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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일조 생활을 해야 한다.
▲ 교회에 가면 맨 앞자리에 앉아 예배드린다.
▲ 교회 일에 순종하고 목사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는다.

미국의 석유 왕 억만장자 존 데이비슨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 1839~1937)의 어머니가 아들 록펠러에게 가르친 세 가지 약속이다. 외에도 '열 가지 교훈'이라 하여 '십계명'을 만들어 자녀교육에 사용했다고 한다. 거기에도 "오른쪽 주머니는 항상 십일조 주머니로 하라"는 항목이 나온다.

이토록 '록펠러' 하면 떠오르는 게 십일조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의 신앙교육으로 자란 나도 록펠러처럼 십일조는 당연한 것으로 배우고 자랐다. 내 수중에 돈이 들어오기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십일조를 드리며 살고 있다. 그러나 록펠러처럼 부자가 되지 못했다.

이는 아주 이율배반적인 상황이다. 왜냐하면 어머니에게는 물론 내가 어렸을 때 목사님들의 설교는 한결같이 '십일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 십일조를 드리라는 말은 주객이 전도된 말이다.

나에게 그리고 적어도 그런 설교를 듣고 '아멘'하며 긍정해 온 기독교인들에게, 십일조를 철저히 드려 부자가 된 사람의 대표자가 록펠러였다. 내가 언제부터 이런 설교가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부자가 되기 위해 십일조를 드리지는 않는다. 십일조든 다른 헌금이든 신앙의 표현이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드리는 게 아니다.

부자들의 자선, 또 다른 사업일 뿐

책 <부 중독자> 표지
 책 <부 중독자> 표지
ⓒ 어마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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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록펠러를 십일조와 관련지어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더라도 록펠러가 참된 신앙인의 표본에서 멀어진 것은 아니었다. 특별히 그의 자선행위에 대하여 깊은 감명을 지닌 채 살아왔다. 억만장자 록펠러가 아파 병원에 갔다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사도행전 20장 35절)는 성경구절이 벽에 걸린 걸 보고 회개하고 그때부터 자선에 최선을 다했다고 알고 있다.

자신이 힘 써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한 사람, 돈을 벌어 자신이나 가족만이 아니라 사회의 가난한 자들을 돌 본 사람, 그가 록펠러라면 얼마나 귀한가. 그런데 책을 읽으며 록펠러에 대한 이런 환상이 깡그리 무너지고 말았다. 필립 슬레이터의 <부 중독자>(어마마마 펴냄)가 그것이다. 그가 자선 사업에 쓴 돈은 아주 적은 것이었으며, 그 자선의 결과는 '이타'가 아니라 '이기'였기 때문이다.

"록펠러1세의 자선 행위는 그 가문에 상당히 이롭지만 사회적으로는 나쁜 영향을 초래했다. 해외에 새로운 시장을 형성했고, 여론을 매수했으며, 석유 생산을 증대시켰고, 흑인의 선거권을 박탈했고, 반대 의견을 무마했으며, 사회과학자들의 연구를 경제·정치 체제에 대한 급진적인 분석에서 행동주의와 사회·통제 분야로 방향을 전환시켰다."- <부 중독자> 213~214쪽

부자들을 연구한 콜리에와 호르비츠는 록펠러의 기부액 70%가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과 가문, 그들의 조직 확대에 기여했다"고 말하고 있다. 오늘날 대기업들이 어쩔 수 없이(?) 정치 자금이나 불우이웃돕기에 나서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사랑의 배려나 측은지심이 아니라 또 다른 사업일 뿐이라는 뜻이다. 또 다른 사업은 정부와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미국의 경우 부자들을 위한 조세 혜택이 대폭적으로 늘어났다. 처음에는 부자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것 같이 보였다. 1930년대에는 연방정부 소득세 수입의 3분의 2가 10만 달러 이상 소득자에게서 나왔다. 그러나 1960년대에는 소득세 수입의 절반 이상이 연간 1만 달러도 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왔다. 미국 정부는 부자들에게나 해당하는 '자본이득세'를 두 차례나 인하했다.

