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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28일부터 시행되는 법이 있다. 2012년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추진했던 법안으로, 소위 '김영란법'이라고 불리는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다. 공직자가 100만 원 이상의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대가성이 없어도 형사 처벌할 수 있다.

2015년 3월 3일 국회에서 통과됐고, 지난 3월 26일 박근혜 대통령이 공고해 1년 6개월 간의 유예 기간 중에 있다. 이 법의 정부안은 '부정 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 충돌 방지법안'이었다. 그러나 국회는 '공직자 이해 충돌 방지'라는 단어를 빼고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로 축소 통과했다.

왜 '알맹이'가 빠졌을까

이 때문에 원래 '김영란법'의 취지가 반 토막이 나고 말았다. 원안에는 가족·친족 등이 이해 관계가 있는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직무 권한과 관련한 사업 또는 영리 행위를 하지 못하며, 가족 채용은 물론 예산·공용물 등의 사적 사용 금지, 직무에서 얻은 정보를 이용하지 못하는 것 등이 들어 있었다.

이런 관행들을 금지해야만 비리를 바로잡을 수 있다. 그런데 왜 국회는 이런 당연한 것들을 뺐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이런 '부조리의 온상'을 치워버리면 돈벌이가 안 되기 때문이다. 공기업 임원이나 국회의원이 자신의 자녀나 친척을 채용해 줄 자리를 뺏는 법을 만들겠는가. 결국 국회는 알맹이를 빼고 법안을 통과시켰다.

순진한 국민은 공약을 남발하는 이들을 뽑아주면 정치를 통해 국민을 잘 살게 해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일단 정치인이 되고 나면 국민을 위해 정치를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위해 정치를 한다. 더 구체적으로 자신의 부를 축적하는 방향으로 정치를 한다. 일례로 세비 올리는 일은 일사천리로 처리하는 국회를 봐오지 않았던가.

국민 눈치를 조금 보기는 한다. '친척을 보좌관 등으로 채용할 때는 신고해야 한다'는 문구를 넣는 정도로 말이다. 이들은 공용의 승용차나 헬기 등을 사적으로 사용하거나, 공무를 통해 습득한 선지식으로 땅을 투기해 돈을 번다. 단속 정보를 흘리고 관련 업체에서 돈을 뜯어내기도 한다. 심지어는 법을 만들 때 각종 로비스트가 달려든다. 다 돈 이야기이다.

우리가 아는 정치에 대한 환상을 확 깨게 만드는 책이 있다. 피터 스와이저의 <정치는 어떻게 속이는가>(글항아리 펴냄)가 그것이다. 저자는 미국 의원들이 리더십 팩(정치후원회)을 통해 돈을 모으고 이를 편법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폭로함으로써 CBS 뉴스 <60분>의 심층 보도를 이끌어낸 학자다. 이 책에서 '정치는 모금 활동과 돈벌이의 다른 이름'임을 사례와 증거를 들어 말하고 있다.

'후원'이 아니라 '갈취'

<정치는 어떻게 속이는가> 표지
 <정치는 어떻게 속이는가> 표지
ⓒ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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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 왜 '김영란법'에서 알맹이가 빠졌는지를 유추할 수 있다. '돈' 때문이다. 로버트 허볼트 전 마이크로소프트 최고운영자의 "협조하지 않는다면 그건 미친 짓이에요. 그들은 반드시 보복할 겁니다"라는 말은 후원금 명목의 갈취를 잘 증명한다. 미국의 사정이 이렇다면 우리의 정치는 어떨까.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후원금을 '쥐어짜기 위해' 의도된 '과즙 법안'이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다. 표적을 정하고 그들에게서 후원금을 쥐어짜기 위해 법안을 상정한는다는 뜻이다. 심지어 한시적으로 법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한 가지 쟁점으로 여러 번 돈을 거둬들이기 위한 작전이다.

"몇몇 법은 특별히 많은 관심을 받으며 통과되곤 하는데 이들은 애초부터 의도적으로 몇 년 안에 만료되도록 고안돼 있다. 그렇게 되면 정치인들은 그 쟁점을 재차 꺼내 들고는 같은 사람들을 다시 '쥐어짤 수' 있다. 무엇보다 최고의 법안은 '이중 쥐어짜기'나 '이중 과즙기' 같은 것이다." <정치는 어떻게 속이는가> 25쪽

우리는 담뱃세 인상의 이유가 흡연 인구의 증가로 국민 건강이 위태롭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과연 그럴까. 직접세의 부담을 간접세로 메우려는 의도는 아니고? 우려는 현실이 됐다. 담뱃세로 인한 세수의 폭발적 증가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미 증명했다. 흡연 인구는 효과적으로 줄지 않았다. 이건 그래도 세금에 관한 것이니 봐줄 만하다.

