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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는 17여 시간을 달려 다음날 10시 30분에 도착했다.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해가 쨍하고 얼굴을 내밀며 우리를 반긴다.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한식당에서 김치찌개로 느끼한 속을 달랜 후 전용버스를 이용해 중서부의 산악도시 레르달로 향했다. 오슬로를 벗어나서 약간의 평야지를 지나 바로 산악으로 연결된다.

스칸디나비아 산줄기들 사이로 좁은 길은 구불구불 외줄기로 뻗어 있고, 그 옆으로 끊이지 않는 하천이 산줄기에서 내리는 물을 받아 바다인 듯 호수인 듯 알 수 없는 곳으로 모인다. 아직 얼어있는 곳은 호수이고 얼지 않은 곳은 바다로 연결되는 피오르라고 가이드가 설명해 준다.

문어발처럼 형성된 피오르가 내륙 깊숙이 계곡들을 채우고 있다. 산 아래는 봄인데 산등성이 마다 눈이 덮여있어 겨울과 봄이 공존하고 있다. 차창 밖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노르웨이의 숲'에는 소나무, 삼나무, 자작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고, 전망 좋은 호숫가나 산마루에는 어김없이 삼각지붕의 빨간 오두막 별장이 자리 잡고 있다.

레르달은 송네피오르의 지류인 에울란피오르의 끝자락에 위치해 옛스러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인구 2000명이 조금 넘는 전통적인 산촌이다. 우리가 묵을 단층의 숙소가 피오르를 전망으로 아담하게 앉아있다. 저녁이 되어도 좀처럼 어두워지지 않는 거리를 느리게 아주 느리게 배회했다. 어디나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은데 무엇이 우리를 지치게 하고 슬프게 하는가. 풍요, 여유, 만족, 이런 것들이 행복의 척도라면 우리는 이들의 흉내도 못 내겠다.

다음날은 북유럽 스타일로 조금 여유롭게 하루를 시작했다. 늦은 아침을 삶은 계란 하나와 치즈를 얹은 베이컨, 그리고 우유 한잔으로 때우고 만년설과 빙하박물관이 있는 피얼란드로 향했다. 포드네스와 만헬라를 잇는 연락선을 이용해 물길을 건너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푸른 빙원 요스테달 빙원 밑으로 해발 1200m에서 시작되는 6390m의 피얼란드 터널을 빠져나가면 하늘과 빙원을 구분할 수 없는 거대한 빙산이 눈앞에 펼쳐진다.

요스테달 빙원의 한 자락인 뵈이아 빙원 앞에서 차를 세우고 우리는 한참을 그 곳 분위기에 빠졌다. 도로변으로는 아직도 사람들의 키를 넘기는 눈이 쌓여있고, 보석처럼 푸른빛의 빙원에서는 빙하가 폭포를 이루며 쏟아진다. 이곳도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그 규모가 매년 축소된다고 하니 지구환경의 문제는 이제 지구촌 모두의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하고 대책을 찾지 않으면 안 되겠다.
   
1991년에 개관한 빙하박물관은 요스테달브렌 국립공원에 있으며, 빙하 및 기후변화에 관련된 자료들을 모아 전시하고 있다.
▲ 뵈이아 빙하박물관 1991년에 개관한 빙하박물관은 요스테달브렌 국립공원에 있으며, 빙하 및 기후변화에 관련된 자료들을 모아 전시하고 있다.
ⓒ 임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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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거슬러 뵈이아 빙하박물관으로 향했다. 독특한 디자인에 편안하게 느껴지는 빙하박물관은 빙하와 피오르의 생성과정, 그곳에서 자연을 보전하고 적응하며 살아가는 그들의 지난했던 삶, 빙하를 이용한 수력발전으로 에너지를 얻는 그들의 지혜가 각종 전시물과 3D영상을 통해 세계 각국의 언어로 설명되어 실감나게 한다.

