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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 별별시장'은 서울 구로 아트밸리 예술극장 앞 구로 근린공원에서 열리는 지역마을 장터다. 최근 '마을'이라는 단어가 여기저기에서 많이 회자되고 있긴 하지만, 대도시 서울에서 '마을'을 상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교육이나 직장, 혹은 경제적인 이유로 이동이 잦은 대도심에서 오랫동안 한 곳에 머물며 '마을'을 만든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이며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마을장터는 이처럼 도심에서 조각난 관계성과 공동체성을 다시 환기시키는 좋은 계기가 된다. 구로 별별시장이 그렇다.

구로 별별시장을 주도적으로 만든 이들은 지역에 거점을 둔 20, 30대 청년문화활동가들이었다. '구로는예술대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팀은 예전부터 문화와 예술작업을 통해 구로 곳곳에 스며들어 주민들을 만났다. 함께 공연을 만들거나, 전통시장에서 상인들의 1분 초상화를 그리기도 하고, 인문학 공부모임을 만드는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왔다.

이들은 '장터'라는 활동이 지역에서 공동체를 형성할 때 아주 효율적이면서도 즐거운 방법이 될 수 있음을 발견하곤, 2013년부터 구로 별별시장을 기획해왔다. 장터는 다양한 지역 활동가와 예술가, 지역주민, 그리고 구로구청의 적극적인 협력으로 시작되었다. 애초에 예산이 적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고생을 많이 했지만, 함께 고생하는 과정에서 정을 붙이는 지역주민들이 하나둘씩 더해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거버넌스(governance)라고 표현하는 시민과 행정의 협의 체제는 공허한 구호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구로 별별시장이 생겨나고 마을에 스며들어간 과정을 살펴보면, 진정한 거버넌스는 결국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하게 된다. 마을 활성화 사업에 대한 구로구청의 힘있는 의지와, 그것을 구현한 청년활동가들의 노력, 그리고 여기에 협력한 다양한 시민주체들의 활동은 구로 별별시장이 가진 특유의 안정성과 활기를 만들어낸다.

2년간 진행된 청년들의 지역장터 만들기 활동은, 지역에게 활기를 주었고 이들에게는 지역 활동의 또 다른 통로를 열었다. 2014년이 지날 때 구로 별별시장이 지역에 정착했다고 판단한 이들은, 장터의 운영주체를 지역 주민들에게 온전히 넘겨주며 이제는 '구로시장'이란 지역 전통시장에서 '영-프라쟈'라는 이름의 상가 활성화 실험으로 영역을 옮겨갔다. 꽃샘추위가 가시지 않은 3월의 어느 날, 이곳에서 2년간 마을장터를 이끌어온 청년기획자 윤혜원씨를 만났다.

"구청에서 많이 도와줘... 담당 주무관님이 트럭 운전까지"

윤혜원 구로별별시장의 장터기획자 윤혜원
▲ 윤혜원 구로별별시장의 장터기획자 윤혜원
ⓒ 윤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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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로는예술대학에서 기획한 구로 별별시장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예요?
"원래 좀 내향적인 성격이었는데, 친한 선배가 구로에서 마을 기획자 양성 프로그램을 소개해주었어요. 수업을 들으면서, 구로에 터 잡고 활동하는 청년 활동가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어요. '구로는예술대학'이라는 팀이었죠. 이 팀에서 어울리다가 어느 날 구로구청의 마을공동체 관련 담당 공무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그때 구청의 주무관님이 우리에게 마을장터를 제안하셨고, 그래서 시작되었습니다. 나중에 장터를 만들기에 우리가 확보한 예산이 너무 적다는 것을 알았어요. 우리도 몰랐고, 구청에서도 몰랐어요. 그때만 해도 장터 만드는 데 얼마나 비용이 드는지 몰랐거든요. 그래서 예산이 부족한 것은 모두 '몸빵'이 되더라구요. 그걸 진작에 알았다면 안 했을 것 같아요.(웃음)"

