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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미국의 한 연예매체에서 한국 걸그룹 멤버들의 영어 발음을 조롱해 큰 논란이 되었다. 해당 매체 기자들이 한국 걸그룹의 멤버들이 "I'm so happy(나는 정말 행복하다)", "Thank you(감사합니다)"라며 소감을 전한 인터뷰 영상을 보고 어색하게 그들의 발음을 따라하며 조롱한 것이다. 이 영상이 공개된 후 각계에서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왔다. 동료 연예인들은 SNS를 통해 이 매체의 잘못된 행동을 비판했고, 누리꾼들도 분명한 인종차별이라며 분노했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자성의 목소리도 높았다. 우리 자신도 다른 인종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차별을 일삼으면서 해당 매체를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인종차별에 대한 비난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우리들은 인종차별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일까?

대한민국 안의 인종차별

2014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수는 175만 명, 국내 다문화 가족은 약 80만 명에 이른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결코 '한민족'만의 나라가 아니다. 하지만 2014년 10월. 유엔 인종차별 특별 보고관으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에 공식 방문해서 인종차별 실태를 조사한 무투마 루티에레 보고관은 기자회견에서 "관계 당국이 관심을 둬야 할 심각한 인종차별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과거와는 달리 한국 내에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공존하게 되었으나, 과거부터 지적된 한국인들의 배타적 태도와 행동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년 전, TV 프로그램 <안녕하세요>에 출연한 '전국 노래자랑'의 한 흑인 팬도 한국인들의 외국인에 대한 차별은 36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그의 부인은 사람들이 그를 만져본 뒤 손에 뭐가 묻지 않았는지 손을 턴 적도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3년 전,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한 한국인은 자신은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토종' 한국인인데 동남아시아인과 흡사한 외모 때문에 심한 고충을 겪고 있다고 고백했다. 길거리에서 그에게 '더러운 외국인'이라며 욕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화를 내며 막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다른 TV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 출연하는 가나 국적의 흑인, 샘 오취리도 방송에서 한국인들의 인종차별을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자신은 단역배우로 일하는데, 한국에서는 촬영 시 흑인은 뒤에, 백인은 앞에 서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또 과거 동대문에 샘의 광고 사진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한 친구가 흑인 사진이 한국에 걸렸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는 한국인들의 흑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실제로 여성가족부의 '국민 다문화 수용성 조사'(2012년)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다문화 수용성 지수는 성인은 51.81점, 청소년은 60.12점에 그쳤다. 또 성인 중 "다양한 인종·종교·문화가 공존하는 것이 좋다"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응답자는 고작 36%였다. 그리고 국민 정체성으로 '혈통'을 중시하는 비율은 86.5%로 매우 높았다.

이렇듯 한국인들의 다문화 수용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는 인종차별의 원인이 된다. 한국인들은 이주 노동자와 결혼 이민자, 다문화 가정에 대한 차별을 인종차별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모두 인종차별이다. '전국 다문화가족 실태조사(2012년)'에서는 결혼이민자의 사회적 차별 경험 비율이 41.3%로 나타났다. 한국인들의 인종적 편견 및 차별은 심각하고, 또 개선이 시급한 문제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여러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으나 다문화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는 쉽게 바뀌지 않고 있다.

한국 내 인종차별의 원인

인종차별은 전 세계적으로도 큰 문제다. 최근 미국에서는 비무장 흑인이 백인 경찰의 공권력 남용으로 인해 사망하는 일이 연이어 발생하며 각지에서 강력한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2011년 노르웨이와 이탈리아, 2014년 미국 텍사스에서 각각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의 공통점은 인종차별주의자의 범행이라는 점이다. 이와 유사한 사건들, 그리고 그 외 인종차별에서 비롯된 많은 사건들은 현재까지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종차별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국립국어원 표준어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인종차별이란 '인종적 편견 때문에 특정한 인종에게 사회적, 경제적, 법적 불평등을 강요하는 일'이다. 따라서 모든 인종차별은 잘못된 인종적 편견에서 시작된다. 인종의 신체적 특징과 심리적 특성을 연관 지어 생각함으로써 인종적 편견이 생겨나고, 이에 따라 인종차별이 발생한다. 요컨대, 나와 다른 겉모습을 가진 상대에게 가지는 편견에서 인종차별이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더하여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단일민족이라는 믿음이 인종차별의 원인으로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2006년의 한 조사에서는 성인 남녀 2000명 중 62.5%가 '우리 민족을 단일 민족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렇게 국민들의 인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단일민족사상과 더불어 혈통 중심의 민족관은 그동안 한국 내에서 다문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편견, 차별의 원인이 되어 왔다.

