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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아시아의 창>은 군포에 있는 '이주민센터'로 네팔과 인연이 많은 단체입니다. 네팔 노동자들과 인연이 깊고, 네팔에서 살다온 사람들도 있고, 네팔이 좋아 네팔로 떠난 사람들이 많다지요. 그 때문에 <아시아의 창>은 이번에 네팔에서 일어난 지진 때문에 근심과 걱정이 더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정씨는 <아시아의 창>에서 실무자로 10여 년 동안 일하다가 네팔 총각 커겐드라를 만나 결혼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린이라는 아들도 있습니다. 최근정씨는 작년에 아이를 네팔에서 키우고 싶다고 남편과 네팔로 떠났고, 카트만두에서 가족과 살고 있습니다.

지진은 최근정씨 가족에게도 피해를 입혔습니다. 주변에서는 한국인인 그이가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언제 한국으로 돌아가느냐"고 묻기도 한답니다. 하지만 최근정씨는 남편과 아이, 그리고 시집식구들을 두고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이 없습니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는 겁에 질렸던 최근정씨는 정신을 가다듬고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상황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이죠.

지난 4월 28일, 최근정씨는 <아시아의 창>에 도움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네팔사람들은 지진 피해에서 복구를 하고 일어서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으니 도와달라는 것이지요. 네팔을 도와야 한다는 움직임은 이미 국내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시아의 창>에서는 최근정씨가 네팔 현지에서 전하는 소식을 알리면서 네팔을 위해 '십시일반'으로 정성을 모으자면서 최근정씨의 편지를 공개했습니다. 최근정씨 역시 자신의 편지를 널리 알려 네팔을 돕는 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다음의 글은 최근정씨가 <아시아의 창>에 보내온 글입니다. 네팔 현지의 생생한 상황이 담겨 있습니다. <아시아의 창>은 최근정씨의 메일을 공개하면서 네팔을 위해 모금을 시작했습니다.... 편집자 말

오늘이 나흘째다. 오늘 낮에 또 비가 내렸다. 비가 오면 집에 잠시 들어갔던 사람들도 부리나케 천막으로 모여든다. 집 근처 공터에 천막을 치고 사흘 밤을 잤다. 

이틀째 밤에도 비가 내렸다. 청년들이 나서서 천막의 끈을 다시 매고 고인 비를 조심조심 쓸어내리며 천막이 상하지 않게 조심하고 있었다. 천막이 찢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세월호 기사를 다시 보고 있자니 마음이 더 아팠는데 그 찰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데 왜 나는 책상 밑으로 들어갔을까? 나는 마우스를 잡았던 손을 잽싸게 놓고 책상 밑으로 들어갔던 거 같다.

갑자기 흔들렸다 이거 뭐야 이거 뭐야 나는 죽는구나 싶었다. 책상이 흔들렸고 천장이 곧 무너질 것 같았다. 나는 혼자 악을 쓰며 책상 밑에서 린, 린, 린, 린을 악을 쓰며 린, 린, 린을 불렀다.

사월 이십오일 토요일 낮 열한시 오십분경, 토요근무 담당이었던 나는 굿핸즈네팔 건물 사층 사무실 책상 밑에 혼자 숨어 온 건물이 흔들리는 바닥에 엎드려 "플리즈(please)"를 외쳤다. 

최근정씨와 린.
 최근정씨와 린.
ⓒ 최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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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이가 똥이 마렵다고 했다. 이틀째 동네사람들 이백여 명이 머물고 있는 천막에서 조금 떨어진 모퉁이에 린이 바지를 벗겨 막 앉히려는 찰나, 천막에서 달려온 썬토스가 번개같이 린이를 낚아 채갔다. 썬토스는 독수리 같이 빠르게 달려와 린이를 확 낚아채갔다.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나도 바로 뛰었다. 첫날 지진만큼 큰 흔들림이었다. 시간이 조금 짧아서 우리는 안심했다. 천막에 앉아 여진이 가라앉기를 기다린 다음 린이에게 똥은 조금 있다 누자고 했더니 "엄마, 괜찮아"'라고 린이 말했다. 그리고 잠시 뒤 린은 잠이 들었다.

그 다음날, 린은 두 번이나 똥이 마렵다고 해 쪼그려 앉혔는데, 도로 일어나고 말더니 세 번째 똥 누러 가서야 비로소 똥을 누었다. 그 날 밤 천막에서 잠든 린은 "엄마, 아찌 아요(엄마 똥 나와요)"라는 잠꼬대를 두 번이나 했다.

똥꼬를 막고 똥 나온다고 빨리 바지 벗겨 달라던 아이의 똥. 

아이들은 천막에서 하나 같이 잘 놀고 까분다. 삼일째 되던, 어제는 축제처럼 사람들이 놀았다. 여진이 확 줄었기 때문이다. 햇빛은 나고 바람은 불지 않았다. 

토요일 아침은 정말 음산했다. 나는 가방을 매고 템푸를 타고 사무실로 나갔다. 10시 출근이었지만 11시에 출근했다. 싸간 상추를 싸먹고 세월호 기사를 좀 보고 있었다.  

첫날, 사람들은 모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방귀를 많이 뀌었다. 냄새가 지독했다. 뒷날은 좀 정신을 차렸고 잠자리가 정렬되었고 셋째 날은 카드놀이를 하는 어른들, 저들끼리 몸을 굴리며 노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나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먹을 생각이 전혀 나지 않았다. 커겐이 어디 가서 사왔는지 신라면을 끓여왔다. 또 지진이 날까봐 뜨거운 라면 국물은 버리고 면만 조금 먹었다. 밤엔 코고는 어른들도 많았다.

