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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처음으로 단기방학이 도입되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한 봄 관광주간(5.1~5.14)중 주말과 공휴일에 학교장 재량 휴업일을 붙여 짧은 기간 동안 방학을 하는 것으로 대부분 4~5일을 쉬고 개학했으나 일부 학교는 10일간 쉬기로 하여 며칠 뒤에 개학하기도 한다. 교육부가 발표한 '2015학년도 학사 운영 다양화·내실화 추진 계획'의 차원에서 전국의 초·중·고 90%가량이 단기방학을 실시했고 10월에도 가을 관광주간(10.19~11.1)중 단기방학을 실시할 계획이나 그에 따른 부작용과 폐해 또한 만만찮다.

단기방학은 학생들이 체험의 궤도를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또한 관행적으로 운영해 온 장기 방학의 틀에서 벗어나 학습 시간과 휴식 시간 간의 황금 비율을 찾게 해 줌으로써 효율성을 제고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아울러 국내 관광 활성화를 통한 내수 진작에도 분명 도움이 되는 제도일 것이다. 하지만 '관광 활성화'라는 경제 논리가 지나치게 강조되고 교육이 수단으로 전락한 탓에 순기능이 크게 작용하지 못했던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관광 주간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오는 16일까지 국립공원 야영장 28곳의 이용료를 50% 할인해 주고 있다. 농촌체험 휴양마을 148곳의 체험·숙박료도 20% 할인해 주고 전국 75개 사찰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템플스테이를 즐길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하기도 했다. 아울러 지방자치단체, 유관 기관, 민간 기업과 적극적인 협력 체제를 구축하여 다양한 행사와 저렴한 비용으로 국내 관광을 활성화하고자 했다. 김종덕 장관까지 직접 나서서 휴가를 내고 인천의 한 섬으로 떠난 걸 보면 관광 주간을 통해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지쳐 있는 국내 경제에 나름의 도움이 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교육적 차원에서는 상처를 남기고 숙제를 안겨다 주었다는 사실을 거부할 수 없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행사의 성공을 위해 교육부의 '2015학년도 학사 운영 다양화·내실화 추진 계획'을 수단으로 끌어온 것인지 교육부가 '2015학년도 학사 운영 다양화·내실화 추진 계획'이 본질에서 훼손될 가능성도 있음을 인지하지 못한 것인지 문제점이 노출된 것만은 사실이다.

정부가 경제 살리기에 과도하게 매몰되어 있다 보니 문화체육관광부의 정책에 교육부가 끌려다니는 형국을 보이고 있다. 결국 경제 논리에 교육이 수단으로 밀려 버린 것이다. 어떻게 하면 가족 단위로 여행을 많이 다닐지에 대한 고민은 많았으나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가족에 대한 대안은 마련하지 못했다.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이 초라해 보일 정도로, 법 위의 사업주 앞에 고개 숙인 노동자로서의 아버지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사회적 취약 계층의 자녀, 맞벌이 가정의 자녀, 편부모 가정의 자녀 등 '부모를 기다리는 시간이 더욱 길어지는' 아이들에 대한 대비책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음으로써 좋은 취지로 시작한 제도가 구조적 폭력을 행사한 꼴이 되어 버렸다. 시간과 돈 양자든 전자든 후자든 그것이 존재하지 않음으로 인해 단기방학 속에 양극화의 비극이 잔존할 수 있다는 것인데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부는 관광 주간과 단기 방학을 본 취지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가정에 대해 대안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바라는 대로 국내 관광 산업이 얼마나 활성화될 지, 단기 방학을 끼고 있는 관광 주간의 효용은 어떤 데이터로 나타날지 지켜봐야 하겠지만 적어도 단기방학이 사교육 시장에 배를 불려준 것만은 사실이다. 학원들은 단기방학을 기다렸다는 듯이 '7일 초등학생 전 과목 완성', '초단기 영어 소수 정예반', '논술 대비반', '과학고 특별반' 등 특강 과정을 개설했다. 단기방학 중 학생들이 학원으로 쏠리지 않도록 학원들에 자율휴업을 권하는 등 교육부가 동참을 요청했다지만 '요청'만으로 학원이 시장 논리를 저버릴 것이라는 기대를 애초부터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단기방학 특강 프로그램 수강료로 100만 원을 웃도는 돈을 받는 학원도 있으니 그곳이 관광지인지 정부에 물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서울특별시교육청의 경우 초·중·고 1305개교 중 88.96%가 단기방학을 실시했고 충청남도교육청은 전체 초·중·고의 91.7%가 단기방학을 실시하는 등 전국 대부분의 학교에서 단기방학을 수용한 가운데 전라북도교육청만 단기방학을 실시하지 않기로 했다. '맞벌이 부부의 자녀 돌봄 문제가 생기고 단기방학을 이용한 고액 사교육이 성행할 수 있어 단기방학을 운영하지 않겠다.'는 전북교육감의 이야기를 통해 단기방학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본질에 더욱 다가서려 한다면 더 좋은 정책으로 승화될 길이 열리지 않을까?

벽에 걸린 달력을 보며
  빨간 숫자는 아빠 쉬는 날이라고
  민주는 크레용으로 이번 달에 6개나 동그라미를 그려 놓았다

  민주야
  저 달력의 빨간 숫자는
  아빠의 휴일이 아니란다
  배부르고 능력 있는 양반들의 휴일이지
  곤히 잠든 민주야
  너만은 훌륭하게 키우려고
  네가 손꼽아 기다리며 동그라미 처논
  빨간 휴일날 아빠는 특근을 간다
  발걸음도 무거운 창백한 얼굴로
  화창한 신록의 휴일을 비켜
  특근을 간다

  -박노해 '휴일특근' 중

'배부르고 능력 있는 양반들'이 그들의 시선으로, 그들과 공감하는 이들의 입장에서만 정책을 입안해서는 안 된다. 고용노동부든 문화체육관광부든 교육부든 '실적'이라는 개념으로 제도를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제도를 만듦으로써 생기는 폐단과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안착'의 과정을 꼼꼼히 챙겨야 한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상생의 구조가 만들어지고 그러한 틀 속에서 단기방학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민주의 아빠가 '화창한 신록의 휴일을 비켜' 가는 일이 없는 사회가 오기를 기대한다. 설령 그 과정이 더디더라도 교육공동체는 민주가 그려 놓은 동그라미 여섯 개의 의미가 헛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태그:#박노해, #단기방학, #문화체육관광부, #근로자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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