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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가수 조성일을 처음 만난 것은 2012년의 마지막 날, 제주 강정마을에서였다. 대선 결과가 나온 지 며칠 안 되었을 때였다.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싸움에 결코 우호적이지 않을 정권이 들어선다는 선거 결과에 강정마을은 침울했다. 

그는 연말 문화제에서 MR 반주에 맞춰 에코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집회용 마이크를 들고 목이 터져라 노래를 하고 있었다. 함께 있던 지인은 그가 노래패 '꽃다지' 전 멤버라고 했다. 2012년의 마지막 날 밤은 몹시 추웠다. 곱은 손으로 기타를 칠 수 있을지 걱정되었지만 그는 무대를 잘 마무리했다. 그는 제주에 살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조성일 1집 앨범 'Road Song'. 타이틀곡은 '시동을 걸었어'다.
 조성일 1집 앨범 'Road Song'. 타이틀곡은 '시동을 걸었어'다.
ⓒ 조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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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13년 5월 즈음,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10년 넘게 활동하는 동안 그의 삶에 깊게 새겨졌을 '꽃다지'라는 훈장 같은 세 글자를 왜 벗어던지고 제주까지 내려왔는지, 이제 도대체 어떻게 살 건지 궁금했다. 그때 그는 1집 'Road Song(로드 송)' 준비로 바빴다. 제주도로 살러 오면서 '홀로서기'를 선언하고 내놓는 첫 앨범이었다.

그리고 2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다시 그를 만났다. 인터뷰 자리에서 터져나온 그의 이야기들은 함께 웃고 떠들며 알고 지낸 시간들이 무색할만큼 더욱 깊어진 고민과 생각들로 가득했다. 지난 4월 봄날 제주 남원읍 위미리의 그의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 제주살이, 이제 얼마나 됐나?
"4년 차다. 2012년 4월에 왔다."

- 제주도로 온 이후 활동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꽃다지를 떠나 솔로 활동을 제주에 내려와서 시작했고 1집 음반을 제작했다. 음반기념콘서트를 서울에서 했다. 그 후 지역순회공연을 부산, 광주, 제주에서 했다.

매달 광주에서 하는 '밥꽃 프로젝트'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기획자인 후배, 선배, 나까지 셋이 모여 꾸린 프로젝트다. 지역의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조직이나 개인을 초대해서 밥 한 끼를 나누고 음악을 나누는 것이다. 광주의 젊은 음악인들도 함께 하고 있다. 올해는 이 프로젝트를 더 알리고 후원조직을 꾸릴 계획이다.

제주도에서는 민주노총, 강정 해군기지 현장, 세월호 집회 등 다양한 자리에서 공연을 했다. 비정기적으로 카페에서도 공연을 하고 있다. 서울에서 음악을 이어가야 했다면 클럽에서라도 해서 탄탄한 근육을 만들어 가려 했을 텐데, 제주에서 하게 돼 좋다. 혼자서 카페 공연을 하는 것은 제주에서가 처음이라 의미있다. 스스로 단련하는 의미다. 매달 고정적으로 하고 싶어서 한경면 저지리에 있는 카페 '소리'와 협의 중이다. 육지에서의 음악 활동 폭도 넓어졌으면 좋겠다. 제주라는 지역의, 섬이라는 한계 때문인지 활동의 폭이 좁다. 올 해 풀어낼 과제이고 숙제다."

- 제주에 와서 살면서 달라진 것이 있나.
"제주도로 내려올 때 뒤에 절벽을 두고 온다는 생각으로 왔다. 그만큼 절박했다.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 서울에 있었으면 아마 삶의 지속이 어려웠을 것 같다. 제주에서의 시간들은 나와의 화해의 시간들이다. 예전엔 스스로에게 화가 나면 작업실에서 소리를 지르곤 했다. 지금도 그럴 때가 있지만 이제는 스스로를 다독여주고, 괜찮아, 라고 말해준다.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제주에 와서 많이 달라졌다.

서울에서는 지출이 많아 경제활동에 대한 부담이 컸다. 제주에 온 뒤로는 소비 규모가 크지 않으니 가족간의 불화도 덜하다. 마음의 여유가 더 생겼다. 그만큼 음악활동이 조금 더 자유로워졌다. 자연환경이 주는 여유로움이 큰 것 같다. 힘들고 답답하거나 외로워서 문득 하늘을 보거나 한라산을 볼 때면 생각지도 못한 광경을 만난다. 그러면 복잡했던 머릿속이 말끔해지는 느낌이다."