그러나 사실 단일민족 이념에 반대되는 과학적 증거가 계속해서 발견되고, 베네딕트 앤더슨 교수와 같은 문화인류학자들도 단일민족 존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는 점에서 우리민족은 단일민족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특히 베네딕트 앤더슨 교수는 그의 저서 <상상의 공동체>에서 '민족'이라는 개념은 인위적인 발명품이며 상상의 공동체라고 말한다. 에르네스트 르낭, 에른스트 겔너, 한스 울리히 벨러 등의 다른 저명한 학자들도 '민족'의 정의가 '혈연'이라는 요소를 포함하지 않는다고 본다. 지금까지 한국인들의 인종차별의 원인으로 작용했던 단일민족 이념과 혈통 중심의 민족관은 허구이자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한국인들은 각종 매체의 영향으로 오리엔탈리즘이 반영된 왜곡된 시각으로 인종의 우열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즉, 무의식적으로 서양의 백인이 동양의 황인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2014 한국 인종차별 실태 보고대회'에서 연세대학교 김현미 교수가 "한국의 인종주의는 한국인과 비슷한 외모인 아시아인을 차별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라고 말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SBS 스페셜 제작팀이 2006년과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제작해 방송한 다큐멘터리 <다른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에서는 이에 대한 실제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스페인 출신의 한 백인은 한국에서 한 번도 푸대접을 당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관찰실험에서 그가 길을 묻고 휴대전화를 빌려달라고 부탁했을 때 모든 한국인들은 그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그러나 미얀마 출신의 황인은 한국인들은 그가 길을 물었을 때 설명을 잘 해주지 않고, 그의 옆자리에 앉기도 꺼려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러한 한국인들에게 휴대전화를 빌릴 수 있는 확률은 극히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인의 외국인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는 대다수의 한국인이 황인으로 분류된다는 것을 고려하면 비합리적이고 왜곡된 것이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흔히 발견되는 모습이다.

우리가 함께 나아갈 길

인종차별적 태도를 가진 한국인이 알아야 할 것은, 이 모든 한국 내 인종차별의 피해가 결국 우리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윤리적인 면이 아닌 경제적인 면에서 따지더라도 다문화 수용과 인종차별 철폐는 이제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되었다. 전문가들은 다른 인종과 민족에 대한 배타성은 국가 발전을 저해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일명 '3D' 직종(더럽고, 위험하고, 어려운 일)에 종사하려는 인구가 줄고, 저출산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면서 인종적 편견과 차별 극복의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우리와 '다른' 이들을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보고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인종차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다른 국적과 인종의 사람들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이주 노동자들이 내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다.', '외국인의 범죄율이 높다'는 목소리가 있는데, 이주 노동자들은 대다수가 앞서 언급했던 3D업종에 종사하면서 부족한 노동력을 제공하며 우리나라의 근간이 되는 산업들을 유지하는데 기여하고 있으므로 이는 부정확한 표현이다. 또한 2013년 전국 외국인 범죄율은 100명당 1.59명으로 내국인 3.42명에 비해 오히려 훨씬 낮았다. 외국인 강력범죄에 대해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언론에 소개되는 소수 외국인의 범죄만으로 국내 거주 외국인을 모두 예비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리고 학교에서 놀림과 따돌림에 상처받는 많은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은 출산율이 저조한 대한민국에서 앞으로 국가의 미래를 이끌어갈 주역들이다. 여성가족부의 '다문화, 다인재, 다재다능' 광고에서는 각자의 꿈을 가진 다문화 가정 자녀들을 소개하며 이들도 대한민국의 미래 인재로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만약 우리가 지금 다문화 가정 자녀들을 보는 시각을 바꾼다면 이들은 대한민국의 발전을 주도할 인재들이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들은 계속해서 차별받고 멸시받는 사회적 약자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인식 개선 노력과 함께 고려해볼 수 있는 것은 인종차별금지법 제정이다. 지난해 9월 말 방한한 유엔 인종차별 특별보고관은 한국의 인종주의 및 외국인 혐오의 해결방안으로 이주노동자권리협약 비준, 교육 강화, 미디어의 감수성과 책임 강화 등과 함께 인종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했다. 현재 OECD 국가 중 인종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없는 나라는 소수이며, 그 중 하나가 우리나라이다. 인종차별금지법은 한국사회에서 인종에 관계없이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하고 최소한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겉모습이 어떻든지 간에 모든 인간은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똑같이 생긴 흑인, 백인, 황인의 심장을 보여주면서 결국은 모두 같은 인간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광고처럼, 우리는 생각보다 많이 다르지 않다. 인종과 국적의 차이 대신 서로가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에 주목한다면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말과 같이 다른 사람을 나와 똑같이 소중한 사람으로 대하는 것은 당연하게 느껴진다. 인권 회복을 위한 모든 움직임들이 이야기하는 것 역시 이와 같다.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이 보편적인 가치로 인정받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이 따랐는지를 생각해볼 때 이 가치들이 진정으로 실현되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당연하다.

여러 가지 면에서 이번 인종차별 논란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우리가 차별을 당할 때는 분노하면서 정작 우리가 차별하고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그들이 우리에게 보인 조롱의 태도, 멸시의 태도가 사실은 지난 날 우리가 다른 누구에게 보인 태도는 아니었을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짚어본 우리의 모습을 보면, 우리의 배타적이고 차별적인 태도에 상처받은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가.

누군가의 말대로, 다르다는 것은 나쁜 것도, 부족한 것도 아니다. 상대에게서 배울 것이 있다는 뜻이다. 한국 사회가 '다름'을 '다양성'으로 포용하고 그것을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는 더 성숙한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경기도청소년진흥센터 소속 경기도 청소년 기자단 '틴볼' 블로그 및 웹진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태그:#다문화, #TMZ, #인종차별, #평등,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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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경기도청소년활동진흥센터 소속 경기도청소년기자단 틴볼 12기 기자 이예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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