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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장석순 작가의 공방(안성시 연지동)을 찾아 만난 '닥종이 공예'의 세계는 '기다림의 미학'을 표현해주는 세계였다.

자신의 공방에서 자신의 작품인 배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장석순 작가. 그녀는 매사에 긍정적이고 낙천적이어서 오랜 시간을 요하는 닥종이공에조차 그녀의 손에 가면 행복한 시간으로 탄생한다.
▲ 장석순 작가 자신의 공방에서 자신의 작품인 배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장석순 작가. 그녀는 매사에 긍정적이고 낙천적이어서 오랜 시간을 요하는 닥종이공에조차 그녀의 손에 가면 행복한 시간으로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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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란 말보다 '닥종이'란 말이 순우리말.

우리가 '한지공예'라고 알고 있는 것을 그녀는 굳이 '닥종이 공예'라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한지의 순우리말이 닥종이"라고 강조하는 장석순 작가의 말을 시작으로 닥종이에 대해서 들어보면, 메모해뒀다가 써먹을 지식들이 있다.

"닥종이라는 것은 닥나무 껍질로 만든 종이"란 거다. 그녀에 의하면 "옛날엔 닥나무로 만든 닥종이가 80%였지만, 요즘은 닥나무가 귀해서 짚이나 풀 등으로 제조가 많이 되고 있다"고 했다.

중국에선 우리가 닥종이(한지)라고 하는 것을 '계림(신라란 뜻)지, 고려지, 조선지'라고 해왔다. 그녀는 "중국에선 '선지'라 하고, 일본에선 '화지'라 한다. 일본사람들은 거기에다 꽃을 새기는 걸 좋아해서 그렇다"며 설명을 덧붙인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종이라 해서 '한지(Korean paper)'라고 한 것은 60년대 초부터"라고 그녀가 설명해주는 걸 보니, 우리나라에선 '한지'란 말보다 '닥종이'란 말이 오래전부터 계속 쓰여 왔음을 알 수 있었다.

닥종이(한지)를 찢고, 붙이고, 말리고 해서 만든 닥종이 배다. 실제 크기의 배모양의 이 공예품을 완성하기까지 자그마치 1년이 걸렸다고 했다. 말리는 시간이 많이 걸려서 그렇다. 이런 작품을 만들기에 기다림의 미학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닥종이 배 닥종이(한지)를 찢고, 붙이고, 말리고 해서 만든 닥종이 배다. 실제 크기의 배모양의 이 공예품을 완성하기까지 자그마치 1년이 걸렸다고 했다. 말리는 시간이 많이 걸려서 그렇다. 이런 작품을 만들기에 기다림의 미학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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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마한 인형 하나 만들어도 최소 3개월이라니...

"사람들은 조그만 닥종이 인형이나 공예품을 금방 만드는 줄 알아요. 하지만, 감(과일)을 하나 만드는 데도 한 달 이상(그것도 숙련된 전문가라야) 걸려요. 얼마나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지..."

헉! 한 달이라니? 놀랍다. 왜 그리 걸릴까. 그건 바로 닥종이를 일일이 찢어 뼈대에 붙인 후 말리기 때문이다. '찢고 붙이고 말리고'의 과정을 수차례 반복한다는 거다. 문제는 말리는 것. 종이를 풀로 붙이다 보니 말려야 하는데, 그 말리는 시간이 결코 짧지 않다.

자연으로 말리는 게 안 된다면, 보온밥통·드라이기·선풍기·난로 등을 이용해 말린다. 닥종이 공예가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은 순전히 말리는 시간 때문이다. 잘 말리지 않고 급하다고 바로 하면 속에서부터 곰팡이가 생겨 그 작품은 못쓰게 된다. "닥종이 공예는 말리는 게 승패의 관건"이란 말은 오롯이 그녀 경험의 산물이다.