- 제주살이 4년차라면, 많이 익숙해졌을 텐데, 처음 같지는 않은 면도 있을 것 같다.
"제주도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감당 못할 정도로 엄청난 자연의 에너지가 내게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제주에 산 지 4년차쯤 되니 달라진 부분들이 있다. 여전히 너무 좋긴 하지만 반복되는 생활을 하다 보니 환경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돌 하나 나뭇가지 꺾인 것 하나하나가 뭔가 다르게 다가왔는데 이제는 익숙해지다 보니 지나쳐가게 된다. 그래도 제주의 하늘만은 싫증이 나지 않더라. 매일 보여주는 것이 다르니까. 처음과 달리 제주가 더 깊게 느껴지는 것은 있다.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좀 더 눈에 들어온다. 내가 여기서 말 그대로 살아가고 있구나, 싶다."

- 제주도에서 계속 살 건가? 살았으면 좋겠는데.
"요즘 고민을 세 글자로 표현하면... '지겹다'라는 것이다. 제주도가 지겹다는 것은 아니다. 지겹지 않고 매력적이다. 항상 나를 놀라게 하는 매력이 있다. 내 삶이 지겹다, 라는 생각이 든다. 제주라는 좋은 환경에 와서도 삶에 치이고 매달리는 것이 그렇게 느끼게 한다. 경제적인 것이건. 관계들이건. 외로움이건. 그럼 어디 갈 데가 있나. 다른 섬이 있나(웃음).

어디로 간다고 해서 달라질까. 그건 아닐 것 같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가 고민이다. 돈도 많지 않다. 나는 음악 천재도 아니고. 내가 하는 음악 자체가 대중적이지 않다. 물론 사회비판적인 음악이라고 해서, '대중적인 음악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업계의 구조적인 문제다. 과거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처럼 널리 대중적으로 할 수도 있는 거다. 문제는 그런 구조가 막혀있다는 것이다. 돈되는 음악, 가벼운 음악들, 기술에 치우친 음악들. 대중들은 수동적으로 소비하도록 길들여진다.

요즘 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서 거기 나오는 아이들이 너무나 기술적으로 뛰어난 것을 보며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들어 있고, 진정성이 있는 것이 음악이어야 하지 않겠나. 여러 가지 고민이 든다. 지겨움의 돌파구는 뭘까.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요즘 혼자서 뚝딱뚝딱 작업실 창고를 개조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환기 시키고 싶은 이야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지 않겠나.

한편 경제적인 부분은 여전히 발목을 잡는다. 불안감은 계속 한 축으로 존재한다. 그런데 어렵고 불안하고 생각이 많은 환경에서 창작이 나온다. 절벽을 느낄 때 뭔가가 나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다. 1집 '로드송'도 막다른 골목에서 나왔다. 마지막으로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불안하고 싶지 않다. 행복하고 싶고, '잘' 살고 싶다."

- 제주에서 계속 살 것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긴 이야기를 하다니. 기자 또한 공감되는 부분이 많기도 하다. 요즘은 어떤 음악 작업을 하고 있나.
"꾸준히 음악을 하고 생산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하는데, 어렵다. 뭔가 다른 어떤 것을 보여 줘야 하는데 아직 그게 나오지 않고 있다. 나는 그때그때 하는 게 아니고 계속 쌓아 뒀다가 몰입해서 다작하는 스타일이다. 머릿속 이야기와 그림들을 오랫동안 궁리하다가 그것이 안에서 폭발한다. 2집 정규 음반에 대한 문의들이 많다. 곡을 쓰고 있는지 다들 궁금해들 한다. 1집 제작비를 소셜 펀딩에 순순히 의지해서 만들었다. 1집으로 육지에서 음반 활동을 많이 못해서 다시 후원자들에게 도와달라고 하기가 미안하다. 후원에 대한 부담을 덜고 싱글로 음원을 내는 걸로 할까도 싶다. 그게 쌓이면 2집 음반으로 만드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 중이다.

