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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춤 선물 프로젝트 <춤, 바람(Dance, Wishes)>
ⓒ 홍은예술창작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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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상수동의 한 카페에서 젊은 여성이 잔잔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그녀가 춤을 추는 이유는 언니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이다.

"저는 미술을 하고 있어요. 어렸을 적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죠. 언니도 하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도전하지 못했어요. 최근 몇 년 동안 우울해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습니다."

언니한테 늘 미안했던 그녀는 오해를 풀고 싶었다 말했다. 하고 싶었던 일을 못하는 언니가 늘 안스러웠다.

"언니가 힘들어하는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힘을 줘야할지 몰랐어요. 직접 언니에게 힘내라고 말하기보다는 스스로 힘이 날 수 있는 상황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언니에게 춤을 선물하려고 마음 먹었죠." 

김씨는 언니를 카페에 초대했다. 언니는 이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누군가의 공연을 보는 줄로만 알았던 언니는 동생의 갑작스러운 이벤트에 깜짝 놀랐다.

"언니!"
"응?"
"언니는 몰랐겠지만... 언니가 힘들어하는 동안 어떻게 하면 기분 상하지 않게 도와줄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 내가 이렇게 익숙하지 않은 춤에 도전하는 것처럼 언니도 도전해봤으면 좋겠어... 그리고 앞으로도 웃는 날이 많아졌으면... 언니, 사랑해."

빨간 원피스를 곱게 차려입은 그녀가 카페 중앙에서 춤을 춘다. 하고 싶은 말을 몸으로 표현했다. 동생이 준비한 공연을 지켜보던 언니와 부모님은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공연이 끝나고 둘은 그렇게 서로를 부둥켜 안았다. 이날 언니는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서 잊지 못할 프로포즈를 받았어요."

춤을 추는 사람뿐만 아니라 춤을 보는 사람도 감동을 받을 수 있는 프로젝트 '춤, 선물'에서 언니에게 춤을 선물한 김채영(27)씨의 실제 사연이다. 마음 속에 묻어두고 표현하지 못한 이야기, 가장 소중한 사람을 위해 말로 할 수 없었던 마음과 바람을 담아 춤으로 선물했다.

홈페이지를 통해 춤을 선물하고 싶은 대상과 사연을 접수받아 15명을 선발했다. 선발된 참가자들은 총 15주에 걸쳐 자신만의 춤을 연습했다. 전문 무용수의 지도로 체계적인 교육도 받았다. 이것은 소중한 사람을 위한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춤 선물 프로젝트 <춤, 바람(Dance, Wishes)>이다.

국내 유일한 '무용' 분야 창작 레지던시, 홍은예술창작센터

 홍은예술창작센터 전경
ⓒ 홍은예술창작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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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던시(Residency). 특정 지역에서 일정 기간 동안 머물면서 작업을 하거나 문화체험, 전시 등의 활동을 하는 공간을 말한다. 보통은 주제나 장르에 따라 구분되며, 예술가들과 관계기관 운영자들의 교류와 교육을 위해 운영된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레지던시와의 긴밀한 교류를 통해 그 영역이 점차 넓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운영되고 있는 레지던시의 대부분은 시각예술이 주를 이룬다. 국립현대미술관 레지던스나 인천아트플랫폼과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데 상대적으로 공연예술로 특화된 경우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그 중에서 '무용'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곳은? 더 어렵다.

국내에서 운영되고 있는 '무용' 기반의 레지던시 사업은 조직의 성격이나 목적에서 차이가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LIG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LIG아트홀과 최근에 명칭이 변경될 홍은예술창작센터가 그것이다.

현대무용과 인디음악 등 실험무대를 위한 극장인 LIG아트홀은 다양한 계층의 관람객을 위한 공연을 주로 한다. 홍은예술창작센터는 예술협업과 창작지원이라는 큰 틀 아래 시민대상 프로그램과 중장기적 육성 지원사업을 진행한다.

그런데 LIG아트홀은 최근 모기업이 바뀌면서 공연장 운영이 대폭 축소됐다. 실질적으로 무용을 대표하는 레지던시는 홍은예술창작센터가 유일하다고 볼 수 있다.

'커뮤니티 아트'를 실천하는 창작공간, 만족도 높아

홍은예술창작센터는 서울의 도심재생 프로젝트 일환으로 시작된 새로운 개념의 문화예술 공간이다. 낡고 버려진 공간을 재활용해 예술가들에게 창작공간을 제공하는 취지로 조성된 서울시 창작공간 중 하나다.