아이가 있어서 걱정들이 많았지만 아이들이 있어서 걱정을 견딜 수 있었다. 아이들은 잠을 잘 잤다. 어떤 아이도 투덜대거나 자리가 좁아 잠을 못 잔다고 투덜대지 않았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썹 틱처, 써버이 틱처, 엑떰 틱처가 전화를 하면서 많이 한 말이다.

다, 괜찮아요, 모든 게 괜찮아요. 아주 괜찮아요.

사실 우리 동넨 정말 모든 게 괜찮았다. 참 온순한 네팔 사람들. 누구도 큰 소리 내어 불안을 말하지 않았고 섣불리 낙관도 없이 그냥 "어 아요 아요 아요"라고 말할 뿐이었다, "어, 온다 온다 온다"하면 다들 우우우 하다가 놀란 가슴을 조용히 쓸어내리곤 했다. 스무 번 이상 그랬던 거 같다. 

우리 동네에는 구호물품이란 건 없다. 곧 시장에서 야채를 못 살 거 같다고 시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가게에서는 소금을 안 팔려 한다고 한다.

지진이 멈춘 느낌이 들었다. 사무실 천장이 무너지지 않고 멈춘 것이 정말 기적 같았지만 다시 또 흔들릴까봐 무서웠다. 사층 사무실에서 무조건 뛰어 계단을 내려왔다.

바깥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우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뛰었다. 뛰고 있었는데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큰 길로 나왔는데 차가, 내가 타고 다니는 하늘색 마이크로버스가 오지 않았다. 나는 다시 뛰었다. 갑자기 이 상황이 무엇인지 현실인지 무엇인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영화 같았다.

무조건 뛰었다. 사람들도 우왕좌왕 하고 있었다. 뛰다 푸라노 바네수워로 가는 템푸를 탔으나 얼마 가지 못해 운전수는 차를 틀어야겠다며 우리 모두에게 내리라고 했다. 이미 길이 막혀 있었다. 사람들은 도로 중앙에 모여 있거나 급하게 뛰고 있었다.

집에 갈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가 한 대 왔다. 푸라노 바네수워에 가자고 했더니 삼백 루피 달라고 했다. 무조건 가자고 했다. 큰길로 가려는 기사에게 샛길로 가자고 했다. 큰 길은 이미 막히고 있었다. 샛길로 접어들자마자 갑자기 또 흔들렸다. 나와 운전수가 동시에 내렸다. 

길 아래 공터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나도 공터로 내려갔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다른 때는 내게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묻던 사람들이, 그 날, 아무도 내게 말을 건네지 않았다. 내가 먼저 물었다.

"또 온대요?"

사람들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세 시간이 캄캄하게 흘러갔다. 그 사이 네 번 정도 흔들렸다. 아, 무서워.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까봐 무서웠다. 

주검이 너무 많아 퍼수퍼티 사원 화장터만으로는 모자라 물마른 박머띠 강 어느 곳에서나 불을 얹고 있습니다.
 주검이 너무 많아 퍼수퍼티 사원 화장터만으로는 모자라 물마른 박머띠 강 어느 곳에서나 불을 얹고 있습니다.
ⓒ 최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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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통신은 두절되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국에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갔으나 받지 않았다. 지진에 대해 좀 더 알아둘 걸, 아니 안다한들.... 그 때까지만 해도 박타푸르 집들이 무너지고 순다라 하얀 탑이 무너지고 신두발촉이 무너진 줄을 난 몰랐다. 머리가 하얘져서 누구의 전화번호도 생각나지 않았다.

썬토스가 오토바이를 타고 한 시간을 헤맨 끝에 나를 찾아왔다. 썬토스를 보자, 정말 안심이 되었다. 가족을 만나니 정말 거짓말처럼 안심이 되었다. 우리 썬토스는 그런 사람이었다. 모든 것을 다 이길 것 같은. 

사람들이 집 앞 공터에 다 모여 있었다. 커겐과 썬토스는 린을 감싸 안고 문을 붙잡고 있었다고 했다. 린은 아빠가 이렇게 자신을 안아 주었다며, 아빠랑 썬토스 삼촌이 "신은 없다"고 했다는 말을 이틀째 되던 날 했다.

그렇게 강한 사람처럼 보였던 썬토스는 지진이 멈추고 많이 울었다고 했다. 그랬구나, 썬토스. 무서움을 무릅쓰고 한 시간이나 나를 찾아 헤맨 막내 썬토스.  

세상의 그렇게 많은 불행이 나를 비켜갈 때마다 나는 안도했었다. 사람들에게 불행한 일이 생길 때마다 내겐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 줄 알았다.  

본부에서 구호활동을 하라는 연락이 왔다. 이미 돈도 만 달러를 보냈다고 했다. 근데, 나는 지금 구호를 하러 갈 수가 없다. 혼자, 사무실 사층에서 떨던 생각이 나서 아직은 길을 나설 수가 없다. 인터넷 연결이 될 때마다 사고 소식을 영상으로도 조금씩 보고 있는데, 너무 끔찍하고 무서워서 못 보겠다. 지금은 안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오늘은 천막에서 자는 것이 나흘째인데, 아직 집에 들어갈 수가 없다. 나흘째, 계속 어머니 아버지가 밥을 해 주시고 썬토스와 라진, 우리 아가씨 프라바도 따뜻한 물, 밥을 내게 준다. 나는 아직 엄두가 안 난다.

린을 돌보는 커겐은 내게 한국에 먼저 가는 게 어떻겠냐고 하지만 여기 가족이 있는데, 그렇게 쉽게 돌아가지는 못할 거 같다. 

덧붙이는 글 | 아시아의 창http://www.achang.or.kr (031-443-2876)



태그:#네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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