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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이 28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메시지를 발표하고 있다.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이 28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메시지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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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못해 한 유감 표명. 그마저도 '물타기'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28일 오전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을 통해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전·현직 청와대 비서실장, 국무총리, 친박(친박근혜) 핵심 인사들이 연루된 만큼, 박 대통령이 4.29 재보궐선거 전에 직접 나서 이 문제를 매듭지어주길 바란 새누리당의 요청에 '대독 유감 표명'으로 부응한 것이다.

그러나 그 수위는 당의 기대에 못 미쳤다. 앞서 새누리당은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진솔한 말씀(유승민 원내대표)"을 기대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이날 이완구 전 국무총리의 사의를 수용해야 했던 상황에 대해서만 유감을 표했다.

여기서 그친 것도 아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참여정부 당시 성완종 특별사면'을 비판하고 나섰다. 수위도 높았다. 박 대통령은 "고 성완종씨에 대한 연이은 사면은 국민도 납득하기 어렵고 법치 훼손과 궁극적으로 나라를 어지럽히면서 결코 오늘날같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을 만들었다"라고 강조했다. 또 "저는 그동안 극히 제한적으로 생계형 사면만 실시해왔다"라며 도덕적 우위를 주장하기도 했다(관련기사 : '물타기' 박 대통령 "성완종 특별사면 국민 납득 못해").

새누리당이 '성완종 리스트'에 대응하기 위해 꺼내 들었던 '특별사면' 문제에 대통령이 직접 가세하고 나선 셈이다. 이 전 총리의 사의 수용에 대한 입장이 93자, 단 두 문장에 불과했고 '성완종 특별사면'에 대한 입장이 383자, 여섯 문장인 점을 감안하면, '주'가 바뀐 셈이다.

결국, 와병으로 공식석상에도 나서지 못한 박 대통령의 '대독 유감표명'은 그 진의를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성완종 특별사면 의혹 수사, 정치개혁 위해 필요"

먼저, '성완종 특별사면' 문제를 굳이 거론한 이유부터 논란이다. 앞서 박근혜 정부는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성완종 특별사면'을 거론하며 '우리가 더 낫다', '성완종 리스트의 근본적 원인'이라는 논리를 폈다. 게다가 이 역시 해소해야 할 의혹으로 규정지으면서 사실상 수사대상으로 지목해버렸다.

"참여정부 당시 성완종 특별사면을 거론한 배경이 있느냐"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김성우 홍보수석은 "고 성완종씨 죽음에 대해 몇 가지 의혹들이 제기되지 않았나? 특별사면 문제도 언론에서 제기된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필요한 지적이었다는 입장을 폈다.

또 "생각해보면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 논란이 있었고 그 때문에 이 정부에서는 굉장히 (사면권 행사를) 제한적으로 해왔다"라면서 "(대통령이) 그렇게 (참여정부 때와) 견주었다기보다는 사면권 행사를 엄중히 해야 하니 정치개혁을 위해서도 (특별사면 의혹 해소가) 필요하지 않겠냐는 말씀으로 이해해달라"라고 덧붙였다.

사실상 박 대통령이 말한 '정치개혁'을 위해서라도 특별사면 관련 의혹을 수사해야 한다는 말이다. 다만, 김 수석은 의혹 해소 방법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라며 즉답을 피했다.

"박 대통령이 '성완종 리스트' 관련 대선자금·독일 방문 비용 의혹 등이 아니라 특별사면을 찍어서 거론하면서 검찰에 '가이드라인'을 줬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김 수석은 "그렇진 않다. (대통령께서는) 성완종 메모 관련 쏟아졌던 각종 의혹을 당연히 해소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말씀하신 것"이라며 "어떤 것은 중하고 어떤 것은 중하지 않다고 하신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청와대의 '의지표명'에 적극 호응하고 있다. 김영우 새누리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참여정부의 특별사면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아래 새정치연합) 대표는 민정수석으로,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핵심요직을 맡고 있었다"라며 "문 대표는 이러한 '이상한 특별사면' 시리즈에 대해 국민 앞에 해명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성완종 특별사면' 뿐만 아니라 참여정부 당시 모든 특별사면으로 '범위'를 확장시킨 셈이다.

야당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김영록 새정치연합 수석대변인은 "특사는 대통령 고유 권한인데 진실을 밝히자는 것은 특사 건을 수사하라는 본심을 드러낸 대단히 부적절한 처사"라고 평했다. 천호선 정의당 대표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박 대통령은) 사면 언급에서 노골적인 저의를 숨기지 않는다"라며 "의문은 정당하고 해소돼야 하지만 사면은 대통령의 권한이지, 불법자금 같은 범죄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대통령의 선거중립 위반 논란까지 나온다. 문재인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이 특별사면 특혜 의혹을 말한 것은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고 정쟁을 하는 여당의 편을 들면서 간접적으로 여당의 선거를 지원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여당마저 우려했던 '유체이탈' 화법 반복

또다시 구사한 '유체이탈' 화법도 빠질 수 없다. 박 대통령은 이날 유감 표명에서 앞서도 강조했던 '정치개혁'을 재차 강조했다. 또 "이번에 반드시 과거부터 내려온 부정과 비리, 부패를 척결해서 새로운 정치개혁을 이뤄낼 것"이라며 자신을 개혁의 '주체'로 상정했다.