이는 명백히 백만장자들에게 득이 되는 조치였다. 그것마저도 제대로 납부하는 경우가 드물다. 래멋은 "대부분의 부 중독자들이 30~40퍼센트의 세금을 낼 뿐이고, 아예 1퍼센트도 내지 않는 사람도 상당수"라고 말한다. 책은 "1951년에 순이익이 약 450만달러였던 한 석유회사는 자녀가 셋이고 소득이 5600달러인 어느 부부보다도 세금을 적게 냈다"고 폭로한다. 우리나라가 법인세를 인상하지 못하고, 간접세만 주구장창 올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원리인 것이다.

부 중독은 '에고 마피아' 병이다

우리는 만나면 "부자 되세요!"라고 외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부동산 투자란 이름으로 투기가 성행하고, 쓸데없는 아파트를 몇 채씩 보유하며 시사차익을 노리는 걸 부자 되는 능력으로 치부하며 살고 있다. 1980년대 미국에 부자 열풍을 중독현상으로 본 필립 슬레이터는 알코올이나 도박 등과 마찬가지로 돈도 헤어나기 힘든 중독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른 중독과 달이 '부 중독'은 자신뿐 아니라 사회, 더 나아가 세계를 파멸로 이끈다고 보았다. 저자는 1980년 레이건 집권 이후 부자를 위한 감세 정책을 펼치며 미국이 부 중독자를 양산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고 말한다. 미국 사회는 지금도 여전히 '부 중독'에 빠져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상징물인 돈을 실물처럼 대하고 수단인 돈이 목표로 둔갑할 때 '부 중독'의 덫에 걸려들게 된다. 책은 미국의 8대 억만장자들을 예로 들며 '부 중독'의 파괴적 폐해를 조목조목 들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이야말로 대단한 성공자라고 본다. 그런 이데올로기 자체가 이미 중복된 사회의 모습이다. '부 중독'은 사회 전체를 '에고 마피아' 집단으로 만든다.

돈에 중독된 억만장자들은 이미 '에고이스트'다. 당연히 자신을 위해 "끊임없이 서로를 지지하고 보호해 줄 다른 에고 독재자와 손잡고, 일종의 에고 마피아를 형성"하게 된다. 관료제와 손잡은 현대의 에고 마피아 집단인 억만장자들(책은 '부 중독자'와 동일 개념으로 사용)은 자신들이 편안한 세계를 건설하려 애쓴다.

당연히 정치 집단과 손잡는다. 또 정치 집단은 그들의 부를 맘껏 이용한다. 둘은 공생하는 마피아 집단이 된다. 탐욕의 신경질적 반응은 정치를 중앙집권적으로 만들고, 결국 온 사회가 에고 마피아의 실질적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중독자들은 대부분 어렸을 적 외로움, 상실감, 정서적 불안 등 모종의 정서적 불안에 기인하는데, 부 중독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결핍을 보상하려는 만성적 탐욕이 있는 한 부 중독은 계속된다.

'움켜 쥔 손'으로 상징되는 부 중독자 여덟 명에 대해 읽으며, 현대 사회가 앓고 있는 병세가 심각함을 느낀다. 가난한 사람이 생계를 유지하기조차 힘겨운 것이 부 중독자들이 모든 자원을 독차지하기 때문이고, '부 중독자가 되지 않고는 살아남기 힘든 사회'가 바로 우리가 사는 사회임을 인식하게 된다. 이는 '소유의 배타성'에 대한 언급이다.

저자는 '모든 부자가 부 중독자'라는 논리를 펼치는데, 이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는 생각이다. 본래 인간의 하인으로 만들어진 돈을 상전으로 모시는 한 부자는 부 중독자다. "우리는 자신을 섬기기 위해 돈을 사용하기보다 돈을 섬기기 위해 자신을 사용한다"는 저자의 충고를 깊이 새길 필요가 있다. 어리석게도 록펠러를 좋은 신앙인으로 존경했던 한 사람으로, 부자에 대한 환상에 젖어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덧붙이는 글 | <부 중독자>(필립 슬레이터 지음 / 이시은 옮김 / 어마마마 펴냄 / 2015. 5 / 304쪽 / 1만4000 원)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그냥 지나치면 안 되는 길일 것 같아 그 길을 걸으려고요.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부 중독자

필립 슬레이터 지음, 이시은 옮김, 어마마마(2015)


태그:#부 중독자, #필립 슬레이터, #이시은, #서평, #억만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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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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