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탄저균이 도대체 뭐야?

지난 5월 27일 미국 국방부가 메르스보다 훨씬 치사율이 높은, 무려 치사율이 95%나 되는 살아있는 탄저균이 "주한미군 오산기지 합동위협인식연구소에 반입됐다"고 밝혔다. 살아있는 탄저균이 반입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탄저병이라는 말은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영국 산업혁명 과정을 들으면서 접했던 단어였다. 그냥 무서운 병. 18세기 말에 있었던 병을 21세기에 설마 치료 못할까?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메르스와 비교도 안 되는 95%의 치사율. 100kg의 탄저균이 살포되면 최대 300만 명이 사망할 수 있다는 어마어마한 '생화학무기'였다. 미국에서는 2001년 탄저균 가루를 넣은 봉투가 유명 인사에게 배달되어 5명이 숨지고 17명이 감염되어 미국시민들에게 큰 공포감을 안겨 주었다고 한다. '공포의 백색가루'가 그냥 나온 말이 아니었다.

지금 미국은 북한이 생화학무기로 공격할 경우에 대비한 방어용 연구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오산미군기지 탄저균 실험시설은 국민들도 모르는 채 운영된 지 벌써 17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일본 731부대가 떠올랐다. 731부대는 각종 생화학무기를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무자비하게 사용해 사람들을 학대하고, 생체 실험했던 현장이다. 작년에 하얼빈에 있는 731부대에 방문해 당시 상황을 그대로 폭로한 박물관을 둘러보면서 느꼈던 공포감을 잊을 수가 없다.

굴욕적인 상황,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그런데 탄저균 배송사고 소식은 메르스로 인해 국내 언론에서 크게 다뤄지지 않고 있었다. 냉동되어 들어온 탄저균을 해동해 오산미군기지에서 배양실험을 했고, 22명이 탄저균에 노출되었는데도 말이다.

우리 정부는 탄저균이 정확히 언제 어떻게 들어왔고, 얼마나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 알지도 못했다. 또 국방부도 주한미군에게 정확한 진상규명을 요구하기는커녕 미국이 정보를 제공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화가 났다. 자신들의 나라도 아닌 남의 나라에 아무런 허락도 없이 생화학무기를 들여와 실험을 하고 있다는 것이 말이다. 미국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우리나라 정부의 행동이 국민으로서 굴욕적이기까지 했다. 가만히 두고만 볼 수 없어 내가 활동하는 '대학생겨레하나'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제대로 된 진실을 미국에게 요구하고자 퍼포먼스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용산미군기지 앞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탄저균에 반대하며 주한미군에게 항의 퍼포먼스하는 대학생들
▲ 탄저균반대 대학생퍼포먼스 용산미군기지 앞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탄저균에 반대하며 주한미군에게 항의 퍼포먼스하는 대학생들
ⓒ 6.15대학생실천단

관련사진보기


'페덱스(FEDEX)'로 들어온 탄저균을 표현해보자. 작은 박스에 무엇이든 배달해주는 '페덱스' 로고를 박고, 위험물질을 알리는 해골모양 마크를 넣었다. 그리고 오산미군 실험실에서 해동된 살아있는 탄저균. 공포의 백색가루라고 불린다고 했으니 밀가루로 표현할까? 밀가루보다는 좀 더 시민들에게 눈에 잘 띄게 종이로 가루를 표현해보았다.

가장 중요한 사람, 바로 탄저균을 한국에 보내고 실험을 하고 있는 미군! 미국 군인 복장이 필요하다. 수소문을 통해 미군복을 구했다. 방독면과 함께. 이미 주한미군은 2005년부터 탄저균 백신도 맞고 있으니 탄저균의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모습을 방독면으로 표현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탄저균 위험 접근금지' 테이프까지 준비했다. 

"자주국가가 아니라 미국의 실험국가가 된 것 같다"

용산미군기지 앞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탄저균에 반대하며 미군기지 앞 침묵행진을 하는 대학생들
▲ 탄저균반대 침묵행진 용산미군기지 앞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탄저균에 반대하며 미군기지 앞 침묵행진을 하는 대학생들
ⓒ 6.15대학생실천단

관련사진보기


6일, 우리는 용산미군기지 앞에서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미군기지 앞에 선 미군이 페덱스 상자에서 탄저균을 뿌리면 이에 노출된 국민들이 하나씩 쓰러져 나가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짧은 퍼포먼스였지만 함께 준비한 대학생들은 솔직히 너무 화가 난다고 말했다. 한 친구는 "자주국가가 아니라 미국의 실험국가가 된 것 같다"며 "정부의 무책임한 대응으로 우리나라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한다"고 했다.

용산미군기지 앞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탄저균에 반대하며 미군기지 앞 침묵행진을 하는 대학생
▲ STOP 탄저균! 용산미군기지 앞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탄저균에 반대하며 미군기지 앞 침묵행진을 하는 대학생
ⓒ 6.15대학생실천단

관련사진보기


퍼포먼스를 준비하는 동안 우리가 가장 많이 생각했던 것은 우리의 생명이 실험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방어백신을 개발하고, 탄저균 위험에 노출됐을 경우 얼마나 빠르게 탄저균을 인식할 수 있는지 그 능력을 갖추는 실험이라고 하지만 흙이나 피부, 호흡기를 통해 감염될 수 있는 탄저균은 실험과정부터 국민들이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한다.

이렇게 위험이 큼에도 불구하고 더 놀라운 것은 앞서 밝혔듯 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탄저균의 반입 사실을 우리 정부가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바로 주한미군 주둔군지위협정(SOFA) 때문이다.

SOFA협정 9조에 따르면 '공용의 봉인이 있는 공문서 및 공용의 우편 봉인이 있고 합중국 군사 우편 경로에 있는 제1종 물품에 대해 세관 검사를 행하지 아니한다'고 되어있다. 지난 기간 세관 검사 되지 않은 물품들이 어떤 것인지 전혀 알 길이 없으며, 국민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물질이 들어와도 손조차 쓸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의 생명을 외면하는 SOFA 협정 이대로 가만히 둬도 되는 걸까? 한반도가 생화학무기 실험실이 되는 일, 이제는 멈춰야만 한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태그:#탄저균, #생화학무기, #탄저병, #탄저균실험, #주한미군
댓글1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