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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인클럽>은 오마이뉴스가 권력과 자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한 언론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매달 자발적으로 후원하는 유료 독자들의 모임(http://omn.kr/5gcd)입니다. 클럽은 회원들의 후원으로 '10만인리포트'를 발행하고 있는데요, 이 글은 김지영 시민기자가 연재합니다. [편집자말]
5월은 가정의 달이다. 5월 5일은 어린이날, 5월 8일은 어버이날,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새삼스럽게 다 알고 있는 뻔한 기념일을 다시 들먹이는 이유가 있다. 사람들이 아직은 잘 모르는 기념일 하나가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 사이에 있다. 5월 11일이다. 2005년 3월 31일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고 2006년 5월 11일 공식적으로 기념일의 시작을 알렸다. 내년이면 10주년을 맞는 이 날은 바로 입양의 날이다.

2005년 3월에 있었던 법적 근거는 '입양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현 입양특례법)'의 일부 개정을 말한다. 당시만 해도 해외로 입양된 우리나라 아동의 수가 국내 입양아동의 수를 훨씬 앞지르고 있었다. 입양의 날이 공식적으로 제정된 지 2년 뒤인 2007년 보건복지부에서 가정의 달을 맞아 국내입양활성화를 위한 방송 캠페인을 했다. 30초짜리 짧은 CF광고였다. 국내 최초였다.

공교롭게도 그해는 처음으로 국내입양 아동의 수가 해외입양 아동의 수를 앞지르기 시작한 원년이 되었다. 이렇게 교차된 숫자가 가지는 의미는 적지 않다. 원인이 CF 하나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만큼 국가의 정책적인 지원이나 방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대신 말해 주는 의미있는 지표인 것만은 사실이다. 2007년 이후 해외입양은 국내입양의 비율을 넘지 못했다.

2012년 8월 또 한 차례 입양특례법 개정이 있었다. 주요골자는 과거 신고제로 운용되었던 입양이 법원 허가제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국내 입양문화에 대대적인 변화가 오게 되었는데 특례법 시행 다음 날부터 서울 관악구 봉천동 베이비박스에 담겨지는 아이들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등 그에 따르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은 현실이다. 입양의 본질이 사회적으로 가장 소중한 가치라 할 수 있는 아동인권에 있는 만큼 법적인 접근 역시 현실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했다는 아쉬움이 있다(이 부분은 별도의 지면을 빌려 이야기할 예정이다).

어쨌든 2012년 입양특례법의 기본 골격은 입양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국가가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데 방점이 있다. 2012년 8월, 입양특례법 26조에 의해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으로 출범한 우리나라 최초의 입양 관련 국가기관인 중앙입양원도 그 궤를 같이 한다.

"어린이날, 놀이터 데리고 갔더니 발을 못 떼요"

신언항 중앙입양원장
 신언항 중앙입양원장
ⓒ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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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일 서울 충정로에 있는 중앙입양원을 찾아 신언항(70) 원장을 인터뷰했다. 지난 2013년 1월 초대 중앙입양원장으로 취임하고 한 번의 임기를 마무리한 후 올 3월 다시 재임을 하게 된 신 원장은 보건복지부 차관을 거친 관료 출신이다. 11년 전 삼십 년 공직생활을 마감한 그가 다시 공직으로 돌아온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신언항 원장 자신이 입양부모이기 때문이다.

신언항 원장이 지금은 열네 살 동영이를 막내아들로 입양한 때는 십 년 전인 2005년이다. 오랫동안 보육원에서 봉사를 해왔던 아내 눈에 밟힌 어린 남자 아이를 함께 봉사활동을 다니며 보아오다 입양을 했다. 당시 스물일곱 스물여덟 장성한 아들이 둘이나 있었지만 육십 목전에 덜컥 입양을 결심할 만큼 동영이에 대한 애착이 컸다. 동영이 나이 네 살이었다.