- 구로 별별시장은 어떤 사람들과 함께 만들었나요?
"구로뿐 아니라 서울시에 마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청년 활동가 네트워크가 여기저기에 있어요. 이 친구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구로에서 같이 활동하는 마을활동가 친구들도 도와줬구요. 우리가 힘들어서 헥헥거릴 때 옆에서 같이 '몸빵' 해준?(웃음) 저희들끼리만 있었다면 아마 못했을 거예요. 그리고 구로구청에서도 많이 도와줬는데, 구로문화재단 쪽 분들을 연결해서 게스트도 섭외해주고, 장비도 대여해줬죠.

행사 날에 일손 부족할 때는, 담당 주무관님이 트럭 운전까지 해줬어요. 막 부려먹었네.(웃음) 그런데 이게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이야기 들어보니까 관에서 파격적인 지원을 해준 거더라구요. 그때 우리는 뭣도 모르고 이것저것 막 해달라고 그랬는데, 이제 와서 생각하니 고맙더라구요. 아직도 구로구청 공무원 분들이랑은 친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구로별별시장 구로의 마을장터 "구로별별시장"의 밤풍경
▲ 구로별별시장 구로의 마을장터 "구로별별시장"의 밤풍경
ⓒ 윤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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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 사업을 할 때 시민단체들은 기관과 협력을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은데 구로 별별시장이 행정기관과 잘 협력할 수 있었던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그때 당시에 마을 만들기 사업이 한참 유행할 때였는데, 지자체에서도 성과를 내야 하잖아요. 그런데 딱히 할 만한 일은 없었고, 그런 시기였죠. 그런데 마침 구로에서 문화예술 활동하는 구로는예술대학이라는 툴이 있었고, 청년들이 맨몸으로 지역에서 이런 활동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구청 입장에서는 굉장히 신기하고 반가웠나봐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장터 만드는 데 지원금이 별로 없어서, 미안했던 거 같아요. 젊은 애들 고생시킨다고 생각하니까.

돈 없으면 어떡하겠어요. 같이 '몸빵' 해야지. 그러다가 고운 정, 미운 정 다 든 거겠죠.(웃음) 실무를 해보면 알잖아요. 이 사람들이 성과 내려고 갑을 관계로 독촉하는 건지, 진짜 해줄 수 있는 걸 열심히 조력해주는지 말이에요. 우리는 진짜 지역에서 재미있고 의미있는 일 한번 해보자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주로 '몸빵'을 같이 하면서 친해지긴 했지만, 덕분에 아직도 구로구청 공무원 분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 같습니다."

"세련됨 포기하고 친밀함 추구하면서 일상을 이벤트로"

- 이런 일이 처음이었던 건데, 행사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역량은 어떻게 키웠다고 생각하나요?
"장터는 1년에 다섯 번 만들었는데, 사실 처음에는 경험이 없었으니까 굉장히 힘들었어요. 첫 해에는, 장터 할 때만 되면 애들이 막 말라가.(웃음) 워낙 현장에서 무거운 거 들고 나르면서 체력이 많이 늘었죠. 그냥 공부만 한 대학생들이 전기 설치를 언제 해봤겠어요. 테이블을 짧은 시간에 수십 개를 깔아야 하는데, 깔아도 깔아도 끝이 안 보이고. 뭐 할 게 그리 많은지 모르겠더라구요. 비용이 많은 장터에서는 이런 현장 세팅 같이 일손이 많이 필요한 일은 아르바이트를 써서 하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우리 손으로 다 해야 했어요.

홍보물 만드는 건, 아는 친구한테 부탁해서 만들고, 전단지는 우리가 직접 거리에 나가서 뿌렸는데 시간 없어서 비 오는 날까지 붙이러 다니고 그랬네요. 나중에는 별별시장 하는 날이 다가오는 게 무서워지더라구요. 그래도 다행히 멤버 중에 큰 축제에서 실무 경험을 해본 분이 있었어요. 이분 덕분에 현장에서 동선 짜고, 공간 배치하고, 사람들 받고 하는 기본적인 실무 프로세스를 갖출 수 있었어요. 그러면서 행사가 진행될수록, 우리들도 익숙해지니까 점점 할 만해졌죠."