인근에서 간단하게 오찬을 하고 우리는 송네피오르 탐방을 위해 플롬으로 향했다. 바다에서 수직으로 우뚝 솟아올라 병풍처럼 늘어서 있는 웅장한 산줄기를 따라 형성된 송네피오르는 약 20억 년 전 수많은 빙하의 침식으로 만들어진 빙곡으로 거대한 화강암 벽이 만을 기준으로 무려 900미터나 우뚝 솟아 있다. 그 길이만도 184㎞로 노르웨이에서 가장 길고 폭이 넓은 곳은 5㎞나 되며 수심은 1200m 달한단다.
 
송네피오르의 지류인 에울란피오르 안쪽 끝에 위치한 플롬에서 구드방겐 사이를 운항하는 페리에 탑승했다. 여러 나라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선상은 그야말로 다국적 공간이다. 풍경을 즐길 양으로 전망 좋은 갑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깎아지른 절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빙하와 해안단구에 모여있는 아담한 마을들, 농가와 별장이 피오르를 따라 그림처럼 펼쳐진다. 먹이를 찾아 유람선을 따라오는 갈매기에게 줄 것이 없어 미안하다.

굶주린 갈매기떼가 송네피오르를 유람하는 페리를 줄기차게 따라온다.
▲ 유람선을 따라오는 갈매기떼 굶주린 갈매기떼가 송네피오르를 유람하는 페리를 줄기차게 따라온다.
ⓒ 임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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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롬과 뮈르달 구간을 운행하는 중간 기착지에 잠시 멈춰서 있다.
▲ 플롬 산악열차 플롬과 뮈르달 구간을 운행하는 중간 기착지에 잠시 멈춰서 있다.
ⓒ 임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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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을 달려 내로이피오르 끝자락 구드방겐에 도착했을 때는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협곡사이에 위치한 조그만 마을은 관광지답지 않게 조용하다. 산 중턱에는 운해가 걸쳐있고, 간간이 눈 더미가 계곡을 타고 쏟아지는 소리가 정적을 깨운다. 저녁에는 식당 야외 처마 밑에서 조촐하게 불고기 파티를 했다. 미리 준비한 야외용 숯불을 이용해 돼지고기 직화구이를 했다. 비가 추적거려 다소 처량하긴 했지만, 긴 여정의 회포를 푸는데 그런대로 괜찮은 자리였다. 숙소는 유목 몽골인들의 게르처럼 원형으로 돌과 나무를 엮어 만든 집이었으나, 내부는 의외로 넓고 아늑했다. 특히 지붕에 통유리창을 내어 밤하늘을 볼 수 있게 해 운치를 더했다.

탐방 5일째인 다음날은 산악열차를 이용하기 위해 전날 페리를 타고 출발했던 플롬으로 다시 이동했다. 플롬에서 해발 863m의 뮈르달까지 11개의 역과 20개의 터널을 거쳐 20여㎞를 운행하는 산악열차는 1923년부터 마을사람들의 힘만으로 20여 년 간의 공사를 거쳐 철길을 완공했다고 한다. 최대경사는 55도에 이르고 최고속도가 시속 40㎞이며 소요시간은 50분이다. 구불구불 산악을 달려 중간 기착지인 효스포센역에서 잠깐 정차했으나, 높이 93m의 웅장한 폭포는 아직도 얼어붙어 그 위용을 볼 수가 없었다.

종착역 뮈르달에 도착해 환승열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난데없이 함박눈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인적이 끊긴 산촌에 하염없이 눈이 내려 산과 나무와 집이 눈 속에 묻혀 가는데 낯선 이방인들은 역사내 목의자에서 도란도란 객담을 나눈다. 눈보라를 뚫고 뮈르달에서 보스까지는 열차로 이동해서 보스에서 베르겐까지 전용버스를 이용했다.

브뤼겐의 건축물은 1702년 화재 이후 복원되어 지금까지 남아 있다. 고풍스러운 건물은 한자동맹 상인들이 활동했던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 브뤼겐 거리 브뤼겐의 건축물은 1702년 화재 이후 복원되어 지금까지 남아 있다. 고풍스러운 건물은 한자동맹 상인들이 활동했던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 임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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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과 여유의 도시 베르겐의 일요일은 한적하고 조용하다. 연중 275일을 비가 내린다니 비가 오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어시장도 그렇고 시내도 그렇고 거리는 아직 손님 맞을 준비가 덜 된 듯하다. 어시장에서 간단하게 연어회, 홍합, 새우 등으로 끼니를 때우고 비 내리는 시내를 걸었다. 파격적인 색감의 삼각지붕 건물이 즐비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브뤼겐 지역을 돌아 아기자기한 골목으로 들어서면 이 지역 출신 에드바르 그리그의 솔베이지송이 들려오는 듯하다.