그러나 '성완종 리스트'만 보자면, 박 대통령이야말로 개혁의 '대상'이다.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 따르면, 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경선 당시 성 전 회장으로부터 7억 원을 받았다. 허 전 실장은 당시 박 대통령을 돕고 있었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2006년 성 전 회장으로부터 10만 달러를 받았다. 이때도 박 대통령의 독일 순방에 쓸 비용이었다는 게 성 전 회장의 주장이었다. 성 전 회장은 2012년 대선 당시에도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에게 2억 원을 건넸다고 밝혔다. 홍 의원은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의 조직총괄본부장이었다. 모든 금품수수의 귀착점이 박 대통령인 셈이다. 즉, 자신을 비롯해 최측근들이 의혹을 받는 상황인 만큼 그 자체를 놓고 사과하고 독립적인 수사를 위한 조치를 약속해야 했다.

참여연대, 경실련 등 14개 시민사회단체는 이날 오전 청와대 인근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의 측근들이 연루된 이번 사건에 대해 대통령 스스로 책임의식이 없다"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는 새누리당조차 지적한 문제다. 김재경 새누리당 의원은 전날(27일)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과 한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떠나기 전 발언에 대해 비판적 시각에서 보면 '유체이탈'이라는 표현이 있었다"며 "주변 분들의 이름이 거론됐고 더욱 더 구체적으로 수사도 진전됐으니 대통령이 여러 가지 상황을 판단해 사과하고 해결책을 말해야 국민들이 진정어린 표현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이날 유감 표명에서 이 전 총리 문제만 언급했다. 이 전 총리는 2013년 충남 부여·청양 재선거 당시 3000만 원을 수수한 의혹을 받고 사퇴했다. 2011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당시 1억 원을 수수한 의혹을 받고 있는 홍준표 경남지사와 더불어, 박 대통령과 관계없는 '성완종 리스트' 인물 중 한 명이다.

결국, 박 대통령은 이날 자신과 자신의 최측근들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서는 일절 거론하지 않은 셈이다. 오히려 여야가 '성완종 리스트'를 둘러싸고 정쟁을 벌이고 있다는 인식까지 다시 노출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중남미 순방 성과를 거론하며 "우리 정치도 정쟁에서 벗어나 국민을 위한 정치개혁에 나서줄 것을 부탁드린다"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미 박 대통령이 충분히 의지를 밝혔다는 입장이다. 김성우 홍보수석은 "박 대통령이 (성완종 리스트 관련) 불법 대선자금 의혹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나"라는 질문에 "대통령은 이번에 정치개혁을 이룰 마지막 기회라고 했고 그를 위해서 성역 없이 (수사) 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밝혔다"라고 답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나 유승민 원내대표가 요구했던 사과 내용에 대해서는 다 비켜선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구체적인 대상, 어떤 것에 대해 사과할 것인지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라며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니 그런 것을 보면서 필요하다면 적절한 입장을 밝힐 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히 무아지경, 박 대통령 스스로를 잊고 있다"

야권은 당연히 이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전병헌 새정치연합 '친박 비리게이트 대책위' 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대통령의 대독 메시지는 야당을 상대로 한 선전포고"라며 "측근이 연루됐는데도 책임을 지지 않고 오히려 책임을 묻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가히 무아지경(無我之境)이다. 정신이 한 곳에 온통 쏠려 스스로를 잊고 있는 경지"라고 꼬집었다. 그는 "성완종 리스트의 8인은 모두 대통령의 최측근이고 건넨 돈 대부분은 박 대통령을 향한 불법자금"이라며 "그런데도 대통령은 남의 얘기만 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새누리당도 '겉'으로만 환영할 뿐이다. 김무성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언급은 대통령으로서 적절한 말씀"이라며 "지금 이 시점에서 대통령이 하실 말씀을 다 하셨다고 생각한다"라고 박 대통령을 두둔했다.

그러나 유승민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박 대통령의 유감 표명에 대해 "드릴 말씀이 없다"라며 말을 아꼈다. "사과는 없었다는 야당의 비판이 나올 텐데 어떻게 보느냐"라는 질문에는 아예 침묵했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태그:#박근혜, #성완종, #유체이탈, #특별사면, #4.29 재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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