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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납치당했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사진 찍는다면 제법 폼을 잡는 첫째..
▲ 첫째아들(9살) 사진 찍는다면 제법 폼을 잡는 첫째..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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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급한 목소리! 근데 어디선가 많이 듣던 소리입니다. 자동차 사이드미러로 뒤를 보았는데…. 참내.

"살려주세요. 저 좀 꺼내주세요!"

첫째 아들(9살)입니다. 머리를 차창 밖으로 내밀고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납치당했어요" 이러고 있는 겁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의혹의 눈초리를 보냅니다. 어이가 없고 한편으론 오해를 살까 싶어  얼른 창문을 올리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았습니다. 그러고는 첫째를 한 대 쥐어박았습니다.

오늘은 우리 아들들의 웃기지만 황당한 이야기들을 글로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번에는 택시기사나 버스 안에서 그리고 장례식장에서 있었던 민망한 이야기들을 모았다면 오늘은 아내와 아이들과의 대화 중에서 골라보았습니다.

아래 먼저 나오는 글은 첫째 아들(9살)과 아내와의 대화입니다. ​

​이거 갖다가 누구 입에 대요?

"엄마 밥 다 했어요?"
"응."

첫째가 엄마에게 물어봅니다.

"근데 왜 카레 냄새가 안 나는데요. 카레 만들어준다고 했잖아요."
"카레 대신 햄 만들었어."
"엄마 이거 갖다가 누구 입에 대요?"
"밑에 거 햄 만들어주세요."
"알았다 인마."

​​​엄마, 이러다가 밤새울 것 같아요!

아내가 첫째 아들(9살)을 보고 말했습니다.

"받아쓰기 틀린 거 연습하자. 책 펴!"
"네."​

아들은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아 받아쓰기 문제집을 폅니다. 엄마랑 받아쓰기 할 때는 정말 무섭다는 걸 알거든요. 대꾸 없이 바로 받아쓰기를 시작합니다. 근데 틀린 게 너무 많았습니다. 열 문제인데 중간 중간 틀리는 글자가 많아서 한 개밖에 맞지 않았습니다. 받아쓰기 점수가 10점입니다. 지난번 학교에서 치른 받아쓰기에는 30점 맞았거든요. 아내가 소리를 높여 말합니다.

"△△아, 너무 많이 틀렸어. 이거 틀린 거 다 열 번씩 읽어. 알았지?"

그러자, 이렇게 대답합니다.

"엄마, 그냥 쓰는 게 낫지 않을까요?"

틀린 문장을 다섯번씩 써 가야 합니다. 2개 맞으면 8문장을 다섯번씩 써야 하니 시간이 상당히 걸립니다.
▲ 받아쓰기 숙제하는 첫째아들 틀린 문장을 다섯번씩 써 가야 합니다. 2개 맞으면 8문장을 다섯번씩 써야 하니 시간이 상당히 걸립니다.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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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룩한 얼굴, 책을 든 엄마 앞에 선 아들은 한없이 작아집니다. 자진해서 열 번씩 쓰겠답니다.

"열 번 쓰든지 읽든지 외우도록 해보라고."
"엄마, 열 번 쓸게요."

근데 아들이, 알고 있는 글자까지 일일이 쓰는 것을 보고 아내는 다시 얘기합니다.

"△△아, 알고 있는 건 놔두고 잘 모르겠는 것만 열 번씩 쓰면 더 쉽잖아."
"……. 네~."​
"조금 이따가 시험 볼 거야."

아내의 말을 듣고 묵묵히 글을 쓰던 아들……. 꽤 시간이 걸립니다. 심각한 얼굴로 쓰던 연필을 놓더니 엄마에게 이야기합니다.

"……. 엄마, 근데요……. 오늘 밤새워야 할 것 같아요."

아내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고 다시 말합니다.

"5분 뒤에 다시 시작한다."
"엄마, 나 밤새우면 또 학교에서 졸아요."
"누가 학교에서 졸라고 했어? 저녁에 배울 때 잘 익히면 되잖아."
"네, 그럴게요."

아이가 안쓰럽습니다. 아내라고 아들 독촉하는 게 재미있을까요? 시간이 해결해주겠죠?

​뭐가 창피해요?

첫째가 국어 받아쓰기 시험 10문제를 보고 왔습니다. 아들이 엄마한테 얘기합니다.

"엄마 나 20점 맞았어요."
"20점? 창피하지도 않냐?"
"엄마, 나 다 틀린 거 아니에요. 글자 일부만 틀렸어요."
"일부만 틀려도 그렇지. 다른 애들은 다 100점 맞았다며."

아이 말에 의하면, 글자 일부만 틀렸다는 것은 한 문장 내에서 글자 하나의 받침이 틀려서 문장 전체가 오답이라고 체크된 것이랍니다. 그래도 거의 알고 있었는데 받침 한두 개만 틀렸으니 그래도 나름 잘하지 않았냐는 거죠.