- 그래도 연장아 입양인데 시설에 봉사하러 오가면서 보는 거하고 실제 집에 와서 살을 부대끼면서 사는 거하고 다르잖아요? 많이 힘드셨을 거 같은데요?
"힘들었죠. 시설에 있는 애들은 참 불쌍한 애들이에요.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는 게, 입양하기 전 우리 집에 5월 5일 날 데려와 가지고 한 이삼 일 있으면서 아파트 놀이터로 가서 미끄럼틀 위에 안아서 세워놨는데 거기서 발을 못 떼요. 완전히 다른 세상에 온 것처럼."

- 보육원에도 놀이터가 있을 텐데요?
"있죠. 거기서 뛰어 노는 모습을 봤으니까. 그런데 여기에만 딱 갖다 놓으면 발을 못 떼고 로봇처럼 서 있더라고요. 그걸 보고, 아 시설이 그런 곳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시설이 문제가 있다는 말이 아니라 시설과 가정에서의 차이를 말하는 거죠. 공동으로 집단생활을 하는 거하고 저만 사랑해주는 부모하고 사는 거하고의 차이가 그렇게 클 수밖에 없어요."

- 동영이 입양하시고 몇 년 정도 힘드셨어요?
"가장 힘들었던 기간은 동영이 오고 한 일 년이었던 것 같아요. 그 뒤로도 계속 힘들었던 건 사실이지만 아이가 조금씩 좋아졌으니까요."

시설에 찾아가서 만날 때 그렇게 잘 웃고 안기고 달라붙던 동영이가 가족이 돼 집으로 와서는 돌변을 했다. 말을 안 듣고, 표정이 굳어지고, 모르는 단어가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말을 안 들어요. 이리 오라고 하면, 들은 척도 안하고. 그러다 목소리가 커지면 눈빛이 완전히 달라져요. 증오하는 눈빛인 거야. 일반화 시키면 안 되지만 동영이 키우면서 시설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되었어요. '아이스찌리니'가 무슨 말인 줄 알아요? 아이스크림을 시설에 있는 아이들은 그렇게 발음을 하더라고요. 왜 아이스크림을 모르겠어요. 저희들끼리의 사회가 있다 보니까 그 안에서만 쓰는 언어가 있는 거예요.

시설에서만 자라면 언어능력이 그래서 떨어지는 것 같았어요. 당연히 학습능력도 떨어질 거고요. 인간이 그 나이에 맞는 발달과정이 있는 건데 어릴 때부터 가정이 아닌 시설 속에서 자라면 전체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모르는 사람들은 시설이나 입양된 아이들에게서 문제를 발견하면 그게 마치 생모가 임신 중에 술 먹고 담배 피고 하는 나쁜 환경 속에서 낳아서 그렇다고 단정을 하죠. 공부 못하면 원래 머리도 나쁘고 불량한 엄마 아빠가 임신해서 낳은 아이라고 낙인을 찍어 버리죠. 근데 당사자가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눈치가 뻔한데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인가 이렇게 돼버리는 거죠. 잘못된 생각이에요. 그렇게 아이가 태어난 게 아니라 제가 볼 때는 결국 시설의 문제인 거예요. 아이 인생으로 봐서는 정말 너무 억울한 운명인 거죠. 결국은 어른들 문제인데."

십 년 입양부모로 살아온 경험이 신언항 원장에게 커다란 성찰의 기회가 되었던 듯싶다. 신 원장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아이 때 보통 일반가정에서 자란 아이도 자기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고 들었어요. 내가 애착관계를 맺고 있는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존재를 확인 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고요. 시설에서 자란 아이들은 그런 욕구가 더 강한 것 같더라고요. 아무래도 그게 부족하니까 더 그런 것 아니겠어요. 그러다 보니까 어떤 경우는 의도적으로 나쁜 행동을 하는 것 같고요. 입양부모도 사람인 이상은 그런 걸 보고 참아내고 교정시키는 게 상당히 어려운 일인 거죠."