센터는 이전에는 서부도로교통사업소 건물로 사용됐다. 사업소에는 늘 거대한 중장비 차량이 즐비했고 삭막한 창고동이 가득했다. 한적한 주택가 안에 위치했지만, 지금의 서울숲 근처 래미콘 공장처럼 분위기는 음침했다. 마침내 2011년 5월, 이곳은 '예술-자연-사람'이 어우러지는 창작공간을 목표로 새롭게 태어났다.

홍은예술창작센터는 홍은동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주택가로 둘러쌓인 이곳은 홍은동만의 지리적 특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주위에는 학교가 많다. 일단 '명지'라는 이름이 붙은 학교는 다 모인 것 같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심지어는 대학교까지...

대로변에서 한참 벗어난 곳에 위치했기 때문에 한산할 정도다. 근처 연희동은 어떤가? 화교들이 밀집한 곳으로 동남아 이주민들이 모여있는 다문화 가정이 많다. 오래된 주택가에 노인들이 많고, 맞벌이 부부도.

정적인 동네 특성으로 '커뮤니티'가 발달됐다. 이 때문에 홍은예술창작센터는 현대무용과 심오한 예술보다는 '커뮤니티 아트'에 주목했다. 예술가를 위한 레지던시나 무용가만을 위한 연습실로 운영하지 않았다. 수혜 대상을 확대시켰다. '누구를 위해서 운영하는가'를 고민했다. 지역 커뮤니티에 기반한 주민들에게 개방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무엇보다 홍은예술창작센터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을 살펴보자.

 홍은예술창작센터의 시민참여 프로그램 'ABCD'
ⓒ 홍은예술창작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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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예술창작센터에서 진행한 프로그램은 분명히 다른 곳과 차별된다. '왜 춤을 통해 치유와 힐링이 될 수 있는지'를 이해할 것이다. 무엇보다 '춤은 누구나 출 수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된 <ABCD>가 눈에 띈다. 풀어서 쓰면 'Any Body Can Dance'라는 슬로건으로, 센터에 입주한 홍댄스컴퍼니(대표 홍혜전)와 라컴퍼니(대표 이양미)가 이 프로그램을 맡았다.

이들은 지역주민이 함께하는 '커뮤니티 댄스'를 연구했다. 흔하디 흔한 문화센터에서 진행하는 춤 수업과 비교하면 안 된다. 계층별, 프로그램별, 내용에 따라 세분화돼서 운영했다. 참여자들은 몰입도가 높아졌다. 아이들을 위한 것부터 학생들까지 맞춤형으로 진행했다. 지역주민들의 요구에 다가섰고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기본적으로 홍은예술창작센터가 예술가들을 위한 창작공간임은 분명하다. 유망한 예술가를 위한 지원사업인 '닻(DOT)'이 있으며, 입주예술가를 위한 창작지원사업들도 전개한다. 예술가들끼리 해외 국제교류사업도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예술가들은 지역주민이 함께하는 무용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진행했다. 앞에서 언급했던 무용워크숍 <ABCD>뿐만 아니라 주민의 자발적인 동아리 프로그램인 <꼴, 좋다>, 서울을 배경으로 진행했던 무용사진전 <댄스토리 서울(Danstory Seoul)>은 대상이 명확했다.

무용이 가져오는 기대효과는 체험을 해본 자만 알 수 있다. 그것이 힐링인지 킬링인지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 말하는 것은 무모하다. 생각 이상으로 무용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많다.

홍은예술창작센터 최재훈 매니저

 홍은예술창작센터 매니저 최재훈
ⓒ 이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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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은예술창작센터'에서 '서울무용센터'로 이름이 변경될 예정이라고 들었다. 어떤 의미가 있나?
"홍은예술창작센터는 무용예술을 중심으로 무용, 무용연계 가능한 예술가의 창작지원 기능을 하던 레지던시 공간이었다. 더불어 입주예술가 제도가 있어 입주예술가들의 창작발표를 하고, 지역 주민을 위한 무용워크숍 등을 운영했다. 홍은예술창작센터의 창작지원 및 시민대상 프로그램의 방향성이 '공간'을 중심으로 한정된 무용예술가의 창작지원을 수행하고 있었다면, 서울무용센터로 변경되면서 지원금, 공간의 인프라, 공간의 기획력이 통합된 예술지원 공간으로 확장되었다고 본다. 여기에 무용예술의 데이터 베이스 작업이 신설되고, 무용 창작 역량강화를 위한 국제교류사업, 예술 강사를 활용한 워크숍, 동아리 운영 등 '무용'을 중심으로 한 대시민 서비스 기능도 이어진다."