우리는 베르겐을 뒤로하고 다시 오슬로 쪽으로 향했다. 이동 중에 만난 하르당게르피오르 위에 놓인 하르당게르교는 수심 500m에 이르는 빙곡으로 양쪽에 200m의 주탑을 세우고 총 연장 1380m, 폭 20m에 이르는 왕복 2차로 교량이다. 교량과 연결되는 터널에는 교차로가 있어 터널 내에서 차량이동을 용이하게 한다.

완만하게 이어진 산악로를 따라 하르당게르비다 고원에 이르니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차량을 통제하고 제설차량이 도로를 정비한 후 앞장서서 안내를 해줘야 통행할 수 있단다. 평균고도 1100m의 고원은 우리나라 서울의 5.6배에 달하는 광활한 면적으로 빙하의 침식작용에 의해 많은 호수와 강으로 형성되어 있으나, 지금은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설원일 뿐이다.

황량한 고원위에서 추운 줄도 모르고 뛰어다니며 사진도 찍고 눈밭을 구르다보니 1시간 정도 지나서 차가 움직인다. 오늘 머물 곳은 스키의 고장 게일로다. 마을 앞뒤로 스키장이 있고 호텔과 리조트들이 즐비한데 스키시즌이 끝나 한산하다.

전날저녁 일찍 쉰 탓에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호텔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니 계단식 상가들과 리조트, 별장들이 스키장 주변으로 열을 지어 들어서 있다. 지금은 모두 철수해 사람 구경하기가 힘들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곧바로 오슬로를 향해 이동했다.

오슬로 중앙역 맞은편에서 왕궁까지 연결된 카를요한스 거리 양쪽으로 시청사, 왕궁, 국립미술관, 대성당 등 주요 건물들이 다 모여 있다. 먼저 들른 시청사에서는 매년 12월 노벨상 수상식이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오슬로 창립 900주년을 기념해 세운 건물로 1931년 착공에 들어갔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공사가 잠시 중단되었다가 1950년에 이르러 완공되었다. 붉은 벽돌로 쌓은 좌우 대칭형 외관으로 유명한데, 겉은 소박하지만 안은 무척 화려하다. 에드바르트 뭉크의 '인생'을 비롯해 조각, 벽화 등이 잘 전시되어 관광객을 반긴다.

오슬로 시내에 있는 공원으로 조각가 비겔란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 비겔란 조각공원 오슬로 시내에 있는 공원으로 조각가 비겔란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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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슬로 도심의 북동쪽 드넓은 녹지에 조성된 비겔란 조각공원은 아름다운 자연과 예술작품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오슬로가 자랑하는 대표적인 문화공간이란다. 노르웨이 출신의 세계적인 조각가 구스타브 비겔란과 그의 제자들이 제작한 조각 작품 200여 개가 전시된 공원이다. 비겔란이 13년에 걸쳐 청동, 화강암, 주철을 사용한 다양한 작품을 준비했으며, 작품의 테마는 인간의 삶과 죽음을 아우르는 희로애락이었다.

공원에 전시된 비겔란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높이가 약 17m에 달하는 화강암 조각상 '모놀리트(Monolith)'다. 공원 한가운데 서 있어 멀리서 보면 그저 커다란 기둥처럼 보이지만, 121명의 남녀가 엉켜 괴로움으로 몸부림치는 모습이 생동감 있게 묘사된 작품이다. 정상으로 올라가려는 듯 안간힘을 쓰는 군상은 인간의 본성을 나타내며 실제 인체 크기로 조각되어 역동성을 느끼게 한다.



태그:#북유럽, #노르웨이, #오슬로, #베르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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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물처럼, 바람처럼, 시(詩)처럼 / essayist, reader, trave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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