- 중앙입양원으로 오게 된 배경은 어떤가요? 죄송한 표현이지만 보통 이런 정부산하기관은 흔히들 낙하산 타고 내려오신 거 아니냐는 의문을 많이 가지거든요?
"제가 동영이 입양하고 2년 뒤부터 한국입양홍보회(공개입양가족 자조단체) 이사를 했어요. 2012년까지 했으니까 5년 동안 활동을 했네요. 또 이전 현직에 있을 때도 제가 아동복지 쪽에 관심이 많아서 관련된 글을 기고도 하고 그랬지요. 아마 그런 활동들이 인연이 되었지 싶습니다."

설립 당시 8명으로 시작된 중앙입양원의 현재 근무인력은 25명이다. 사설입양기관에 의존하던 입양 관련 업무들이 국가에 귀속되었다는 점만으로도 의미를 둘 수는 있지만 한 나라의 입양관련 업무를 전적으로 책임지기에는 작은 규모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 우리나라 최초의 입양관련 정부기관인데요. 저는 그것만으로도 일단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중점적으로 어떤 일들을 하고 계신지?
"전 세계적으로 입양인들을 사후관리해주는 이런 기관을 만들어서 운영하는 나라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우리나라가 과거에 외국으로 입양을 많이 보냈잖아요. 공식적으로는 14만여 명인데 실질적으로 한 20만 명 정도는 되는 것 같아요. 1950년대부터 1980년대 사이에 많이 있었던 일인데 그렇게 고국을 떠난 해외입양인들이 이제는 성장을 해서 고국으로 돌아오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시기가 맞물렸어요. 그래서 그런 입양인들을 위한 사후관리 서비스가 필요한 시점이 된 것 같습니다. 법적으로도 해외입양인 사후관리서비스가 주어져 있죠."

- 국내입양 관련해서 하는 업무도 있으신가요?
"있죠. 아이들을 키우는 게 일반 가정에서도 어렵잖아요. 제 경험으로도 입양 부모들은 아이들이 자라는 단계에 따라 각별히 신경 쓸 일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장 단계별로 어떻게 아이들을 양육할 것인지 이런 것도 연구할 생각입니다. 아직은 기획단계이긴 한데 그렇게 연구해서 입양부모한테 교육도 지원해 줄 계획을 하고 있지요. 지금은 입양가족들 운영하는 자조단체에서 자체 기획하고 운영하는 행사나 캠프 등에 사업비를 지원하는 형식으로 사후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중앙입양원의 중점 사업은 해외입양인들의 뿌리찾기 사업이다. 2012년 입양특례법 시행 이후의 입양관련 인적 자료는 법원 허가제여서 자동으로 데이터가 중앙입양원으로 모이게 되어 있다. 이전 자료는 국내 입양기관들의 협조를 받아 데이터베이스화를 진행하고 있으며 폐쇄되거나 사라진 입양기관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하고 있는 중이다.

"입양이라는 단어 보고 저절로 생기는 벽 있는 것 같아"