- 공연예술 장르 중에서 '무용'이라는 분야로 특화된 레지던시. 흔하지 않은 것 같다.
"현재 무용 중심의 레지던시 사업을 운영하는 거의 유일한 곳이 되었다. 홍은예술창작센터는 무용연습실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무용 공연을 발표할 극장 형태의 공간이 없었는데, 시설 개선 공사를 진행하면서 오픈 리허설 형태의 공연 공간을 확충할 계획이다. 그간 쌓아온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창작발표라는 인프라가 더해져 큰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

-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예술가보다는 지역주민을 위한 프로그램이 많은 것 같다. 주로 어떤 것을 이용할 수 있나?
"사실은 예술가 창작 프로그램을 나름 알차고 촘촘하게 운영하고 있지만, 지역주민을 위한 프로그램의 운영 횟수가 훨씬 더 많은 것은 사실이다. 주민을 위한 서비스는 주택가에 자리한 도심 레지던시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입주예술가들과 함께 무용워크숍을 매년 130~150회차 운영하고 있다. 단순히 춤의 테크닉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무용을 매개로 힐링, 창의체험, 가족 유대, 재활 등의 다양한 연령대와 장르를 포괄하고 있다. 또한 춤을 선물하는 프로젝트 <춤, 바람(Dance, Wishes)>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춤을 선물할 수도 있다."

- 공간에서 가장 자랑하고 싶은 장소를 소개해 달라.
"개관하면서 공간 조성에 직접 관여했기 때문에 모든 곳이 다 좋지만, 2013년 말 갑자기 누수로 인해 시민들을 위한 카페 <책eat수다>의 공사를 해야할 일이 생겼다. 단순히 공사로 마무리할 수 있었지만 입주예술가들이 모두 힘을 모아 카페를 새로운 예술공간으로 만들었다.

균열된 바닥 타일을 쌓아 조형물을 만들고, 조각과 영상으로 새롭게 탄생한 <책eat수다> 공간은 정말 감사한 곳이다. 함께 수많은 무용수들의 땀과 눈물이 배어 있는 무용연습실은 센터만의 자랑이기도 하다."

- 향후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운영방안이나 철학을 말한다면?
"2016년을 기점으로 무용분야의 창작 허브의 기능을 할 계획이다. 무용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다면 서울무용센터를 찾으면 된다, 무용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막연하게 무용이 무엇인지 궁금할 때, 무용예술가건 시민이건 할 것 없이 가장 먼저 서울무용센터를 떠올리게 하고 싶다. 그래서 앞도 무용(舞踊), 뒤도 무용, 그리고 전무후무(前無後無)의 의미를 모두 포괄하는 전무후무(前舞後舞) 프로젝트를 기획할 예정이다."

- 마지막 질문이다. '무용'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 무용 레지던시를 운영하면서 늘 질문하고 고민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춤'과 '무용'이라는 두 가지 단어가 분리된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밖에 없다고 하더라.

굳이 구별을 하자면 '춤'은 몸을 움직이는 행위 자체에 가깝고 '무용'은 '춤'을 추기 위해 갖춰져야 할 몸에 대한 고민, 표현에 대한 연구, 그리고 그 표현을 통해 드러내고 싶은 목소리 등 조금 더 포괄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몸을 움직여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가장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 장르가 무용이라고 생각한다."

홍은예술창작센터는?
▶지상2층 (연면적 2,044.14㎡)
▶서울시 서대문구 명지2길 14 (홍은동 304-1)
▶운영시간 : 월~일 10:00~18:00 / 설,추석 연휴 휴관
▶02-304-9100
▶지하철 : 2호선 홍대입구역 8,9번 출구 중앙버스 노선 7612 환승 후 '명지대삼거리'하차 도보 5분
3호선 홍제역 3번 출구 앞 7713 (신촌행 방면) 환승 후 '명지대삼거리'하차 도보 5분
6호선 새절역 1번 출구 앞 7017,7018,7021 환승 후 '명지중고'하차 도보 5분
▶버스 : '명지중고' 정류장 하차 후 도보 5분 [간선] 7017,7018,7019,7021,7714,8774
'명지대삼거리' 또는 '명지대입구' 정류장 하차 후 도보 5분 [지선] 7611,7612,7713,7716
www.facebook.com/sas.hongeun
http://cafe.naver.com/hongeun2011


덧붙이는 글 | 최재훈 매니저와의 인터뷰는 2015년 6월 19일 진행됐습니다. 이 기사는 버려진 공간을 재활용해 문화예술 창작공간으로 재탄생한 사례를 소개하는 [이런 공간 어때요] 연재기사 중 하나입니다.



태그:#서울시창작공간, #서울무용센터, #무용, #홍은예술창작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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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만 씁니다." 매주 금요일마다 한겨레신문에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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