- 구로 별별시장은 어떤 곳에서 펼쳐졌나요? 특색 있는 프로그램은 무엇이 있었죠?
"구로아트밸리 옆 공원에서 했어요. 장터를 하는 공원이 커서 셀러(장터에서 물건을 파는 장사꾼)는 기본적으로 50~60팀 정도 왔어요. 1~2회 때는 사람들이 많이 안 왔는데 나중에는 홍보가 잘 돼서 많이 왔어요. 저희가 발로 뛴 것도 있지만 구청에서도 보유하고 있는 마을공동체 네트워크를 많이 연결해줬어요. 주민자치위원회도 많이 나서줬구요. 2년차에는 기본적으로 오는 손님들이 확보가 됐던 것 같아요.

주로 마을 주민들 중심의 벼룩시장이었어요. 주민들이 셀러가 되고, 주민들이 소비자가 되는 거예요. 요즘 서울에서 대안장터가 많잖아요. 보통 화려한 악세사리나 맛있는 먹거리를 기획프로그램으로 만들곤 하는데, 저희들은 그런 기획프로그램을 많이 넣지 않았어요.

대신 마을과 가능한 가깝게 다가가려 했죠. 물론 공간을 연출하고, 음악이 들어가고, 동네 예술가들이 참여하면서 약간은 다른 풍경이 만들어지긴 했고, 이게 부녀회 벼룩시장과 비교하면 재미있는 풍경인 건 확실해요. 그런데 다른 대안 장터들과 비교하면 프로그램 자체가 대단히 재미있고 세련된 것이라 보긴 어려워요.

그런데 우리에게 중요했던 것은 마을 주민이 주도적으로 참여한다는 것 그 자체였습니다. 처음에는 예산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주민 중심으로 간 게 있긴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이런 장터를 만들어가는 재미를 발견할 수 있었어요. 세련됨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친밀함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특화되어간 거죠. 진짜 동네 아이들, 아줌마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마실 나오는 장터가 되어버린 거예요.

이렇게 동네 주민들이 정을 주기 시작할 때 매달 새로운 의도치 않은 사건들이 생깁니다. 장터 전날이 되면 동네 아이들이랑 동네 형이 나와서 장터 세팅하는 일을 돕는다거나, 공원을 지나가는 아이들과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동네 목수가 기획하지도 않은 즉석 워크숍 같은 걸 만들기도 해요. 바람이 강해서 간판 같은 게 떨어져 나가 고장나면, 기름집 아저씨나 철물점 아저씨가 고쳐주기도 하구요. 이런 일들이 매달 일어났어요.

또 저희들과 함께 장터를 만든 친구가 결혼을 할 때는 구로 별별시장에서 성대한 프러포즈를 우리가 만들어줬어요. 그 친구는 우리에게 절 해야 해요.(웃음) 구로에서 활동하는 브라질 음악 하는 악단을 초대해서 공연도 하고, 음식도 같이 만들어 먹고. 그러면서 '프러포즈'를 했는데, 무척 기억에 남아요. 세련됨을 포기하고, 친밀함을 추구하면서 만난 이런 일상이 이벤트가 되는 풍경이 우리 구로 별별시장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아닐까 싶네요."

마을영상제  구로 별별시장에서 마을영상제를 즐기고 있는 청년들
▲ 마을영상제 구로 별별시장에서 마을영상제를 즐기고 있는 청년들
ⓒ 윤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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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부터는 별별시장을 지역주민들에게 돌려줬잖아요. 그 활동을 계속 발전시키지 않고 지역에 환원한 이유는 뭔가요?
"처음부터 구로 별별시장은 우리 청년 기획자들의 장기적인 진로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사업이 아니었어요. 구로라는 지역에, 마을 사람들이 서로 어울릴 수 있는 계기를 장터를 통해 만들어보자는 뚜렷한 목표를 가진 프로젝트였죠. 3년이 계획이었어요. 그게 2년 만에 어느 정도 성공한 겁니다.