'선비 셋이서 술 한 상 하는 작품'은 8개월 정도 걸려서(초보자는 3년 정도 걸릴 것이라고 그녀가 귀띔해주었다.) 만들었다는 그녀. 사람들이 공예를 배우러 여기에 오면 당장 "작은 인형 하나 만드는 것도 최소 3개월 걸립니다. 그래도 배우시겠습니까?"라고 다짐을 받곤 한다. 그래도 하겠다는 사람만 가르쳐준다는 거다. 그만큼 인내해야 한 작품을 만난다는 거다.

닥종이로 만드는 것 중 유난히 등을 좋아한다는 장석순 작가. 그녀는 세상의 등불처럼 살고 싶다는 자신의 바람을 담아 등을 만든다고 했다. 사진 속 작품은 무궁화꽃등(수강생 강민정 작품).
▲ 꽃등 닥종이로 만드는 것 중 유난히 등을 좋아한다는 장석순 작가. 그녀는 세상의 등불처럼 살고 싶다는 자신의 바람을 담아 등을 만든다고 했다. 사진 속 작품은 무궁화꽃등(수강생 강민정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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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도 지겹지 않았다는 그녀의 비결은?

이렇게 긴 시간을 투자하는데도 한 번도 지겹거나 힘들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그녀. 그게 가능할까. 말을 듣고 나니 그렇게 한다면, 그녀라면 가능하다 싶었다.

한 작품을 만들면서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 다음 작품은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지. 아하! 바로 그거야. 그러면 되겠구나. 그랬다. 해당 작품을 만들면서 다음 작품이 어떻게 나올지 기대감으로 설렌다는 거다.

지금 작품을 만들면서 행복하고, 다음 작품을 기대하니 또 행복하고. 20년 넘게 공방을 하면서 한 번도 다음 작품의 영감이 끊어져 본 적이 없다니 대단하다. 

그녀는 자신이 만든 작품을 두고도 남편에게 "여보 이거 예쁘지?"라고 줄기차게 묻는다고 했다. 언제까지? "그래 예쁘다, 예뻐"란 말이 나올 때까지. 세상에서 두 부류의 작가, 즉 자신의 완성작을 두고 늘 아쉬워하는 작가와 스스로 만족해하는 작가 중 그녀는 후자인 거다.

외유내강, 그게 종이의 매력

평소 '종이접기' 하나로 안성보건소 재활치료실, 죽산의 한 요양원 어르신들, 내혜홀초와 대덕초 학생들과 만나 그들을 지도하는 것도 아끼지 않는 그녀다. 8세 초등생부터 102세 어르신까지 아우르는 셈이다.

"다른 재료(우드락 등)를 사용해서 공예품을 만들기도 하지만, 종이가 주는 매력에는 못 미친다"고 했다. "종이의 매력은 '부드럽고 강하다'"로 압축하는 그녀의 말에서 우리는 '외유내강'을 떠올렸다.

이번 전시회(장석순 개인전 및 회원전)에 전시될 작품들이다. 19일에서 26일까지 안성시립도서관 전시실에서 전시 된다. 사진은 이번 전시 작품 사진들을 받아 기자 나름대로 편집한 것이다.
▲ 전시될 작품들 이번 전시회(장석순 개인전 및 회원전)에 전시될 작품들이다. 19일에서 26일까지 안성시립도서관 전시실에서 전시 된다. 사진은 이번 전시 작품 사진들을 받아 기자 나름대로 편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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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아마도 종이의 '외유내강의 깊이'에서 평생 못 헤어 나올 거 같아요"라며 미소 짓는 그녀는 천생 '지인(紙人)'이 아닐까. 부드러운 종이 하나로 안성 사람들을 줄기차게 디자인해가는 그녀야 말로 '외유내강'이 아닐까 싶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다. 오는 5월 19일부터 24일까지 안성시립도서관에서 '장석순 개인전 겸 닥종이 공예 마을 회원전'이 열린다. 그녀의 더 다양한 작품을 만나고자 한다면 다음 카페 '청호닥종이 http://cafe.daum.net/ekrskan'를 열어 보라. 그녀의 표현대로 "몇 달 동안 산고를 거쳐 세상에 낳은 '내 새끼'들이 웃고 있을 것"이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태그:#닥종이공예, #한지공예, #장석순, #닥종이,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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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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