 통제하고 있다.
 지난해 9월 16일 오전 '윤일병 사망사건' 재판이 열릴 예정인 경기도 용인시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에서 헌병들이 재판정 입구를 통제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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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탄약사령부 감찰실에서 이씨의 소속중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A대위가) 천성적으로 게을러 중대를 방치 수준으로 운영', '2012년 부대관리 미흡으로 참모장 대면보고 후 구두경고', '2013년 2월에는 순찰 미실시로 견책 징계 처분'을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헌병 보고서도 A 대위에 대해 "출근과 동시 식사 후 취침, 오후에는 개인 공부를 하고 정시 퇴근, 순찰은 차량으로 하거나 미실시하는 등 중대장으로서 기본 책무를 소홀히 함은 물론, 부대지휘체계 확립이 미흡하여 중대의 기강이 해이해져 자연히 선임병 위주의 부대 운영으로 병영부조리 발생원인 제공 및 이를 식별, 차단하지 못함"이라고 결론내리고 있다.

이씨가 일병 때 부임했던 후임 중대장 B 대위 역시 부대 내에 만연했던 가혹행위의 고리를 끊지 못했다. 오히려 B 대위는 중대원에게 잦은 폭언으로 위화감을 조성했던 사실도 밝혀졌다.

2013년 9월 국방부는 하절기 공직기강 점검의 일환으로 이씨가 소속된 중대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이 과정에서 폭언과 욕설, 인격모독, 구타가 있었던 것이 확인되었고, 뒤이어 탄약사령부 감찰실은 이씨 소속 중대에 대한 감찰을 벌였다.

당시 감찰보고서를 보면, B 대위는 부대원들에게 "병신XX야, 귓구멍에 X 박았냐, 종북세력 같은 놈, 뇌가 있으면 생각 좀 해라" 등의 폭언을 했고, 중대 설문조사 전에는 "중대장을 거론하면 빨간 줄 긋게 만들겠다"며 일부 중대원들에게 협박성 발언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2013년 9월 B대위는 결국 보직 해임됐다.

이런 간부들 밑에서 이씨가 설 곳은 어디에도 없었고 지긋지긋한 가혹행위와 폭언은 계속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씨 뒤로도 후임병들이 들어왔지만, 이씨는 선임병 대우를 받지 못했다. 가해자들은 이씨를 보급품 장구류에 비교하여 A급, B급, C급으로 나누어 호칭하면서 중대원들이 보는 앞에서 이씨에게 "폐급 XX"라고 불렀다.

한 선임병은 이씨를 지목하면서 후임병들에게 "병신이고 쓰레기 짓만 하니 선임취급하지 말고 인사도 하지 마라", "(이씨에게) 인사하다가 내 눈에 띄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윽박질렀다. 이렇게 이씨는 '무시해도 좋은 사람', '고참 대우 해줘선 안 될 사람'으로 치부됐다.

2013년 3월경 이씨의 정신 상태와 관련, 심상치 않은 조짐이 나타났다. 취사장에서 이씨가 자신의 이름에 두 줄을 긋는 모습을 보고 까닭을 묻는 입대 동기에게 "나 자살하고 싶다"라고 대답했던 것. 이씨의 이상증세를 본 병사들이 간부들에게 보고를 했지만, 병사 한 명을 붙여 이씨를 따라다니게 하는 것 이외의 조치는 없었다.

이씨의 상태는 점점 더 심각해졌다.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죽였다고 하는가 하면 소대장이 자신의 여자친구를 성폭행하려고 했다고 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말하는 등 피해망상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근무를 서면서 혼자 중얼거리거나, 마구 웃다가 갑자기 화를 내는 일이 잦아졌다.

정신과 치료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부대의 조치는 병영생활 상담관과의 면담이나 민간 성직자에게 상담을 받게 하는 것으로 그쳤다. 상병을 달기 직전에는 약 보름 동안 군수사령부 그린캠프에 입소했다.

2013년 7월 1일 이씨는 상병으로 진급했지만, 가해 병사들은 그를 여전히 투명인간으로 취급했다. 이씨의 입대동기들은 그가 후임병과 2인 1조로 보초를 설 때 지시를 하는 '사수'가 아닌 '부사수'로 근무하도록 명령 받았다고 증언했다. 노골적인 무시였다. 모멸적인 취급을 받으면서 이씨의 정신은 점점 더 피폐해져 갔다.

- 3화로 이어집니다.





태그:#군대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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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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