'쥐어짜기' 법안, 조세감면법

우리 정부는 참 쉬운 방법만 사용한다. 법인세 인상이라는 카드는 왜 사용하지 못하는 것일까. 돈 때문이다. 돈 때문이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로비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후원금 때문이다. 법인세나 상속세 혹은 재산세를 1%만 올려도 연간 매출이 수조 원에 이르는 대기업들은 극심한 손해를 입게 된다. 당연히 그런 법이 입안되는 것을 두고 볼 기업은 없다.

국민은 눈치도 못 채지만, 법안에 반대하는 대기업들은 국회가 그런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도록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는다. 가로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돈이다. 이 사실을 너무 잘 아는 정치인 역시 그것을 역이용한다. 이리하여 이른 바 '쥐어짜기 법안'이 등장한다.

가령 1981년 미국 하원은 연구 개발에 투자하는 기업들에게 특별 세액 공제 조항을 신설했다. 이 공제 조항은 혁신적인 신기술에 투자하는 기업들의 세금을 감면해주는 것이다. 이런 법안은 한시적이다. 그리고 시한이 되면 연장 법안을 낸다. 저자는 이런 것이 돈이 이유라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조세감면연장은 워싱턴 버전의 '조폭세'임에 틀림없다. 즉 의원들이 애초에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을 하게끔 내는 돈이라는 얘기다. 미국 세법이 왜 그렇게 복잡하고 난해하며 지속적으로 바뀌는지 의아해하는 이들은 그것이 갈취하는 데 얼마나 훌륭한 방법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영속적인 정치집단을 위한 풍부한 자원으로 세법을 인식하기 시작한다면 왜 지금과 같은 세금 시스템이 필요한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정치는 어떻게 속이는가> 56쪽

저자는 보험계약서만큼 이나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는 법조문에도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해야 법을 만든 사람들이 은퇴하고 법을 해석하는 자문위원으로 근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높은 급여를 받고 말이다. 저자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법을 만든 정치 집단은 이런 법조문을 '갈취를 위한 절호의 기회'로 삼는다고 일갈한다.

돈을 갈취하기 위한 교묘한 법령은 '도드프랭크 월가 개혁법'이나 '공직자윤리법' 등이라고 한다. 겉으로는 경제 부조리를 척결하고 공직자의 윤리를 강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은 전혀 다르다고 꼬집는다. 특히 저자는 이런 방법으로 거둔 후원금을 탈법·불법·편법으로 사용하는 예를 적나라하게 지적한다.

저자는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며 챔블리스 상원의원, 존 코니어스 하원의원, 로이 블런트 상원의원, 앤드루스, 크렌쇼, 랭걸 의원 등이 개인적인 용도에 후원금을 사용했다고 폭로한다. 골프를 친 것은 물론 초상화 구입비, 리조트 구매나 탑승권 구입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심지어는 오바마 대통령의 후원금 쥐어짜기 내용도 말한다.

공식적으로 정치 후원금은 개인 용도로 쓰지 못한다. 하지만 저자는 '창의적인 방식'을 동원해 쓰고 있다고 말한다. 책을 읽으며 투명성 상위의 미국이 이 정도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생각해 봤다. 부패 인식 지수가 175개국 중 46위(2014년)인 우리나라는 '안 봐도 비디오'다. 이 책이 정치에 대한 환상을 깨고, 미국을 보며 한국을 배우는 정치 지침서이길 기대해 본다.

○ 편집ㅣ조혜지 기자

덧붙이는 글 | <정치는 어떻게 속이는가>(피터 스와이저 지음 / 이숙현 옮김 / 글항아리 펴냄 / 2015. 4 / 283쪽 / 1만5000 원)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그냥 지나치면 안 되는 길일 것 같아 그 길을 걸으려고요.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정치는 어떻게 속이는가 - 갈취당하는 데 신물난 시대를 해부한다

피터 스와이저 지음, 이숙현 옮김, 글항아리(2015)


태그:#정치는 어떻게 속이는가, #피터 스와이저, #이숙현, #서평, #김영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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