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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만일 국민들에게 공언한 것의 절반만이라도 실천했다면 지금쯤 대한민국은 희망과 활력으로 넘치는 사회가 되었을 것이다. 남북관계는 경제협력을 넘어 '통일대박'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을 것이며, 저소득층 어르신들은 기초연금 혜택으로 박스를 줍는 고달픈 일상에서 벗어났을 테고 청년들은 중동과 중남미 지역을 누비며 각자 자신의 꿈을 펼치고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세월호 참사로 고통을 겪고 있는 가족들이 지금처럼 광화문 광장에서 노숙을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말잔치가 화려할수록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참담하기만 하다. 국가로부터 위로와 사과를 받아 마땅한 세월호 가족에게 물대포와 켑사이신 세례를 퍼붓는 현실에서 더 이상 무엇을 말하랴.

진심으로 무릎을 꿇을 줄 알았던 무한책임의 지도자

1970년 12월 7일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위령탑에 특별한 손님이 찾아왔다. 그는 경건한 마음으로 위령탑 앞에 무릎을 꿇었다. 수십 대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나는 독일 역사의 나락에서, 그리고 수십만 희생자의 집 아래에서 인간이 행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다.'

독일 통일의 물꼬를 튼 서독수상 빌리브란트. 그는 히틀러의 유대인이 학살이 자행될 당시 나치 정권에 맞서 싸웠던 양심적 정치인이었다. 개인적으로 그는 유대인 학살에 책임이 없었고 사죄할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조국 독일이 저지른 죄악에서 스스로 자유로울 수 없었기에 서독정부 수반으로서의 권위를 거부하고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굻은 것이다. 그의 사죄는 정치적 쇼도 아니었으며 외교적 전략도 아니었다. 그의 진심은 훗날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는 바탕이 되었고 결국 독일은 통일을 이룰 수 있었다.

빌리브란트의 리더십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소통하려는 '진심' 그 자체에 있었다. 진심은 거짓 눈물이나 화려하게 포장된 말잔치로는 흉내 낼 수 없는 가치이기도 하다.

우리는 어떤 리더를 원하는가?

안덕훈 저, <사람사는 세상을 꿈꾼 사람들>
 안덕훈 저, <사람사는 세상을 꿈꾼 사람들>
ⓒ 작은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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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내 인생의 첫 멘토 리더 -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꾼 사람들>에는 아홉 명의 정치 지도자가 등장한다. 살다간 시간과 공간은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고 실천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인 인물들이다.

■ 간디 작은 욕망을 버리고 큰 '욕망'을 추구한 인도 독립의 아버지
■ 김대중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으로 민족의 운명을 바꿔낸 끈기의 리더
■ 넬슨 만델라 '웃음과 여유'의 리더십으로 흑인 해방의 상징이 된 남아프리카의 별
■ 프랭클린 루스벨트 '긍정'의 리더십으로 장애와 불황을 이겨 낸 약자의 친구
■ 장준하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변치 않는 신념으로 행동하는 '정의'로운 리더
■ 체 게바라 최고의 자리를 박차고 초심으로 돌아간, '사랑과 열정'의 혁명가
■ 살바도르 아옌데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던진 칠레 대통령
■ 빌리 브란트 학살자를 대신하여 무릎을 꿇을 줄 아는 '무한 책임'의 리더
■ 노무현 모두 "예"라고 말할 때 "아니오! "라고 대답한, '소신' 있는 대통령

'내 인생의 첫 멘토'라는 제목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이 책은 청소년들을 위한 책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아홉 명의 리더들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스스로 살아갈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멘토로 삼을 만한 인물들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어른들이 부끄러움을 느끼고 더 큰 반성을 하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지금,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아홉 명의 지도자들

소금행진을 이끌었던 간디의 모습을 읽으며 지난겨울 안산에서 팽목항으로 줄지어 걷던 세월호 가족들 앞에 누군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이 왜일까?

기득권 세력의 거친 반발에도 불구하고 뉴-딜을 비롯한 개혁정책을 밀어붙이는 루스벨트의 행보를 보면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이 오버랩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쿠테타를 일으킨 반란군에 맞서 직접 총을 들고 싸우다 죽은 칠레 대통령 아옌데의 최후를 읽으면 비겁함과 무책임으로 일관했던 우리의 정치 지도자들을 떠올리게 되고, 의사로서의 편안한 삶을 버리고 정글로 들어가 혁명을 실천했던 체 게바라의 삶과 최악의 상황에서도 웃음과 여유를 잃지 않았던 만델라를 접하며 문득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에게 친숙한 세 인물. 그래서 떠올릴 때마다 그들이 부재한 현실이 황량하게만 느껴지게 하는 사람. 장준하, 김대중, 노무현.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이다. 우리가 어떠한 인물을 기억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역사는 달라질 것이다.

내 아이에게 이들을 닮으라고 할 수 있을까

책 속의 아홉 명의 삶은 순탄치 않다. 개인적 안락함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고, 최후의 순간마저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 간디, 아옌데, 체 게바라는 총탄에 목숨을 잃어야 했다. 장준하는 둔기에 맞아 낭떠러지로 던져졌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노무현 그리고 그 충격으로 얼마지 않아 우리 곁을 떠난 김대중은 또 어떠했던가.

스스로 질문을 던져본다. 내 아이에게 이들 아홉 명의 삶을 닮으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안락한 삶 보다는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삶을 선택하라고 말할 수 있을까? 쩨쩨한 소시민으로서 결코 쉬운 대답이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에겐 이러한 리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저자 안덕훈은 머리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예전이나 지금이나 장래 희망을 물으면 특정한 직업이나 직책을 들어 '무엇이 되겠다.'라고 대답한다는 점입니다. '무엇이 되겠다.'로 그칠 게 아니라 '무엇이 되어 어떻게 살아가겠다.' 또는 '무엇이 되어 어떠한 세상을 만들어 가겠다.' 라고 대답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올바른 목표를 향해 나갈 수 있습니다. 직업이나 직책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입니다. ……<중략> 이 책에서 소개하는 아홉 명의 인물들이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이들 역시 살아가는 동안 중대한 실수와 잘못된 판단을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홉 명의 리더는 보다 큰 목적을 위해 맹목적 욕망을 버린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한번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만일 살아 있는 박근혜씨가 죽은 아홉 명의 삶을 아주 조금이라도 닮을 수 있다면…….

덧붙이는 글 | <내 인생의 첫 멘토 리더> 안덕훈 씀, 작은숲 펴냄, 2015.06.08, 312쪽, 1만6000원



태그:#사람사는 세상, #노무현, #김대중, #박근혜, #빌리브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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