"창피하긴 하죠."
"난 창피해서 학교 못 갈 것 같다."
"그래도 친구들은 몰라요."
"선생님이 뭐래?"
"선생님이 몰래 불러서 두 번만 쓰라고 했어요. 근데 엄마, 이번엔 엄마들 모임 안 가요?"
"야 창피해서 못 가겠다. 너라면 가겠냐?" 
"에이 아무도 몰라요. 가세요. 그래야 저는 동생이랑 '스펀지 밥' 보잖아요"

그런데 이놈 하는 말이 가관이다.

"엄마, 오늘 축구공이 내 머리를 세게 때리고 갔어요. 근데요 내 머리가 하나도 안 아파요. 왜 그런지 알아요? 내 머리가 단단해서 그래요. 흐흐 돌인가 봐요, 돌 머리요."

헐! 자랑이다~ 이 시키! ​마지막으로 첫째가 노래를 부릅니다.

"힘겹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힘겹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

첫째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걸까요? 힘겨운 삶을 재미있게 살려고 아옹다옹하는 걸까요? 아래는 둘째(7살)와 우리 부부 사이의 대화입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빠에게 뽀뽀해주는 둘째(7살)

​오늘 저녁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는데 둘째 아들(7살)이 저에게 뽀뽀를 해줍니다. 평소에 아빠가 뽀뽀 좀 해달라고 그러면 징그럽다면 이리저리 도망 다니던 애가 왜 그러나 싶어서 물어봤죠.

"아빠, 아빠가 파워레인저 사줬어요?"
"응."
"그럼, 가면라이더 사준 것도 아빠예요?"
"그렇지 아빠가 사줬지."
"아빠가 밥도 사주고 카레도 사준 거예요?"
"당근이지. 인제 알았어?"
"아빠, 또 뽀뽀 해줄게요."

그러더니 입술을 쭉 내밉니다. 난 웬일인가 싶었습니다. 아내한테 물어보니 둘째가 장난감이랑 먹는 거 누가 사준 거냐고 물어봤답니다. 그래서 아내는 모두 아빠 돈으로 사줬다고 했다죠. 그래서 아빠에게 고맙다고 뽀뽀를 해준다네요. 지금까지는 빵도 자장면도 파워레인저도 엄마가 사준 줄로만 알았는데 이 모든 것을 아빠가 벌어온 돈으로 사왔다니 아빠한테 너무 고맙답니다.

첫째와는 다르게 애교도 많고 차분한 둘째. 멍멍 거리며 기어와서는 엄마한테 안기는게 주특기입니다.
▲ 빨래 개는 둘째(7살) 첫째와는 다르게 애교도 많고 차분한 둘째. 멍멍 거리며 기어와서는 엄마한테 안기는게 주특기입니다.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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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우리 둘째 △△이(7살)가 지난날(13일) 내게 했던 말입니다. 아빠한테 안아달라고 해서 연거푸 뽀뽀를 해주더니 빨래를 갠다고 내려갑니다. 엄마가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어 널고 있으니 자기는 빨래를 갠다고 주섬주섬 수건을 접고 있네요.

둘째는 때로 아들이 아닌 딸 같은 모습이 많습니다. 강아지 흉내를 내며 '멍멍'거리며 기어오다 엄마에게 안깁니다. 음악을 틀어놓으면 막춤을 추며 저녁마다 엄마 아빠를 즐겁게 해줍니다.

​반면, 첫째는 누가 봐도 남자아이입니다. 이제는 아빠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장난이 심해졌습니다. 하루 종일 학교에 학원에 있다가 태권도장에서 두 시간을 뛰어다녔는데도 집에 오면 남아도는 열정을 주체 못 하고 내 머리 위로 올라가고 어깨를 발로 밟아 바닥으로 뛰어내립니다. 내가 서 있어도 앉아 있어도 아빠 몸을 놀이기구 삼아 무언가 계속 오르락내리락하느라 온몸의 진이 빠집니다.

반면 둘째는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있어 너무 행복합니다. 첫째는 첫째대로, 둘째는 둘째대로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 행복이란 게 멀리 있지 않습니다.

엄마는 헐크잖아요! ​

​둘째가 저에게 묻습니다. ​

​"아빠, 아프리카에 집 있어요?"
"있지."
"왜요?"
"아프리카에도 사람이 살아. 그러니까 집도 있지."

거실 벽에 붙어 있는 세계지도를 보며 어디 어디에 사람이 사는지 궁금한가 봅니다. 또 물어보네요.

"아빠, 그럼 남아메리카에도 집이 있어요?"
"있지, 거기도 사람이 사는데."

녀석이 마지막으로 물어봅니다.

"그럼 아빠! 아시아에도 집이 있어요?"
"당근 있지. 아빠도 아시아에 살고 있으니까."

그러자 첫째 아들이 대답하네요.

"우리가 사는 곳이 아시아잖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둘째…….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한마디 던집니다.

"그럼 아시아에는 엄마가 없겠네요?"

아내가 물어봅니다.