슬금슬금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겠나 싶다. 1집 앨범 자켓에 'Road Song. 시동을 걸었어'라고 써있지 않나. 말 그대로 길의 노래다. 길이란 우리한테 뭘까. 길에서 사람의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않나. 길을 만들기도 하고. 길이 진실이 될 수도 왜곡될 수도 있다. 왜곡된 길을 깨치려고 길을 나서기도 한다. 문제도 해결도 길에서 나온다. 내가 서있어야 할 곳이 바로 길이다. 내가 서 있던 곳도 길이고, 앞으로 가야 할 것도 그 길이다. 그 길의 긴 주제를 담은 것이 1집 앨범 'Road Song(로드 송)'이다. 타이틀곡도 '시동을 걸었어'다. 시동만 걸고 여기까지! 일수도 있겠지만 말이다.(웃음) 

1집 앨범의 주제는 두가지다. 하나는 나와의 화해, 만남이다. 다른 한 축은 내가 세상과 만나고 보고 느끼는 것이다. '시동을 걸었어'라는 선언처럼 말이다. 앞으로 할 작업들은 일상. 생활의 이야기들로 좀 더 들어가게 되지 않겠나 싶다. 구체적으로 풀어내는 작업들이 될 것이다.

세월호의 충격으로 인해 노래를 하나 만들게 되었다. 노래의 화자는 세월호 안에 갇혀 있는 학생이다. 물이 배 안에 차들어가고 침몰하는 것을 보는 시각에서 말하는 것이다. 상상 자체가 너무 힘든 작업이었다. 서귀포 촛불문화제에 유가족이 오셨을 때도 차마 못 부르겠더라. 가사 자체가 상황에 대해 그림이 그려지는 노래여서. 추모곡이라기 보다 사건을 이야기하는 느낌의 노래다.

노래를 만든 후 초반에는 도저히 못 부르다가 나중에 진도 팽목항 추모문화제에서 불렀다. 최근 <한겨레>에 실린 김민기씨 인터뷰를 보면, 세월호에 대해 노래를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김민기씨는 '그 고통과 아픔을 내가 이야기할 부분은 아닌 것 같다. 부모만큼 알 수 있겠는가. 감히 못 하겠다'고 했다. 그것을 보고 한 대 맞은 듯했다. 나는 뭔가. 내가 교만했나 생각하게 되더라. 그러나, 물론 노래의 의미는 있다고 생각한다. 제목은 '응답해줘'다. 부제는 '내 죽음의 이유'이다.

희미해진 어둠속 시간 엄습해 오는 차가운 공포
마지막 온 힘을 다해 한줄기 빛을 기다려
한 시간 열 시간 지나 한 달의 시간 흘러도
그 누구도 바닷속 나를 찾아오는 사람은 없고

난 아직 살아 있는데 난 아직 여기 있는데
들리는지 내 목소리 들리는지 내 목소리

아 - 아 - 아 - 아 - 아 - 아
아 - 아 - 아 - 아 - 아 - 아

모든 것이 끝나 버린 듯 지난 일처럼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가고 난 아직도 바닷속 여기
칠흑같은 어둠속 공포 바다 위에선 무슨 소리가
비가 내리고 있는 걸까 날 부르는 엄마의 소리 들려

난 아직 살아 있는데 난 아직 여기 있는데
들리는지 내 목소리 들리는지 내 목소리

아 - 아 - 아 - 아 - 아 - 아
아 - 아 - 아 - 아 - 아 - 아

응답해줘 널 부르는 목소리 들리는지
응답해줘 내 마지막 절규 들리는지
응답해줘 널 기다리는 난 아직 여기 
응답해줘 내 죽음의 이유 응답해줘

노래 만든 사연이 묘하다. 광주 공연 가기 전날 가사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배 안에서의 당사자 입장에서 써보자는 것이었다. 그날 새벽 밤을 새서 가사를 썼다. 더 정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광주에 가서 공연을 했는데 폭우가 쏟아졌다. 다음날 제주 가는 비행기가 막혔다. 월요일 출근해야 하는데. 서울에서는 비행기가 뜰 것 같아 밤 기차 타고 서울로 갔다. 그 기차 안에서 가사가 정리가 됐다.

다음 날 자고 일어났는데 입에 중얼거려지는 것이 있더라. 가사에 맞춰 멜로디가 흥얼거려지고 옆에 있던 기타로 연주해봤다. 그때 노래의 80%가 만들어졌다. 신기했다. 뭔가 어떤 힘이 있어서 노래를 만들도록 한 게 아닌가 싶다.