그 다음 과제는 이 프로젝트가 마을 안에서 자생력을 가지고 스며들 수 있게 만드는 거였어요. 별별시장은 2단계로 진입한 거구요. 새로운 실험을 시작한 것 같습니다. 저희도 여전히 회의에 참여하는 등의 도움을 드리고 있구요. 작년까지 함께 했던 지역 활동가들과 시민운동 단체들이 서로 품앗이를 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에게도, 지역 주민들에게도 뜻 깊은 기억이 되었는데요. 앞으로도 좋은 방향으로 잘 진화하면 좋겠어요."

"골목 안에 있는 차이 발견하고 드러내는 작업 즐거워"

- 별별시장 후 연결된 다른 프로젝트가 있다면?
"관련해서 크고 작은 제안들은 많이 들어오는 편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주력한 것은 구로에 있는 전통시장인 '구로시장' 활성화 사업에 참여한 거예요. 시장 사업은 저희가 구로 별별 시장을 하기 전부터 해온 활동인데, 지금은 청년들이 전통시장의 슬럼화 되어 있는 빈점포 골목에 여러 상가가 함께 들어가 창업해 한 단지를 만들었어요. '영-프라쟈'라는 이름의 상가인데요. 이게 저희들이 지금 집중하고 있는 활동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구로 별별시장처럼 화려한 이벤트보다는 골목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게 더 좋아요. 취향의 문제이긴 한데, 개인적으로 골목을 돌아다니는 걸 무척 즐깁니다. 구로시장은 잘 계획된 구역이 아니라, 방사형으로 펼쳐진 재미있는 골목인데요, 저는 골목 구석 구석에 있는 인상적인 장소를 찾아내는 걸 무척 좋아했어요.

골목 안에 있는 차이를 발견해내고, 그것을 드러내는 작업이 즐겁다고 생각했는데요. '영-프라쟈'는 오래된 전통시장의 골목 안에서 다른 활동성을 만들어내는 작업이에요. 아직 시작단계이긴 한데, 당분간은 이 작업에 집중할 듯합니다."

구로의 청년들과 영프라쟈 구로별별시장을 만든 청년기획자들은 이제 구로시장 활성화사업인 영프라쟈로 활동터를 옮겨갔다.
▲ 구로의 청년들과 영프라쟈 구로별별시장을 만든 청년기획자들은 이제 구로시장 활성화사업인 영프라쟈로 활동터를 옮겨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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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하고 있는 문화기획을 5년쯤 후에도 계속 할 계획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계획하고 산 적이 없어서 모르겠어요. 계획을 세우지 않고 사는 걸 불안해한 적은 없던 거 같아요. 매번 새롭고 모르는 일을 할 때 희열을 느끼거든요. 이 일이 익숙하다고 느끼면 그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역 활동이나 활동가로는 살고 싶은데 '구로에 뼈를 묻겠다' 이런 생각으로 하지는 않아요. 구로 별별시장이나 '영-프라쟈'가 저한테 불안을 해결시켜주는 장치라는 생각은 안 해본 것 같아요. 이런 일을 하면서 배우고 성장하고 그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어요."

- 장터기획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마을 활동이나 사회적 경제에 대해서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들어오는 분들이 있는데 자기 삶이 아름다워질 거라는 '나이브'한 생각으로는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걸 선택하는 만큼 더 치열하게 부딪혀야 하는 것도 많고 자신의 가치관이 여기서 다 충족될 수 없다는 것도 알아야 해요. 대안적인 삶에도 답안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남들이 사는 방식을 따라할 필요도 없고요. 자기 삶 안에서 벌어지는 지금, 여기의 현장성과 선택이 자기 자리를 만들어 내는 거니까요."

○ 편집ㅣ최규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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