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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메세지가 왔다.

"선생님! 뵙고 싶은데 일하는 곳에 찾아가도 될까요?"

몇 달 전, 장애인보호작업장 '담장'이라는 곳에서 글씨를 부탁해 왔다. 이곳은 국수를 생산하고 싶다며 허영만 만화의 <식객> 국수편의 주인공인 권오길 손국수 대표에게 기술을 전수받은 곳이기도 하다. 재능기부형식으로 회사의 이름과 함께 국수포장글씨를 써주었는데, 그 국수가 첫 생산되었다고 내게 가져왔다.

생산에는 성공했지만, 판로를 뚫어야 하는 게 만만치 않아 보인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5명이 먹는 국수 1봉지의 값이, 아메리카노 커피의 1잔 값도 아닌 2000원이라는 데 놀랐다. 국수를 팔아서 생기는 이익금은 장애인들의 인건비로 돌아간다고 했다.

마침 대접할 것이 필요했는데... 작은 '결심'을 하다

회사 상호와 국수포장 글씨를 해주어 첫 출시된 담쟁이 국수
▲ 담쟁이 국수 캘리그라피 회사 상호와 국수포장 글씨를 해주어 첫 출시된 담쟁이 국수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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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나는 6번째 개인전의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던 중이었다. 문하생 등과 조촐한 오프닝을 할 예정이었는데, 다과를 나눠야할지 식당을 예약할지 고민하던 중이었다. 100명 정도 예상되기에 식당을 예약해도 만만치 않은 경비가 들 터였다. 다과를 한다고 해도, 식사가 되지는 않으니, 멀리서 오는 분들을 위해 식사를 따로 대접해야 할 처지였다.

이번 전시는 '묵향으로 열어가는 사랑의 세상 전시' 6번째이다. 3년 만에 여는 개인전이다. 국립법무병원에서 작년부터 상설전시하기를 희망했지만, 경비를 비롯해 제반여건이 여력이 안 되어 추진하지 못하다가 올해 준비를 했다. 일단 그곳에 장기적으로 전시한 후, 작품을 이동해 와서, 오는 10월에 청주문화관에서 다시 전시하려고 한다.

아직 작품은 반도 하지 않았는데, 문하생들 중의 누군가는 오프닝에 색소폰을 불어준다고 한다. 고향의 지인인 테너성악가는 노래를 불러준다고도 한다. 청각장애인이긴 하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나인지라 마다하지 않고 반기기로 했다.

살아있음에 고맙고, 무언가 '꺼리'를 만들어서 나눌 수 있어 고마웠다. 이번 전시 작품 몇 개는 담쟁이국수를 비롯하여 국립법무병원과 기타 공공시설에 환원하기로 했다. 오프닝 때 담쟁이국수 측에 작품 기증을 이야기했더니, 전혀 생각하지 않은 이야기가 덩달아 오고가게 되었다.

국수값만 미리 내면, 국수를 공장에서 미리 삶아서, 오프닝 때 담쟁이국수 대표가 직원들과 함께 가져오겠다는 것이다. 전시현장에서 100그릇쯤 먹게 해준다는 얘기였다. 문하생 중에는 전시회 분위기가 '먹자판'으로 어지러워질 수 있다며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어차피 뷔페 다과회를 하거나 차나 떡을 대접해도 사람들이 접시를 들고 먹는 것은 비슷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오늘은 출근해서 일하는 기관의 관장님께 천막과 탁자와 간이 의자 등을 대여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이미 이번 전시에서 생애 처음으로, 아니 아마도 모든 전시회에서도 보기 드문 풍경인 '국수잔치'를 하기로 작정한 셈이다.

국수의 이름은 담쟁이국수이다. 자생적으로 서로 서로 손을 잡고 어깨동무를 해서 위로 조금씩조금씩 올라가는 담쟁이들의 생명력처럼, 이 국수도 대기업이 진출한 국수시장에서 그렇게 살아남아야 할 것 같다.

전시장도 청주시를 설득해서 넉넉하게 청주문화관 1, 2실을 모두 빌렸다. 나 혼자만 하는 전시가 아니다. 30대에서 80대까지 25명의 다양한 문하생들도 2실에서 전시를 펼친다. 장애 스승과, 모자란 선생에게서 다년 간 묵향을 배우고 있는 비장애 문하생들의 '동행'이다.

인생길에서 서로의 기운을 북돋아 주는 동행은 많을수록 좋다. 따로 따로 떨어져 다른 곳에서 살아도 생명의 존재감은 충분히 있을 터이다. 하지만 한 자리에 모여서 모두 사이좋게 어우러지는 모습은 생명의 존재감 그 이상의 느낌을 우리에게 심어준다.

가파른 담벼락을 올라가는 담쟁이들의 모습들은 고달파 보이지만 가을이 되면 그 물든 단풍의 모습은 그냥 아름답기만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이번의 전시는 아름다운 동행전이 되었으면 하고 간절히 소망한다.


태그:#담쟁이국수이야기, #서예가 이영미, #근원 이영미, #근원의 캘리그라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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