팽목항 추모공연에 갔는데 비에 우박에 날씨가 많이 안 좋았다. 리허설에서부터 폭우를 다 맞았다. 공연을 못할 것 같았다. 그런데 내 차례가 되어 노래를 부르려 나서자 갑자기 날씨가 좋아졌다. 너무 따뜻한 느낌이었다. 응답해줘, 이 노래를 했다. 공연이 끝나고 짐을 챙기는데 다시 폭우가 내렸다.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노래를 부르는 것에 대한 망설임이 있었던 내 마음을 알아준 것 같다. 미안하기도 했다. 특별한 경험이라서, 꼭 작업을 해서 음원으로 만들어서 대중에 오픈하고 싶다.

살아남은 사람의 시각으로 부르는 추모곡들만 있어서 아쉽기 때문이다,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있다. 음악 또한 다른 방식의 기록일 수 있지 않나. 민중가요, 사회적 음악은 그런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나. 그런 노래가 감히 되었으면 좋겠다."

지난 1월 한경면 저지리 복합문화공간에서 있었던 도내 예술인들의 합동공연인 김광석 추모 공연과 3월말 강정마을에서 있었던 앙코르 공연에서 조성일은 무대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강정에서의 공연은 직접 기획을 담당했다. 김광석의 노래 '일어나'를 독특하게 편곡해서 불렀고,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았다.

지난 1월 제주도에서 있었던 김광석추모공연에서 노래하고 있는 조성일씨.
 지난 1월 제주도에서 있었던 김광석추모공연에서 노래하고 있는 조성일씨.
ⓒ 오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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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곡과 달리 조용하지만 힘있는 '일어나'가 아주 인상깊었다. 울림이 깊었다고나 할까. 어떻게 해서 이렇게 편곡하게 되었나.
"같이 김광석 추모 공연을 하자는 제안이 기획단에서 왔을 때 뭘 부를까 했다. 공연 자리에 가면 무슨 이야기를 노래로 전달해야 하는가를 먼저 생각한다. 김광석 선배의 노래로 무슨 이야기를 해야하나 고민이 있었다.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도 생각했다. 내가 설레던 시절. 몰입해서 뭔가를 했던 시절이 언제였나. 그런 게 느끼고 싶어서. '외사랑'을 부를까 하다가 다른 팀이 부른다길래 놓았다.

지금 이 나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썩 행복하지 않은, 절망이 가득한 시점에서, 김광석의 노래는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가지는 걸까 돌아봤다. 그의 노래는 사회적인 고민들을 풀어낸 것도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지금도 김광석의 노래는 진행형이지 않겠나. 사회적인 의미를 가지니까. '일어나'의 가사를 보니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더라. '검은 밤의 가운데 서있어 둘러봐도 소용없었지' 딱 이렇더라, 우리의 심정이. 김광석은 비트 있게 불렀지만 나는 가사를 전달하려고 거꾸로 느리게 갔다. 반응이 좋았다."

- 직접 공연뿐 아니라 공연 기획도 직접 한 것 같은데.
"꽃다지 시절은 직접 공연기획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공연 준비를 어떻게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강정마을에서의 김광석 추모 앙코르 공연은 생각보다 기획이 힘들지는 않았다. 앙코르 공연이기 때문에 진행팀들과 합이 잘 맞았다. 놓치는 부분도 서로 보완됐다.

가치 있는 기획은 의도대로 성공적으로 실현된다면 좋은 결과물을 낳는구나 하고 느꼈다. 강정 주민, 활동가들에게도 힘이 된 것 같아 보람을 느꼈다. 그러나 나에겐 맞지 않는 옷이다. 나는 기획이 아니라 노래를 함으로써 에너지를 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이제 '조성일'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꽃다지'라는 수식어는 잘 들리지 않는다. 육지와 제주의 다양한 장소에서 조성일의 노래에 위로받고 힘을 얻는 이들이 점점 많아진 까닭이다. 조성일은 제주에서 오롯이 홀로 서서 그만의 음악을 하고 있다. 쉽지 않은 길을 쉽지 않은 음악을 하면서 천천히 느리게 한걸음씩 이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걷고 있는 길을 돌아보게 만드는 노래를 만들면서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매거진 1301 (http://blog.daum.net/jejudo5353/391)에도 싣립니다.



태그:#조성일, #로드송, #제주도, #꽃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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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사는 서울처녀, 제주도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해드릴게요 http://blog.naver.com/hit1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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