중앙입양원
 중앙입양원
ⓒ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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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8월 입양특례법을 근거로 중앙입양원이 설립되었잖아요. 공교롭게도 그 법으로 인해 생모가 아이를 호적에 올리지 않으면 입양을 보낼 수 없게 되면서 베이비박스 문제라든지 음성적인 불법입양이 많은 늘어나고 있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불법입양에 대해서는 저희가 별도의 파트를 두어 모니터링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도 불법브로커로 의심되는 사례들을 경찰청에 협조요청을 해서 대응을 한 사례도 있어요. 포털에도 관련된 글들이 올라오면 저희들이 캡처해서 신고도 하고요. 방통위 쪽에서도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보건복지부도 마찬가지고요. 여러 기관에서 나서니까 오픈사이트는 많이 줄어들었는데 포털에 있는 카페는 한계가 있는 것 같더군요. 아주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에 차제에 중앙정부뿐 아니라 민간단체와의 공조도 필요한 사항으로 향후 논의될 예정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 해외입양인들 뿌리찾기가 중점사업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국내입양인들도 그에 대한 욕구가 있지 않나요?
"국내입양 같은 경우, 입양이 이루어진 연도를 봤을 때 아동들이 성장하는 시기만큼의 시간이 좀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그런 요구들이 분명 나타나게 될 거라고 보고요. 저희가 그 부분 준비를 해야 되겠죠. 국내입양 관련 인적인 자료들도 다양한 경로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대비를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 사실 저는 중앙입양원 홈페이지 보고 원장님께서 공직생활을 오래 하신 분이고 차관까지 오른 분이어서 좀 권위적이고 막혀 있는 분은 아닐까 걱정을 했습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순전히 제 편견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같은 맥락으로 말씀 드리자면 그런 거 같아요. 제가 생각할 때도 사실 입양 가정이든 일반 가정이든 입양이라는 단어를 빼놓고 보면 큰 차이가 없습니다. 거기에 입양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순간 저절로 생기는 벽이 있는 것 같단 말이죠.

주위에서 그런 경우가 있는지는 모르겠는데요. 일반 가정에도 폭력이나 방임으로 학대 받는 아이들이 많거든요. 마음 같아서는 친권을 당장이라도 빼앗아 버리고 싶은 그런 자격도 안 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국가정책이 원가정 보호로 가는 건 분명 옳은 방향인데 무조건 원가정만이 정답이다라고 할 수도 없는 경우도 있는 거예요.

결국은 다양성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합니다. 입양에도 다양한 경우의 수가 있습니다. 우리 중앙입양원이 해야 할 일들은 입양과 관련된 그런 경우의 수를 가능한 놓치지 않고 세심하게 배려하는 정책을 만들어내고 도와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신언항 원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시설에 있는 아이들을 걱정했다.  막내아들 동영이를 키워 오면서 얻은 마음의 심지 같은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동영이는 학습능력이 부족하다고 했다. 대신 동영이는 또래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당당한 리더로서의 자질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동영이가 그런 자질을 보여줄 수 있었던 이유가 시설에서 나와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충북에 있는 기숙형 중학교를 잘 다니고 있는 동영이는 처음 집에 왔을 때 보인 눈빛과 말투가 완전히 사라졌다.

초대 중앙입양원 원장으로 와서 두 번째 연임을 하고 있는 신언항 원장에게 그 자리는 정확하게 딱 들어맞는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입양을 인터뷰 하다'는 제목의 연재를 시작하기 전 어느 입양부모가 나에게 한 말이 있다. '그 연재는 당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그분이 그렇게 말을 한 데에는 내 글 솜씨의 출중함을 칭찬하자는 뜻이 아니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입양부모이기 때문에. 입양가족이기 때문에 가능한 연재라는 뜻이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국가입양기관이 주는 의미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집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게 기초인 것처럼 입양이라는 분야에 본격적인 주춧돌을 놓는 자리가 현재 중앙입양원의 정확한 위치다. 혹시라도 그 자리에 진짜 제대로 된 낙하산(?)이 내려왔다면 하는 아찔함을 멀리하고 진짜 입양부모가 제대로 된 자리에 잘 안착하고 있다는 느낌이 와락 다가왔다.

무엇보다도 입양 중에서 가장 고난이도에 속한다는 연장아 입양을 통해 그 자신이 입양의 본질을 적확하게 꿰뚫고 있다는 점은 그가 원장으로 있는 중앙입양원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입양문화의 성장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자산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상기하자면 5월 11일은 입양의 날이다.    



○ 편집ㅣ박혜경 기자



태그:#입양, #중앙입양원, #신언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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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유목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을 거쳤다가 서울에 다시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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