"왜 엄마는 없는데?"
"엄마는 '헐크'잖아요. 사람이 아니잖아요."

씩 웃네요……. 첫째도 크게 따라 웃습니다. 아내는 어이가 없어서 한마디 합니다.

"이놈이~ 됐어!"

애들한테는 엄마가 누구보다도 무서운 존재 즉, '헐크'이니까요. 아빠가 가끔 사자보다 무섭고 호랑이보다 힘세며 귀신도 놀라서 줄행랑친다는 존재가 엄마이니까 밤에 아빠가 늦게 들어와도 걱정 말라 했거든요. 이제 아이들도 아빠를 따라 농담을 할 나이가 되었나 봅니다.

엄마, 아빠 양말도 챙겨야죠

어제는 회사일로 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사무실에서 잤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아내가 아이들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나 봅니다. 그래도 아빠 말보다는 엄마 말을 잘 듣네요. 아빠는 친구 같은 느낌이 강한가 봅니다. 아침 7시 20분, 아내가 아이들에게 차갑게 말했답니다.

"일어나.​"
"……. 네."

부스럭부스럭대며 군말 없이 일어납니다. 평소에 아빠가 깨우려고 하면 갖은 쇼를 다하고 화장실 앞에서 일단 자고 보는 게 일인데 이 날은 군기가 바짝 들어서 일어났답니다.

"얼른 세수하고 양치​ 해!"

바로 화장실로 들어갑니다. ​내가 얘기할 때는 그렇게 굼뜨고 느릿느릿하더니만 엄마가 이야기하니 참 말을 잘 듣습니다.

"밥하고 반찬은 뭐 먹을래?"
"엄마, 그냥 식빵에 딸기잼이 낫지 않을까요? 간단하잖아요."

첫째 아들​이 말합니다.

"그래, 그러자."
"근데 엄마, 아빠 양말 챙겨야 하지 않아요? 어제 통화할 때 아빠가 양말 가져오라고 한 것 같은데요."

이번엔 7살 동생이 이야기하네요.

"아, 참 그렇지. △△아, 아빠 양말 좀 챙겨줄래?"
"네, 여기 있어요. 엄마 양말도 골라줄까요?"
"아니, 괜찮아. 고마워~."

참 별종입니다. 둘째는 언제가 보면 꼭 어른 같은 행동을 합니다. 말하는 것도 아이 같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아빠 양말도 챙겨주고 엄마 양말도 챙겨준답니다. ​

엄마 아빠가 손잡은 것을 보고 '썩소'를 날리는 둘째 아들!

오랜만에 거실에서 아내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둘째가 이상하다는 듯 물어봅니다.

잘 웃는 둘째입니다. 가끔 나이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여 형과 부모를 놀라게 합니다.
▲ '썩소'를 날리는 둘째 잘 웃는 둘째입니다. 가끔 나이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여 형과 부모를 놀라게 합니다.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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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왜 아빠 손을 잡아요?"
"왜? 아빠 손잡으면 안 돼?"
"예, 이상해요. 그리고 엄마 자리는 거기가 아니잖아요"

하며 탁자 오른쪽을 가리킵니다. 평소 아내는 탁자 오른쪽에 나는 왼쪽에 앉아 있긴 했죠. 그런데 오늘은 둘이 나란히 앉아 손을 잡고 있으니 이상하다네요.

"△△아, 엄마랑 아빠랑 옆에 앉아서 손잡고 있으면 왜 안 되는데?"
"그냥요. 원래 엄마 자리는 여기고 아빠 자리는 여기잖아요."

그러더니 묘한 웃음을 날립니다. '썩소'라고 해야 하나? 남녀 간에 못 볼 장면을 보았다는 듯 한 그 야릇한 미소! 우린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둘째 아들에게 이상한 취급을 받았고 말았네요. 사진보다 미묘한 웃음입니다. 앞니를 드러낸 채 웃는 그 표정은 사진으로라도 찍어놓고 싶었습니다. 뭔가 자기는 알고 있다는 얼굴 말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지나간 자취를 간직하고 있는 그림입니다. 하얀 도화지 같은 어린이들의 마음과 상상력에 푸르고 깨끗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것은 우리 어른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무한한 책임을 느낍니다. 이렇듯 톡톡 튀는 언행을 하면서도 천진난만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혹시나 나와 아내의 부정적인 모습이 담겨있지는 않은지 말입니다.

세상은 욕망과 고통, 그리움과 수고의 바탕 위에서 인간의 바람 희망이 꿈을 틔우는 곳입니다. 자연에 대한 환희와 아픔, 인간에 대한 기대와 실망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이 어떤 그림을 그려갈 자못 궁금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세상을 배워가며 삶의 그늘진 곳을 피할 순 없겠지만, 언제나 긍정적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가졌으면 합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고 합니다. 힘겹게 춤을 출 때도 있지만 춤을 추게 하는 땀의 노력만큼은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태그:#자식 교육, #아들들 키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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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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